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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스텔라, 머나먼 우주를 돌아 결국은 소통에 관한 이야기 (스포일러 주의)
    잡다구리 2014. 11. 8. 19:12
    (딱히 영화 내용을 많이 알려주지는 않지만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개봉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interstellar)'. 가장 최근의 블랙홀 모형을 가장 잘 표현한 영화라고 일컬어지면서, 천문학을 비롯한 과학 쪽으로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크게 열광하고 있다.




    인터스텔라를 보고나서 딱 드는 생각은, '한 편의 우주 다큐멘터리(특히 블랙홀 편) 같다'는 거였다. 아마도 웜홀이나 블랙홀을 비롯한 우주의 여러 장면들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사람들도 꽤 되리라. 하지만 그에 비해 스토리 라인은 좀 진부한 면이 있다. 아니 그보다는 여배우가 벗질 않아서 흥미가 떨어지는 면이 있다고 해야 더 솔직한 표현일까(?).

    어쨌든 인터스텔라는 '우주'라는 관점에서 보면 볼 거 많고 흥미로운 영화이지만, '영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좀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래서 이미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라지고 있는 중이고.

    어쨌든 이 영화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은 이미 많은 글들이 하고 있고, 또 제대로 하려면 너무 방대해서 괜히 그런 작업을 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니까, 일단 여기선 그 부분은 제외하고 스토리만 한 번 들여다보자.





    스토리만 보자면 인터스텔라는 '소통'에 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이걸 감독이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극중 인물들이 아주 단순한 성격을 내보인다. 이건 스토리라인을 단순하게 만들면서도 주제를 확실히 전달할 수 있다. 극중 인물들의 성격을 대강 파악해보자면 이렇다.


    쿠퍼 (주인공): 초반에 딸의 말을 다 무시한다. 타인(자식들)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자신'이 더욱 중요하다(중요했다). 자신의 꿈과 희망, 의지와 내면 등을 중시하는 유형. 조금 더 깊이 대화를 하고 알아봤다면 플랜A와 플랜B의 현실 가능성을 좀 더 현실적으로 파악할 수도 있었을 텐데, 오랜 꿈과 희망이 실현될 기회라는 데 '꽂혀서' 행동했다고도 볼 수 있다. 자신이 중요해서 주변과의 소통을 제대로 하지 않는 유형이랄까.

    브랜드 박사: (자신이 보기에)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계획인 플랜A. 실제로 이루려는 목적은 플랜 B.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속여서라도 이루려는 사람. 강요와 권위의 유형이라 볼 수 있겠다. 

    톰 (아들): 과거의 기억에 얽매여 현재의 사람들과의 소통을 등한시하는 캐릭터. 꾸준히 아버지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함게 살던 집을 그대로 이어가며, 심지어 여동생의 방까지 세월이 지나도 그대로 유지한다. 하지만 새롭게 가족이 된 아내와 아이의 건강에 대해선 무심한 면을 보인다. 과거의 보존을 위해 새로운 환경을 거부하는 인간형.

    아멜라 (브랜드 박사의 딸):  (단서가 좀 부족하긴 하지만) 사랑에 맹복적인 타입. 사랑하는 아버지를 그대로 믿고 따르고, 사랑하는 애인을 찾아 우주여행을 떠날 정도. 그리고 그 애인이 간 행성에 가겠다고 고집한다. 결과적으론 그게 정답이든 아니든 간에, 일단은 맹목적인 타입이다.

    만 박사: 실패했음을 알고, 그것이 잘못임을 알면서도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는 인간. 사기를 쳐서라도 관심을 끌어야겠고, 그 관심이 결국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행동인 유형.

    타스 (로봇): 인간이 아니면서도 인간적인 의사소통을 하지만, 결국엔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는 존재. 대화는 하지만 소통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




    주관적인 인물 파악에 딸 머피는 뺐는데, 머피만이 유일하게 타인 뿐만 아니라 미지의 세계와 존재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버지가 떠난 이후로 그 미움으로 아버지와의 소통을 거부했지만, 결국 자신도 동일한 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써 대화는 하지 않아도 여전히 소통 중인 존재로 그려졌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미래의 지구는 무슨 문제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기후 변화를 큰 축으로 한 어떤 문제들 때문에 전 세계가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우주개발 따위는 현실적인 문제에 비하면 쓸 데 없는 짓으로 치부될 정도.

