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숙식을 빌었던 그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느끼기 시작한 건,
함께 기거한지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서 부터였다.
긴 여행동안 아직 닫히지 않은 감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렇게 지내어서 알아챌 수 있었던 것이었을까.
누적된 피로속에 그의 행동은 또다른 스트레스로 다가왔는데,
한 편으론 알 수 없는 호기심과 끌림으로 내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빙의였다.
낮이건 밤이건 시도때도 없이 그의 언행은 여러 형태로 돌변했다.
불과 얼마전에 한 말과 행동도 곧잘 기억하지 못하고는
자기 자신은 그런 적 없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순간 순식간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돌발행동들.
여러 밤들을 거쳐 기이한 행위들을 목격했다.

밤새도록 혼자 중얼거리며 좁은 방 안을 맴돈다거나,
어두운 방 한 쪽 구석에 혼자 우두커니 쪼그리고 앉아 잔다거나,
갑자기 부엌으로 나가 칼로 도마를 내리친다거나,
시도때도 없이 갑자기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폭식을 한다거나,
아무 일 없이 갑자기 난폭해져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거나,
그러다가 갑자기 누그러져서 웃으며 잘 해 주는 등의 행위들.

단순히 조울증이나 다중인격이라고 봐 넘길 수도 있겠지만,
알 수 없는 기운 속에서 이건 그 이상임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서너번 정도는 별 이유없이 진정한 살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기운들이 나를 압도할 때도 있었는데...
모르겠다, 전문가가 아니라서 단순한 정신질환을 부풀려서 생각한 것인지도.
하지만 내가 느낀 건 분명 그 이상이었다.  

그런 상태들을 관찰하면서 느낀 참 안타까운 점이 있었는데,
그의 본성보다 새로 들어온 어떤 류의 또다른 인성들이,
인간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훨씬 더 나았다.
차라리 본성이 저 내면 깊숙히 처박혀서 죽을 때까지 나오지
않는다면 오히려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으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 때 나는 새로운 사실 하나를 배웠다, 어쩌면 그걸 배우기 위해
그렇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참고 견디며 그의 곁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차마 누군가에게 말 하기도 껄끄러운 그 안타까운 사실. 
정말 안타깝고, 안타깝기 짝이 없지만,
어떤 영혼은 열등하다.
그게 비록 자기 육체의 주인이라 하더라도.

그는 혼자 산다.
딱히 깊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 없이 그의 주위는 항상,
서로서로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고받을만 한 사람들만 있다.
진심으로 그를 걱정해 줄 사람도 없고,
그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아는 사람도 없다. 
그 자신은, 당연하게도, 그런 사실을 부정했다.

역시나 세상에 많이 찌들어 혼탁해진 마음으로, 
주어진 짐의 무게 하나 감당하기 힘든 나로서는 어쩔 방법이 없다.
그리고, 나쁘다고 비난받아도 할 수 없지만, 그의 본성으로부터
받은 나의 상처들을 생각하면 별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를 떠나는 날 기원했다, 깊고 어두운 수면 아래서 편히 잠들기를.

아무쪼록, 부디
잠식당한 영혼에도 평화 있기를.



Posted by 빈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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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ytzsche 2010.03.03 01: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공감이 되고 말았어요. 당위적이고 피상적인 '민주주의'론을 신앙처럼 받들면서 사람들은 저류화, 속류화되어 가고 있는지도. 그건 영혼의 문제이기도, 육체의 문제이기도 할 텐데 당의정처럼 씌워진 '동등함'의 포장으로 타인을 배척하고 질시하는 건 아닐지. 어쩌면 그 무게의 차이를 인정하는 겸손함과 성장의 욕구가 가장 필요한 가치인지도 모르겠슴다.

    우야튼, 자야되는데 아놔.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