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벚꽃 구경 - 미대, 본관, 평화의전당 산책코스
며칠 전에 간단히 경희대 벚꽃 구경을 갔다왔는데, 그때는 너무 피곤해서 본관과 도서관 근처만 둘러보고 나왔다. 거의 관광객 구경만 하고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엔 제대로 구경하려고 다시 한 번 가봤다.
사실 벚꽃놀이를 하려면 여기 말고도 갈 곳이 많지만, 이곳은 꽃과 학교 건물이 함께 어우러져서 다른 곳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수많은 관광객으로 관광지 분위기가 나는 것은 덤이고, 구경 끝내고 나와서 많은 맛집들을 탐방하다가 싼 컵밥 정도를 먹고 오는 즐거움도 있다.
일단 경희대학교(慶熙大學校)를 방문했소 알리기 위해서 본관 사진을 먼저 걸어본다. 하지만 이번 여정은 미대 쪽이 메인코스라, 본관은 나중에 찍은 것이다.
경희대학교 병원이 있는 정문으로 들어가서, 교시탑을 지나서 쭉 직진하면 본관이 나온다. 하지만 이번 코스는 교시탑에서 왼쪽으로 꺾어서 미술대학 가는 언덕을 올랐다.
교시탑 사거리에서 본관을 정면으로 보고 왼쪽으로 꺾어서 들어가면 호텔관광대학이 나오고, 그 길을 따라 계속 언덕을 오르면 꼭대기의 미대로 갈 수 있다. 경희대 벚꽃놀이 핵심은 바로 이 길이다.
거의 공원같은 분위기인데, 이곳 벚나무는 키가 커서 꽃이 손에 닿지 않는다. 이러면 멀찌감치서 전체를 보거나, 위로 올려다봐야 꽃놀이를 즐길 수 있다. 키 낮은 벚꽃이 즐비한 곳보다는 조금 아쉬운 면이 있지만, 꽃이 질 때면 공간 한 가득 꽃잎이 날려서 비련의 주인공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경희초등학교 쪽으로 가는 길이다. 예전엔 한창 공사한다고 막아놨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놀러가서는 딱히 이쪽 길을 이용할 일이 없다. 그냥 구경만 하고 반대편으로 돌아서 위로 올라가자.
호텔관광대학 건물 바로 뒷편에 너른 공간이 있고, 여기서 골짜기로 내려가는 탐방로도 있다. 조형물 아래를 지나서 계단으로 내려가면 탐방로가 이어지는데, 여름철엔 나름 시원한 느낌을 주지만 이 계절엔 딱히 볼만 한 게 없다.
가볍게 놀러와서 오르막길 오르는 수고를 하기 싫다면, 그냥 이 근처에서 꽃놀이를 즐기고 본관 쪽으로 발길을 옮겨도 된다. 더 올라가도 엄청 예쁜 풍경은 나오지 않으니까. 소소한 도보여행 재미를 느끼려면, 미대까지 길따라 꽃 구경을 하면서 산책을 해보자.
미대를 산 꼭대기에 갖다 놓은 학교들이 많긴 한데, 경희대는 거의 유배 수준으로 꼭대기에 뚝 떨어트려놔서 좀 신기할 정도다. 한 번 올라가면 다시 내려갔다 올라가기 힘들 정도라서, 콕 틀어박히기는 좋겠다.
본격적인 막바지 오르막길이 시작되기 직전에 작은 다리가 하나 있는데, 관광객들은 대체로 이쯤에서 다시 돌아서 내려간다. 어차피 계속해서 올라가봤자 크게 더 볼 것도 없고, 여기까지도 충분이 예쁜 꽃길인데다가, 여기서 오르막길을 올려다보면 꽤 높아 보여서 오르기 싫어지기 때문이다.
이왕 왔으니 미대 건물까지 올라가봤다. 슬금슬금 올라보면 오를만 하다. 물론 딱히 볼 건 없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내려간다.
길따라 쭉 내려와서 다시 산책로 계단 입구. 가만 보니 저 길에도 꽃이 좀 펴 있긴 한데, 내려가면 다시 돌아와서 올라와야 하기 때문에 많이 귀찮다. 그래서인지 사람들도 대체로 여기 계단에서 사진만 찍고 이 주변에서 꽃놀이를 즐긴다.
