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2주 정도 지난 어느날, 국가브랜드위원회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을 불러서 함께 떡국을 나눠 먹고, 판소리 공연을 보는 등의 행사가 있었다. 이 행사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이전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외국인 유학생들과 함께한 떡국 한 그릇의 정'.

판소리 공연을 끝으로 공식 행사가 막을 내렸고, 대부분은 각자 갈 길 가기 바빴다. 하지만 그 후에도 차마 아쉬움에 자리를 뜨지 못하고 한쪽 구석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학생들이 있길래, 그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라고 써야 우연성의 묘미도 있고, 뭔가 있어 보이는 이야기 구도가 되겠지만, 사실은 내가 말 걸어서 집에 못 가게 잡고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귀한 시간 내어주고 인터뷰에 응해 준 두 학생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반짝반짝 초롱초롱 중국인과 우즈벡인


이 날 인터뷰 한 두 학생은 단연 이 자리에서 반짝반짝 초롱초롱 빛나던 두 미녀였다.

사진 왼쪽의 학생은 중국에서 온 Xu Chao. 3분에 걸친 이름 발음법을 배웠지만, 집에 돌아오자마자 또 까먹어버려서 로마자 표기법으로 그냥 표기한다. 잠시나마 함께 한 사람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 못 한다는 건 참 큰 결례이긴 한데, 어쩌겠나, 제대로 발음 못 하는 이름을 얼렁뚱땅 적는 것 보다는 이실직고 하는 게 낫지 않은가.

Xu Chao는 한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고, 본국에 있는 집은 하얼빈보다 더 북쪽 지역에 있다고 스스로 소개했다. 묻지 않아도 스스로 소개하는 학생인 걸 보면, 참 착한 학생임에 틀림없다.



오른쪽 학생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임 엘레나'. 이 학생은 자기 이름을 제대로 받아 적는지 어쩌는지 직접 확인, 감독 해 주었기에 한글로 제대로 표기할 수 있다.

엘레나는 고려인 3세다. 하지만 한국어를 전혀 몰랐고, 집에서도 한국어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 한국어를 배우러 왔다고. 그녀는 모국어는 러시아어고, 본국에서는 영어를 전공했고, 한국에서는 한국어를 전공하고 있는 언어 귀재다. Xu Chao와 친구로 지내면서 중국어도 배우고 싶어졌다면서, 수많은 언어에 욕심을 내고 있는 중이다.

우즈베키스탄은 먼 나라인데, 집에 갈 때 돈 많이 들어서 어쩌냐고 지나가는 말로 슬쩍 던졌더니, 한국에 5년 동안 있으면서 단 한 번도 집에 못 가봤다고 한다. 시간보다는 비용 문제로 어쩔 수 없었다는 것. 속으로야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기운 빠진 내색 없이 씩씩하게 웃으며 답 해 주는 모습을 보며 좀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을 알리는 해외 블로거


이들은 현재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는 친구인데, 예전에 국가브랜드위원회 해외블로거로 활동하던 친구를 통해 이런 블로그 활동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신청을 하고 선발되어 현재, 국가브랜드위원회의 4기 해외블로거 기자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

WSK(World Students in Korea)라는 명칭으로 진행중인 국가브랜드위원회의 이 프로그램은, 한국에 유학중인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모집, 선발한다. 이 학생들은 블로그를 통해서 자국을 비롯한 전 세계인에게 한국의 소식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가끔씩 국가브랜드위원회에서 행사를 열어서 이들을 부르기도 하는데, 그것보다는 한국에서 생활하며 일상에서 느낀 것과 겪은 것들을 블로그에 올리는 것이 더 많다고 한다.



Xu Chao와 엘레나도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특별한 행사보다는, 살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한국의 문화와 생활, 노래, 음식 등에 대해 포스팅을 한다. 기사를 위해 일부러 지어낸 이야기보다는 이 쪽 편이 훨씬 사람들에게 와 닿을 것 같기는 하다.

Xu Chao는 중국어와 영어로 블로깅을 하고 있고, 엘레나는 영어로 블로깅을 하고 있다. 둘 다 국가브랜드위원회에서 활동하기 전부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다는데, 둘 다 영어 포스팅을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어로 블로깅을 하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표현도 잘 안 돼서 어렵지 않냐는 질문에, 그래도 한국 생활을 알리고 자신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면 영어로 블로깅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나보고도, 왜 영어로 블로깅을 하지 않냐면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한국을 알리고 싶지 않냐고 따끔한 한 마디를 해 주었다. 뭐, 나도 생각은 있는데, 생각은 있었고, 하려고 마음도 먹고 있는데, 주제를 돌리자.



