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일기

빨간맛 바나나 행복의 맛일까

빈꿈 2020. 2. 19. 14:34

 

바나나에는 '트립토판'이라는 필수 아미노산이 있는데, 이게 소위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 분비를 자극해서 우울한 기분을 달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저기압일 때 고기 앞으로 가면 좋다지만, 돈도 돈이고 여러모로 귀찮고 힘들고 귀찮다. 그럴때는 간단하게 바나나로 해결해보는 것도 좋다.

 

 

 

물론 과학적으로 알려진 사실이 현실적으로 그대로 적용된다는 보장은 없다. 언제나 예외는 있기 마련이고, 실험실에서 증명된 과학적 사실이라도 실생활에 나오면 수많은 변수들로 이상한 결과가 나오기도 하니까.

 

행복 호르몬을 생각해내고 스스로 실험양이 되어 최근에 바나나 주입 실험을 해봤는데, 한 열 개 쯤 먹으면 배가 불러서 조금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가 있는 것 같기는 하더라. 이후 설사가 몰려와서 더욱 행복해지는 건 덤이다.

 

 

 

트립토판 외에도 칼륨이 풍부해서 고혈압에 좋다고 한다. 칼륨은 과도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한다.

 

바나나의 비타민B6는 여성의 ‘생리전 증후군’에도 도움이 되어, 배와 허리 통증을 완화하고 흥분을 가라앉히는 효능이 있다.

 

바나나의 섬유질 펙틴은 소화를 촉진하고 체내 독소를 배출해줘서 변비와 장 건강에도 효능이 있다 한다.

 

그 외에도 속쓰림, 빈혈, 에너지 보충, 심지어 최근에는 항암효과가 있다는 말도 있다. 거의 김치다. 바나나를 주식으로 하는 원숭이는 그럼 만수무강하겠네.  

 

어쩌면 원숭이들은 우울해서 바나나를 많이 먹는 건지도 몰라.

 

 

 

사실 바나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한국에서 판매하는 바나나는 거의 무미무향이다. 동남아에서 길어 널브러진 아무 바나나와 비교해봐도 영 품질이 좋지 않다. 동남아를 가면 더 맛있는 과일이 많기 때문에 바나나는 뒷전이고. 그러다보니 거의 먹지 않게 됐다.

 

우울한 나날들이 계속돼서 요즘 자주 바나나를 사 먹는다. 동네 과일가게에서 한 송이 3천 원 정도로 파는데, 문 닫기 전에 타이밍 잘 맞춰 가면 2천 원에 떨이를 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자주 사먹게 됐다.

 

가난한 동네다보니 3천 원 할 때는 다들 안 사다가, 떨이를 시작하면 순식간에 다 팔리기 때문에 절묘한 타이밍을 포착해야 한다는게 어려운 일이긴 하다.

 

 

 

동네 과일가게에 놓인 바나나는 너무 볼 품 없게 던져놔서 사진으로 찍으면 마치 길거리에 버려친 바나나 껍데기 처럼 보이기 때문에, 사진은 엄동설한에 먼 길을 걸어 대형마트에 가서 찍었다.

 

그런데 마트에 가보니 칠레산 바나나가 금칠을 한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더라. 마감 세일을 해서 두 개 천 원이라니. 정말 금칠을 한 건가.

 

 

 

 

 

바나나가 행복의 맛이라면, 행복을 말리면 말린 바나나 맛인 걸까.

 

 

 

말라 비틀어진 행복.

 

 

 

유기농 현미로 만든 바나나볼은 현미로 만든 행복인 건가.

 

 

 

큰 맘 먹고 두 개 천 원짜리 페루 바나나를 사봤다. 페루에서 온 행복의 맛은 어떨까.

 

 

 

 

그냥 바나나 맛이다. 금도 들어있지 않았다.

 

비싼 행복이든, 싸구려 행복이든, 맛은 다 똑같다는 깨달음인가. 하지만 통장 잔고는 행복과 멀어졌다.

 

 

 

바나나를 고르다가 옆에 놓인 망고를 보고는 한참 망설였다. 행복해지지 않아도 좋으니까 망고를 먹고 싶은데. 아냐 행복해져야겠지. 행복하자, 행복하자. 노래를 불렀지.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 행복 성분이 없는 것만 빼면 망고도 바나나와 효능이 거의 똑같더라. 뭔가 속은 느낌이다. 그냥 아무 과일이나 먹으면 다 좋은 것 아닐까 싶고.

 

그래도 속는 셈 치고, 우울한 날에는 바나나를 한 번 먹어보라. 아주 조금 우주의 티끌만큼 기분이 나아지는 걸 느낄 수는 있다. 그게 무슨 크립토 어쩌고 때문인지, 그냥 배를 채워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