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기동 안녕마을 벽화 구경, 경희대 근처 범죄예방디자인 동네
'회기동 안녕마을'은 시조사 삼거리에서 경희대 쪽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회기로12길 일대(혹은 회기동 102-103번지 일대)에 붙여진 이름이다.
좁고 어두운 골목과 낡은 주택들이 밀집한 곳에 벽화를 그리고, 길을 비추는 조명을 설치하는 등으로 범죄 예방 환경 디자인(CPTED)을 했다. 그래서 2015년에는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 우수상을 받았고, 이후 다른 동네에서 벤치마킹을 하러 오기도 했다.
안녕마을이 시작되는 곳은 회기파출소 뒷편의 골목이다. 최근에 조성한 마을 쉼터와 화분들로 이루어진 작은 텃밭, 그리고 알림판이 설치돼 있다. 그리고 한쪽 벽면에는 안녕마을 탐방 안내도가 그려져 있다.
안내도를 볼 때는 대략 이렇게 둘러보면 되겠구나 싶지만, 동네가 워낙 골목이 많아서 가다보면 헷갈리기 때문에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켜놓고 둘러보는게 좋다. 사실 출발지에서 먼 쪽은 크게 볼 것이 없기 때문에, 출발지와 가까운 곳들만 가볍게 둘러보고 나와도 된다.
마을 입구부터 조그만 주택들 벽면이 알록달록 색칠이 돼 있다. 벽화가 그려진 집도 있고, 그냥 색칠만 돼 있는 집도 있다. 몇 년 전에 새롭게 칠했을 때는 조금 더 화려한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빛이 바래고 낡은 느낌이다. 이런 벽화는 대체로 3년 정도를 수명으로 치는데, 이제 이 동네도 또 새롭게 색칠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옛날에 쓰레기 무단투기가 자주 발생했던 공간에는 운동기구가 설치됐다. 아무래도 마을 사람들이 자주 나와 있는 공간이라면 함부로 쓰레기를 버릴 수 없을 테니까.
골목 여기저기에는 우편함 겸 보안등이 설치돼 있다. 우편함인데 밤에는 웃는 얼굴로 불빛이 들어온다. 어두운 골목길을 조금이라도 밝게 하기 위한 설치물이다. 밤에 이 동네를 가 볼 일이 없어서, 아직도 이게 잘 켜지는지는 모르겠다.
회색의 우중충한 담벼락도 색칠을 해서 마을 조성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전시해놨다. 근데 이걸 자세히 들여다보고 읽어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게다가 앞쪽 화단의 식물들 때문에 자세히 들여다 보기도 어렵다. 차라리 벽화를 그려 놓는게 낫지 않을까. 어쨌든 일단 색칠을 한 것은 좋다.
걷다보면 전봇대도 구역에 따라 다른 색깔로 색칠이 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혹시나 범죄가 일어난다면 전봇대 색깔을 알려주면 대충 어느 지역인지 알 수 있는 장치다. 각각의 전봇대에 번호도 부여했다고 한다.
몇몇 공터에는 마을 알림판도 설치돼 있다. 아마 초반에는 여기에 마을 소식 같은 것을 알리며 알콩달콩한 삶을 살아 보아요라는 취지였겠지만, 아시다시피 현실은 조금 다르다. 아무나 아무거나 게시할 수 있게 해 놓으면 광고로 도배되고, 그래서 마구 게시할 수 없게 해 놓으면 아무도 안 보는 장치가 된다.
동네를 돌아보니 월세 전단지가 벽에 붙어 있는게 많던데, 과연 게시판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문스러운 대목이다. 이건 좀 더 고민해야 할 듯 싶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서 쭉 안쪽으로 직진해서 계속 들어가면 벽화를 구경할 수 있다.
동네 중간의 계단 옆 공터도 작은 텃밭이 마련돼 있다. 공터를 놀려두지 않고 이렇게 활용하는 건 좋은 생각이다. 오래된 동네는 이렇게 이상한 공간들이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데, 이런 공간들이 안 좋게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 공간도 아마, 추측이지만, 옛날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앉아서 술 먹고 담배 피고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이상한 공간을 방치하지 않는 것이 '범죄 예방 환경 조성'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동네도 그렇지만, 청량리 쪽 일대가 오래된 동네가 많아서, 이렇게 길 한가운데 떡하니 전봇대가 놓여 있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름 독특한 모습이다. 여기도 색칠만 하지말고 뭔가 재밌는 요소를 담으면 좋을 텐데 싶다. 길 한가운데 놓인 전봇대는 재밌는 아이템이니까.
