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동남아 2008
말레이시아 태국 국제열차 - 2008 동남아 삽질 여행 23
빈꿈
2008. 12. 14. 17:26
2008 동남아 삽질 여행 23
말레이시아 태국 국제열차
드디어 말레이시아를 떠나기로 했다. 태국보다 더워서 안 그래도 지친 발걸음이 더욱 축 늘어졌던 곳. 물가도 높고 크게 감동적인 볼 거리도 없었지만 '일생에 딱 한 번'이라는 생각으로 있어봤던 곳.
이제 떠날 때가 됐다,라는 생각이 들면 언제든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것이 바로 여행자의 특권. 여행의 매력 중 하나가 떠나자고 마음 먹은 날 바로 떠날 수 있다는 것. 도착할 때 아무도 반겨주는 이 없고, 떠나갈 때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는 여정. 그렇게 바람같이 왔다가 바람같이 떠나는 일상. 그것이 바로 여행.
페낭 섬에서 페리를 타고 나오는데, 나오는 배는 돈 내는 곳이 없었다. 버터워스에서 페낭으로 들어갈 때 내는 돈이 왕복요금인가보다.
페리를 타고 15분 정도 가서 버터워스 페리터미널에서 내리면 바로 옆에 기차역이 있다. 태국의 방콕으로 가는 기차는 이 버터워스 역에서 매일 오후 2시 20분에 출발한다.
혹시나 모르니까하며 12시 즘에 역에 도착해서 당일 표를 샀다. 방콕까지 세컨드클래스 아래쪽 침대칸 요금이 111.90링깃(약 30 USD).
태국과 말레이시아를 오가는 열차는, 버터워스와 방콕 후알람 퐁 역이 각각 종착역이다. 계속 여정을 이어나가려면 다른 기차를 또 타든가, 아니면 다른 교통편을 이용해야 한다.
여기 버터워스 역에서는 콸라룸푸르나 싱가폴 행 열차도 하루에 한 편 정도는 있는 듯 했다. 하지만 버스를 이용하는 편이 더 빠르지 싶다.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나, 철도보다는 고속도로가 더 발달한 나라니까. 이 역에서 5분 거리 안에 시외버스 타는 곳이 있다. 작고 황량한 동네라서 길 잃고 헤맬 염려는 전혀 없는 곳.
버터워스에서 태국으로 향하는 국제열차도 당연히 예매가 가능하다. 말레이시아 국내 아무 기차역에서나 예매할 수 있고, 여행사에서도 가능하다. 여행사는 당연히 수수료가 붙는다.)
두 시간 정도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버스터미널 근처의 인도네시아 식당에 갔다. 작고 허름한 가게였지만 메(면) 맛이 정말 좋았던 곳.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마음에 든 것을 말하라면, 길거리 버거와 멜라카의 에밀리하우스 그리고 바로 이 버터워스 버스터미널 근처의 인도네시아 식당.
쌀국수이긴하지만 일반적인 쌀국수처럼 국물이 맑은 것이 아니라 빨갛다. 당연히 얼큰한 맛인데, 거기다 각종 해산물이 들어가서 마치 해물탕면 맛이 나는 국물.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인도네시아를 가 봐야지 할 정도로 맛있었던 음식. 이 동네를 거쳐간다면 꼭 맛 보라고 권하고 싶다. 면과 밥, 콜라 합쳐서 5링깃(약 1.5달러).
식당에서 밥 먹고 최대한 시간을 떼워 봐도 두 시간을 혼자 보내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식당을 나와서 버스터미널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버터워스의 버스터미널은 주위에 막아선 건물도 없고 바다와 가깝기 때문에 바람이 많이 불어서 쌀쌀할 정도였다. 여기서 노닥거리며 시간떼우기.
이 역에는 환전창구가 있는데, 환율이 아주 안 좋다. 하지만 이 근처에서는 딱히 환전할 곳도 없다. 일단 페낭 들어가는 배 값 1.2링깃만 있다면 바로 페낭으로 가는 게 좋을 듯. 아니면 차라리 방콕의 환전소에서 미리 말레이시아 돈을 적당히 환전해 가는 게 낫다.)
두 시 즘에 버터워스 역으로 갔는데, 언듯 보기에는 기차가 아직 들어와 있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런데 선로 저 멀리즘 기차가 서 있어서 가 봤더니 방콕행 열차가 맞단다.
열차는 기관차 한 대와 객실 두 대로 이루어진 아주 작은 규모였다. 겨우 이걸로 매일 운행하면 적자 나겠다 싶을 정도였는데, 나중에 보니까 중간중간에 객실을 하나씩 붙여나가는 형태였다. 그래서 처음 출발할 때 겨우 두 대 뿐이었던 객실차는, 최종 목적지인 방콕에 도착해 보면 약 스무 대 정도로 늘어나 있다.
기차는 2시 20분에 정확히 출발했는데, 거의 완행열차다. 말레이시아의 조그만 역 여기저기를 다 서면서 지나가는데, 통학하는 학생들도 탈 정도였다.
처음 출발한 객실 두 칸 모두가 침대칸이긴 했지만, 처음부터 침대가 놓여져 있는 건 아니었다. 윗층(upper) 침대는 아예 접어서 벽에다 붙여 놨고, 아래층(lower)은 비둘기 호 객실 의자처럼 돼 있었다.
낮에는 이렇게 의자 형태로 해 놓고 가다가 나중에 밤 9시 즘 되면 승무원이 와서는 침대로 만들어 준다. 그래서 낮에는 중간중간 타고 내리는 현지인들과 함께 앉아 가야만 한다. 태국 국경을 넘기 전까지는 예쁜 여학생들이 많이 타므로 옆자리 가방을 치워 놓을 것. 하지만 안타깝게도 왠만큼 자리가 없는 경우가 아니면 외국인 옆에는 잘 앉지 않는다.