다시 길을 돌아나와서 본관 앞으로 갔다. 분수대 주변에 학생들이 가득 모여 앉아서 벚꽃축제를 하고 있었다. 4월 8일부터 11일까지 4일간을 벚꽃문화제 기간으로 정하고, 분수대 주변에서 자리 펴고 앉아서 학생들이 음식을 먹으며 노는 것이었다. 뭔가 무대 같은 것도 있어서, 저녁에 가면 재밌는 것을 볼 수 있으려나 싶었지만, 귀찮아서 그것까지 구경하진 못 했다. 난 그냥 조용히 살련다.
본관 오른쪽 편 오르막길도 올라본다. 평화의전당은 여름에 시원한 바람 맞으려고 가는 것 외에는 잘 오르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작정하고 왔으니 한 번 올라본다.
오르는 길에 중앙박물관 건물도 보인다. 이쪽에 예쁜 건물들이 모여 있다보니 외국인 관광객들이 사진 찍는다고 난리다. 특히 중앙박물관 쪽에 작은 계단은 기념 사진을 촬영하려고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도 많았다. 여기가 사진 포인트라고 가이드북 같은데 나온 것 아닌가 싶다.
이 일대에서 웨딩 촬영 하는 중국인들도 보였다. 관광지에서 중국인들이 결혼식 복장을 하고 사진 찍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진짜 신혼부부인 경우도 있지만, 그냥 결혼식 복장 갖춰 입고 기념 촬영 하는 경우도 많다. 한때 유행한 것인데 아직도 많이들 하더라.
평화의전당 오르막길. 이 길에서도 사진 찍는 관광객들이 많이 있다. 아니, 아무리봐도 역광인데 대체 뭘 어떻게 찍는걸까 싶었는데, 아마도 사진이 어떻게 나오는지보다 이런 관광지(?)에 와서 사진을 찍고 있다는 만족감이 우선이지 않을까 싶다.
여러가지 행사로 많이 쓰이는 평화의전당. 이곳은 사실 경희대 쪽에서 올라가는 것보다, 외대 쪽으로 올라가는게 더 가깝다. 화강석 조각이 돋보이는 중세 고딕양식의 이 건물은, 1976년 착공해서 1999년 개관한 문화 예술 공연장이다. 4500석 규모로 단일 공연장으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라고 한다. 가끔 성당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평화의전당 왼편 구석으로 돌아가보면 본관 뒷편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크게 볼 것이 있는 길은 아니지만, 조각상이 있는 다리에서 셀카나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약간 있다. 꽃이 많이 없어서 조금 아쉽지만, 잘 찍으면 나름 괜찮은 사진이 나올 수도 있는 곳이다.
이 뒷편에 있는 산이 천장산인데, 옛날에 중앙정보부, 안기부가 있던 곳이라 오랫동안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다. 62년부터 일반인 접근 금지였던 곳이, 2005년에 개방됐다.
하지만 지금도 경희대, 국립삼림과학원 등이 자리잡아 담장을 둘러치는 등 막힌 곳이 많다. 그래서 꼭대기 부근까지 갈 수 있는 산책로가 있기는 하지만, 여기저기 펜스가 있어서 제대로 된 산책을 할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런데 최근에 동대문구가 올해 4월부터 천장산 숲길 조성 공사를 시작해서, 11월에 개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문어린이도서관에서 경희대 평화의전당 뒷편을 거쳐서 산람과학원 내부로 통하는 코스로 연결된다고 한다. 2013년부터 시작했던 관계기관 협의가 이제서야 완료되어 착공을 하게 됐다.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 얕은 산이지만, 잘 개발하면 한예종에서 경희대, 홍릉수목원을 잇는 관광코스가 나오기 때문에 나름 기대를 하고 있다.
어쨌든 평화의전당 뒷길을 통해서 본관 뒷편으로 내려왔다. 이 길은 여기 학생들도 잘 안 다니는 길이고, 4년 내내 이 길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졸업생도 있을 정도인데, 관광객들은 정말 어떻게 귀신같이 다 알고 다니는지 참 신기하다. 물론 나도 그 관광객 속에 포함되겠지만.
다시 본관 앞쪽으로 나와서, 분수대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고 이제 학교를 빠져나온다. 운동장 쪽으로 가는 사람들도 꽤 있지만, 귀찮으니 다음 기회로 남겨두자. 사실 그쪽은 꽃놀이로 좋은 장소는 아니니까.
어쨌든 나름 이 정도면 경희대 벚꽃 구경은 잘 한 셈이다. 여기가 중국인 뿐만 아니라 아시아 관광객들이 은근히 많이 찾는 곳이라, 외국인 친구에게 이 코스를 소개해줘도 괜찮을 테다.
p.s.
* 본관 주변 좀 더 많은 사진: 봄날의 경희대, 은근히 꽃놀이 명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