중간에 트인 곳이 나오고, 다시 좁은 골목길로 이어지고, 그런 것이 반복된다. 이 동네도 통영 처럼 벽화팀을 모집해서 약간 지원해주고 대규모로 벽화를 그려 넣으면 벽화마을로 뜰 수 있는 조건은 충분하다. 조금만 나가면 경희대 앞 상권이기 때문에 놀기도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용한 동네를 그렇게 띄우는 것이 과연 주민들에게 이득인가라는 의문은 있다. 이화마을이 그런 경우다. 이건 마을 사람들이, 그 마을 상황에 맞는 해법을 스스로 찾아야 할 테다. 어쨌든 지금 회기동 안녕마을은 벽화마을이라고 하기엔 약간 부족하지만, 동네를 화사하게 꾸몄다는 쪽으로는 의미가 있는 상태다. 굳이 관광객들을 끌어들일 생각이 없다면, 이 상태에서 벽화를 보수하거나 조금씩 새로 그리는 작업만 해도 되겠다.
마을 안쪽엔 뜬금없이 작은 우물이 있다. '소원을 들어주는 우물'이라고 돼 있고, 이런 설명이 적혀 있다.
옛날에 이 우물에 금빛 잉어가 살고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것이 소원을 들어주는 잉어일 거라고 했다 한다. 그런데 어느날 우물을 쳤더니 금빛잉어가 없었다고.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이후에도 이 우물가에서 손을 씻으면 다시 금빛잉어가 나타나서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 믿고 있다 한다.
그러니까 설명을 보면, '소원을 들어줄 것 같은 우물'이다. 너무 기니까 그냥 줄였다고 볼 수 있겠다.
이것도 회기동, 전농동 쪽의 오래된 주택가의 특징인데, 네모 반듯하지 않은 다각형 모양의 집들이 꽤 있다. 이런 동네에선 정말 희한한 모양의 집을 쉽게 볼 수 있다.
보통 이런 벽 위에는 철조망이나 깨진 유리병을 박아놨는데, 그런것 대신에 예쁜 모양의 철판을 설치한 모습이다.
좁은 골목길에서 다른쪽 골목을 미리 볼 수 있는 거울도 많이 설치돼 있다. 골목에서 다른 사람과 부딪히거나, 자전거 등을 미리 보고 피할 수 있는 역할도 하지만, 수상한 사람이 있는지를 파악할 수도 있을 테다.
그리고 동네 곳곳에는 알림판이 벽에 부착돼 있다. 감시카메라가 있다거나, 헤드폰을 쓰지 말 것을 권하는 등의 알림판이다. 이왕 하는 김에, 동네 홈페이지를 간단하게 만들고, 그곳으로 접속하는 QR코드를 알림판으로 붙이는 건 어떨까. 동네 홈페이지도 괜히 예쁘게 돈 들여서 만들 필요 없이, 그냥 게시판 하나만 덜렁 붙여놓고, 서로 소식을 알리는 정도만 해도 괜찮지 않을까.
'쓰레기 버리는 방법' 안내판도 몇 개 있던데, 영어와 중국어로도 적혀 있다. 두 개 밖에 발견하지 못 해서 좀 아쉬운데, 이런 것들이 좀 많았으면 싶다. 외국인들이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리는 것을 비난하기 전에, 어떻게 버려야 한다는 걸 가르쳐 주는게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홋카이도에 여행을 갔더니 게스트하우스에도 쓰레기를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팜플렛이 비치돼 있더라. 일본어는 물론이고, 영어, 한국어, 중국어 등의 언어별로 제작된 팜플렛이 각각 있었다. 그걸 보고 문득,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들은 이런 정보를 어디서 얻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일단 우리 동네에 외국인 학생이 월세를 얻어 들어왔다면, 이런 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다. 홈페이지도 있고 길에 써붙여진 안내판도 있다고는 하지만, 모두 한글이다. 더군다나 외국인이라면 쓰레기 봉투를 구입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를 수도 있다. 이런걸 먼저 알려주고 단속을 하는게 좋지 않을까.
마을 초입 안내도에 적힌 루트를 따라서 한 바퀴 돌아보려 했는데, 중간에 길을 잘 못 들어서 꼬여버리니 풀어낼 수가 없었다. 골목길이 너무 많아서 스마트폰 지도가 없으면 어떻게 찾아볼 엄두가 안 날 지경이었다. 마침 스마트폰 지도를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 대강 이리저리 헤매다가 다시 돌아오게 됐다. 정식 루트로 돌아봤어도 어차피 이 길로 돌아오기 때문에, 대충 절반 이상 둘러본 셈이다.
이곳을 보려고 일부러 방문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경희대 쪽에 갈 일이 있거나 이 일대를 산책하거나 할 때 생각나면 한 번 둘러보자. 오래된 주택가 분위기와 함께 벽화들이 그려져 있어서, 소소하게 둘러보는 재미가 있을 테다.
p.s. 경희대와 홍릉수목원 등을 연결해서 지치도록 걸어보는 코스를 짜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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