그렇게 여기저기 서다가 지나가는 기차 비켜준다고 서서 기다리고 하면서 기차는 계속 달린다.
버터워스 역을 출발한 지 4시간 즘 후인 오후 6시 30분 즘 기차는 빠당 베사르 (Padang Besar) 역에 도착한다. 여기서 열차는 20~30분 즘 정차하는데, 바로 이곳이 국경이다.
모든 승객들은 일단 이 역에서 내려서 출입국 심사를 거쳐야 한다. 말레이시아 쪽 출국 심사대 쪽으로 가서 출국 도장을 찍고, 길 따라 쭉 가기만 하면 태국 입국 심사대가 나온다. 전혀 어려울 것도 없고 까다로울 것도 없는데, 주의할 것은 모든 소지품을 들고 내려야만 한다는 것.
승객들이 출입국 심사를 하고 있는 동안 열차 스텝들도 분주히 움직인다.
다른 객실을 붙이고, 주방칸도 붙이고, 침대를 위한 시트, 베개 등도 준비하는 등의 모습들이 보인다. 그 중 여행객들과 직접적으로 큰 관련이 있는 행위는 바로 객실청소.
물 한 통, 과자 한 봉지라도 객실 내에 있는 것은 무조건 다 청소 해 버린다. 나도 여기서 물을 두고 내려서 약 두 시간동안 물 없이 가야만 했다. 그러니까 소지품은 하나도 남기지 말고, 버릴 것 아니면 다 들고 내려야만 한다.
열차를 타고 가면서 출입국 심사를 한다길래, 혹시 잘 못 하면 열차를 놓치는 건 아닐까 내심 걱정을 했었다. 게다가 혹시나 출입국 심사를 하는 역을 스쳐 지나가 버리는 실수를 하지나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고.
하지만 걱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출입국 심사 받을 때 되면 차장이 객실을 다니면서 내리라고 말 해 준다. 말 해 주지 않는다 해도 청소하는 사람들이 올라 타기 때문에 딱 표시가 난다. 그러니까 초조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출입국 심사 받는 사람들도 별로 없고, 정차 시간도 충분하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출입국 심사를 받고 나온 후에도 객실청소때문에 객실 밖에서 기다리고 서 있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승객들이 출입국 심사를 다 마치자마자 관리소 직원들이 짐 싸 들고 어디론가 가 버리기 때문에, 최소한 다른 승객들과 보조를 맞출 필요는 있다.
7시 30분 즘 야비하게 생긴 어떤 아저씨가 다니면서 메뉴판을 나눠 주며 식사 주문을 받았다. 그런데 가격이 환상이다. 제일 싼 게 70밧(약 2달러 정도)짜리였는데, 겨우 센드위치 네 조각. 그것도 식빵을 대각선으로 반으로 잘라서 네 조각.
그 다음으로 싼 게 소세지 두 개(였던가 세 개 였던가)가 90밧. 밥과 국이 나오는 음식들은 모두 150밧(약 5달러). 말레이시아 물가에 비하면 약간 비싼 편이고, 태국 물가에 비하면 아주 엄청난 바가지다.
미처 이 생각을 못 하고, 기차에서 먹을 것을 사 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150밧이면 방콕에선 둘이 먹어도 충분할 정도로 음식을 주워 먹을 수 있는 돈인데. 그래서 그냥 굶기로 결정.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뭐.
그래서 메뉴판을 다시 돌려주며 안 먹겠다고 했더니, 이 야비하게 생긴 아저씨가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 했다.
"여기서 먹는게 좋아. 태국가면 음식이 아주 지저분해."
풉- 어이없다. 태국 음식이 지저분하면 한국 음식은 개밥인가. 나는 이렇게 응수해줬다.
"그치, 태국 음식은 싸고 지저분하지. 근데 말레이시아 음식은 비싸고 지저분해".
야비한 아저씨는 얼굴이 붉어지더니 그냥 가버렸다.
나중에 옆 자리 앉아가는 사람이 시킨 150밧 짜리 음식을 보니까, 도저히 저건 50밧 짜리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니까 이 열차를 이용할 사람들은 미리 먹을 것들을 좀 사서 타는 게 현명한 선택일 듯 싶다. 참, 물이나 과자 같은 것은 중간중간에 잡상인들이 탑승해서 판매한다. 약간 비싸긴하지만 어쨌든 물을 살 수 있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밤 9시 즘 되니까 승무원 한 분이 저기 끄트머리부터 하나씩 의자를 침대로 만들어 주었다. 의자를 침대로 변신시켜주는 승무원이 객실 한 칸에 한 명 뿐이라 시간이 좀 걸렸지만, 능숙한 솜씨 때문에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일부 손님들은 스스로 침대를 만들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앉아서 기다리는 분위기.
말레이시아와 태국을 오가는 이 국제열차는, 다른 중국이나 인도의 침대열차와는 달리, 침대 옆에 커튼을 달아 주었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모두 가릴 수 있는 커튼이라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을 가릴 수도 있고, 객실 불빛도 가릴 수 있었다.
그렇게 해 놓으니 마치 방 한 칸이 생긴듯 한 분위기. 윗층 침대칸이었다면 거의 관 같은 분위기였겠지만, 아랫칸이었기 때문에 창문이 있어서 아주 호젓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물론 열차가 달리는 곳은 완전 시골 오지라서, 밤에는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어둠 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