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이폰11이 출시됐고, 언제나 그렇듯 한국 언론은 혁신은 없었다는데 세계적으로 관심이 높은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일본에서는 일부 통신사가 "최신 아이폰 반값" 슬로건을 내걸고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물론 구라다. 올해 11월부터 시행 예정인 소위 '일본판 단통법'에 맞춰서 이런게 나왔다. 통신사와 대리점의 구라에 산전수전 다 겪어본 한국인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일본인들은 이 새로운 마케팅(이라 쓰고 구라라고 읽는 것)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는 듯 하다.

 

 

아이폰이 반값?

 

소프트뱅크에서 내놓은 '아이폰 최대 반액' 프로모션을 요약하면 이렇다.

 

1. 48개월 할부로 계약하고 아이폰11을 갖는다.

2. 24개월 이후에 핸드폰을 반납한다.

3. 중고폰 상태가 좋으면 그대로 받아준다. 이때 다른 폰으로 또 사면 된다.

 

따라서 48개월 할부를 한 상태에서 24개월 후에 할부 종료를 할 수 있으니, 최대 반값이라는 것이다.

 

중고폰 상태가 안 좋으면 돈을 물어내야 할 수 있고, 반납 후에도 이 통신사에서 또 핸드폰을 사야 한다는 노예 족쇄 조건은 저 구석에 조그만 글씨로 써 있다. NTT 도코모 등도 36개월 할부에 24개월 후 반납 조건 등으로 비슷한 프로모션을 하고 있다.

 

(이미지: 소프트뱅크 홈페이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아이폰은 대체로 상태가 좋으면 2년 후에도 반값 이상으로 중고로 팔 수 있다. 그러니까 이런 프로모션은 통신사가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 오히려 순진한 소비자가 노예 족쇄에 걸려서 나중에 할부금 토해내기 딱 좋은 조건이다.

 

그동안 일본 통신사들은 새 아이폰이 나오면 엄청난 지원금을 쏟아부어 아주 싸게 공급하는 경쟁을 했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에선 철 지난 이런 이상한 모객을 하고 있다. 이건 바로 올해 말부터 시행될 일본판 단통법 때문이다.

 

 

일본판 단통법

 

일본 국회는 올해 5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의결했고, 6월에 총무성은 세부규정을 공개했다. 이 법안은 2019년 11월에 시행될 예정이다.

 

이 법안에는 휴대전화 단말기 규제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는데, 크게 세 가지 내용이다.

 

* 단말기와 요금 상품을 분리해서 판매 고지.

* 지원금 상한선을 2만 엔 이내로 제한.

* 위약금 상한선을 1000엔 이내로 제한.

 

이게 좋을지 나쁠지 좀 애매한게, 단말기와 요금 상품을 분리 고지, 그리고 위약금 상한선은 한국에서 완전자급제 이름으로 추진하다가 유야무야 된 항목이다. 그런데 지원금 규제는 논란 속에 추진하다가 결국 폐지된 항목이다. 즉, 한국에서 추진하려다가 못 한 것과, 이미 폐지된 항목이 되섞여 있다.

 

여기서 위약금은 지금까진 최대 9500엔인 것을 1000엔으로 낮추는 것이다. 2년 약정을 했다가 약정을 못 채우면, 통신사에 따라 남은 개월수에 1000엔을 곱해서 위약금을 내거나, 혹은 정해진 위약금 9000엔 정도를 내야 했다. (여기서 기기 할부금 잔액을 위약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걸 또 설명하면 너무 길어지므로 생략한다. 할부금은 할부금이다.)

 

요금에 대한 위약금이 대폭 낮아지므로, 이제 2년 약정을 해도 요금 할인액이 줄어든다. 약정을 해도 요금 할인을 적어지고, 대신 위약금이 낮아지니 통신사 이동이 쉬워진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낮은 요금 쪽으로 이용자들이 쉽게 이동할 수 있다. 그래서 결국 요금 인하 경쟁이 붙을 거라는 계산이다.

