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대전 엑스포 공원 2008
    국내여행/충청도 2009. 3. 2. 02:06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가 매주 연속 가요순위 일위를 차지하며, 중고생들 뿐만 아니라 초등학생들까지도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랩을 하고, 힙합 비슷한 춤을 추는 것이 유행이 되었었던, 획일화 된 개성도 개성이라 부르며 유례없는 소비층 인구들을 잡아먹기 위해 장삿속으로 만들어 낸 엑스세대라는 꼬리표에서 놀아나던 세대들이 아직 마르지도 않은 대가리 피 질질 흘려가며, 그래도 신세계, 최신 과학, 신기한 것 좀 보겠다며 무궁화 호 기차 밤새도록 타고 달려가서, 생전 처음 가 보는 역 광장 앞에서 생전 처음 노숙 비슷한 것 해 가며, 그렇게 그렇게 찾아갔던 곳. 대전 엑스포.


    그 때가 언제였더라, 연도로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최대한 정확히 기억해 보자면 그 때는 20세기였다. 지금으로부터 1세기 전 이야기. 아주 오래 된 이야기. 그래, 우리는 20세기 소년들이었어.

    그 때 만 해도 더러는 아직도 21세기에 대한 환상을 완전히 버리고 못하고 있었더랬다. 21세기가 짠 하고 열리면 바로 하늘에 차들이 붕붕 날아다닐 줄 알았고, 로봇이 가방도 들어 주고, 차가운 메탈 빛 미끌미끌한 강철도시가 삐까번쩍하게 들어설 줄 알았더랬다.

    그런 장미빛 희망 대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세기말 사조. 췟- 다 망한덴다. 노스트라다무스게 예연을 했데나, 무슨 이름도 듣도보도 못한 별 이상한 예연자들 이름을 다 꺼내가며, 모든 사람들이 1999년에 지구가 멸망한다고 예언했다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리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한 줄기 구원의 빛을 날마다 빌고빌어야만 할 듯 한 광폭한 바람이 몰아쳤더랬다.

    사실 대전엑스포는 세기말의 암울한 분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조금 전에 열렸다. 미래는 희망적이다와 암울하다라는 두 파(?)가 갈라져서 시덥잖은 노가리 까기를 토론이랍시고 농담따먹기처럼 해 대는 짓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오오, 과학의 힘이여, 우리의 미래를 열어주소서-라는 바램까지는 아니더라도, 에잇 다 망한다는데 구경이나 하고 죽자- 그런 분위기가 슬금슬금 피어오르고 있었더랬다.


    그래서 나도, 집과 학교만을 오가는 땡돌이 친구들을 꼬셔서 대전으로 향했다. 사실 난 그 때도 알게 모르게 여기저기 빨빨거리고 많이도 다녔었고, 급기야 합법적(?)으로 땡땡이 치는 방법까지 개발해서 선생님 허락 받고 땡땡이 치고 놀러 다니기도 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사절.)

    그래도 그 때는 대전은 좀 장거리였기에 혼자 가기는 좀 무리였고, 야간열차에서 밤 새 이동해야 했기에 혼자서는 너무 심심할 듯 했다. 다행스럽게 친구들도 다들 호기심 충만 상태여서 흔쾌히 동행에 동의 해 주었고. 사실 그 때 당시, 티비만 틀면 맨날 대전 엑스포 얘기가 나와서, 대체로 사람들 모두가 호기심에 가득 찬 상태이기도 했었다.

    티비에서 보던 곳을 직접 가 보는 구나, 로봇도 보고, 자기부상열차도 보고, 쓰리디 입체 영화도 보고, 어쩌고 저쩌고 내심 기대와 희망에 부풀어 열차 안에서는 제대로 잠도 못 잤더랬다. 그런데 딱 도착하자마자 난 실망을 금치 못했다. 이건 뭐- 그냥 놀이동산 아닌가.


    신기한 건물들이 많기는 했다. 둥그런 공 모양의 건물도 있었고, 타원형 건물도 있었고, 피라미드 비슷하게 생긴 건물도 있었고. 그 때만 해도 성냥갑 모양이 아닌 건물이라면 무조건 미래지향형 디자인이라 부를 때였으니, 내 눈엔 그런 건물 외관만 해도 신기해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겨우 이백 미터인가를 달리는(혹은 기어가는) 자기부상열차 한 번 타려면 두 시간 넘게 줄 서서 기다려야만 했고, 입체영화 한 편을 보려 해도 세 시간 줄 서는 건 기본. 뭘 하나 구경하려면 최소한 두세시간 줄 서는 건 기본이었다. 도저히 그건 못 할 짓. 그래서 우린 비교적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별로 인기 없는 곳들만 둘러봤는데, 그래도 하루가 금방 가 버렸으니 구경할 게 많기는 많았나보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어떤 것들.

    어쩌면 인기 없는 곳들만 둘러봐서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건물 외관만큼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대전에 다시 들러 엑스포 공원을 멀찌감치서 보게 되었을 때, 아 저 건물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을 보면, 건물 디자인들이 어린 마음에 무척이나 마음에 들긴 했었나보다.


