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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도 삶은 계속 되니까 - 퍼펙트 센스
    리뷰 2011. 11. 29.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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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늦은 가을, 이미 겨울에 접어든 추운 계절, 앙상한 나뭇가지만 내보이고 있는 길거리 가로수, 떨어진 나뭇잎도 모두 바삭바삭 말라만 가는 계절.

    건조한 공기만큼이나 연인들의 애정도 메말라 가고, 솔로들의 가슴 속엔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괜히 쓸쓸함이 더해오는 때, 상처 입은 짐승들은 밤마다 달을 보고 울부짖어도 그 깊은 상처 아물지 않는 계절.

    그런 계절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로맨스 멜로 영화.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구슬프게, 사랑이라는 주제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려고 애쓰는 그런 영화들 중 하나에 ‘퍼펙트 센스’가 있었다.






    마지막 남은 무료 예매권 사용기간이 다 돼서 무작정 들른 극장. 아무 영화나 하나 집어 보고, 재미 없으면 컴컴한 상영관에서 잠이나 퍼질러 자자고 생각하며, 아무 생각 없이 고른 영화였다.

    마스크를 쓴 채 남녀 주인공이 키스를 하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는 포스터. 그 밑엔 ‘모든 감각이 사라진다 해도 당신을 기억할거야’라는 포스터 카피 문구.

    이건 분명 오글오글 손발 오그라드는 사랑 영화임에 틀림 없다며, 불치병 걸린 주인공과 그를 사랑하는 연인을 그리는 영화일 거라며, 아아 징징 짜는 영화는 싫은데 하면서도 딱히 볼 영화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했다.

    아 그런데 이 영화, 보고 있으니 무슨 SF 재난영화 같이 스토리가 내 생각과는 다르게 안드로메다스럽게 펼쳐진다. 황당하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의외의 스토리였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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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름 아픈 상처를 가지고 수많은 여성들과 엔조이만을 즐기는 남자 주인공 마이클 (이완 맥그리거). 그리고 아픈 상처를 가지고 더 이상 사랑은 하지 않겠노라 결심하며 스스로 나는 정말 바보 같아 노래 부르는 여자 주인공 수잔 (에바 그린).

    사실 현실에서 누구나 가지고 있을 듯 한 상처들을 가지고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보이고 있는 현실적인 반응들을 내보이는 주인공들 때문에 아마 공감하는 사람들도 많으리라 본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별 것 아닌 사랑 이야기도 자신의 이야기로 와 닿으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대단한 스토리가 되는 법이니까.

    어쨌든 결론은 이 남녀 주인공이 만나서 사랑하게 된다는 뻔한 건데, 그 과정이 참 독특하다. 영화의 배경으로 깔리는 환경이, 전 세계에 이상한 전염병이 도는 것으로 설정 돼 있기 때문이다.



    그 이상한 병은 처음에 극도의 슬픔이 찾아온 후에 후각을 상실해서 아무 냄새도 못 맡는 것으로 시작된다. 정신을 잃을 정도의 탐식 후에 미각을 잃게 되고, 이유 없는 증오 후에 청각을 잃게 된다. 그리고 또 이유 없는 용서와 사랑의 감정 후에 시각을 잃는다.

    ‘퍼펙트 센스’는 그런 배경 속에서 두 주인공이 어떻게 사랑을 해 나가는지를 그리고 있다. 일반적인 멜로 영화와는 약간 다른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진지하게 펼쳐 나가는데, 주인공들이 청각과 시각을 잃을 때는 관객들 역시 스크린에서 아무 것도 들을 수 없고,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신기한 체험을 할 수 있어서 더욱 독특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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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주제를 한 마디로 압축시키자면, ‘그 어떤 상황 하에서도 우리는 사랑을 할 수 있다’ 정도가 되겠다.

