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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 없는 서울, 노숙의 밤 - 충북 노숙여행의 서막
    국내여행/충청도 2010. 3. 8. 14:19





    <별 없는 서울의 밤에 관하여>



    여러 독자님들, 내 말 좀 들어보소.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말이 좋아 공주지, 따지고 보면 노숙자 아니오.

    나무 우거진 시골에서 잠을 자는 거나,
    빌딩 우거진 도시에서 잠을 자는 거나,
    나무 숲이냐, 빌딩 숲이냐 차이일 뿐,
    어찌됐든 둘 다 숲은 숲이지 않소.

    그래서 나도 지나가는 공주의 키스나 받고,
    잠에서 깨어 인간 좀 되어 보려 했소이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서울에는 공주가 없더이다.
    참으로 안스럽고, 슬픈 일이지 않소.



    혹자는 이렇게 말 할 것이오.
    공주가 있다 해도 그 꼬라지 하고 있는데 키스 하겠냐고.

    그건 이미 동화 속 이야기에서도 나오는 내용이오.

    제아무리 공주고, 미녀고 해도,
    숲 속에서 뒹굴뒹굴 잠만 자며 씻지도 않았는데 샤방샤방 빛 날 리가 있겠소.
    검댕이 묻고, 먼지도 앉고, 옷은 꼬질꼬질, 때는 더덕더덕,
    사람이 한 달만 씻지 않아도 어떤 꼴이 되는지 아실테요.

    그러니 그 입술에 키스하는 왕자가 더 대단하다, 이 말씀이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그런 이야기들에 나오는
    이 왕자라는 인물이 참 이상하오. 실명이 나오지 않는단 말이오.
    어쩌면 이 왕자라는 사람이 모두 동일인물이 아닌가 싶소.

    아마도 백설공주가 깨어나서 좋아라하고 따라갔더니,
    왕자의 성에는 이미 '잠잤던 숲속의 공주'가 있더라.
    그래서 왕자 따라가는 대목에서 어영부영 '행복하게 살았데요, 끝',
    이렇게 얼버무린 것 아닌가 싶소.

    다시 말하자면, 이 왕자는
    노숙녀를 수집하는 변태일 지도 모른단 말이오.

    그러니까 노숙자를 수집하는 공주가 있다면
    나도 어엿한 컬렉션으로 수집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능...



    그만하겠삼.
    이거, 내가 봐도 너무 아스트랄해서 감당하기 버거워... ㅡㅅㅡ;




    *
    <삼년이에 관하여>



    충북도청이라는 데서 연락 왔을 때,
    나는 지금 지방에 살고 있으니 다른 데서 합류하면 안 되겠냐고 물었더니,
    일언지하에 안 된다고 하더이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막차 타고 서울 올라가서 노숙하고 그랬는데,
    나중에 보니 몇몇 사람들이 청원 IC인가에서 합류하더이다.

    앗, 왜 저들은 청원 IC에서 타는거지?
    왜 나는 IC에서 타면 안 되는거지?
    아이씨... ;ㅁ;



    그래서 내게 연락했던 행정인턴 양에게 앙심을 품고,
    '내 이번 여행기는 3년 후에 올릴테다'라고 마음 먹었소만,
    생각해보니 아무리 내가 A형이라도 그건 너무 쪼잔하매,
    관대함을 위장하여 이제 여행기를 쓰기로 했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저 어두운 마음 구석 앙금으로,
    '여행기 3년 후 = 행정인턴 양' 해서
    이 분을 '삼년이'라고 이름붙이기로 한 것이오.

    여행기 쓰면서 이런 식으로 이름붙이는 사람이 또 나올지도 모르는데,
    저를 계속 지켜보신 분들이라면 다들 익숙하신 이 말 한마디를 남기겠소.
    "꼬우면 니가 만화 그리시든지~"



    아, 그렇다고 삼년이를 미워하는 건 아니오.

    그 태가 어여쁘고, 아리따워 가만히 있어도 빛이나매,
    행실은 어찌나 곱고 수려한지 티 나지 않는 일도 혼자 묵묵히 잘 하고,
    언행도 화려하지 않으나 수수하면서도
    제 할 말 못 할 말 가리면서도 똑똑하게 일을 처리하니,
    영특하기도 이루 말 할 것 없는 수려한 처자인지라,
    나이 맞는 주위 솔로 남정네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소.