    어쨌든 우리가 엑스포를 보러갔던 그 날은 하루종일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 끼어 흐린 날씨였고, 저녁부터는 급기야 폭우가 퍼붓기 시작했다. 여름이었고, 장마철이었다. 비만 오면 홍수가 나고 제방이 무너졌다는 뉴스가 나오던 게 예사였다. 그래도 무던히도 내 일은 아닐거라며, 안전불감증에 걸려야만 정신건강에 이로울 수 밖에 없었던 때.

    비가 몹시도 내리던 여름 밤에 대전역에서 기차를 탔다. 기차는 올 때처럼 여기저기서 틀어놓은 서태지 노래로 시끄러웠고, 한 노신사의 호통으로 차량 한 칸이 모두 조용해지기도 했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 잠을 청하기엔 너무나 불편하고 피곤했던 몸. 그리고 기차가 서행한다는 방송. 뭔가 사고가 났다는 웅성거림. 어쨌든 우리는 무사히 집으로 갔고, 그 날 아침 뉴스에 구포 열차 사건이 보도되었다. 우리 바로 뒷차였는지, 아니면 우리가 지나고 몇 시간 후였는지, 자세한 건 모르겠다, 알고싶지 않았다. 어쨌든 내 기억 속에 대전 엑스포는 곧 구포열차사건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 대전 엑스포 공원은 거의 명색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로 보였다. 휴일이 되어도 썰렁하기만 한 공원. 더이상 신기하지 않은 건물들, 전시물들. 자기부상열차가 지나다녔던 모노레일은 그대로 남아 고압주의 표지판만 붙은 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그게 대체 뭘 하던 곳인지 젊은 엄마아빠들은 애들에게 설명 못 해 주지 않을까.

    공원 한쪽 구석에 공룡 뭐라뭐라 하면서 애들을 위한 새로운 구경거리가 생기긴 했다. 간혹 기획 전시 같은 걸 열기도 하고, 뭔가 행사를 열기도 하나보다. 그래도 예전의 그 기대와 희망을 느끼기엔 역부족. 게다가 일부 전시관은 폐쇄해서 운영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구경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어서 더운 안타까운 마음.


    그나마 다행이라 할 만 한 것은, 일부 전시실에 아직도 '도우미'들이 있다는 것. 도우미가 무슨 대수인가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기억 하시는 분들은 기억 하실테다. 도우미는 바로 이 대전 엑스포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었다. 그 당시, 이름을 공모해서 많은 제안들 속에서 뽑아낸 단어가 바로 이 도우미였다. 아무리 쇄락해도 대전 엑스포는 도우미 만큼은 유지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현대에서도 휴대폰 만들 때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을런지. 아아... 자꾸 기억을 되짚다보니, 이거 마치 내가 무슨 노인이라도 된 느낌이다. 세상이 정말 빠르게 변하긴 했나보다. (그래도 강산은 안 변하더라.)


    엑스포 공원 안쪽의 야외 레스토랑. 옛날에도 있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 엑스포 공원 바깥쪽은 고급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들어서 있다. 그나마도 수가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강 흐르는 것 보면서 시간 보내기 좋은 카페가 하나 있긴 한데, 값이 너무 비쌌다. 그래도 갈 데가 없어서 몇 번 가기는 했지만. 아, 중국집은 아주 큼지막한 게 있다. 대전의 중국집들 중에는 규모 큰 것이 꽤 많다는 게 특징.



    엑스포 다리도 때가 묻고...




    깜깜해지면 대책 없는 엑스포 공원 주변. 가끔 이 근처로 관광지도를 들고 혼자 여행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외국인이 아니라 내국인. 그런 사람들을 보면, 어쩌면 아직도 엑스포는 어떤 상징같은 의미가 있는 곳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딱히 갈 곳도 없고, 가고싶은 곳 고르기도 귀찮을 때, 옛 기억을 한 번 더듬고 싶다면 대전 엑스포 공원에 가서 마냥 심심한 듯 시간을 보내 보는 것도 좋겠다. 서울이라면 고속버스를 타고 대전 정부청사에서 내리면 버스 서너 정류장 정도 거리이고, 다른 곳이라면 정부청사나 대전역으로 가서 이동하면 된다.

    엑스포 공원 근처에는 인라인 등을 탈 수 있는 조그만 시민광장이 있고, 그 한켠에 식물원(?)이 있다. 모두 입장료는 무료. 그 옆쪽으로 대전 미술관과 예술회관이 있으니 공연이나 그림감상을 할 수도 있다. 그런 것에 관심 없다면 정부청사 버스터미널 근처 이마트에서 쇼핑 하면 되고 (ㅡㅅㅡ;), 대전 시내를 보고싶다면 대전역 앞쪽 중앙동으로 가 보면 된다. 규모가 작아서 그렇지, 나름 있을 만 한 건 대강 다 있고 놀 만 하다.

    댓글

Copyright EMPTYDREAM All rights reserved /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