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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세계대백제전 이야기
    취재파일/인터뷰 2010. 8. 31. 01:33


    푸르디 푸른 하늘이었다. 눈이 시릴 만큼 파르란 청옥빛에, 따가운 햇살마저 넋을 잃고 대지에 내려앉았다. 일부러 그랬는지, 아득한 정신에 미처 생각을 못했는지, 날개를 접지 않고 내려앉은 그 모습은 마치 한 마리 학과 같았다. 고운 산 앞마당에 고이고이 날개를 펴고 엎드린 모양은, 기둥이 되었고, 지붕이 되었고, 마침내 궁궐이 되었다. 그것이 바로 사비궁이다.










    백제문화단지


    사비궁은 백제시대의 궁궐을 각종 자료들을 토대로 재현한 것으로, 충청남도 부여군 합정리 일원에 조성된 백제문화단지 시설물 중 하나이다. 이미 있던 왕궁을 고쳐낸 것이 아니라, 전혀 없던 왕궁을 재현해서 복원한 것이다.

    흔적도 없는 왕궁을 재현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 한다. 백제 왕궁 유적들이 현재 발굴 중에 있지만, 건물은 아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래서 문헌 고증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 때문에 중국과 일본도 수 차례 오가며 고증 작업을 했다. 단순히 백제식의 건물 하나를 짓는데 그치지 않고, 국내의 유명한 서예가와 인간문화제를 불러 현판과 기와 단청 등을 제작하는 데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1994년부터 시작해서 2010년 완공을 앞두고 있는 이 백제문화단지는, 약 330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면적에, 투입된 자금만도 690억 원이 넘는 대규모 사업이다. 백제문화단지 안에는 백제의 왕궁인 사비궁을 비롯해서 위례성, 능사, 고분공원, 생활문화마을, 백제역사문화관 등, 백제문화를 다양하게 조명하는 각종 시설물들이 들어서 있다.

    올해 공주와 부여에서 열리는 ‘세계대백제전’ 행사 시기에 맞춰 일반에 공개할 예정인 이 백제문화단지에,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어려운 발걸음을 했다. 










    캐주얼한 도지사와 함께한 시간


    "우리나라는 문헌상으로만 봐도 약 2,0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역사가 현대로 오면서, 일제통치와 분단의 비극을 거치면서 단절되어 버렸습니다. 백제문화단지를 조성하고, 세계대백제전 행사를 크게 여는 것은, 한마디로 1,400년 전에도 이 땅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나지막하면서도 단호했다.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었고, 차분하면서도 강했다. 안내자의 쉴 틈 없는 설명들을 온 몸으로 맞으면서도, 고개를 들어 천장 무늬에 관심을 가질 정도의 여유로움이 베어 있었다.

    대백제전 행사를 위해 건설중인 수상 공연장이 강을 파괴하는 건 아닌가라는 까다로운 질문에도 그는 단호하게 답했다. "여태까지 보고받은 바로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문제가 발견된다면 재검토 할 수 있습니다".


    도지사 하면 떠오르는 위압적이고 고리타분한 이미지가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편하게 입고 나온 캐주얼 옷처럼 헐렁하였지만, 단정하게 마무리한 옷 매무새처럼 딱 부러지는 시원함이 있었다.









    이 땅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백제문화단지는 일 이년 뚝딱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1993년부터 구상이 시작되었고, 1998년에 착공을 했다. 그리고 올해 2010년에 완공을 하게 된다. 공사기간만 12년이나 걸렸다.

    다른 도지사들은 공사 진행만 열심히 했는데, 취임 하자마자 완공을 보게 됐으니 참 좋으시겠다고 물었더니, "계 탈 때도 있죠"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런 웃음이 있기 전까지 고민도 많았다 한다. 수많은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과연 대백제전을 개최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라는 고민 말이다. 한참을 고민하고 내린 결론은, '좋은 행사다'라는 판단이었다.


    공주와 부여는 56년 전부터 서로 번갈아가며 백제 관련 행사를 열었다. 이번 2010년 세계대백제전은 그런 행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어느날 갑자기 생뚱맞게 튀어나온 벼락치기 행사가 아니다.

    안 도지사는 '56년 전'부터 이런 행사가 열렸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한다. 56년 전이라면 먹고 살기도 어려웠을 시절이다. 딱히 공주, 부여지역이 부자들만 사는 곳이 아닌데, 어째서 그런 행사를 연 것일까. 게다가 다른 것도 아니고 1,400여 년 전의 역사를 소재로 해서 말이다.

    '왜? 무엇이 목 말라서?' 이 질문이 바로 이번 대백제전을 주목할 이유가 될 것이라고 했다.









