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평릉공원, 단풍과 바다를 함께 볼 수 있는 작은 언덕
가을은 무척이나 짧아서, 이제 조금 선선해지나 싶으면 이내 지나가버린다. 그 짧은 가을을 조금이라도 더 깊게 느껴보려고, 사람들은 단풍으로 유명한 산으로 몰려간다.
물론 가을 단풍은 깊은 산에서 즐기는 것이 가장 좋기는 하다. 하지만 이미 유명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그런 곳들 말고도, 소소하게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독특한 곳들도 있다.
단풍과 바다를 함께 볼 수 있는 언덕은 어떨까. 첩첩이 늘어선 산등성이를 배경으로 멀찌감치 아스라이 보이는 그런 바다가 아니라, 바로 코앞에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바다가 보이는 언덕 말이다.
색색으로 물든 단풍과 낙엽 뒤로 펼쳐진 바다가 작지만 초라하지 않고, 여리지만 궁색하지 않은, 마치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스며드는 분위기 좋은 작은 카페 같은 느낌의 언덕. 동해시의 평릉공원이 바로 그런 곳이다.
평릉공원은 하평해변 뒤편에 있는 작은 언덕 위에 조성된 공원이다. 공원 자체만 본다면 여느 동네에나 있을듯한 주민들을 위한 작은 언덕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리 높지 않은 이 언덕에 오르면 바로 앞으로 파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데,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멀리 묵호항과 논골담길이 있는 묵호등대 언덕까지 내다보인다.
바다 쪽으로 돌출형 전망대가 여러 개 놓여 있는데, 한 사람이 하나씩 차지하고 들어가서 경치를 감상하기 딱 좋다.
전망대 끄트머리에 서면, 마치 허공에 떠 있는 느낌으로 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좀 더 가까이 바라볼 수 있다. 날씨나 기분에 따라서 비련의 주인공이나 기쁨에 가득 찬 여행자가 될 수도 있다.
전망대 안쪽에는 벤치도 여러 개 있어서, 가족끼리 친구끼리 모여앉아 경치를 감상하며 담소를 나누기 좋다. 가장 좋은 건 홀로 가만히 앉아서 멍하니 바다를 감상하는 것인데, 종종 그런 사람들이 보이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공원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또 다른 전망대와 정자가 있다. 그곳에서는 알록달록 다채롭게 물든 단풍과 어우러진 바다 풍경을 볼 수 있다.
특별히 웅장하거나 대단하지 않다 해도, 이 정도면 쉽고 간단하게 올라서 한 시간 남짓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기 충분하다.
줄줄이 늘어선 나무는 울긋불긋 물들어있었고, 그 사이로 햇볕은 따스하게 빛났다. 바닥에는 낙엽이 계절을 추억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느긋하게 산책하며 이 순간을 온몸으로 기억했다.
계단만 내려가면 닿을 수 있는 바다에서는 달짝지근한 냄새가 풍겨왔고, 먼 하늘에서 불어온 오후의 나른한 바람이 이 모든 것들을 한 겹으로 에워쌌다. 살면서 몇 안 되는 완벽한 날이었다.
바다를 등지고 공원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여느 동네 공원과 비슷한 모습이 펼쳐진다. 그런데 방금 본 바다 때문일까, 이곳의 단풍은 다른 동네 공원보다 색깔이 좀 더 진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동해시에서 단풍으로 유명한 곳은 무릉계곡과 두타산이다. 하지만 차가 없거나 시간이 없어서 산까지 찾아갈 여건이 안 된다든지, 체력이 안 되거나 다리를 다쳤다든지 해서 산에 오르기 힘든 경우가 있다. 평릉공원은 그런 상황에서도 가볍게 가을을 즐길 수 있는 좋은 장소다.
특히 동해를 짧게 여행하면서 하평해변을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조금만 시간을 내어서 평릉공원도 한 번 가보자. 하평에서 걸어서 얼마 안 되는 거리라서 함께 방문해보기 좋다.
가을이라 단풍을 소개하지만, 이곳은 여름에도 가볼 만한 곳이다. 특히 논골담길을 구경했다면, 이곳은 그렇게 사람이 사는 골목길과는 또 다른, 온전히 자연을 소소하게 즐길 수 있는 언덕으로 즐길 수 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장소를 여행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한동안 그런 곳을 다니다 보면 조용히 자연 속에서 정화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 가볍게 찾아가 보기를 권한다.
동해시민들 사이에는 이곳이 일출 명소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부지런한 사람이라면 일출도 한 번 구경해보든지. 나는 안 할거다, 게으른 새가 배가 덜 고프니까.
평릉공원에는 가운데가 하트 모양으로 뚫려있는 바위가 있다. 이 공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일명 '하트바위'다.
이 바위 앞에서 연인이 사랑을 약속하면 이루어진다는데, 좀 이상하다. 연인이면 이미 사랑이 이루어진 것 아닌가. 이루어졌는데 뭘 또 이룬단 말이냐, 욕심도 많지. 솔로에게 양보하자.
공원은 정말 조그마해서, 사진을 찍으며 느릿하게 돌아다녀도 한 바퀴 도는 데 얼마 걸리지 않는다. 어쩌면 어떤 사람들은 언덕 꼭대기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오르내리는데 걸리는 시간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은 뭔가 대단한 걸 보러 올라가는 곳이 아니라, 나무와 바다가 어우러진 모습이나, 바로 아래 제각각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는 집들 너머로 보이는 바다 풍경, 혹은 바다를 배경으로 한 단풍 등을 보면서, 느긋하고 여유롭게 한없이 조용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다.
여행지 한편에 숨어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만 어떤 의미가 되어주는, 아담하고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다니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곳이다.
평릉공원을 찾아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하평해변과 접해있는 '해안로'의 부곡교 근처에서 계단을 오르는 방법이다. 위 지도에서 빨간색으로 표시된 길이다.
이쪽은 꽤 많은 계단을 올라야 하고, 주차장도 없기 때문에, 도보여행자가 이용하기 적합하다. 계단이 많아서 조금 힘들 수는 있지만, 조금씩 오르면서 뒤돌아 볼 때마다 달라지는 바다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두 번째는 부곡로를 통해서 접근하는 방법인데, 남호초등학교 바로 위쪽에 차량 네댓 대를 주차할 수 있는 작은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 한쪽에는 작은 화장실도 있다. 지도에 P로 표시한 곳이다.
주차장에서 공원 언덕 쪽으로 경사로와 계단길이 각각 놓여있다. 둘 중 어느 쪽을 택해도 결국 비슷한 곳으로 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