    하오나 사람이 어찌 작은 티끌 하나 없이 완벽할 수 있겠소.
    삼년이도 사소한 결점이 하나 있으니, 정말 사소한 것인데,
    열 살 짜리 딸이 하나 있다는 것이오.

    넓은 아량과 이해심으로 포용할 수 있는 자는 관심가져 보시기 바라오.




    *
    <노숙에 관하여>



    노숙을 해 본 적 있소?

    노숙은 집 없는 자의 심벌이기도 하지만,
    여행자의 특권이기도 하고, 유목민의 일상이기도 하오.

    서울같은 대도시는 사실 노숙하기 좋은 곳은 아니오.
    하지만 단지 여행이라는 명목으로 세계 여러 도시에서
    이미 노숙을 한 적 있는 바,

    서울도 내게는 고향도 아니오, 이제 삶의 터전도 아니오,
    수많은 여행지 중 한 곳일 뿐이니,
    이제 거기서도 거리낌없이 여행자의 특권을 누릴 수 있게 되었소.



    혹자는 좀 더 편하게 휴식할 수 있는 방법도 있지 않느냐 하겠소만,
    단 한 시간 짧은 잠을 자기 위해 힐튼 호텔을 갈 수는 없지 않겠소.

    그렇다고 새벽부터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꾸벅꾸벅 졸면서
    노선을 빙빙 도는 것은 오히려 노숙보다 못한 짓 아니겠소.

    그래서 노숙은 택하였소만, 정착민 여러분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그 무언가가 있소.



    세상에 태어나 노숙 한 번 못 해보고 떠나는 자의 삶이란
    얼마나 무의미하고도 허탈하겠소.

    노숙은 밤샘이나 캠핑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오.

    세상 어느 곳도 받아줄 이 없다는 막막함과,
    내 몸 하나 따뜻하게 누일 곳 없다는 비애,
    그리고 피곤함과 경계심, 부끄러움 속에 자괴감 같은
    복잡한 감정들의 파도 속에 몸을 내맡기는 일이오.

    거기에 더하여 '돌아갈 곳 없다'라는 절망감까지 합세하면,
    비로소 쓰러질 듯 비참한 완벽한 노숙의 밤이 완성되는 것이오.



    그 어둡고 축축한 구렁텅이 속에서,
    '아아, 나도 저들처럼 집을 구해야지'하면 정착민인 것이오.

    그렇지않고, '아아, 이 세상 어느 곳 나의 집 아닌 곳이 없구나.
    오늘의 샹들리에는 오리온 자리로 해야지.'
    라는 식이면 진정한 유목민인 것이오.

    무엇이 옳다, 그르다 혹은 좋다, 나쁘다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정착민이 유목민이 되기는 한 순간이지만,
    유목민이 정착민이 되기는 삼 대가 지나도 불가능하다는 것이오.



    그러니 그대, 봄이면 봄꽃같은 아지랑이 너머 신기루가 보이고,
    여름이면 무지개 끝 닿아있는 수평선 너머로 눈길이 가며,
    가을에는 먼 하늘 바람의 냄새에 코끝이 시려오고,
    겨울에는 얼어붙은 세상 위를 미끄러지듯 달려보고픈 그대,

    망설임을 접고 한 번 즘 죽지 않을만 한 곳에서 노숙을 해 보시오.

    대자연이 얼마나 화려하고 장엄하게 펼쳐져 있는지,
    가이아가 얼마나 자상하고 상냥하게 보살펴주는지,
    나 자신은 또 얼마나 강인하고도 부드러운지,
    그 속에서 분명 깨달음이 오는 날이 있을 테요.

    그러니 그대, 지금 당장이라도 좋으니 길을 떠나도록 하시오.

    망설이는 사이에도 한없이 시간은 흘러가고 있으니,
    다 지나고 나서 이럴려고 했는데, 저럴려고 햇는데 해봤자,
    그 때 가서는 그저 망령난 노인의 한숨밖에 아무것도 아니오.

    그러니 그대, 길을 떠나시오.

    그리고 떠날 때,
    집은 내게 주시오.
    명의이전은 하지 않아도 좋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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