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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코타이에서 롭부리 가기
쑤코타이 역사공원에서의 하이킹은, 여행 막바지에 오랜만에 상쾌한 기분을 맛 볼 수 있었던 탁월한 선택이었다. 한 낮의 뜨거운 태양도 자전거를 달리면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상관없었던 곳. 노을마저 아름답던 그 폐허의 푸른 초원. 마음같아서는 쑤코타이 올드시티에 며칠 머물면서 역사공원을 들락날락 하고 싶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니 이제 떠나야 할 때.
쑤코타이 시내에서 버스터미널까지 툭툭 요금은 20밧 (비수기라 장사가 안 되는지 흥정하기 쉬웠다). 다음 목적지는 롭부리(Lopburi).
쑤코타이에서 롭부리로 가려면 아유타야에서 버스를 타는 편이 낫다는 숙소 주인 말에 아유타야 행 버스를 타러 갔다. 하지만 쑤코타이에서 아유타야 가는 버스편은 잘 없어서, 버스터미널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만 했다. 방콕 가는 버스는 수시로 많이 있었는데, 내 생각엔 방콕 가는 길에 아유타야에 내려주면 될 것 같은데 그게 아닌가보다. 어차피 아유타야 가는 버스도 최종 목적지는 방콕이던데.
어쨌든 차표 끊고 남는 시간에 저녁 먹고 빈둥거리다가 저녁 7시 반에 아유타야 가는 버스를 탔다. 쑤코타이에서 아유타야까지 버스 요금은 234 밧.
지나고 나서 생각 해 보니 쑤코타이에서 롭부리나 아유타야를 갈 생각이라면, 차라리 핏싸눌록(Phitsanulok)으로 가서 기차를 타는 게 낫지 않나 싶다. 특히 롭부리는 바로 가는 버스가 없으니까 열차편이 더 유용할 듯 싶다. 물론 쑤코타이에서 롭부리로 갈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유타야(Ayuthaya)는 옛날에 태국 역사상 가장 번창했던 아유타야 왕조의 수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허물어진 사원들과 몇몇 탑들이 현지 가옥들과 조화를 이루며 조용히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된 곳인데, 쑤코타이 역사공원과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다.
하지만 아유타야 유적지는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 밀집 지역과 가까운 곳에 위치 해 있고, 현지인들의 주택지역과도 가까이 있기 때문에 쑤코타이와는 또 다른 분위기의 매력이 있는 곳이다. 사실 나보고 쑤코타이와 아유타야 둘 중 한 군데만 간다면 어느 곳을 택할 거냐고 물어본다면, 망설임 없이 아유타야라고 답 할 테다.
어쨌든 그렇게 좋아하는 아유타야지만, 이 날은 완전 엉망이었다.
그런데 쑤코타이에서 아유타야 가는 버스는, 아유타야 유적지에서 6~7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고속도로 한 가운데에 떡하니 세워서는 내리라고 했다. 내리는 지점에 툭툭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걸로 봐서는, 어쩌다 한 번 그러는 것이 아닌 듯 했다. 게다가 정해진 곳에서 주정차 하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장거리 버스가 그런 곳에서 세웠으니까, 아마도 북쪽에서 아유타야 쪽으로 내려오는 버스들은 다들 그런 허허벌판에 손님을 내려놓고 바로 방콕으로 휑하니 가버리나보다.
새벽 1시 반에 그런 고속도로 한 복판에서 내린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상황. 대체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툭툭 기사들은 졸린 눈 비벼가며 타라고 부추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 시간에 툭툭을 탄다 해도 딱히 갈 곳도 없는 상황. 그래서 시간도 보낼 겸 그냥 걸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불러 탔다. 아유타야에서는 영업용 오토바이가 길에 많이 다니는데, 영업용임을 알리는 조끼를 입고 다니니까 쉽게 구분할 수 있다. 택시 타듯이 지나가는 영업용 오토바이를 불러서 흥정하고 타고 가면 된다. 물론, 태국의 다른 지역에도 영업용 오토바이들이 다니긴 하는데, 아유타야가 유난히 많은 편이다.
사실 난 영업용 오토바이는 웬만해선 안 탄다. 여태까지 영업용 오토바이를 타서 제대로 목적지까지 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이 영어를 전혀 못 해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대체로 이 사람들의 사고구조는 그냥 대충 비슷한 곳에 아무데나 데려다 놓고 돈만 받으면 된다라는 생각들로만 가득한 것 같다.
아니나다를까, 이번에도 엉뚱한 곳으로 가고 말았다. 아유타야 역에서 아침 첫 차를 타고 롭부리로 가려고 했는데, 이 오토바이 기사가 어떤 길 가의 세븐일레븐 앞에 나를 내려주는 것. 그러면서 "여기서 새벽 5시에 롭부리 가는 첫 차가 오니까 그거 타면 된다"란다. 내가 분명히 기차역으로 가자고 강조하고 강조해서 말 했는데도!
그래서 아침부터 화가 났고, 다시 처음 그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오토바이 기사는 당연히 안 된다며 버텼고, 그럼 나도 어쩔 수 없다고 버텼고. 결국 돈 안 준 놈이 이긴다. 오토바이 기사는 한참을 나하고 대치하다가 그냥 휑하니 가버렸다. 일도 제대로 안 하고 돈만 챙기려 들다니! (참고로, 아유타야 외곽에 있는 버스터미널에서 역까지 (약 4킬로미터) 오토바이로 태워주는 데 요금은 30 밧 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곳이 롭부리 가는 버스가 오기는 온다는 것. 나중에 보니 그 곳은, 역에서 약 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아유타야 강 안쪽 어느 귀퉁이의 세븐일레븐 앞이었다. 특별히 정류소 표지판 같은 것은 없었지만, 아유타야와 가까운 다른 지역으로 가는 시외버스들이 출발하는 곳이었다.
그 곳에서 세븐일레븐의 버거를 사 먹으면서 꾸벅꾸벅 졸다가, 새벽 6시 첫 차를 타고 롭부리로 갔다. 아유타야는 이미 몇 번 가 본 곳이니까 롭부리로 바로 떠났는데, 그러면서도 내심 망설이기도 했다. 그냥 아유타야에 머물면서 남은 시간을 여유롭게 보낼까라는 마음 한 구석의 외침. 하지만 롭부리의 해바라기 꽃밭을 보고싶다는 이유 하나로 마음을 다잡고 바로 떠났다.
사실 처음 몇 십분 말고는 기억이 없다. 완전히 골아떨어져서 잠에 푹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문득 부시시 눈을 떠 보니 롭부리 역이 보였고, 그걸 보자마자 부랴부랴 짐을 챙겨서 일어났던 것. 그 때 즘엔 그 작은 버스가 사람으로 꽉꽉 들어 차 있어서 내리는 데도 꽤 힘이 들었다.
생전 처음 와 보는 롭부리(Lopburi). 유적같은 것도 별로 없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거의 찾지 않는 지방 소도시. 11월에서 1월 사이에 열리는 해바라기 축제 때는 그나마 여행자들이 좀 찾아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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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생각보다 한 적하군요..
수코타이에서 롭부리로 바로 이동하고싶어서 검색하다가 찾았습니다!! 오래된 포스트지만 너무 감격스러워 댓글달고가요! 귀중한 정보 감사합니다 ㅜ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