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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직도 홍대앞에 예술이 있나요,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2011
    전시 공연 2011. 8. 21. 21:38

    홍대입구로 향하는 지하철 객실 안에는 알록달록 예쁜 옷들과 특이한 스타일로 한껏 멋을 낸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른바 클럽의상. 대충 눈으로 짐작해도 홍대입구 역에서 내릴 지 안 내릴 지 가늠할 수 있을 정도다. 예상대로 객실 내 승객들 중 절반 이상이 내렸다. 

    늘 사람이 많지만 공사 할 엄두도 못 내는 좁은 홍대입구 9번 출구는,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들로 꽉꽉 들어찼다. 한 발 옮기기도 어려운 상황에, 약속시간에 늦었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이 행렬의 뒷쪽에 또 붙는다. 분명 출구 쪽에는 연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둘러서서 행인들의 출입을 더욱 더디게 만들고 있으리라.

    그나마 이 동네에 익숙한 사람들은 바로 옆 상가쪽 통로를 통해 우회해서 올라간다. 그쪽은 그래도 9번 출구 보다는 상태가 양호하다.
    지상으로 올라가니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와글와글 서로 어디론가 떼지어 몰려 다니고 있다.

    주말 저녁의 홍대입구 일대는 정말 사람으로 미어 터져서 갈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다. 그리 멀지도 않은 동네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주말 저녁 시간을 택하게 된 자신을 원망해도 이미 늦었다. 일상이라는 전쟁을 피해 떠나온 피난민들 처럼 무리지어 이동하는 군중들에 떠밀려 갈 수 밖에.

     











    나름 주목하고 보고 있던 예술가들은 어느 때부터 하나 둘 홍대 앞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홍대 앞에서 가난한 예술가들이 작업실 구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기사가 나왔고, 실험적인 인디밴드들이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도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소식도 들렸다.

    이미 한적하게 거닐며 감상이라는 행위를 하기는 불가능하게 돼 버린 동네. 이 거리에서 인디 예술을 한다는 것이 이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문스럽지만, 어떻게 보면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며 슬쩍 둘러볼 수도 있으니 좋을 수도 있다고 위안해야 할까. 어쨌든 이 변해버린 동네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프린지(fringe)는 '가장자리, 외변, 과격파 그룹, 주류 일탈파'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다. 그래서 프린지 페스티벌은 주류라고 할 수 없는, 다분히 실험적이고도 좀 생소한 듯 한 예술들이 펼쳐지는 축제다. 길거리에서 펼쳐지는 무용과 퍼포먼스, 벽화 전시 등을 비롯해서, 소극장이나 갤러리에서도 각종 공연과 전시가 펼쳐진다.

    딱히 예술에 관심이 있다거나 하지 않다면 그저 산책삼아 나가서 길거리에서 펼쳐지는 것들만 보고 와도 괜찮은 축제다. 뭔가 신기하고 이상한(?) 것들도 간혹 있기 때문에 어떤 아이디어나 영감을 얻을 수도 있고. 정 아니라면 술 먹으러 가다가 잠시 앉아 쉬엄쉬엄 예술가라는 사람들의 이상한 짓(?)들을 볼 수도 있다.

    어쨌든 생활이라기 보다는 철저히 상업화 된 상권지구 내에서 펼쳐지는 실험적인 예술들이라, 일상에서 볼 수 없었던 이질감이나 특이한 느낌도 느껴볼 수 있을 테다. 다만, 무용이나 퍼포먼스 같은 것은 항상 펼쳐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표를 보고 시간을 맞춰 갈 필요가 있다.












    관광안내소 바로 옆에는 프린지 부스가 설치되어 있어서, 각종 공연 시간표를 볼 수 있고, 티켓도 바로 구입할 수 있다. 그 거리로 쭉 걸어가다보면, 시간이 맞는다면 여러가지 길거리 공연들을 볼 수 있다.

    마침 그 옆쪽에서 펼쳐지고 있는 현대무용을 한참 들여다봤지만, 역시나 그들의 몸동작은 해석할 수 없는 상형문자를 닮았다.
    내가 예술을 보고 있는 건지, 그들의 미모를 보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 때 쯤, 진지하게 보고 있는 다른 일군의 관객들 사이로 조용히 빠져나왔다. 

