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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글 지도 보고 산 넘어 간 길이 삽질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3
    해외여행/홋카이도 자전거여행 2016. 6. 22. 16:50

     

    시골 산 구석으로 난 국도를 따라 후라노 쪽으로 가고 있다. 밤엔 추워서 깰 정도였는데 낮엔 또 햇볕에 몸이 탄다. 동남아 처럼 그렇게 작렬하는 햇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좀 움직이면 덥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냥 시내 구경이나 다닌다면 기분 좋게 거닐만 한 그런 햇볕. 하지만 이것도 자전거를 타면서 하루종일 받으면 여기저기 다 탄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옛날엔 홋카이도가 여름에도 이 정도로 덥지는 않았다고 하더라. 지구온난화나 기상이변 뭐 그런 것 때문에 이렇게 된 것 아닌가 추측한다고 하는데, 사실 그래봐야 한국의 여름 더위와는 비교가 안 된다. 한낮의 더위라고 해봤자 한국의 초여름이나 초가을 정도니까. 햇볕 아래에서 움직이면 덥고 땀 나는데, 아무 그늘이나 찾아서 들어가면 금방 시원해지고 땀도 다 마른다. 쉴 곳만 틈틈이 있으면 좋을 텐데, 문제는 쉴만 한 그늘이 별로 없다는 거.

     

    구글 지도 보고 산 넘어 간 길이 삽질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3

     

    사진을 보면 차도 주변에 나무가 있긴 한데, 수풀을 헤치고 저기까지 기어 들어가서 쉴 수는 없잖아. 뱀이나 모기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길 가에 나 있는 나무를 제외하고 보면 전혀 쉬어 갈 그늘이 없는 거였다. 그러다가 저렇게 고가 다리라도 하나 만나게 되면 그 아래 그늘에서 잠시 쉬어갔다.

     

    여름철 홋카이도엔 오토바이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저 그늘 아래서 잠시 쉬고 있는데 몇몇 오토바이 라이더들도 쉬었다 가기도 했다. 한 번은 정말 큼지막한 수퍼 오토바이(?)를 탄 사람이 부웅 와서 내리는데 늘씬한 미녀. 뭐 그냥 그렇다고.

     

    홋카이도는 캠핑장이 많기도 하지만, 이런 오토바이 라이더를 위한 숙박업소가 많은 걸로도 유명하다. 일명 '라이더 하우스 (일본 발음으론 라이다 하우스)'라고 부른다. 게스트하우스라고 보면 되는데, 오토바이나 자전거로 여행하는 여행자들이 이용하기도 하고, 그런 사람들을 위한 편의시설이라든지 정보 교환 같은 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물론 꼭 그런 여행자들만 받는 건 아니고 아무나 가도 된다.

     

    보니까 홋카이도에서 오토바이를 랜트해서 다니는 여행자들도 꽤 있는 듯 했다. 대체로 오토바이 여행자들은 오토바이에 '나 여행자요' 표시 날 만큼 짐을 싣고 다닌다. 아마도 대부분은 라이더 하우스 같은 걸 이용하지 않을까 싶은데, 오토바이에 텐트 싣고 다니면서 캠핑을 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오토바이 면허증이 있다면 한 번 시도해 볼만 한 여행 방법일 듯 싶다. 자전거 페달질 너무 힘들다.

     

    근데 사실 이건 힘들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 취향을 더 크게 탄다. 아무래도 속도가 있으면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에 못 보는 게 있을 수 밖에 없고, 자전거가 주는 재미도 분명 있긴 있다. 스스로를 고통 속에 몰아넣고 그 속에서 쾌락을 즐기는 세디스트가 좋아할 만 한 여행 방식이기도 하고. 근데 그렇게 따지면 제일 좋은 건 도보 여행이다. 그게 너무 힘들고 의미 없는 고행을 너무 많이 해야한다고 생각해서 약간 편하게 즐기는 게 자전거라고 볼 수 있고, 그걸 좀 더 확장하면 오토바이 탈 수 있는 거고, 뭐 그런거지.

     

    예전에 한 번은 제주도에서 스쿠터로 여행하는 사람을 만난 적 있었다. 제주시에서 서귀포까지 여행하긴 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서귀포에서 포기하고 업체에 전화해서 용달차에 실려서 제주시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고 하더라. 그 여행자가 의지박약이라거나 그런 게 아니다. 취향따라 체력따라 자신에게 맞는 여행 방법이 있다는 말이다. 물론 고급 호텔에 묵으며 개인 가이드 데리고 개인 차량으로 편하게 다니는 여행은 사람 취향따위 타지 않는 만인이 좋아할 여행 방법이겠지만 꿈 깨자.

