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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또 마지막이니까
    사진일기 2009. 3. 1. 21:46

    일상을 여행하다보면 가끔씩, 아니 자주, 여기서 저기로, 저기서 거기로, 때로는 오랜 계획 끝에, 때로는 아주 느닷없이 짐을 꾸려 떠나야 할 때가 있다. 애초에 나에겐 선택권이란 건 주어지지 않았고, 좋든 싫든 상관없이 일은 벌어지고야 만다. 어떤 때는 운명처럼, 어떤 때는 운명을 빗나간 것 처럼.
     



    그렇게 부랴부랴 짐을 싸고 떠날서는 또 한동안 새로운 곳에 적응하려 기를 쓰고 살아갈 때는 잠시 잊고 산다, 내가 한 때 그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그러다가 아주 우연히 소식을 전해 듣거나, 아직 그 곳에 사는 지인을 만난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하늘의 구름 한 조각이 두 덩이로 갈라짐을 볼 때 즘, 아주 사소한 일을 계기로 문득, 지나는 바람에 그 곳 생각이 날 때가 있다.

    그런 때가 있다, 길거리 떨어진 담배꽁초 한 개비마처 아련하게 느껴지는 그런 날이. 되돌아보면 딱히 좋은 기억도 없고,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그런 날이 있다, 스산한 오후 비단같은 햇살이 살포시 내려 앉은 그 길이 불현듯 떠오른 때가, 그런 때가.





    그러니까 일상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항상 떠남을 준비하고, 작별을 준비하고, 이별을 준비해야만 한다. 어느날 갑작스럽게 찾아와도 그리 크게 놀라지 않도록, 이제 더 이상 마음에 상처따위 받지 않도록, 마치 예정 돼 있었던 것처럼 당연한 마냥, 훌쩍, 떠나면서도 안타깝지 않도록, 항상 기억하고, 살펴보고, 작은 나뭇가지 하나하나 꽃이 지고 다시 피고 또 지는 그 순간까지도 되도록이면 많이, 아주 많이 눈에 담고, 머리에 담고, 가슴에 담고, 그렇게 매일매일 준비를 해야만 한다.





    그러다가 어느날 휙, 바람처럼 흔적도 없이 떠난다 해도, 머릿속에서는 아직도 그 동네 아담한 작은 정원 가진 그 예쁜 빨간 지붕 이층 집 앞마당 목련나무엔, 항상 꽃이 피고, 항상 꽃이 지고, 항상 그 때가 되면 햇살이 내리고, 비도 내리고, 눈도 내리는, 그런 곳으로 기억에 남겨야만 한다.

    그렇게 기억에 남긴 그 곳은 이제 영원히 변하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 되어, 그 누구도, 심지어 나 마저도 가 볼 수 없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곳이 되어 버린다. 그러면 이제 공평해지는 것이다, 나는, 떠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까.







    때로는 그런 곳이 있다, 내 생에 최악의 순간이었더래도 가끔씩 기억이 나는 그런 곳이. 다시는 가지 않을거라는 다짐은 변함없지만 가끔씩 떠오르는 기억 속에서는 참으로 평화롭게 계절마다 색깔을 달리하는 그런 곳이, 기억이 떠오를 때면 입가의 미소마저 사라져버리는 잔인한 곳이었지만, 때로는 그런 곳도 생각이 날 때가 있다. 기억이란 참으로 이상하고도 웃기는 거니까.





    그러니까 지금 이 곳은 언제나 내겐 마지막이다. 다시 떠나면 언제 돌아올 지 알 수도 없고, 행여 다시 돌아 오더라도 예전에 기억하던 그 곳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세상은 언제나 마지막이고, 오늘 하루의 기억도 오늘로 끝이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언제나 모두들 안녕- 안녕- 작별인사를 건넨다. 항상 우리는 마지막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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