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강원도

동해 감성 바다 어달해변 - 변덕스러운 나의 작은 바다, 그래도 사랑해

빈꿈 2020. 11. 19. 12:43

 

'어달'하고 부르면 속으로 울리며 입 속에 맴도는 그 감촉이 좋았다.


그 짧은 이름에 들숨과 날숨이 한데 섞여서 마치,
깊은 한숨을 들이쉬고 내뱉으며 나를 기억해달라는
애절한 음색으로 노래하여 황홀하게 만드는 로렐라이처럼.

 

 

어달, 어달하고 불러보면 그 이름은 하나의 노래가 되어
그 상그러운 바다에 가면 그런 자장가가 들려올 것만 같았다.

 

 

 

 

지켜지지 않는 약속, 아물지 않는 상처,
세상은 마치 거대한 파도와 같아,
실체도 알 수 없는 연속적인 파도 덩어리.


그 틈에서 어느새 정신을 잃고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어느 바람 부는 날에 문득, 나는 바다로 가야 했다. 

 

 

 

 

 

파도는 단 한 번도 똑같은 적 없었지만
바다는 항상 같은 모습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그 변화 속의 온전함이 바다의 매력,
나는 아직 그런 사람을 만나본 적 없다.
어쩌면 그것이 바다에 끌리는 이유일 테다.

 

 

 

 

 

너무 큰 바다는 너무나 공허하고 너무나 기괴해서
그 앞에 서면 그만 아찔하게 정신을 잃고 만다.

 

그래서 나는 작은 바다가 좋다.
바다의 모든 것을 온전히 가지고 있음에도
한 손에 잡힐듯한 그 아련함.

 

 

 

 

잡을 수 있을 듯하지만 잡을 수 없는
한밤의 꿈처럼 반짝이는 작은 해변은,
그렇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너무나 슬픈 것이다.


 

 

 

 

 

어달하면 주로 어달해변을 떠올리기 쉬운데
사실 어달동은 하얀색과 빨간색 항구 유도등이 있는 어달항부터 어달해변까지 이어진다.


그 해변길은 대체로 깎아놓은 절벽으로 바다에 접해있지만,
때때로 작은 해변이 마치,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한 사람만의 기쁨처럼
보석같이 반짝이며 군데군데 놓여있다.

 

 

 

 

길 따라 바다를 접한 도로변에 제각기 특색 있는 카페들도 여럿 있어서,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처음에는 이곳이
제주도의 어느 바닷가 마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달은 어달일 뿐, 그 어느 곳을 갖다 댈 수 없다.
여름에도 마음껏 물놀이를 하기에는 그리 크지 않은 백사장,
그나마도 어떤 때는 높은 파도가 거의 모든 것을 집어삼켜서
해변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묵호 쪽에서 많이들 키우는 가지나무 같은 것이랄까,
딱히 쓸모는 없지만 작고 동그란 열매가 탐스럽게 빛나는 것이,
날씨가 어떻든 기분에 따라 때로는 기쁨을 때로는 위안을 주는 것처럼
그렇게 어달의 작은 바다도 조용히 그 자리에 있었다.

 

 

 

 

어달해변을 걷는 것 말고도 이곳을 느끼는 방법은 다양하다.
어느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넋 놓고 커피향과 함께 내려다볼 수도 있고,
길을 따라 걸으며 약간 거리를 두고 작은 해변의 애잔함을 발길에 담을 수도 있으며,
버스 창문 밖에서 석양의 옅은 붉은빛이 눈동자에 어릴 때 살짝,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그런 곳이 있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끌리는 그런 곳,
왜 좋은지 말하라면 딱히 뭐라고 말할 수가 없지만 어쩐지 끌리는 그런 곳.
어달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때때로 소중한 것들이 나에게 상처를 줄 때가 있다.
전해지지 않는 말들, 다르게 전달되는 진심, 나조차도 알 수 없는 마음, 그 마음.

 

 

 

 

절망이 슬픔으로 쌓아올린 성벽같이 굳건해서 이제 도저히 어쩔 수 없다 느낄 때
길거리를 방황하다가 찾아간 바다에서,
그래 처음부터 아니었던 것이지, 인연이 아닌 것을 묶어두지 말아야지,
그렇게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하며 꼭꼭 부여잡고 있던 줄을 탁,
놓으면 찾아오는 공허한 파도.

 

그 알싸한 내음을 아는 사람은 이해할 수 있을 테다.
그 시큼한 물결을 아는 사람은 이해할 수 있을 테다.
그 어두운 바다를 아는 사람은 이해할 수 있을 테다.

 

 

 

 

이제는 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진심으로 행복을 빌어주고 싶은,
떠나는 사랑의 뒷모습을 웃으며 바라보고 싶은 그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