    "18세기 이후는 개발의 역사였습니다. 그런데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살아온 곳에 대한 역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국가의 역사가 아니라, 이 땅 위의 사람의 역사로 관점이 바뀌기 시작한 것입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이 땅에 사람이 살았다'라는 것을 거듭해서 강조했다. 수천 년 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고, 지금도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살아갈 곳, 바로 그곳에 대규모 역사문화축제가 열린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번 대백제전은 바로 이곳에 백제의 역사가 있었고, 이 땅 위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그 한가지 사실을 알리기 위해 열리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득,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불같은 기억 속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 땅 위에 살았던 사람들이, 이 땅 위에 살았던 사람들을, '왜, 무엇이 목 말라서', 기억하고, 추억하고, 되새기고, 되뇌었던 걸까. 그 대답을 이 행사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그건 다소 억지스럽지 않을까. 그의 말은 그렇게 알 듯 모를 듯 한 울림이었다.












    단절된 역사의 조각을 되붙이는 마음으로


    "이번 세계대백제전의 핵심 포인트를 굳이 꼽자면, 왕궁과 수상공연입니다."


    안 도지사는 세계대백제전 행사에서 꼭 구경해야 할 요소로 백제문화단지에 있는 왕궁과 수상공연을 꼽았다. 수상공연은 행사기간 중에 강 위에서 열리는 공연인데, 온조왕을 소재로 한 '사마이야기'와 의자왕을 소재로 한 '사비미르'를 공연한다. 특히 강 위에서 펼쳐지는 공연이라 더욱 아름다운 무대로 꾸며질 것이라 자랑했다.

    또한 이번 행사는 백제의 역사를 기억하는 일본인과, 한국을 더욱 깊이 있게 알고 싶어하는 외국인들도 많이 놀러 올 것이라 한다. 특히 일본 관광객들을 위해서는 오사카와 후쿠오카에서 직항로를 개통하려는 계획도 있다.


    일본 이야기가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일제로 화제가 옮겨갔다. 안 도지사는 일제에 의해 아시아 각국은 소통이 두절되었다고 한다. 백제시대 때만 해도 아시아 각국이 서로 왕래와 교류가 활발했는데, 일제에 의해 그 역사가 단절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시아는 지금 단절된 역사의 틈에서 세계를 보고 있는데, 그 조각난 아시아의 역사를 다시 붙이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한반도가 아시아 문화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재조명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역사는 사람들의 삶 속에 있어야 한다


    "여행은 준비한 만큼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역사문화 또한 아는 만큼 보입니다. 주최를 하는 입장에서는 호기심과 상상을 자극할 만한 것들을 던져 드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재인식하고 즐기는 것은 방문자의 몫입니다."


    안희정 도지사는 부여가 역사문화도시로 발전할 것이라 말했다. 그런데 역사문화를 소재로 도시를 발전시키는 방법에는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다. 유물들을 껴안고 살아가느냐, 아니면 다 바꾸느냐는 문제. 즉, 계승, 발전, 보존을 어떻게 모두 다 슬기롭게 잘 할 수 있느냐가 바로 그 문제이다.

    그 자신도 아직 그 문제를 미완의 과제로 남겨두고 있지만 단 한가지 확신을 가지는 것은, '역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속에 있어야 한다'라는 생각이다.


    그렇게 차츰 한국인이 역사적 뿌리를 되찾고, 스스로 인지하고, 학습하고, 자부심을 느낄 때에, 비로소 품격이 높아져서 '깊이 있게' 존경 받는 민족이 될 수 있을 거라 한다.

    품격이란 단순히 부강함을 자랑하는 경제적인 것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의 저력에서 발현한다고. 그 역사와 문화 속에서 나온 기록과 추억들이 아득한 동경심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이 존경심으로 발전할 때 품격이 높아진다고 힘주어 말했다.


    "비록 성심껏 한다고는 했지만 백제를 재현한 곳이 시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토담이 무너지고 밟혀도 그 기록과 추억은 고스란히 남아 계속해서 이어지듯이, 이번 행사의 취지도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주셨면 합니다."

    지방재정의 한계로 이런 대규모 행사를 매년 열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4~5년 단위로 열기로 논의 중이라 한다. 따라서 이번 세계대백제전은 내년에도 똑같이 볼 수 있는 행사가 아니므로, 이 행사의 뜻에 공감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번 기회에 꼭 찾아와 달라는 부탁을 전했다.









    만남을 정리하며


    수천 년 전 이 땅에도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알기 위해, 그리고 그 후대 사람들이 왜 그들을 기리고 추모했는지 알기 위해, 지금 백제 땅에서는 사라진 역사를 재현하려 하고 있다.

    한국을 깊이있게 알려줄 컨텐츠로써, 또는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여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하는 의미도 있을 테다.

    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수상공연이나 개폐막 행사, 황산벌 전투 재현 등 수많은 이벤트들도 준비하고 있다. 또한 도지사가 직접 서울역에 나와 행사를 홍보할 정도로 열심히 뛰고도 있다.

    하지만 아직 열어보지 않은 상자의 내용물은 아무도 알 수 없는 법. 이 행사가 어떻다 저떻다 굳이 목에 힘주어 말 하고 싶지 않다. 다만 한 가지 확실히 말 할 수 있는 것은, 만약 내가 그 때 그곳에 있게 된다면, 그것은 순전히 당신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일 테다.



    p.s.
    2010 세계대백제전 공식 홈페이지: http://www.baekj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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