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가원습지 생태자연공원, 햇살 맑은 공원에서 봄볕 같은 가을 산책
그 가을은 마치 봄과 같아서, 편치 못했던 몸을 이끌고 어느 햇볕 따스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 바닷가 마을에서 바다는 일상이었고, 산에 올라가기는 몸이 안 좋았다. 그래서 다시 찾은 곳이 바로 이 공원이었다.
'가원 습지 생태자연공원'은 동해시에서 바다가 전혀 보이지 않는 동네에 있는 자연공원이다. 북평 오일장이 열리는 북평동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고, 조깅이나 자전거 타기 좋은 전천에서도 가깝다. 하지만 산골 구석 쪽으로 들어가 있어서인지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다.
계절을 거치면서 여름과 가을, 겨울에 각각 가봤는데, 아무래도 가을이 제일 나았다.
습지에 빽빽하게 들어선 갈대 너머로 자작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보이니, 한동안 눈을 돌릴 수도 발걸음을 뗄 수도 없었다.
갈대와 나무, 그리고 따뜻한 햇살. 그 아름다운 조화 속에서 더 바랄 것 없는 하루였다.
여름은 초록이 우거져서 시원하고 상쾌하기는 하지만 단조로운 색깔이었고, 겨울은 나름 쓸쓸함을 맛보기는 좋았지만 낮에도 해가 조금 기울자 차가운 산바람이 불어와서 여유롭게 돌아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가을이 제일 좋았다. 아마 가을이 예뻤으니까 봄에도 좋겠지.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봄에도 꼭 여기를 가보고 싶었다. 아무래도 봄에는 새싹과 함께 다양한 꽃들이 피어서 아름답지 않을까. 보통 봄에 좋은 곳은 가을에도 좋고, 가을에 좋은 곳은 봄에도 좋으니까.
가원 습지는 1970년에 쌍용양회가 점토를 시멘트 부원료로 채취하면서, 흙탕물 저류시설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웅덩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자연 습지가 됐다.
점토 채취를 위해서 조성된 웅덩이라고는 하지만, '가원'이라는 지명이 '못 가에 있는 들'이라는 뜻의 '갓뜨르'를 한자로 옮긴 것이라, 옛날부터 이곳에 못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렇게 있던 것을 동해시에서 2013년경에 생태 자연학습장으로 조성했다. 이렇게 공원으로 꾸며진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셈이다.
사진을 볼거리 위주로 찍어서 안 보이지만, 공원 입구에는 작은 화장실과 벤치, 수십 명이 모여 앉을 수 있는 공연 공간 같은 것도 있다.
구석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 주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산책이나 조깅하는 동네 주민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동해시를 방문해서 시간에 쫓기는 일정으로 여행을 한다면 이곳은 후 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동해하면 바다를 먼저 떠올리고, 어쩌다 여행으로 왔다면 바다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을 테니까.
하지만 여유롭게 여행을 하면서 아담한 공원에서 조용히 산책을 하고 싶다거나, 혹은 이미 여러 번 동해를 방문해서 조금 색다른 곳을 가보고 싶다면 한 번 가 볼 만하다. 어느 계절이든 여기는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는 날이 좋다.
이 공원은 산책로 총 길이가 1킬로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아담한 곳이다. 가운데 습지를 두고, 그 주변을 한 바퀴 빙 돌아보는 형태로 길이 놓여 있다.
계단이 약간 있지만 전체적으로 길이 평탄해서, 아이들도 쉽게 산책할 수 있다. 주변에는 카페가 두 개 있어서 쉬어갈 수도 있다.
차가 있다면 북평오일장을 구경하면서 함께 돌아봐도 좋고, 자전거가 있다면 전천 자전거길을 내달리다가 한 번 들러보면 좋다.
문제는 뚜벅이인데, 대중교통을 이용해서도 갈 수는 있지만 시간이 좀 걸린다.
네이버 지도나 카카오 지도를 보면 여기서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이 '소망교회 정류장'이라고 나온다. 141, 153, 312 등의 버스들이 정차하기 때문에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곳이기는 한데, 거기서 이 공원까지 거리가 약 1킬로미터다. 그 거리를 걸어가야 한다.
공원 입구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기는 하다. '가원습지 정류장'인데, 이건 현재 네이버, 다음 지도에 안 나온다. '동해시 대중교통정보' 사이트를 보면, 이 공원 앞으로 '502(단봉)' 버스가 다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버스가 하루 9회 운행한다는 것.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대략 1시간에 한 대꼴로 다니는데, 노선도 북평동 일대만 도는 형태라서 그리 유용하지 않다.
그래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소망교회 정류장에서 걸어가거나, 혹은 택시를 이용하는게 좋겠다.
북평동 쪽 전천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기는 하던데, 여태까지 문 연 것을 못 봤다. 동해시도 자전거 대여 시스템을 좀 갖추면 가볍게 여행하는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텐데.
도보든 자전거든 힘들게 찾아가면 그만큼 보람은 있는 곳이다. 찾아갈 때마다 뭔가 조금씩 가꾸고 설치하는 모습도 보여서, 점점 더 예뻐질 것 같기도 하고.
바램이 있다면, 습지 바로 앞 언덕배기에 산책로를 조성해서, 언덕 위에서 습지를 조망할 수 있게 하면 좀 더 좋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멋있는 사진도 많이 나와서 사람들을 홀릴 수 있을 텐데.
겨울에 눈이 올 때도 이쁘겠고, 봄에 꽃이 필 때도 이쁘겠다 싶지만, 나중을 기약할 수밖에.
어쨌든 어느 가을날 봄볕 같은 햇살을 맞으며 아름다운 하루를 보내고 싶다면, 혹은 햇살 맑고 부드러운 어느 날 문득 생각나면 한 번 가보자. 고즈넉한 공원에서 여행에 한 점 쉼표를 찍을 수 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