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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떠나는 사람을 위하여 - 월미도 월미공원, 한국 이민사 박물관, 월미산 전망대
    취재파일 2011. 12. 9. 03:55

    월미도는 바닷가로 쭉 이어진 문화의 거리를 걸으며 카페촌과 놀이동산, 그리고 예쁘게 단장한 길 그 자체를 즐기기 좋지만, 바닷가 쪽은 역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만큼 늘 북적이며 소란스러워서, 그런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별 감흥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한적하고 조용한 곳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놀이동산 뒷쪽으로 보이는 작은 동산 높이의 월미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월미공원은 산책을 겸한 휴식 공간으로 좋은 곳이다.

    월미공원은 그 자체가 아름다운 공원으로 충분히 즐길만 한 곳이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정원들을 축소해서 만들어 놓은 '월미전통공원', 월미산 꼭대기에서 인천항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 그리고 우리나라 이민의 역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한국 이민사 박물관' 등이 있다.

     











    한국 이민사 박물관


    월미도 남서쪽 부분, 월미산을 등지고 조촐하게 위치해 있는 '한국 이민사 박물관'은, 마치 이민이라는 글자에서 느껴지는 다소 쓸쓸한 이미지처럼 외로이 서 있었다. 물론 깨끗한 건물 외관에 맑은 하늘이 비춰서 어두운 느낌은 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바람막이 하나 없는 산 아래 작은 공간이 마치 이제서야 잠을 깬 선한 눈동자의 짐승처럼 나른해 보였다.

    이 박물관은 2003년에 미주 이민 100주년을 맞아 인천시민들과 해외이민자들이 뜻을 모아서, 2008년에 개관한 이민사를 주제로 한 테마 박물관이다. 그 이름에서 이미 누구나 짐작할 수 있겠지만, 처음 이민이 시작될 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이민에 관한 역사들을 수집하고 정리해서 전시하는 공간이다.

    다시 덧붙여 말 할 필요도 없이,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주제를 가진 곳이기 때문에, 다소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흥미롭게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첫 이민은 1902년 12월 22일 날 이루어졌다. 서구 열강의 이권 개입 경쟁으로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94), 러일전쟁(1904) 등의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고, 그와 함께 가뭄까지 계속됐다. 이런 와중에 일제는 조선에서 쌀과 곡물을 대량으로 반출해 가서, 조선은 혼란과 굶주림의 연속이었다. 

    그런 불안한 사회적 상황과 빈곤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하와이로 이민이 이루어졌는데, 마침 그 때 하와이에서는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 할 인력이 필요할 때였다. 그래서 1902년, 121명의 이민단이 배에 올라 일단 나가사키 항으로 갔고, 신체검사에서 합격한 102명이 미국 태평양 횡단 기선 갤릭호(S.S Gaelic)에 탑승했다. 이들이 최종적으로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한 것은 1903년 1월 13일이라 한다.

    그 이후 1905년까지 5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하와이로 이민을 갔는데, 1905년에는 또 1천여 명의 사람들이 멕시코로도 이민을 갔다. 이들은 주로 농장에서 힘든 일을 하며 살았고, 특히 하와이로 이민 간 사람들은 여자가 모자라서 사진만 보고 결혼을 하는 '사진 결혼'으로 신부를 데려가기도 했다 한다. 그리고 그나마도 1905년에 조선총독부가 조선에서 업무를 개시하면서부터, 조선인의 해외 이민은 뚝 끊기고 만다.

















    그 옛날 먹고 살기 위해서 조국을 등지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의 고된 삶의 단편들을 보고 있자니, 얼마 전에 봤던 '최종병기 활'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병자호란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청나라 군사들에게 포로로 끌려가는 누이를 구하기 위해 적을 쫓아 들어가는 한 민초의 이야기다.

    나라는 외세에 대비하지 못했고, 왕은 힘이 없고, 신하들을 제각기 자기 살 길 찾아서 떠나버린 후, 남은 백성들만 외국 군대를 맞아서 죽고, 끌려가고, 노리개가 되었다. 50만이나 되는 포로들이 끌려 갔지만 국가적으로 대책은 세우지 못했고, 각자 알아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만 제각기 돌아왔다. 그런 이야기를 영화적 이야기를 덧붙여 다소 과장해서 표현했지만, 영화 속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어느 정도 녹아 있었다.

