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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은 하늘로 날아 오르고 - BLUE 2 0614 (인도여행)
    푸른바다저멀리 2007. 8. 27. 13:14
    푸른 바다 저 멀리 BLUE 2 0614

    마음은 하늘로 날아 오르고


    친구들에게 인도에 간다고 말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도 닦으러 가느냐는 말이었어요. 인도를 신비한 나라로 묘사한 수많은 자료들 때문에 그런 인식이 알게 모르게 박혀 있는 거겠죠. 사실 그걸 확인해 보고픈 마음도 약간 있었어요. 다른 여행지와 다를 게 뭐가 있겠느냐 라는 생각과 함께, 혹시 뭔가 다른 게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던 거죠.

    반신반의 하며 떠나온 인도의 첫인상은, 도 닦기엔 별로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어요. 물론 시끄러운 시장 통에서도 도를 닦으려면 닦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도 닦기 적합한 곳이라면, 조용하고 신비로운 느낌이 감도는 목가적인 풍경이 아닌가요. 인도의 첫인상은 그런 목가적인 풍경과는 멀어도 너무 멀었지요.

    그런데 딱 이틀 째 되는 날, 다른 여행지와는 다른 인도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어요. 길에서 부딪히는 같은 한국인 여행자들끼리 스스럼 없이 인사를 나눈다는 것부터가 색다른 느낌이었죠. 말 몇 마디 나누고는 함께 밥을 먹으러 가기도 하고, 일정이 맞으면 쉽게 동행이 될 수도 있었어요. 아주 친한 친구인 듯 보이는 사람들도 사실은 며칠 전에 처음 만나 함께 여행을 시작한 사람인 경우도 있었어요. 한국인 식당에서도 서로 말 몇 마디 섞다 보면 어느새 친해져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있었죠.

    다른 여행지에선 그렇지 않았어요. 길 가다가 한국인을 만난다 해도 아무 이유 없이 말을 걸거나 인사를 하거나 하지 않죠. 혹시나 혼자만의 여행을 방해하진 않을까 하며 애써 모른 척 하기도 할 정도거든요. 태국 방콕의 카오산 로드 같이 한국인이 많은 곳에서도,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낯선 사람들끼리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죠. 물론 찾아보면 인도 말고도 이런 분위기의 여행지를 찾을 수도 있을 테지요. 하지만 제가 다녀본 여행지 중에서 이렇게 정겨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곳은 인도가 처음이었어요.

    처음 해외여행 나갔을 때가 생각나네요. 나도 남들 다 하는 해외여행 한 번 해 보자 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밖으로 나간 것이 일본 후쿠오카였어요. 단수여권을 마음 졸이며 받아 들고는, 삼 일 동안 마음대로 기차를 탑승할 수 있는 JR패스를 사 들고 떠났죠. 일주일간의 여행 일정이었는데, 여행 일정에 맞게 숙소도 미리 다 예약했었죠. 지금은 거의 무계획으로 여행을 하는 저도 그럴 때가 있었어요.

    사진으로 봤던 예쁘고 멋진 곳을 직접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었어요. 일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수도 있었고, 일본 물건들도 이것저것 구경할 수 있었죠. 하지만 그게 전부였어요. 하루 종일 말 몇 마디 하지 않고 묵묵히 다녔죠. 아무도 말을 걸어 주지 않았을뿐더러, 하고 싶어도 딱히 말 걸 상대도 없었으니까요. 철저한 고독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라고 이름 붙인다면, 그 나름대로 그럴 듯 해 보이긴 하겠죠. 하지만 그건 아니었어요, 정말 아니었어요.

    여행을 떠나면 누구든 저절로 마음이 열린다고들 하죠. 새로운 환경과 색다른 모습들, 그리고 일상을 떠났다는 해방감 같은 것들 때문에 마음이 느긋해 지는 거라고 하더군요. 맞는 말이에요. 저도 여행을 떠나면 평소와 많이 달라져서, 어리숙하다거나 어리버리하다라는 말도 많이 듣거든요. 아마 마음이 느긋해져서 그렇겠죠. 느긋한 마음은 쉽게 열릴 테구요.

    하지만 마음을 열어도 들어올 사람이 없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에요. 생각해보세요. 여행을 떠나서 마음의 문이 활짝 열렸어요. 그런데 그 열린 마음에 차가운 바람만 횡 하니 맴돌고 있는 거에요. 차라리 문을 열지 말 걸 그랬어 라는 생각이 들 정도죠. 추우면 문을 닫듯, 그렇게 열린 마음은 차가움을 맛 보고 더 굳게 꽁꽁 문을 걸어 잠그게 될 지도 모르죠. 여행지에서 그런 느낌을 받는다는 건 정말 서글픈 일이에요.