Xu Chao의 블로그(http://hi.baidu.com/icyia)




다른 외국인들을 위한 길잡이가 되어


이들은 오랜 한국생활 경험과 함께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한국에 있거나, 한국어에 관심 있는 외국인들에게 조언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즘에서 밝히지만, 이들과의 인터뷰는 러시아어나 중국어 혹은 영어로 하지 않았다.

Xu Chao는 작년에 한국어능력시험 5급을 딴 실력이다. 한국어능력시험은 1급부터 6급까지 있는데, 6급이 가장 높은 등급이다. 어쩌면 그녀는 우리보다 한국어 문법을 더 잘 알지도 모른다. 엘레나는 미처 못 물어봤는데, 그에 못지 않은 실력이다. 그냥 길 가다가 얼핏 들으면 한국인이라고 착각할 만큼 둘의 한국어 실력은 뛰어나다. 그래서 인터뷰도 전혀 막힘 없이 한국어로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런만큼 그녀들은 다른 외국인들에게 한국 생활과 한국어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 주는 편이라 한다. 그러면서 이들이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배울 때 꼭 지켜야 할 사항들을 다섯 가지 꼽아 주었다. 이것은 아마도 영어를 배우려고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거의 다 적용되지 않을까 싶어서 소개해 보겠다.





Xu Chao와 임 엘레나의, "한국어, 이렇게 배워라!"



1. 한국 친구를 사귀어라
외국인들, 특히 중국인들은 자신들과 같은 외국인들과 어울려 다니는 경향이 있다. 한국의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언어도 잘 통하지 않고 해서 그런 건데, 그럴수록 억지로라도 노력해서 한국인 친구를 사귀도록 해야 한다.

2. 한국 영화를 많이 봐라
자막을 넣고 보든, 빼고 보든, 일단 한국 영화를 많이 보면 한국어 듣기와 상황별 말하기가 늘게 돼 있다. 게다가 마음에 드는 영화를 본다면 재미도 있으니 일석이조.

3. 하루에 단어를 10개씩 꼭 외워라
하루 단어 10개는 그리 많은 양이 아니지만, 모이면 무시하지 못 할 양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이 원칙을 지킨다면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 준다.

4. 아르바이트를 해라
나는 한국어도 잘 못 하는데 누가 써 줄까라는 생각을 버리고, 과감하게 아르바이트를 시작해라.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상황에 처하다 보면, 못해도 생존 한국어는 크게 는다.

5. 자기 나라 친구를 만나지 마라
정말 친한 친구를 가끔 만나는 것 말고는 가급적 같은 나라 친구를 사귀지 않는 것이 좋다. 아무래도 같은 나라 사람과 어울리다 보면 자기 나라 말을 쓰기 때문이다. Xu Chao와 임 엘레나도 둘 다 외국인이긴 하지만, 국적이 다르고, 만나면 거의 한국어로 대화 한다.




아, 이 정도면 한국어 안 늘래야 안 늘 수가 없겠다. 어떤가, 비단 한국어 뿐만 아니라 영어나 다른 외국어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원칙들 아닌가.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로 한국에 와서, 단 4~5년 만에 한국사람과 막힘 없이 대화를 할 정도로 한국어를 연마한 사람들이 하는 말이니, 명심해서 새겨 들을 만 하다.


임 엘레나의 블로그(http://eyesinkorea.blogspot.com/)




한국에서 기분 나빴던 때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행사장이 텅 비어 있었다. 아직 해는 많이 남아 있었지만, 다들 나름 할 일이 있는데 시간을 너무 뺏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서둘러 인터뷰를 마무리 하려 했다. 마무리하면서, 그래도 외국인들과의 인터뷰인데 한국에 대한 이미지 그런 것을 좀 넣어줘야겠지 하면서 일부러 억지로 질문을 던졌다.

사실 내 스스로가 이런 질문 받기 싫어하기 때문에, 잘 묻지도 않는다. 남의 나라 가서, '우리나라 어때?'라는 질문을 받으면, 당연히 '좋다'라는 답 말고 할게 뭐가 있나. 뭐가 좋으냐, 왜 좋으냐, 어떤게 인상 깊냐 까지 나와버리면 정말 골치아프다. 내 느낌 니가 알아서 뭐 할 건데, 라고 딱 쏘아주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진다.