     

    구글 지도 보고 산 넘어 간 길이 삽질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3

    (가다보면 여기저기 공터들이 많다. 여차하면 공터에서 하룻밤 묵어야 하겠지만, 이런 산골은 곰이 문제다)

     

    구글 지도 보고 산 넘어 간 길이 삽질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3

     

     

    구글 지도 보고 산 넘어 간 길이 삽질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3

     

    거의 하루종일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고물 자전거에다가 중국산 오천 원 짜리 손 펌프로 바람을 넣어서인지 속도가 나질 않았다. 며칠 뒤에 봤더니 정말 자전거에 공기가 빵빵하게 들어가지 않아서 속도가 안 난게 맞긴 하더라. 물론 타이어 안의 튜브에도 문제가 있었고.

     

    어쨌든 그렇게 편의점 하나 없는 산 속 국도를 몇 시간이나 달렸다. 아니, 달린 시간보다 끌고 오른 시간이 더 많다. 아침에 편의점에서 산 2리터짜리 물통은 이미 비어버린지 오래. 빗물 받아서 마시기도 했다. 목은 타는데 물 없어봐라, 너도 하게 될 걸.

     

    그러다가 무카와 타운이라고 적혀 있는 표지판을 봤다. 공룡 그림이 그려져 있다. 공룡 뼈다귀 같은 게 발견된 곳인가. 생김새가 네시와 비슷하다. 혹시 네스호 같은 게 있는 걸까. 궁금하긴 했지만 힘든게 더 컸으므로 다 무시. 자전거 여행은 이게 문제다. 육체적 피로가 지적 호기심을 이긴다.

     

    구글 지도 보고 산 넘어 간 길이 삽질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3

     

    정말 아무것도 없는 도로라서 그런지 군데군데 차 세워놓고 쉴 수 있는 공간들이 있었다. 점점 해는 지고 있고, 산길이 끝날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고. 오늘은 저런 공간에 대충 텐트 치고 하루를 보내야 하는 건가 생각하며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며 진행하고 있었다.

     

    구글 지도 보고 산 넘어 간 길이 삽질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3

     

    그러다가 갑자기 나타난 캠핑장. 지구구락부 (지구 클럽). 꽤 큰 규모의 캠핑장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상점처럼 오만가지 물건들을 진열해놓은 것이 보이고, 한쪽 구석에 데스크가 있다. 정말 오만거 다 판다. 컵라면이나 음료수, 바베큐 도구 같은 것들부터 시작해서 부채, 나무쪼가리, 효자손 등등. 일단 관심 없고 체크인. 가지고 온 텐트를 치는데 하룻밤에 600엔 정도 했던 것 같다.

     

    사진에 보이는 자전거가 내 자전거. 자전거 옆으로 달고 다니는 가방(페니어) 따위 살 돈 없다. 그냥 짐받침에 묶을 수 있는 짐은 다 묶고, 텐트 끼워넣고, 핸들에 물과 오니기리, 카메라 등을 비닐봉지에 넣어 묶어 다녔다. 이러면 앞 뒤 무게 배분이 돼서 안정적인 주행을 할 수 있다라고 말 하면 조금 멋있을지도. 그냥 짐은 많고 달고 다닐 데는 없고 해서 앞 핸들에 비닐봉지 묶고 다녔다. 없어보이는 게 뭔 대수냐, 누가 자전거 꾸밀 돈 주는 것도 아닌데.

     

    구글 지도 보고 산 넘어 간 길이 삽질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3

     

    구글 지도 보고 산 넘어 간 길이 삽질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3

     

    구글 지도 보고 산 넘어 간 길이 삽질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3

     

    캠핑장에 들어갔더니 다들 큼지막한 텐트들로 진을 치고 있다. 대부분 자동차로 와서 캠핑하는 사람들이었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리어카가 있어서, 차에서 짐을 싣고 캥핑장까지 이동하는데 쓰더라. 한국이나 일본이나 비슷한 것 참 많다.