    그래서 인도가 마음에 들기 시작한 거죠. 여기선 마음을 열면, 그 열린 문으로 사람들이 스스럼 없이 들락날락 하거든요. 물론 들어왔다 나가는 사람들이니, 스치듯 보내주어야지요. 그래도 횡 하니 불어오는 바람과는 달라요, 온기가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아, 내 마음도 이렇게 사람들로 북적거릴 때가 있구나 라며 감동을 받기에 충분하죠.

    인연이란, 우연과 필연과 선택의 조화라고 생각해요. 만남이 있기 위한 사건의 우연. 그 상황 속에서 만날 수 밖에 없는 필연. 그리고 그 만남을 받아들일 건지, 계속 이어 나갈 건지 등의 선택. 그 삼박자가 맞아져야 비로소 인연이라는 관계가 성립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맺어진 인연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선, 우연과 필연과 선택의 끊임없는 반복이 필요하지요.

    그렇게 봤을 때, 여기 인도는 마음만 먹으면 인연을 만들기가 아주 쉬운 곳이에요. 일단 같은 시기에 비슷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 왔다는 우연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지요. 거기다가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기회도 많고, 함께 행동 할 수 있는 기회도 많으니 필연이라는 것도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어요. 정말 무수히 많은 우연과 필연이 있지요. 남은 것은 오직 하나, 선택뿐이죠. 내가 그를 선택하면, 그는 내게 다가와 하나의 의미가 된다 라고 할까요.

    이렇게 말 하니 인도라는 곳, 뭔가 있어 보이네요. 저도 모르게 인도를 신비롭게 예찬하는 사람이 돼 버렸군요. 딱히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이 곳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다 보니 이렇게 돼 버렸어요. 아시다시피, 저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인도를 여행한 게 아니에요. 도를 닦기 위해서도 아니고, 성지순례를 위해서도 아니고, 난민구조의 목적도 아니에요. 여행지로써 인도를 여행한 이름 없는 한 여행자일 뿐이죠.

    그렇다고 오해하시면 곤란해요. 인도라는 나라가 그렇게 신비한 분위기인가하고 착각하시면 안 된다는 거죠. 제가 좋았던 것은, 인도라는 나라에서 한국인 여행자들이 만들어낸 따뜻한 분위기였거든요. 다른 깨끗하고 불편할 것 별로 없는 여행지였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그것은, 인도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겠죠. 그래서 뭉뚱그려 인도가 좋다라고 말 하는 거에요. 비록 인도라는 나라 자체는 좋다는 느낌을 별로 받지 못했지만요.

    우리 일상도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싶네요.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며 가슴 두른 거리는 아침을 매일 맞을 수 있다면. 열린 마음의 문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다면. 또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스스럼 없이 들어갔다 나올 수 있다면. 그래서 만나는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좋은 인연으로 맺어질 수 있다면. 그렇다면 아마 ‘일상에 찌들다’ 라는 표현은 사라질 거에요. 대신 ‘일상에 꽃 피다’라는 예쁜 표현이 생기겠죠. 그렇게 예쁘게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그러면 이렇게 멀리 나오지 않아도 매일매일 즐겁게 살 수 있을 텐데. 너무나 들뜬 마음 한 켠으로 그렇게 아쉬운 느낌도 드네요.

    이번 여행을 마치면 당신과 나, 둘이서 먼저 그걸 시작하면 어떨까요. 우리끼리만 그렇게 살자는 게 아니라, 우리부터 그렇게 시작해 보자는 거에요. 작은 나비의 날갯짓 하나가 태풍을 몰고 올 수도 있듯이, 그렇게 우리도 세상을 바꿀 수 있을 지 모르잖아요. 네, 여행 떠나온 마음으로 쉽게 이런 말을 하고 있어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어려울 테지요. 그래도 이번 여행에서 돌아가면 한 번 시도 해 보고 싶네요. 이 분위기, 정말 너무 정겨워서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거든요!

    여행이 오늘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지난밤의 안 좋은 기억들을 말끔히 씻어줄 활기찬 에너지를 얻었어요. 다른 여행지들과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 하나만으로, 들뜬 마음은 이미 하늘을 날고 있네요. 이번 여행은 왠지 재미있을 것 같다는 밑도 끝도 없는 막연한 기대감에 푹 빠져 버렸어요.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네요.자, 이제 발걸음을 가볍게 옮겨 볼게요.

    (www.emptydrea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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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델리, 빠하르간지, 한국 식당 '쉼터'.
    한국인 여행자들과 여행 정보를 교환하기 좋은 곳이었다.
    음식도 팔지만, 도미토리도 있다.
    침대 다섯 개 놓인 작은 방이 있는데, 하룻밤 자기엔 무난하다.
    (최근에 주인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떤 분위기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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