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천 원짜리 김밥 소개, 동네 구석엔 아직도 이런 가게가 있다
2020년에도 김밥 한 줄 1,000원에 먹을 수 있는 동네가 있다. 우리동네다.
사실 찾아보면 은근히 많다. 내가 살았던 곳들 거의 대부분이, 수시로 동네 탐험을 해보면 구석자리 어딘가에 감동적인 가게들이 한 둘씩은 꼭 숨어 있더라.
그래서 완전 번화가나 아파트 단지만 있는 곳이 아니라면, 아직도 잘 찾아보면 다른 동네에도 이 비슷한 가게가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여기는 동네 구석은 아니고, 큰 길 가라서 그래도 자리는 좋은 편. 근데 가게 앞에 이것저것 식재료 같은 것들을 쌓아놔서 가게 자체가 잘 눈에 띄지 않는게 특징이다.
이 동네가 집도 그렇고 가게도 그렇고 희한하게 마름모꼴로 생긴 좁은 건물들이 많다보니, 물건 놓을 자리가 마땅치가 않아서 어쩔 수가 없다.
우체국도 작아서 배송 물건을 길바닥에 버트려 놓을 정도니까. 그래도 잘 치우면 가게가 눈에 띌 것 같은데 좀 안타깝다.
어쨌든 자세히 보면 가게 앞유리에 "포장시 김밥 한 줄 1000원"이라고 크게 쓰여진 글자를 볼 수 있다.
꿈나무카드를 받다보니 혼자 가서 먹는 중고등학생들도 가끔 보인다. 안에 메뉴판도 있는데 괜히 유난떨기 싫어서 안 찍었음. 대략 라면 한 그릇에 2,500원. 김밥을 가게에서 먹으면 1,500원이고, 나름 더 비싼 럭셔리 김밥들도 있긴 있다.
포장해 온 김밥. 김밥 하나하나 쿠킹호일로 감싸서 주는데, 호일 값이 더 들 것 같아서 한번은 그냥 줘도 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렇게 하면 김밥이 터진다고 안 된다 하더라.
이렇게 싸 온 호일을 어떻게 다시 활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거 너무 아까워.
호일을 불빛 아래 놓으니 번쩍번쩍해서 사진이 잘 안 찍혀서 키친타월로 다시 깔았다. 근데 이것도 형광물질 때문인지 빛이 너무 많이 반사된다.
마음에 안 들지만 이제 어쩔 수 없다. 너무 많은 노력은 인생에 안 좋으니, 더이상은 노력 안 하기로.
대충 김밥인 것 알기만 하면 되는거지.
김밥 속은 이렇게 생겼다. 계란지단, 단무지, 당근, 부추, 햄 정도가 들어있다.
근데 이건 최근에 아줌마가 새해를 맞고 해서 뭔가 이벤트를 하는지 재료를 잘 넣어준 거다. 몇 년째 여기서 수시로 이 김밥을 사먹고 있는데, 이렇게 제대로 해 주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
천 원짜리 기본 김밥은 나름 시그니처 푸드, 혹은 제철 음식이다. 아줌마가 알아서 시기에 따라 속을 달리 넣어준다. 어느 여름날엔 단무지 반, 부추 반이었지.
대강 식당에서 상식 먹는다 치고 먹다보면 때때로 변화가 있어서 나름 재밌다. 어차피 나는 이거 두어개 사서 라면에 넣어 먹기 때문에, 뭐가 들어가든 크게 상관치 않는 편이고.
사진 찍으려고 조금 옮기다보니 옆구리가 터졌는데, 재료를 좀 더 자세히 보여주기 위해서 일부러 꺼내 봤다고 하자.
동네에 김밥집에 몇 개 있는데, 재작년 쯤에 다들 1500원 이상으로 가격을 올렸다. 이제 천 원인 집은 여기 하나만 남은 상태. 그래서 다른 깁밥집 다 끊고 이 집만 가고 있다.
물론 1500원도 그리 비싼 가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지막 남은 곳은 지켜줘야지.
그런데 이렇게 사먹다보니 다른 곳에 나가면 뭘 사먹을 수가 없다. 그래서 혼자 다른 동네에 가게 되면, 동네에 다시 돌아올 때까지 거의 굶는다.
이 정도면 라면과 함께 먹기 딱 좋다. 김밥만 두 줄 먹어도 배가 부르다.
대강 이런 일도 있다는 이야기.
이런걸 보여주면 사람들은 신기하다, 이렇게 싼 게 있다니 하는 반응인데, 내가 살았던 동네들은 다 이 비슷한 가게들이 있었다.
인터넷이나 이런저런 미디어에 나오는 소위 맛집이라는 곳만 찾아다니고, 정작 자기 동네 탐험은 하지 않기 때문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모든 물가의 근원은 부동산이다. 허름해도 자기 가게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 마을이라면 대체로 싼 음식점이 있다.
그러니까 부동산 가격을 잡는게 꼭 전월세 부담 경감만 해당되는게 아니다. 국민 생활 전반에 걸친 생활개선 작업에 가깝다. 강남 번화가에서는 음식을 먹는게 아니라, 부동산 자릿값을 지불하는 거라는 걸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냥 마치기 심심하니까, 동네 과일가게에서 산 바나나도 구경해보자. 낮에는 3천 원, 밤에 문 닫기 전에는 2,500원에 판매하는 바나나.
낮엔 한거 쌓여 있는데, 할인 시작하면 순식간에 사라지기 때문에 시간 잘 맞춰서 가야한다. 장사하는 사람 마음이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이 없어서 항상 이 가격에 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삼천 원이라도 그리 비싼 것은 아니지만.
앞뒤 두 열로 있어서, 세어보니 총 17개. 대략 하나에 200원 꼴이라 요즘 과자보다 싸게 치기 때문에 자주 사먹고 있다. 과자보다 건강에도 좋겠지.
바나나 때문에 토스터기를 살까 생각하기도 했다. 살짝 구워먹으면 향이 더 진해져서 좋으니까. 히터 같은 것에 살짝 데워서, 따뜻하게 먹어보시라.
끝으로 김밥과 바나나 조합. 완전 환상의 콤비. 원래 환상의 콤비는 서로 안 맞고 따로 놀아야지. 그러니까 따라하지 마시오. 그런데 갑자기 김밥 속에 바나나를 넣어보고 싶어지네. 다음 기회에.
동네에 3천 원 짜리 짜장면 파는 중국집도 있다. 근데 거기는 대략 해 지면 문을 닫기 때문에, 겨울철엔 시간 맞춰 가기가 어렵다. 조만간 기회가 되면 거기도 소개해 보겠다.
모두들 시간 날 때 동네 탐험을 해보자. 구석구석 기웃거리다보면 의외로 신기한 가게들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다.
p.s.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추가 설명하자면, 이 동네도 서울시다. 좀 변두리이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