    영화에서 수시로 반복해서 나오는 대사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라는 말과 연결해 보자면, 그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더라도 희망은 있고, 설사 희망 따위 없다 하더라도 삶은 계속되기 때문에 사랑도 계속된다는 내용이다.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다소 SF스러운 전염병 설정이 있는데, 이 병을 가만히 관찰해보면 현실적으로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질병들을 약간 과장해서 표현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 극도의 슬픔 후 후각 상실:
    영화에서 말 한 것처럼 냄새는 추억을 떠올리는 주된 수단이다. 비 오는 날 삶은 감자에서 옛 어린 시절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기억을 떠올린다든지, 배릿한 아가 옷에서 할머니의 기억을 떠올린다든지, 푸른 숲 바람의 냄새에서 좋았던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는 등, 많은 추억들이 냄새와 함께 한다.

    따라서 극도의 슬픔 후에 후각을 잃는다는 것은, 깊은 슬픔 후에 기억을, 추억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그렸다고 볼 수 있다.


    - 탐식 후 미각 상실:
    갑자기 정신을 잃고 주체할 수 없는 배고픔에 생고기를 뜯어 먹을 정도로 탐식을 한 후 사람들은 미각을 잃는다. 영화에서 나온 이 병은, 실제 현실에서의 욕심을 뜻하지 않나 싶다.

    먹고 또 먹고, 먹고, 먹어도 배부름을 모르는 사람들. 돈이든 사랑이든, 더욱 더 많이, 더 많이, 많이 가지려고 애쓰는 사람들. 대체 왜 더 가지려는지, 왜 더 먹으려는지, 그 의미와 맛은 이제 중요치 않고, 단지 더 가지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세상. 이미 잃어버린 미각이지만, 아무도 안타까워하지 않는 현실 말이다.


    - 갑작스런 증오 후 청각 상실:
    이유 없는 증오란 없을 테다. 저마다 가슴 한 구석에 못 박힌 응어리들이 어느 순간 밖으로 튀어 나오면 그것이 증오로 표출되는 것.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옛날 사람들도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일상 속에서 증오를 거리낌 없이 수시로 폭발시키며 살아간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청각을 잃는다. 내 상처, 내 마음, 내 분노만 중요할 뿐, 다른 사람의 말이나 의견이나 사정, 입장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잃어버린 후각과 미각 속에서 청각을 상실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이 단계에 와서까지 다른 사람을 온전히 받아줄 수 있다면, 그는 아마도 후각과 미각을 잃어버리지도 않았을 테니까.

    이쯤 돼서는 영화 ‘사이보그지만 괜찮아’가 떠오른다. 모두가 사이보그가 되어 위선적이고 무자비하고 위험하며 절망적인 세상 속에서, 미쳐버린 사람들만이 정상일 수 있는 아이러니 한 세상 말이다.


    - 이유 없는 용서와 화해 후 시각 상실:
    때가 늦었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라는 후회와 비탄 속에서 이유 없는 용서와 화해는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이 때가 돼서야 깨달을 수 있다, 사랑과 이해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도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이해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이 때가 돼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고 난 후다. 이대로도 괜찮을까 싶은, 희망보다는 절망에 더욱 가까운 벼랑 끝에 선 후에야 뒤늦게 깨닫는 것이다.


    혹은 이제서야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은 눈이 멀어야만 완벽해진다고도 해석할 수 있겠다. 이미 지난 아픈 과거를 잊고, 좋았던 추억도 잊고, 모두가 그런 것처럼 탐욕 속에서 하루하루를 그저 그렇게 살아가면서 남을 위한 배려 따위 위선적인 표정으로 그 잘난 입으로만 떠들 때, 그 때서야 너무 많이 잃었다는 것을 깨달은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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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늦은 그 때서야 사랑은 어느 날 하늘 위를 울려 퍼지는 오로라의 화려한 빛 같은 운명처럼 환하게 밝아오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비슷한 상처와 아픔과 고통과 질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럼에도’ 함께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그 곁에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상황에 처해야만,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늦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며, 지금이라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밖에 없는 상황. 어떻게 보면 절망적이지만 어떻게 보면 희망적인, 더 오를 수도 그렇다고 내려갈 수도 없는 절벽 한 가운데 피어난 한 송이 꽃처럼, 어쩌면 진정한 사랑은 그렇게도 아득한 상황 속에서나 피어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현실 속에서 어떻게든 답을 찾고 길을 찾으며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이 사랑일지도 모른다. 영화 속의 남자 주인공 마이클(이완 맥그리거)은 요리사인데, 사람들이 후각을 잃었을 때는 음식 맛을 아주 진하고 자극적이게 만들고, 미각을 잃었을 때는 소리와 촉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그리고 청각을 잃었을 때는 시각적 화려함을 느낄 수 있도록 음식을 만들어 낸다.