     

    대부분 가족단위 캠핑족들이었고 꼬마들도 많아서 낮엔 좀 번잡하고 시끄러운 편이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비를 피할 수 있는 큰 나무 아래 좋은 자리들은 이미 다들 선점한 상태여서, 난 그냥 풀밭 변두리 한쪽 구석에 텐트를 쳤다. 내 텐트가 제일 작고 싸구려야. 다들 텐트도 엄청난 메이커.

     

    텐트 치고 가만히 앉아서 아침부터 열심히 운송해 온 오니기리를 먹으며 캠핑장을 구경하니, 여기저기 바베큐 파티를 하며 웃고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참 가족적이었다. 싫어. 고기냄새 온 천지에 진동하고 애새끼들 텐트 사이로 뛰어 굴러다니고 음치 주제에 기타치며 노래부르고 꼬맹이가 찬 공이 내 텐트에 맞고 젝일. 비나 퍼부어버려라!

     

    그랬더니 진짜로 비가 왔다. 그것도 장대 같이 굵은 비가 우수수. 사람들은 황급히 바베큐 파티를 정리하고 천막이나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일부는 짐 싣고 집으로 가더라. 야영장은 순식간에 빗소리로만 가득 채워져 고요하고 아늑한 곳이 됐다. 이제 나도 잠을 자야지. 텐트에 비가 새 들어오긴 하지만.

     

     

     

    이 캠핑장에 체크인 하니까 나무조각에 스탬프로 찍은 표식을 주더라. 돈 냈다는 표시인데, 나중에 반납하려고 하니까 가져가는 거라더라. 나름 기념품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나는 바로 버렸다. 어차피 버릴 거, 짐으로 들도 다니다가 버리느니 미리미리 버리는 게 낫다 싶어서.

     

    어쨌든 이 표식이 있으면 근처에 있는 온천을 할인 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더라. 그렇다, 이 캠핑장 근처엔 온천이 있는데, 문제는 여기가 산 중턱 쯤이라는 거. 캠핑장 아랫쪽에 온천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돌아오려면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온천 하는 의미가 없다. 이런 것도 자전거 여행자의 비애.

     

     

     

    여기서부터는 삽질 기록.

     

     

    위 지도에서 A에서 B까지 이동해야 했다. 지토에서 후라노 가는 길이다. 빨간 화살표가 내가 이동한 경로인데, 주황색 쭉 뻗은 길을 벗어나서 산 쪽으로 나 있는 좁은 노란색 길을 이용했다.

     

    구글 지도엔 저 주황색 길이 '자동차 도로'라고 돼 있다. 그래서 국도로 벗어난 거였다. 그리고 자동차 전용 도로가 있는 게 맞긴 맞다.

     

     

    지도를 확대해봐도 저렇게 나온다. 더 세밀하게 확대해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도로가 저렇게 뻗어 있고, 국도는 이런 산 구석탱이로만 갈 수 밖에 없는 걸로 나온다.

     

    하지만 이건 틀렸다. 나중에 지도를 사서 확인해보니 저 자동차 도로와 함께 국도가 있었다. 산길 안 타고 비교적 쉬운 길로 갈 수 있었다. 아오 내가 저 산길로 빙 둘러서 매점 하나도 없는 길을 물도 떨어져서 빗물 마셔가며 끌고지고 산 몇 개를 넘은 걸 생각하면 정말...

     

    나중에 만난 한 중국인 자전거 여행자도 구글 지도만 보고 내가 갔던 저 길로 갈 계획이라고 하길래, 그때는 현지에서 산 지도책을 보여주고 '여기 길이 있다!'를 외치며 그 길로는 가지 말라고 해줬다. 힘들기만 하면 괜찮은데 편의점 같은 게 하나도 없는 건 정말 치명타니까.

     

    이게 구글 지도의 한계다. 해외 여행을 할 때 대체로 구글 지도가 유용하게 쓰이긴 하는데, 현지 실제 사정과 맞지 않는 경우도 꽤 많다.

     

    이 산길 접어들기 전에 편의점 몇 군데를 들러서 지도책을 구경하며 살까말까 망설였는데, 아 무슨 지도책 하나가 다들 1500엔 수준이야. 그래서 일단은 일부 지역 뿐이지만 구글 지도가 오프라인으로 저장 돼 있으니 그걸로 버텨봐야지 했는데 이런 수모를 겪을 줄이야. 그러니까 이런 말을 남기고 싶다.

     

    소년아, 지도를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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