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일기

그렇게 모두가 외롭다

빈꿈 2011. 10. 18. 04:02














# 1

태국 아유타야에 큰 홍수가 나서 커다란 불상이 물에 잠긴 모습을 봤다.
그 아름다운 마을이 저렇게 물에 잠길 정도라면 남아난 사원이 없겠다 싶어,
서둘러 방콕 친구에게 연락을 했더니 거긴 아직 괜찮다 했다.

그 후 논타부리 쪽에도 홍수가 났다는 소식이 들렸고,
뉴스에는 머리까지 물에 푹 잠긴 소년의 사진이 나왔다.
물 밖으로는 한 손에 꼬옥 거머쥔 지폐 두 장.

백 이십 바트, 한국 돈으로 오천 원.
현지 맥도날드에서 세트메뉴 하나 사 먹으면 그만인 돈이지만,
길거리 쌀국수 다섯 그릇 정도를 사 먹을 수 있는 돈이기도 하고,
질 나쁜 쌀이라면 십 이 킬로그램 정도 사서 온가족이 먹을 수도 있는 돈.

누구에게 전해주려 했던 걸까, 무엇을 사서 돌아가려 했던 걸까.
그 목숨과도 같은 생명줄을 꼬옥 쥐고 있는 모습을 보며,
다시 태국 친구에게 연락을 했지만 닿지 않았다.
어떻게든 잘 견뎌내고 있겠지, 라며 연락이 되기만을 기다릴 뿐.



# 2

인도 사람들은 영어 발음을 이상하게 하면서 영국식 발음이라 우긴다.
처음 인도 여행을 갔을 땐, 그들이 인도 말을 하는 줄로만 알았다.

river를 지버라고 발음하고, water를 워떠르, thirty를 떠르티라고 했다.
거의 항상 아쉬운 쪽은 여행자.
어떻게든 그들의 발음에 적응해서 말을 알아 들어야만 했고,
실제로 적응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중엔 오히려 heard를 히어드라고 하거나, 한국식 억양으로 영어를 하거나 해도
소통이 된다는 것이 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길에서 만난 세계인이 인터네셔널 잉글리쉬를 사용하며,
쉬운 단어와 현재형 문법만을 구사해서도 충분히 대화가 가능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이해했고, 그렇게 우리는 대화로 소통했다.
하지만 언제나 마음 속 한 켠에 찝찝했던 것 하나는,
과연 이런 대화 속에서 서로의 세계가 교감하고 있을까라는 의문이었다.
 


# 3

깊은 뜻을 알지 못해도 대충 뜻은 통한다.
서로가 서로의 사실만을 바라보며 표면적인 가리킴을 따라간다.

간혹, 달을 보라 하는데 손가락을 보는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본다.
그리고 그것으로 서로를 이해한다.
그런데 대체 그 사람은 달을 왜 가리킨 걸까.

한 사람의 심연으로 들어가기에는 한 인간이 너무나 하찮기만 하다.
해야 할 일도 많고, 먹고 살 일도 태산이다.
사랑마저 그러하듯, 세상은 텍스트로 읽혀진다.
잘 바른 페인트 표면 아래, 구슬픈 주황빛 녹물은 차마
볼 수도 없고, 봐서도 안 되고,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모두가 외롭다.

하루하루 저 푸른 하늘을 우러르며 그렇게 행복하고,
또 밤 깊은 별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슬프기도 하고,
또 모닥불의 온기와, 멀리 흔들리는 불빛과, 산 그림자 속에서
그렇게 모두가 외롭다.

전해지지 않은 마음은 앙금으로 남아 깊이깊이 침전하여 찾을 수도 없고,
전달되지 않은 말들은 바람으로 날려 멀리멀리 날아가서 돌아볼 수 없다.

사랑도 외롭고
사람도 외롭다

그렇게 모두가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