 

지원금 상한선 제한도, 최신 고가폰에 대한 지원금이 적어지면, 소비자들이 자연스럽게 저가폰을 구입하겠지라는 계산이다. 아울러 아이폰 구입으로 새 나가는 돈을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계산도 있는 듯 하다.

 

한국이 하려다가 못 한 것들도 들어가 있어서 향후 어떻게 될지 관심이 가긴 하는데, 어떻게 통신사들 대응은 옛날 단통법 초기에 한국 통신사들이 보여준 것과 비슷해서 시작부터 좀 삐걱대는 느낌이다.

 

(아이폰의 한국어 꽃말은 혁신은 없었다)

 

어쨌든 남의 나라 이야기이고, 이런 요금제는 사실 일본 워킹홀리데이 가는 사람들도 사실상 잘 사용할 수 없는 것이므로, 더 자세히 파보진 않겠다. 다만, 재미있는 것이 있는데, 이 정책이 우리나라의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을 벤치마킹 했다는 사실이다.

 

> "한국 단통법 배우자" 日총무성, 미래부와 방통위 방문 (뉴스1, 2015.11.18.)

 

일본 총무성 관계자들은 이미 2015년에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등을 방문해서 한국의 단통법을 배워갔다. 여러 뉴스들을 보면, 몇 차례 방문과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해 12월, 일본에서는 0엔폰 판매금지, 과도한 캐시백 금지, 스마트폰 전용 저가 요금제 도입 등의 다소 소극적인 '일본판 단통법'을 시행했다. 그 정도로도 일본에서는 통신사와 판매점, 소비자가 일대 패닉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까지 일본 통신사 요금제 등을 보면, 한국보다 엉망으로 진행된 게 아닌가 싶다. 한국은 그나마 자급제폰과 알뜰폰 활성화 효과라도 얻을 수 있었는데.

 

> 일본판 단통법 하반기 시행..한국 벤치마킹 (전자신문, 2019.06.17.)

 

그리고 최근 뉴스를 보면, 근래까지도 한국의 단통법 관련 정책과 관련한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 왜, 이런 것에서만 서로 막 배우고 그러는 건지.

 

어쨌든 이번 일본 정책은 한국보다 조금 더 나간 면이 있으니 한 번 지켜는 보자. 하지만 일본 사회는 한국과 꽤 다른 면이 있으므로, 이게 이상하게 흘러가도 한국에서 완전자급제가 쓸모없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p.s.

* 단통법에서 완전자급제로 흘러가면서, 모든 폰이 언락되는 등의 조치로 자급제폰 숨통이 좀 트였다. 알뜰폰을 밀어부쳐서 활성화 된 것도 긍정적인 면이고. 그전에 비해서는 상당히 많은 변화를 이뤄냈는데, 그래도 아직 화이트리스트 제도를 폐지하지 못 했고, 완전자급제는 추진하다가 유야무야 된 것이 못내 아쉽다.

 

이번 일본판 단통법은 한국에서 완전자급제라는 이름으로 추진하던 것들이 들어가있어서, 휴대폰 정책 면에서 추월당한 느낌이다.

 

* 일본 사람들은 아직도 스마트폰하면 아이폰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이번 조치가 과연 아이폰 점유율을 낮출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뭔가 획기적인 계기가 있어야 안드로이드 폰도 스마트폰이구나 생각할 텐데.

 

* 각종 논란으로 피곤하더라도 완전자급제가 논의 될 때는 뭔가 희망이 보였는데, 이젠 아예 언급조차 없다. 정치인들은 핸드폰 판매점이 얽힌 민감한 문제라며 아예 회피하는 모양이다. 단통법은 완전자급제로 이행돼야만 의미가 있는 정책이었는데, 여기서 이대로 멈춰버리면 결국 소비자들만 피를 흘린 셈이다.

 

* (최소한) 당분간 통신사의 말장난에 놀아나서 노예로 족쇄를 차게 될 일본 국민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Posted by 빈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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