    이 박물관에 전시된 이민들도 어찌 보면 그와 비슷하다. 애초에 열강들에게 나라가 시달리지 않았다면, 굳건하게 잘 버티며 서서히 개방을 하든지 했더라면 어땠을까. 굳이 그 많은 사람들이 이 땅을 등지고 그 먼 미지의 세계로 갈 필요 있었을까. 그러면서도 빼앗긴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십시일반 돈을 모아 보내기도 했다는 그들의 정성을 보니, 십여 년 전에 있었던 금 모으기 운동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참 얄궂으면서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국가가 나에게 무엇을 해 줄지 바라지 말고, 내가 국가에게 무엇을 할지 생각하라'는 서양 어떤 사람의 말이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게 새삼 크게 와 닿지 않는다. 이미 국가가 국민을 수시로 무참히 버렸어도, 국민이 국가를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 해 주었던 역사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이제 포기할 만도 한데 그렇지 않은 것은, 집착일까 사랑일까. 

    지금도 좋지 않은 상황들 때문에 내 주위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생각하고 있고, 알아보고 있고, 또 일부는 이미 떠나기도 했다. 한 때 내가 오랜 여행을 하며, 오래전에 나보다도 슬프게 이 길을 걸었던 사람 있겠지 하며 눈물을 삼켰던 것 처럼, 그들 또한 그렇게 하루하루 견뎌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국내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더 깊이 알고 싶다며 수시로 연락해 오는 지인들을 보면서, 그곳에서 생활이나 잘 꾸려가라 톡 쏘기도 했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그럴까, 아니면 우리나라 사람들만 그럴까.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참 이상하면서도 신기하면서도 알 듯 말 듯한 일이다. 어쩌면 이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박물관을 둘러보면, 개인의 사정과 맞물린 깊은 생각을 해 볼 수 있지도 않을까 싶다. 전시된 자료는 다소 적은 편이지만 아직도 여전히 진행중인 역사라서, 보는 이에게 던져 주는 질문들이 참 많은 곳이다.

























    월미산 전망대

    이민사 박물관에서 받은 화두로 깊은 고민을 가지게 되었다면 산책을 해보자. 생각을 굴러가게 만들려면 몸을 굴리는 게 좋지만, 다 큰 마당에 땅바닥에 구를 수는 없는 일. 그러니까 밖에 나가 걸어보자, 푸른 하늘 박차고. 굳이 깊은 생각을 떠안지 않았다 해도, 실내에서 관람하느라 갑갑해진 머리는 맑은 공기를 원할 테니, 사람 많고 자동차 지나가는 큰 길은 뒤로하고, 바로 뒤에 보이는 산으로 올라보자.

    월미산은 딱히 등산이라 부르기에 민망할 정도의 높이의 언덕에 가깝고, 길 또한 잘 닦여 있어서 쉬엄쉬엄 올라가면 그리 힘들 것도 없다. 다만 햇볕이 쨍쨍 내리쬔다든지, 비가 철철 흘러 넘친다든지 하면 좀 힘 들 수도 있지만, 그 때는 또 그 나름대로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정상 바로 옆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한 바퀴 빙 둘러 보이는 경치가 온 몸을 시원하게 탁 틔게 만들기 때문이다.

























    월미산 전망대를 처음 접하면 그 이상한 생김새에 일단 고개를 갸웃하게 되고, 계단을 따라 한 층 올라가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의외로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약간 놀라게 된다. 뒤에 놓인 산과 인천항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고, 또 항구를 따라 쭉 이동해보면 넓은 바다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사실 여기서도 주변을 내려다보며, 개항기와 열강의 이권 다툼, 이민과 굴복, 그리고 전쟁 등, 이 주변에서 일어났던 여러가지 사건들을 생각해보면 골치가 아파온다. 특히 아까 봤던 박물관의 생각들을 끌어 올려 저 앞바다를 지났을 이민자들의 모습들을 상상해보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라면 아릿한 서글픔에 울컥할 수도 있겠다.

    일단은 날려 보내자, 거세게 불어오는 저 서풍에. 어쨌든 삶은 계속 되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끊임없는 고뇌는 살아있다는 증거고, 내일은 오늘의 심연 위에 집을 짓겠지. 이제 저 떠들썩한 거리로 내려가서 길에서든, 근사한 식당에서든, 무엇으로든 배를 채워 보자. 어쩌면 삶은 한 땀 한 땀 고뇌를 찔러 누비는 한 편의 자수(刺繡) 같은 것. 오늘 하루도 참 열심히 살았다, 다시 내려가 내일을 얻자.



    참고자료
    한국 이민사 박물관: http://mkeh.incheo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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