그래도 슬금슬금 웃으며 억지로 억지로 뭔가 답 해 줄 수 밖에 없는 외국인의 설움. 관광객이든 유학생이든, 그건 아마 마찬가지일 터. 외국인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을 때, 천편일률적인 답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그거다. 그래서 나는 그런 질문을 가급적 던지지 않으려 하고, 실제로도 별로 하지도 않는다.



뻔하지 뭐, 한국의 맛있는 음식은 김치나 불고기, 비빔밥 그런 것일 테고, 한국이 좋은 이유는 사람들이 친절하고 자연경관이 좋고, 역사와 문화가 오래되고 우수하고 블라블라. 그래서 이 학생들에게는 한국에서 기분 나빴던 일이 어떤 게 있냐 질문만 딱 하나 던졌다.

그랬더니 엘레나는 그런 것 없다 한다. 한국에서 즐거운 일만 있었고, 사람들도 다들 자기에게 잘 해 줬다고. 그래서 엘레나는 조금 더 생각하고 답 해 주세요, 하고 Xu Chao에게 답변을 요구했다. 엘레나가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 그녀는 뭔가 말 하지 않으면 억울해서 못 돌아가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Xu Chao가 말하는 한국에서 기분 나빴던 점은 이런 거였다. 간혹 사람들이 "중국은 가난해서 이런 거 없지? 한국이 좋지?" 이런 말 할 때, 그리고 "중국 음식은 기름기 많고 느끼하지? 그런걸 어떻게 맨날 먹는지 모르겠다" 이런 말 할 때가 기분이 나쁘다고 한다.

중국도 잘 사는 사람은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은 못 살며, 한국에 있는 제품들도 중국에서 만든 물건들이 많은데 왜 그런 식으로 말 하냐고. 또 중국은 땅이 넓어서 지역마다 음식이 다른데, 자기가 사는 지역은 기름기 있는 음식을 즐기지 않는다는 한다. 그래서 다짜고짜 그런 식으로 말 하는 사람을 만나면 참 기분이 상한다고.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그럴 때마다 장황한 설명과 함께,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에휴, 내 맞아요'하고 넘어간다고 한다. 그러면서 진짜로 한숨을 내쉬는 그녀. 표정을 보니 한두번 당한 게 아닌 듯 하다. 어쩌겠니, 그냥 그런 사람도 있겠거니 하고 넘어가렴, 말고는 해 줄 말이 없었다.



옆에서 그걸 듣고 있던 엘레나. 다시 엘레나에게 한국에서 기분 나빴던 일에 대해 물었다. 그랬더니 자기는 추호도 그런 일이 없다 한다. 아 이거 무슨 내가 취조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 글로 안 쓸 테니까 그냥 터놓고 말 해 봐라 했다. 그래도 그런 것 전혀 없었다 한다.

이 쯤 되니 참 놀라웠다. 어찌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5년을 살면서 기분 나쁜 일이 없을 수 있겠는가. 기분 나쁜 일이 없었다면 그건, 가식이거나 상당히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거나 둘 중 하나 아닐까. 인터뷰 내내 웃는 얼굴로 진지하게 이야기 나누던 엘레나의 표정을 보면, 아마 후자가 맞을 테다.
 
참으로 놀랍다. 5년 동안 고향 한 번도 못 가고, 한국이라는 타향살이를 그렇게 꾸려 왔으면서도,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분명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오늘도 자리 텅텅 비워 둔 채 출발하는 비행기에 실어 고향 한 번 보내 주고 싶지만, 능력이 없구나. 미안하면서고 고마운,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느끼게 해 준 대답이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인터뷰 하면서 사진 찍은 것이 딱 두 장 뿐인데, 하나는 눈 감은 사진이라 쓸 수가 없어서 사진 달랑 한 장에 글을 다 쓰느라 참 재미없는 글이 돼 버렸다. 인터뷰에 응해준 사람의 노고를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다.

게다가 45도 각도로 얼굴 갸름하게 나오게 잘 찍어 달라고 했지만, 그런거 난 모른다고 아무렇게나 찍어버린 것이 또 이상한 사진이 나와버려서 미안한 마음이 두 배다.


어쨌거나 이 날 인터뷰에 응해준 두 학생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올해 졸업반이라는데, 아무쪼록 생각하는 일들 잘 이루길 바란다. 엘레나는 올해 꼭 고향에 가 보게 되기를 바라고.

아울러 이런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일방적인 이야기만 들려줄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그들의 고향 이야기를 듣는 기회를 개인적으로라도 마련해서 글을 써 보았으면 싶다.  



Posted by 빈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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