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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에서 길을 묻다 - 인천 선재도, 측도, 목섬
    취재파일 2011. 11. 16. 12:57


    “저 길은 들어가라고 있는 길일까, 나가라고 있는 길일까?”

    지구의 마지막 날처럼, 마치 온 세상이 불길에 휩싸인 것처럼, 주위를 맴도는 한 무리 바닷새와 함께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시선을 흩트려 정신이 혼미할 때, 영원히 끝나지 않는 어둠 속에서 헤어나오기를 거부하는 저 깊은 바다의 비탄에 잠긴 인어공주처럼, 선글라스 너머로 세상을 응시하던 당신은 그렇게 말했다. 대체 저 섬은, 어쩌자고 이런 곳에 있는 거냐고. 모든 걸 체념하고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처럼, 어떻게 길이 저렇게 나 있는 거냐고.






    외로웠을 테지. 차라리 저 넓은 태평양 한 가운데 홀로 떠 있는 섬이라면 애초에 그리운 것도, 외로운 것도, 그 어떤 추억도 기억도 간직하지 않은 채, 가진 그 모두를 깊은 바다 밑에 내려놓고 조용히 쉴 수 있었을 테지만, 그 바다 변두리에 어중간하게 떠 있어서 다가갈 수도, 그렇다고 더 멀리 떨어질 수도 없는 저 섬은 분명, 외로웠을 테지.

    아니야 어쩌면 육지가 외로웠을 지도 몰라. 그 넓은 세상을 홀로 모두 감당하며 지탱하기가 너무나 버거웠을지도 몰라. 하루하루 바다를 바라는 마음이 차츰차츰 가지를 뻗다가, 마침내 어느 날 저 작은 섬에 가 닿았는지도 몰라. 어쩌면 육지도 덩치 큰 섬에 불과하니까. 제아무리 크고 힘 센 존재라도 홀로 꿋꿋하게 오랜 세월 버티기엔 세상이 너무나 너르고 거치니까.




    우리의 마지막 날처럼, 마치 이 순간이 끝나면 어디론가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저 푸른 나무 사이를 스쳐가는 바람에 깃든 이별의 쓸쓸함에 가슴이 먹먹해질 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지친 철새의 가냘픈 날갯짓처럼, 더 이상 아무런 미련 없이 나무를 등지고 떨어지는 푸른 잎사귀처럼, 바다와 섬을 응시하던 당신을 그렇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뒤돌아 저만치 앞서서 걸어나갔다. 곧 물이 들어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어 사라져버릴 것은 비단 바닷길뿐만 아니라 섬도 함께라며, 당신은 그렇게 홀로 외로이 저 먼 하늘 아래 하나의 섬이 되었다.





    선재도에서 길을 보았다. 육지에 가까운 대부도와 바다에 가까운 영흥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작은 섬 선재도.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로 휑하니 달려 스쳐 지나가는 그 작은 섬 주위에는 또 다른 작은 섬들이 딸려 있었다.

    파도의 손길이 한 땀 한 땀 수를 놓아 오롯하게 뭉쳐진 듯한 작고 동그란 목섬, 그리고 선재도와 이어진 하나의 섬이라고 생각될 만큼 자연스레 이어져 분위기도 비슷했던 측도. 둘 다 물이 빠지면 모습을 드러내는 작은 바다생물처럼, 선재도와 이어진 바닷길을 세상 밖에 내놓았다.


     




    주위는 모두 시커먼 갯벌. 흐린 안개 속 시커먼 양복의 사람들 속에서 살포시 빛나는 여인의 목덜미처럼, 섬과 섬을 이어주는 바닷길만 달빛 아래 찬란하게 빛나는 갈치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목섬은 작은 무인도였지만, 측도는 작은 섬 안에 즐비한 펜션들을 보니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찾는 듯 했다. 물이 들어오면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으니까, 회사나 단체에서 그리고 멋 모르고 따라오는 애인을 잡아놓기 위한 곳으로 좋겠군, 하며 물 빠진 길을 걷다가 문득 당신이 생각났다.





    스스로가 아무것도 생존할 수 없는 사막의 무인도 같다던 당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너무나 넓고 황량한 바다가 있어 아무도 누구를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다던 당신,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는 고래처럼 그렇게 시간을 유영하고 싶다던 당신, 그래서 공간을 떠다니며 흔적을 지우는 천공의 섬처럼 어느 날 홀연히 무지개가 피어나는 서쪽 언덕으로 떠나버린 당신.


     




    우리의 노래는 너무나 짧았고, 목청 높여 부르기엔 너무나 서투른 솜씨였으며, 함께 하기엔 너무나 엉성한 악보였다. 서로 맞닿아 떨어지지 않고자 했던 저 섬들 사이로 난 길은, 운명도 아니고, 우연도 아니고, 단지 거친 파도에도 바람에도 맞잡은 손 놓지 않고자 했던 것뿐일 텐데. 좀 더 노력할 순 없었나, 좀 더 이해할 순 없었나, 좀 더 고쳐볼 순 없었나 후회해보지만, 이제 그마저도 희미해진 석양 속의 수풀처럼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세계로 다가갈 수 없다.


     




    하지만 이제 나는 대답할 수 있다. 오래 전 당신의 질문에 고개만 갸웃거리다가, 알 수 없는 이야기라며 귓등으로 흘렸던 당신의 물음에 정성껏 귀 기울여 두 손 내밀 수 있을 듯 하다. 차마 그마저도 또 다른 착각이라면, 아직 고개를 숙이지 못 한 벼처럼 무르익지 못한 시간의 과실을 좀 더 가꾸어야겠지. 하지만 기다릴 수 있다, 별도 달도 없는 깊은 밤에 홀로 외로이 꿈꾸며 다시 길이 이어지길 뜬 눈으로 밤 새 기다리는 저 작은 섬처럼, 당신의 세상에 가 닿기를 기원하며 남은 시간 외롭지만 달콤하게 되뇔 수 있다.

    “저 길은 다시 돌아오라는 길이야, 어느 하늘 아래서라도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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