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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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춤을 추고 싶다면사진일기 2009. 1. 21. 01:16
그들은 춤을 추었어. 초록빛 하얀색, 노랑빛 하얀색, 빨강빛 하얀색, 보랏빛 하얀색, 알록달록 하얀색 빛깔들을 반짝이며 곱게곱게 사뿐사뿐 발을 옮기며 하늘로 날아갈 듯 날아갈 듯 아스라이 옷자락을 휘날렸지. 그래 그들은 춤을 추고 있었어. 지난 밤 난 분명히 그들의 모습을 보았지. 그 중 누군가가 내게 손짓을 하기도 했어. 아, 나도 어울릴 수 있는 거구나.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움직였지. 하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어. 그래 그 곳은 내가 속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거든. '얼음이 깨 질까봐'라고 애써 변명을 늘어놓지만, 사실 그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 이미 알고 있잖아. 어쩌면 내일 다시 반복할 일상이 걱정되었는지도 모르지. 어쩌면 내일 입고 나가야 할 옷이 더럽혀질까봐 걱정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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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내린 눈은 돌아가지 않아사진일기 2009. 1. 19. 09:05
그는 혼자 산다. 퇴근 후에도 집에 가기 싫어서, 일부러 밤 늦게까지 길거리를 쏘다니다 들어가곤 했다. 이미 차갑게 굳어버린 찬밥을 억지로 목구멍에 밀어 넣듯 열쇠를 밀어넣고 문을 열면, 맨 먼저 그를 맞아 주는 것은 늘 똑같은 하루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자신의 미래같은 어둠이었다. 도마뱀의 피부처럼 차갑게 식은 방, 그는 마치 유령처럼 오가며 그 속에 또아리를 틀었다. 이미 오래전에 질려버린 인스턴트 음식들을 꾸역꾸역 삼켰으며, 마지막으로 빤 게 언젠지 알 수 없는 온갖 냄새가 뒤범벅이 된 이불을 꾸역꾸역 덮어 쌌으며, 내일 또 돌아올 똑같은 삶을 위해 꾸역꾸역 쓰러져 자기를 반복했다. 그런 날이 영원히, 아주 오랜동안, 마치 끝나지 않을 것처럼 계속 반복되어, 산다는 건 그저 밥을 먹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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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n Dolby사진일기 2009. 1. 14. 02:47
하루에도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수많은 생각들을 하고, 수많은 일들을 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삶은 너무나 많은 것들이 뒤섞여 이것저것 뒤범벅이 되어 있어 오히려 무의미해지는 건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로 일상, 일상이다. 지친 하루의 한 복판에서 도무지 무기력함에 몸을 가눌 수 조차 없을 때, 의외로 미술관은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 넣어 주는 곳이 될 때도 있다. 무슨 유명한 작품들이나, 대단한 작가의 전시회가 아니라도 좋다. 익숙한 예쁜 그림이 아니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괴물같은 작품들만 줄줄이 놓여 내 머릿속을 온통 뒤죽박죽으로 뒤집어 놓아도 좋다. 이 세상을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그 누군가의 색다른 시각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일상을 또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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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2008 동남아 삽질 여행 55 2/2해외여행/동남아 2008 2009. 1. 11. 17:19
2008 동남아 삽질 여행 55 2/2 에필로그 방콕 람부뜨리 거리에 있는 람부뜨리 빌리지 입구에는 오전에만 장사를 하는 오렌지 주스 아줌마가 있다. 반투명 플라스틱 병에 오렌지 주스를 담아서 '오렌지 주스 텐 밧'이라고 외치며 장사 하는 아줌마. 사실 방콕에는 그런 오렌지 주스 파는 곳이 많다. 어떤 가게에서는 직접 오렌지를 짜서 만들면서 팔기도 하는데, 오렌지를 거꾸로 세워 놓은 컵에 꾹꾹 눌러 짜서 그걸 그대로 플라스틱 병에 담아 판다. 설탕이나 기타 다른 첨가물이 일절 들어가지 않은 완전 100% 자연산 오렌지 주스. 마시면 온 몸으로 퍼지는 오렌지 주스의 짜릿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방콕에서는 거의 입에 달고 다닌다. 크기에 따라 10밧, 25밧(혹은 30밧) 하는데, 10밧 짜리 두 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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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2008 동남아 삽질 여행 55 1/2해외여행/동남아 2008 2009. 1. 11. 16:09
