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강원도

카페 카자흐스탄, 동해역 앞 러시아 음식점

빈꿈 2020. 10. 28. 17:38

 

내가 사는 동네의 한 가게는 러시아 아줌마가 주인이었다. 오가며 물건을 사면서 한두 마디 나누다가 이것저것 알게 됐는데, 서울에 오기 전에는 '동하이'에 살았다고 했다.

 

어디 중국에서 살다 왔나보다 했는데, 나중에 더 얘기를 나눠보니 동하이는 Donghae, '동해'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동해시에 러시아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는 말도 해주었다. 마침 그때쯤 동해 여행을 갈 예정이어서 그 말이 기억에 남았고, 거기서 러시아 음식도 먹어봐야지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동해시에 오니까 현지 주민들은 러시아 음식점이 있는지도 잘 몰랐다. 사실 한국사람들이 러시아 음식점을 찾아다닐 이유는 별로 없을테다. 다른 곳에서도, 예를 들면 동대문에 자주 가는 사람들도 그쪽에 중앙아시아 음식점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동해에서 이것저것 많은 볼거리와 먹거리를 찾아다니면서 러시아 음식점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때 쯤, 우연히 식당을 하나 찾아냈다.

 

바로 '카페 카자흐스탄'. 의외로 찾기 쉬운 곳에 있었는데, 동해역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된다.

 

네이버지도나 카카오맵에는 나오지 않는데, 동해역 앞 CU편의점(CU 동해역점)을 찾아가면 바로 옆에 있다. 가게 앞유리에 러시아 음식들 사진이 크게 인쇄되어 있어서 찾기 쉽다.

 

 

 

메인 간판에는 'CAFE KAZAKHSTAN'이라고 쓰여져 있는데, 출입문에는 '식당 카자흐스탄'이라고 한글로 쓰여있다. 아마도 여기서 카페는, 베트남에서 흔히 사람 모이는 공간에 카페라는 글자를 붙이는 것과 같은,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생소한 사람들을 위해서 다시 설명하자면, 여기는 카페라고 써 있어도 카페가 아니다. 인터넷 카페가 카페가 아닌 것과 같다고나 할까. 그냥 식당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내부에 테이블 세 개 정도가 있는 작은 가게다. 일 하시는 분들은 겉보기에 고려인인 것 같은데 확실치는 않다. 말투가 고려인 말투라서 짐작한 것인데, 완전히 제대로는 아니지만 한국어 소통이 가능하다.

 

음식 주문 뿐만 아니라 일상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이지만, 문화 차이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는 부분도 있으니 너무 많은 말은 하지말자.

 

 

 

 

썀사를 먹고싶었는데 마침 재료가 다 떨어졌다해서 다른 것들을 주문했다. 음식들이 대부분 쇠고기가 들어가서 그런지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은 편이다.

 

해외에서 자국 음식을 구현하려면 아무래도 재료 같은 것을 구하기 위해서 그럴 수 밖에 없겠지.

 

 

 

피클, 버섯, 무 김치는 기본 반찬으로 나온다.

 

사진에 보이는 국물은 슈르빠. 소고기, 감자, 당근 등으로 끓인 소고기 국이다. 중앙아시아 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숙취 해소에 좋다는 말이 있다.

 

소고기국인데 빵을 준다는게 함정. 빵을 국물에 찍어먹는다고 한다. 밥을 별도로 시킬 수 있냐고 물으니 여기서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된다.

 

주인 입장에서는 저기에 밥을 함께 먹을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하는 듯하다. 어쩌면 탕수육 국물에 밥을 말아먹겠다고 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더 깊은 대화를 포기하고 굴야쉬에 함께 나온 밥을 슈르빠와 먹었다. 나도 귀찮은건 딱 질색이라 이런건 현지인들 먹는 방식으로 순순히 먹는 편이다. 그런데 저 국물엔 진짜 밥을 말아먹으면 딱 좋겠더라.

 

 

 

 

웬만하면 실패하기 어려운 '굴야쉬'. 한국어로는 구야시 혹은 구야쉬로 표기하는, 일종의 쇠고기 스프 덮밥이다. 중앙아시아 식당에서 무난한 것을 먹고 싶다면 굴야쉬를 주문하면 된다. 대체로 한국인 입맛에 맞다.

 

슈르빠도 그렇고 굴야쉬도 그렇고, 큼직한 소고기가 꽤 많이 들어가있다. 대략 가격이 납득이 갈 정도다.

 

 

 

아래 사진처럼, 가게 앞에서 동해역이 바로 보인다. 사진에서 왼편으로 가면 편의점이 나오고, 그 앞으로 횡단보도가 있어서 역으로 갈 수 있다.

 

 

 

사실 나는 러시아 음식을 잘 모른다. 더군다나 카자흐스탄 음식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제로다. 러시아 음식을 거의 그대로 먹는 것 아닌가라고 알고 있는 정도다.

 

그래서 여기가 현지 맛을 제대로 구현했는지 같은 평가는 할 수 없다. 다만, 일단 소고기가 많이 들어가있어서 좋았다는 것과, 한국인 입맛에 맞게 변화하지 않은 현지식이라는 점은 알려줄 수 있다.

 

어쩌면 향신료 맛과 냄새 때문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데, 평소에 인도 음식 같은 것을 즐겨 먹는 사람들이라면 아주 무난하게 즐길 수 있다. 인도 향신료에 비하면 그리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 식당에 들어간다는 것도, 한 번쯤 동해에서 시도해볼 만한 음식점이라는 방증일 수 있겠다.

 

 

 

이곳 말고도 동해역 앞 동네 일대에서 내가 발견한 러시아 음식점은 세 개가 더 있었다. 그런데 다른 음식점들은 모두 개점휴업 상태였다. 아무래도 지금은 감염병 상황 때문에 러시아 사람들이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어서 그런 듯하다.

 

그나마 이 식당 하나라도 제대로 운영되고 있으니 다행이랄까. 문화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 별 것 아니다. 이런 식당을 가끔 방문해서 타국 음식을 맛보면서, 이들이 전하는 그들의 문화를 틈틈이 일상에서 배울 수 있다면, 그걸로 다양성을 경험하고 유지하며 어울릴 수 있을테다.

 

물론 거창한 문화 어쩌고 들먹이는 것보다, 맨날 먹는 한국 음식에 지쳐서 가끔 색다른 경험이 필요할 때 한 번씩 시도해보는 용도로 활용하면 좋겠다. 여행지에서 색다른 음식을 시도하다가 혹시 또 모르지, 갑자기 카자흐스탄을 운명처럼 맞이하게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