    그저 살기 위해 먹는다는 기능에 충실한 그런 지방과 밀가루 덩어리 음식들은 극도로 혐오하면서, 어떻게든 요리를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즐길 수 있도록 헤쳐나가는데, 어쩌면 사랑 또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그렇게 외로우니까, 곁에 있으니까, 여태까지 쭉 그래 왔으니까 당연한 것처럼, 그냥 있으면 좋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있는 것보다는, 항상 새롭게, 다르게, 더욱 깊게 이해하고 파고들면서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마음, 그리고 그 행동 자체가 삶의 기쁨이자 즐거움이자, 다른 사람들에게도 희망이 될 수 있는 그 어떤 것.

    이제 시각을 잃었으니 뭔가 또 다른 감각을 이용한 음식을 만들어 내겠지, 모든 것을 다 잃고 나서야 찾아온 그 사랑처럼. 어쨌든 삶은 계속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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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펙트 센스’라는 영화 제목처럼, 이 영화는 어떻게 설명하고 떠들고 글로 쓰는 것보다는, 그냥 보고 느끼는 편이 더 나은 영화다. 딱히 뭔가 설명을 하지 않아도, 감상 포인트를 숙지하지 않아도, 배경지식이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알지 못해도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영화니까.

    그래서 어떻게든 정리해 보자며 시작한 이 글도 그저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들의 산발적인 기록 밖엔 되지 못했는데, 여기에 덧붙여 하나 더 조금은 다른 느낌도 기록해 두고 싶다.

    얼마 전에 본 ‘티끌 모아 로맨스’를 ‘퍼펙트 센스’에 조금 부정적으로 교묘하게 짜집기를 해보면 어떨까. 이제 모든 감각을 잃고, 시각마저 잃은 두 주인공 속에서 이런 나레이션을 한 번 넣어 보는 거다.

    “우리가 만나서 뭘 어쩔 건데? 우리 같은 거지들이 만나서 뭘 어쩔 거냐고!”

    아아 순식간에 엄청난 초를 치며 영화가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 영화에서 대사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새삼 와 닿는 대목이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는 이런 울림이 더욱 설득력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모르겠다, 사랑, 사랑. 참 좋기는 한데, 그런 사랑 만나기는 참 어렵다. 조심해서 눈 여겨 보면, 영화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두 주인공 밖에 없다. 심지어 스스로 바보 같다며 아픈 상처 이기지 못하고 빌빌거리는 여주인공을 위로해 줬던 언니마저, 별다른 사랑하는 사람 하나 보이지 못 했다.

    그러니까 어쩌면, 사랑, 진정한 사랑은 어쩌면, 그 모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준비 돼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닐까라는, 그런 메시지를 전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영화의 표면적인 면만 본다면, 솔로에게는 사랑의 아름다움에 쓸쓸한 겨울 바람이 더욱 차게 느껴질 수 있고, 연인들에겐 에바 그린의 노출과 함께 서로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야릇한 오늘 밤 약속을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그런 영화다.






    P.s.

    우리나라에서 이 영화를 15세 이상 관람가로 해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에바 그린의 가슴 노출이 아무렇지도 않게 많이 나온다. 뭐 사실 남자가 상의 탈의한 거나, 여자가 상의 탈의한 거나, 남녀평등적 차원에서 본다면 그게 그거긴 하다. 점점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가면 결국 여성 상의 탈의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져서, 결국엔 수영장에서도 여자들이 팬티만 입고 수영을 할 날도 올 테고. 어쨌든 그런 부분이 있으니, 참고 하라는 뜻이다. (자녀들 지도에 참고를 한다든지, 에바 그린 노출을 보기 위해 한 번 가봐야겠다든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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