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자살여행
뮤지컬 '기발한 자살여행'은 자살을 하려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죽으러 길을 떠난다는 집단자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뮤지컬은 핀란드 출신의 작가 아르토 파실린나의 소설 '기발한 자살여행'을 원작으로 한 창작 뮤지컬이다. 통일이 이루어진 미래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백두산도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설정이었다. 소설 기발한 자살여행 뮤지컬 기발한 자살여행 소설 용의자 X의 헌신 영화 용의자 X의 헌신 어느 쓸쓸한 날의 선택, 자살
서로 같은 장소에서 자살을 시도하려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이왕이면 자신들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모아 함께 행동 하자는 생각으로 사람들을 모은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자살여행을 떠나고, 가는 중간중간 또 다른 사람들을 태우며 여행을 계속해 간다. 북한에서도 자살자들을 픽업했으니, 이만하면 자살은 국경도 없다고 말 할 수 있겠다.
오랜만에 본 뮤지컬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좋았지만, 음악과 무대장치 등이 꽤 좋은 편이어서 눈과 귀가 즐거운 뮤지컬이었다. 제목만 봐서는 뭔가 우중충하고 어두운 내용일 것 같지만, 이 뮤지컬의 장르는 무려 '코믹 어드벤처 로드 뮤지컬'. 그러니까 이것저것 다 떼고 한 마디로 말 하자면, 비극이 아니라 희극이라는 말이다.
물론 어느정도 예상을 하기는 했다. 이런 대형 뮤지컬에서, 그것도 소재가 자살인 공연이 비극으로 끝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하지만 그렇다해도 이 뮤지컬의 스토리라인은 좀 많이 손 볼 필요가 있겠다 싶을 정도로 어설픈 해피엔딩으로 급 마감 해 버린다. 공연시간이 좀 늘어나더라도 좀 더 등장인물들간의 개연성과 상호보완적인 이야기들을 끌어 맞춰서, 좀 더 자연스러운 결말을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안타까움 때문에 뒷끝이 씁쓸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자살을 다루는 방식은 대체로 그런 식이다. 아주 단편적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은근슬쩍 넘기며 얼버무려 버린다. 뻔하지 않은가, 자살을 생각 할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의 주인공이, (그놈의) 사랑타령 한 바탕으로 다시 삶의 희망을 찾아서 기쁘게 살게 된다는 그런 내용들.
언제나 자살을 극복할 수 있는 어떤 것이고, 즉흥적인 그릇된 판단이었고, 나약한 자의 상징 정도로 치부된다. 자살이라는 말이 나오면, 어떤 수식어와 이유와 예제들이 나열되더라도, 결국 조언이라고 나오는 말은 '닥치고 그냥 살아라,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 정도일 뿐이다.
그런데 다른 나라라면 모르겠는데, 우리나라에서 그런 식으로 자살 문제를 접근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한 시간에 한 명씩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OECD 국가들 중 자살율 1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연구는 고사하고, 조금 깊이 생각해 볼 꺼리나, 대화조차 불가능한 현실. 그저 개인적인 문제로 밀어내고 쉬쉬하는 분위기.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어쩌면 삶의 희망이나 보람, 살아가는 낙이라는 것은, 아주 사소하고도 평범한 어떤 일에서 찾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동명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어 최근에 개봉한 '용의자 x의 헌신'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고등학교 수학선생을 하면서 수학에만 빠져서 혼자 외로운 삶을 살고 있던 주인공은 어느날 자살을 시도한다. 조그맣고 어두운 구석방에서 목을 매려는 순간, 거의 울릴 일 없는 현관의 벨이 울린다. 옆집에 이사 온 모녀가 인사를 하러 온 것이다. 그런 사소한 일로 자살을 멈춘 이후, 그는 오손도손 즐겁게 살아가는 모녀의 모습에, 사람 사는 소리에 그럭저럭 다시 삶을 이어 나가게 된다.
물론 이 침울한 수학선생의 자살에 얽힌 사연이 전체 이야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살인사건을 놓고 펼쳐지는 용의자와 수사관의 치열한 두뇌싸움이 핵심 내용이니까. 하지만 사건의 발단이 바로 그 자살사건부터라고 볼 수 있으니까, 이 이야기도 어느정도 자살과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목을 메려다 말고, 느닷없이 울리는 벨 소리에 어성어성 현관문으로 걸어나와 모녀를 맞이하는 장면. 그리고 그 이후, 모녀가 살아가는 모습과 소리들을 벽 너머로 넘겨보면서 희미한 미소를 띄우는 그 모습. '아, 정말 외로웠구나, 그런 사소한 기쁨에도 삶의 희망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힘들었던 거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그 짧은 장면들.
그러니까 이 영화(혹은 소설)에서처럼, 한 사람의 자살예정자를 다시 살게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쉬울 수도 있다. 문제는 그것을 밖으로 꺼내 놓고 공론화하지 않는다는 것 아닐까. 쉬쉬하고 피하며 언급하는 것 만으로도 끔찍한 병이 옮을 것처럼 꺼려하는 그런 분위기가 오히려 자살을 더욱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
불치병도 고치려고 연구하고 노력하는 마당에, 자살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왜 그리 소극적인지 (그렇다고 자살이 고쳐야 할 어떤 병이라는 말은 아니다). 자살에 대해, 죽음에 대해, 좀 더 자연스럽고도 깊이를 더해가며 생각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면 좋겠다. 소설이든 영화든, 그런 대중매체들도 좀 더 적극적으로 자살 문제를 좀 파고 들었으면 좋겠고. 그렇게 이야기들이 오고 가다보면, 그 속에서 뭔가가 보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마침 이런 작품들이 나온 때를 틈 타서), 삶과 죽음, 특히 자살에 대해 조금 깊이 생각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사춘기 때 어설프게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나름 고민한 것을 끝으로, 그 후엔 진지하게 그런 것 생각해 볼 시간도, 여유도, 분위기도 마련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굳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나와 내 주위에 그런 위기가 닥칠지도 모를 일이니까.
자살에 대해 조금 깊이 생각을 가져 볼 생각이 있는 분들은, 유명하고 대단하신 분들의 글들이 모여있는, '어느 쓸쓸한 날의 선택, 자살'이라는 책을 권해 드린다.
p.s.
뮤지컬 '기발한 자살여행'. 공연장 시설도 괜찮은 편이었다. 살아있으면 이런 것도 볼 수 있다. ㅡㅅ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