    그런데 애초에 이런 문제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도 수시로 나오고 있는 지구 식량 위기론, 그리고 이런저런 위기들. 애초에 인류가 머피처럼 서로서로 소통하고 대화하고, 미지의 그 어떤 세계도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면 식량 위기도 해결되지 않았을까.

    영화에서는 이렇게 말 한다. "우린 답을 찾을 거야. 늘 그랬듯이".

    그래서 답을 찾는 과정이 나오는데, 웜홀과 블랙홀까지 동원된 엄청난 거리의 머나먼 우주를 돌아서, 상상조차 불가능한 고차원 세계를 지나서 결국 돌아온 것은 바로 '소통'이었다. 결국 그 해답이라는 것은 바로 '소통'. 다시 말해서 이 영화의 주제는 '지금 네 옆 사람과 제대로 대화하라'가 아닐까 싶다.





    p.s.
    1.
    다소 거칠게 영화에 의미를 부여해봤음. 영화의 디테일에 그렇게 신경 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니, 이런 인물 설정도 그냥 아무렇게나 하진 않았을거란 생각이 들었음.

    2.
    근데 이 머피라는 인물이, 책장과 대화를 하고(?), 고장난 듯 한 시계를 보고 메시지를 읽어낼 정도라면 보통 인간을 넘어선, 어떻게 보면 초인적이기까지 한 소통 능력의 소유자. 이정도 돼야 인류가 위기에서 벗어날 정도라면, 모든 인간이 이런 소통 능력을 발휘하라는 건 무리가 있는데. 소통 능력자들이여 일어나라 이런 뜻인가. -_-;

    3.
    애초에 쿠퍼가 딸 말을 잘 들었다면 '타임 패러독스' 문제가 일어나는데. 그럼 인류는 그대로 멸종했을 수도 있고. 뭐, 너무 파고 들어가서 영화에 엄청난 논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냥 넘어가기로.

    4.
    마지막 장면에서 머피가 아버지에게 '떠나라'라고 했고, 쿠퍼는 그 말을 듣는다. 아마도 평생에 걸쳐 최초로 딸의 말을 듣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딸의 마지막 말 만큼은 들어주겠다는 행동을 보면, 참 멀리도 돌아서 소통의 중요성을 배웠구나 싶다. 그리고 또 다른 소통을 위해, 서로 평행선을 달리던 아멜라를 찾아 떠난다. 또다른 소통의 시작.

    근데 이 장면에서 청개구리 이야기가 떠올랐다. 엄마가 이번에도 반대로 하겠지 해서 우물가에 묻어달라고 했더니 진짜로 무덤가에 묻어서는 비만 오면 운다는 이야기. 어쩌면 머피의 마지막 말은 청개구리 엄마처럼 의도한 것일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면... 비극이다. -_-;

    5.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인데, 소통은 정말 피곤한 작업이다. 보통 바깥 세상에서 사람들이 '소통하자'라고 말 하면 대부분 "내 얘기'만' 들어달라"와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진정한 소통에 대한 문제제기와 말은 많지만, 소통은 정말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대로는 영혼을 좀먹는 일이기도 하기에, 차라리 소통 따위 필요없이 그냥 인류가 종말을 맞이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6.
    인터스텔라 주제를 이렇게 해석하기도 좀 뭣하긴 하다. 영화에선 이미 '결정된 미래'를 상정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딸이 "왜 내 이름을 머피라고 지었냐"라고 항의하자, 아버지는 "머피란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돼 있다는 뜻이다"라고 설명한다. 만약 이게 영화의 핵심 키워드라면 영화는 운명론을 주제로 한다는 뜻이 되는데, 그렇다면 환경을 막기 위한 인류의 노력이라거나, 주위 사람들과의 소통 따위 아무 필요도 없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돼 있으니까. 과연 감독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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