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쿠샤, 누군가에겐 죽어서라도 돌아가고 싶었던 곳, 사람이 살고싶은 곳에서 산다는 것
'딜쿠샤'는 앨버트 W. 테일러와 메리 L. 테일러 부부가 살던 집 이름이다.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687호 '서울 앨버트 테일러 가옥(딜쿠샤)'로 등록되어있다.
테일러 부부는 서울에서 함께 살 곳을 찾다가, 멋진 은행나무가 있는 이곳이 마음에 들어서 집을 지었다고 한다.
딜쿠샤(DILKUSHA)는 페르시아어로 '기쁜 마음'이라는 뜻으로,
인도 럭나우(Lucknow) 딜쿠샤 지역에 있었던 '딜쿠샤 코티(Dilkusha Kothi)' 대저택에서 이름을 따왔다.
앨버트 테일러는 미국에서 태어나, 1896년 21세 때 금광 기술자였던 아버지와 함께 한국에 들어와 운산금광 직원으로 일했다. 1908년에 아버지 사망 이후에도 한국에 남아서 금광 사업과 무역상 일을 했다.
1917년에 영국 출신의 연극배우 '메리 린리 테일러'와 일본에서 만나 인도 뭄바이에서 결혼하고 함께 경성으로 돌아왔다.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UPI 통신사에서 이를 취재하기 위해 조선에서 사업하던 그를 특파원으로 임명했다. 이후 그는 계속해서 사업과 함께 통신사 특파원 일을 했다.
특히 1919년에는 아내 메리가 입원해 있었던 병원에서 우연히 3.1 독립 선언서를 입수했는데, 그의 동생이 이것을 도쿄로 가지고 가서 도쿄 통신사 망으로 타전하여 3.1 운동을 세계에 알렸다.
당시 세브란스 병원의 인쇄기로 독립선언문을 인쇄했는데, 일제 경찰이 이를 찾기위해 병원을 수색하자, 미국인 병실은 함부로 수색할 수 없을 거라고 판단한 수간호사가 인쇄물들을 메리 테일러 병실에 숨겼다고 한다.
이후 제암리 학살사건 취재도 하고, 스코필드, 언더우드와 함께 조선 총독을 항의 방문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그렇게 경성에서 사업가로 특파원으로 삶을 살다가 1923년에 딜쿠샤를 지었다. 영국식 미국식 건축법을 혼합해서 지은 2층 벽돌집으로, 당시에는 서울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서양식 주택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연합군으로 참전하면서 일본과 관계가 안 좋아졌고, 1942년에 일제는 자국령 내 모든 미국인을 추방했다. 이때 테일러 부부도 경성에서 태어난 그들의 아들과 함께 추방됐다.
앨버트 테일러는 1948년 사망했고, 이후 그의 유언에 따라 유해는 한국으로 이송되어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안장됐다.
이후 아내 메리 테일러가 쓴 회고록을 아들 브루스가 '호박 목걸이(Chain of Amber)'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했다. 1917년부터 1948년까지 주로 한국에서 삶을 기록한 이 책은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판매되고 있다.
그들이 추방된 이후 딜쿠샤는 오랜기간 방치되기도 했고,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도 했다. 그러다가 2005년에 그들의 아들 브루스의 의뢰로 이 집을 찾아냈다.
2017년에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됐고, 2018년에 원형 복원 공사를 시작했다. 그래서 2020년 12월에 내부 복원 공사를 완료했고, 2021년 3월에 서울역사박물관 분관으로 개관했다.
살림 집으로는 큰 편이지만 전시관으로 보면 규모가 작은 편이라, 한 번에 관람할 수 있는 인원을 제한하기 위해서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다. 아직도 집 앞쪽은 길을 내는 공사가 진행 중이라 정면을 제대로 볼 수는 없지만, 개관한 지 얼마 안 된 사연 많은 집을 보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연일 예약 인원이 꽉 차고 있다. 예약은 '서울시 예약시스템'에서 딜쿠샤를 검색하면 된다.
사실 딜쿠샤는 박물관으로 보면 그리 볼 것이 많지는 않다. 1층 거실은 남아있는 사진을 토대로 거의 그대로 복원했고, 2층 쪽은 자료가 없어서 장인들에게 의뢰해서 가구 같은 것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전문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에겐 그냥 그렇구나하며 한 번 쓱 둘러보면 그만인 물건들이다. 그래서인지 관람시간이 1시간인데도 그 시간을 다 채우지 않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뭔가 많은 볼거리를 기대하고 간다면 실망하기 쉬운 곳이라 한 가지 감상 포인트 제안을 하자면, 집 구경보다는 이 집의 숨결을 느껴보는 관람을 해보자.
나는 그 어떤 의미보다도 이곳이, '사람이 살고 싶은 곳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기 좋은 곳이라고 본다. 죽어서라도 돌아가고 싶었던 곳. 테일러에겐 그 장소가 이곳이었는데, 아마 사람마다 그런 곳들이 있을 테다.
내 인생에 큰 의미가 있는 곳, 꼭 가서 평생을 살고 싶은 곳, 죽어서라도 돌아가고 싶은 곳. 누군가에게 그곳이었던 이 집을 조용히 거닐면서, 아직도 꿋꿋하게 서 있는 그들이 사랑했던 오래된 은행나무를 창 밖으로 내다보며, 내가 돌아가고픈 그곳을 생각해보자. 어쩌면 이 집이 내게 떠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 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