    가리온 무용단이라 했던가, 물 한 잔을 위한 격렬한 몸부림은 마치 사막의 전사들 같았고, 이 거리에 펑펑 넘쳐흘러 진동하는 술 냄새에 휘감겨, 그 절실함이 알 듯 모를 듯 느껴지기도 했지만, 난 이미 싫었다, 그 장소가. 물이 없으면 술을 마시면 되지, 마리 앙투와네트라면 그렇게 말 했을 테니까.









    전시벽에는 이상하게도 프린지 페스티벌이 시작된 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하얀 빈 벽이 많이 남아 있었다. 다른 전시를 위해 벽을 비워 준 건지, 참가자가 별로 없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하얀 밤에 휘청이는 사람들 속에서 한 예술가는 주위 아랑곳 없이 붓질을 하고 있었다. 도저히 찬찬히 감상 하기도 힘든 그 공간에서 어쩜 저리 초연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

    그 옆쪽 작은 공원에서는 곧 나올 인디밴드의 공연을 앞두고 무대 준비가 한창이었다. 아직 한 삼십 분 정도 남은 상태였지만, 이미 좋은 자리들은 일찍 온 사람들이 다 자리잡은 상태. 원래 계획했던 대로라면, 여기 도착할 때 쯤엔 밴드의 공연이 시작된 상태여야 했는데, 일찌감치 발길을 여기저기 옮긴 덕에 너무 빨리 움직이고 있었다.

    남들은 술과 돈을 소비하러 가는 홍대입구에, 나는 구경을 하면서 시간을 소비하자 마음 먹고 간 거였지만, 그것도 그리 녹녹치 않았다.
     


    홍대 정문 바로 옆쪽에, 어린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어린이 놀이터' 안에는 아직 어떤 인디밴드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둘러서서 공연을 구경하고 있어서, 공연자의 마이크 줄조차 볼 수 없는 상황.

    슬금슬금 돌다가 프린지 페스티벌의 메카라 할 수 있는 '서교예술실험센터'에 갔더니, 마침 프린지 페스티벌 후원의 밤이 열리고 있었다. 원래는 여러가지 전시 공연이 열리기도 하고, 누구나 와서 아무거나(?) 할 수 있도록 열린 판을 깔아 놓기도 한 곳이다. 이날은 특별한 날이었지만, 다른 날에 찾아가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짧은 프린지 구경을 마치고 전철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이 지역을 벗어난다는 기쁨으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아아,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아무리 시간이 나지 않는다 해도, 주말 저녁에 '예술'을 보러 홍대입구 일대를 찾아가는 건 좀 아니었다. 저기 길거리를 꽉꽉 메운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다'라고 답 해 주고 있지 않은가. 역시 나같은 군중기피증 환자는 이 동네를 평일 낮에 찾아가야 한다. 평일 낮에, 비바람까지 몰아치면 더욱 좋고.


    하지만, 하지만 이제 이른바 홍대예술의 위기는 주말 저녁만의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 이어폰을 귀에 꽂고, 하의실종 패션의 가벼운 발걸음으로 클럽을 찾아가는 저 어린 소녀가 인디밴드를 살려 줄까, 아니면 알록달록 예쁜 그림 그려진 커피 컵을 손에 쥐고 가는 저 사람들이 미술가들의 작업을 꼬옥 쥐어 줄까, 아니면 클럽 안에서의 흥겨움을 미치 잊지 못하고 밖으로 나온 저 외국인들의 춤사위가 행위예술을 춤추게 해 줄까.



    지역 공동체 입장에서 예술이 돈이 되고, 예술의 거리가 집값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본 지자체들은 앞다투어 예술가 지원 프로젝트들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그들 나름의 엄격한 심사를 거친 예술가들만 지원하고 입주하는 형태.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예술계도 부익부 빈익빈. 최소한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예술가들 만이라도 다 받아주는, 그런 예술가 지원 프로젝트가 있다면, 다 쓰러져가는 지자체라도 제 2의 홍대앞을 꿈 꿔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제 홍대앞은 행사가 펼쳐지는 곳으로 상징적 의미로 물러나고, 실질적인 예술가들의 활동장소는 다른 곳이 되어야 할 때가 온 게 아닌가 싶다. 여기저기 써붙여 놓은 프린지 페스티벌이 무언지 관심도 없는 사람들과, 그와 함께 같은 시기에 열리고 있는 이런저런 행사들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에게, 더 무엇을 바랄까. 지하철 안으로 통하는 출입구에 새겨진 축제 알림 글귀가 무척이나 쓸쓸하게 느껴지는 휴일 저녁이었다.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2011
    2011. 8. 11 ~ 8. 27 (토)
    http://www.seoulfringefestiv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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