2008 동남아 삽질 여행 55 1/2 에필로그 당신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듯이, 나 역시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세상이 아무리 좋아져도 서로가 서로에게 닿을 수 있는 길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오히려 기술이 발달하면서 관계 또한 너무나 간단하고 쉬워져서, 잠시 연락만 끊어도 다시는 연락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우리의 만남 또한 그런 인스턴트식 관계를 벗어날 순 없겠지만, 이 행성 한 쪽 끝에서 또 다른 구석으로 이어진 갸냘픈 줄 하나, 그 연약한 줄 하나를 인연의 끈 삼아 근신히 관계를 유지해 간다. 인연의 끈이라는 게 이렇게 약하고도 어설퍼도 되는 걸까, 걱정이 앞서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져 나가는 걸 보면 참 신기하고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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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을 떠나다 - 2008 동남아 삽질 여행 54해외여행/동남아 2008 2009. 1. 10. 14:18
2008 동남아 삽질 여행 54 태국을 떠나다 카오산 근처의 유명한 한인숙소 중 하나인 정글뉴스에서 또 하룻밤을 묵었다. 최근에 새로운 주인장이 오셔서 폴 게스트하우스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오랜동안 유지해 온 이름이 바뀌어서 조금 섭섭하긴 했지만, 분위기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태국은 관광대국이라 불릴 정도로 날마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드나드는 곳인데, 최근 태국 물가가 높아지고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서 여행자 수가 크게 줄었다. 태국의 숙박업소나 식당 주인들 말에 따르면, 예년에 비해 반도 안 된다고 한다. 특히 11월 말 경은 성수기가 시작되는 시기라서, 예년 같았으면 정글뉴스는 도미토리까지 사람으로 꽉 차서 빈 자리 구하기가 어려웠을테다. 하지만 2008년 11월 말 경에는 반 이상이 비어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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롭부리, 방콕, 짜뚜짝 - 2008 동남아 삽질 여행 53해외여행/동남아 2008 2009. 1. 10. 02:17
2008 동남아 삽질 여행 53 롭부리, 방콕, 짜뚜짝 롭부리 구 시가지 안에는 대표적인 유명한 호텔이 둘 있다. 아시아(asia) 호텔과 넷(nett) 호텔. 둘 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 가격은 둘 다 비슷하다. 넷 호텔이 아시아 호텔보다 한 50밧 정도 더 비싼 편. 아시아 호텔의 팬 룸은 하루에 250 밧 이었다. 시설은 허름한데 방은 굉장히 넓다. 바닥에도 자리 깔고 눕는다면 남자 여섯 명 정도는 거뜬히 잘 수 있는 공간. 엘리베이터가 출발할 때와 멈출 때 엄청나게 흔들려서 이러다 떨어지는 거 아닌가 하며 좀 불안했지만, 그것 빼고는 그럭저럭 지낼만 한 곳. 지난 밤, 야시장에서 이것저것 주워 먹고 들어와서는 티비에서 방영하는 킬빌을 보고 밤 늦게 잠이 들었다. 킬빌은 태국어로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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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원숭이들의 마을, 롭부리 - 2008 동남아 삽질 여행 52해외여행/동남아 2008 2009. 1. 9. 22:42
2008 동남아 삽질 여행 52 자유로운 원숭이들의 마을, 롭부리 롭부리(Lopburi)는 방콕과 아유타야에서 가까운 태국의 소도시로, 사실 이 동네에서 특별히 감탄하며 볼 만 한 것은 없다. 그저 작고 한가한 동네에서 여유롭게 잠깐 쉬어 가고 싶다면 한 번 즘 방문해 볼 만 한 곳. 한가하게 노니는 것이 할 일의 전부인 롭부리이지만, 그래도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특별한 것은 하나 즘 있는 법. 롭부리에도 그런 장소가 있는데, 바로 프라 쁘랑 썀욧(Phra Prang Sam Yot)이라는 사원이 그런 곳이다. 이 사원은 크메르 양식으로 지어진 불교사원인데, 사원 자체로 봐서는 크게 감동스러운 곳은 아니다. 이 사원은 유적보다도 더 재미있는 것이 있는데... 롭부리 구 시가지 북쪽에 있는 프라 쁘랑 쌈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