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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은 어렵다
    잡다구리 2007. 8. 14. 02:14
    사실 나는 말을 하기 싫다. 정확히 말 하자면, 말 하기 귀찮다.

    사람을 만나면 필연적으로 말을 듣고, 하게 된다.
    아마 만남 속에서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인간관계는 조만간 모두 끊어지겠지.

    그런데 이 말이라는 것, 하고 나면 그에 대한 반응이 오고,
    그 반응에 대한 말이 나오고, 또 말이 나오고, 또 나오고, 또 오간다.
    정말 귀찮은 작업이다.
    밥도 별로 안 먹는데 그런데 에너지 쓰기 싫다, 아니 귀찮다, 아니 힘 없다.

    단 한 번이라도 만났거나, 만나지 않았더라도 나를 아주 약간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안다.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한국어를 할 줄 안다.
    또 내가 벙어리가 아니라는 사실도 안다.
    꼼짝없이 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여 버리는 것이다.
    이 상황이 싫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타지로의 여행을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느 말 통하지 않는 곳에 가면, 나는 현재 일상의 나보다 훨씬 나은 존재가 된다.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태국에 가면 한국인을 만나지 않는 이상, 말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한국어를 못 하고, 나는 태국어를 못 하니까.
    물론 영어라는 관문이 있지만, 못 하는 척 하면 그만이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눈짓, 몸짓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함께 나란히 앉아 있어도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다 같이 모여 있어도 조용히 있을 수 있다.
    말로 꾸미지 않은, 존재 그 자체를 온전히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내 방랑의 깊은 잠재의식 속에는 그런 환경을 바라는 마음도 크지 않나 싶다.

    차라리 글이라면 그래도 그나마 조금 낫다.
    잘 못 된 글은 어느 정도 주워 담을 수가 있으니까.
    말이나 글이나 그 때 상황과 기분과 환경에 따라 툭 튀어 나올 때가 있는데,
    말은 나중에 다시 되씹어 봤자 도무지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지만, 글은 수정이 가능하다.
    수정이 어렵다면 사과문이라도 덧붙일 수 있다.
    말도 뒤늦게 사과할 수도 있겠지만, 경험상 뒤늦은 사과는 오히려 마이너스였다.
    '쪼잔한 놈, 내가 한 말도 그렇게 기억하고 곱씹고 있겠지?' 이런 반응.

    말은 어렵다.
    여렵다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말들은 크게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어떤 사람들은 말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지만,
    나는 말을 할 수록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래서 전화도 싫다, 모든 상황이 말로만 펼쳐지니까.

    물론 말이 글보다 좋은 점도 있다.
    쓸 데 없는 글들로 남의 서버 공간을 차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종이 낭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최소한 말은 그런 면에서는 좋긴 하다.
    그래도 말은 어렵고, 힘들다.
    순간순간 그때그때 대처하며 말을 해야할 때,
    생각할 시간도 없이 말을 해야할 때는 더욱 그렇다.

    어쩌면 말 하기를 권하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나는 여행을 더이상 떠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최소한으로 말을 줄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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