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레에 갈래 - 갈레, 스리랑카해외여행/스리랑카 2009 2015. 11. 11. 17:34
히까두와에서 갈레로 아주 가까운 이동. 나중에 알고보니 히까두와 비치도 갈레의 일부분인 듯 하다. 마치 일광 해수욕장도 부산 영역 내에 있지만, 일광에서 부산으로 이동했다 하면 대충 뭔 느낌인지 알 수 있는 그런 거.
어쨌든 갈레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일단 PC방을 찾아봤다. 인터넷은 아예 포기한 상태고, 오직 외장하드에 SD카드를 백업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여기저기 물어서 결국 터미널 앞 쇼핑센터 4층에 위치한 PC방을 찾아갔다. 처음 건물 들어갈 땐 내부에 불이 다 꺼져있길래, 여긴 원래 이렇게 장사하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정전. PC방에서 한참 앉아 있으니까 다시 전기가 들어왔다. 1시간 250루피. PC 성능은 괜찮은 편이었고, 인터넷은 그냥 인도 수준.
버스 스탠드(터미널)에 내리면 그 인근이 모두 시내다. 그런데 거기서 바다 쪽을 바라보면 꽤 큰 규모의 성채가 보인다. 그게 바로 갈레 포트 (Galle Fort). 그냥 오래된 유적지인 줄 알고 구경이나 해야지 하고 걸어가봤더니, 그 성곽 안에도 마을이 있다. 이것저것 있을 거 다 있고, 관광객들이 묵어가기 딱 좋은 분위기.
길 가다보니 코코넛 따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 동네에 노랗게 익은 코코넛들이 여기저기 그냥 달려 있다. 이 사람들에게 야자나무도 다 주인이 있는 거냐 물었더니, '프리~'라고 한다. 그냥 먹고싶은 사람이 올라가서 따면 되는 건가보다. 딴 거 하나 툭툭 잘라서 나한테도 주더라. 방금 따 내린 코코넛은 더욱 시원한 맛.
세계 어디를 가봐도 꼭 사람 없을만 한 으슥한 곳에서 으슥한 짓 하는 커플들이 있다. 여기도 예외는 아니었고. 뭔가 본격적으로 하려고 하길래 방해될까봐 피해주는 센스.
갈레 포트는 성곽과 마을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곳이다. 성곽이 넓고 크게 빙 둘러져 있고, 그 안에 마을이 있는 형태인데, 한쪽은 바다를 접하고 있어서 성곽 위로 올라서면 바로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즉, 이 성곽 안쪽 마을 어딘가 숙소를 정하면 하루 중 어느 때라도, 심지어 늦은 밤이라도 휘휘 나가서 바다를 볼 수 있다.
대강의 형태 정도는 말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이 동네 분위기는 어떻게 말로 전달해줄 수가 없다. 누와라엘리야가 선선한 날씨 때문에 마음에 들었지만 딱히 볼 거리나 할 것이 없어서 심심했다면, 여기는 햇살이 따갑기는 하지만 언제나 바닷바람이 불어오고, 바다를 볼 수 있으며, 성곽을 거니는 재미도 솔솔해서 아주 마음에 들었다.
만약 스리랑카를 다시 방문한다면 제일 먼저 가고싶은 곳이 바로 갈레다. 이 성곽 안에서만 머물면 되고, 또 만약 시내로 나간다해도 그리 먼 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툭툭 탈 일도 거의 없다. 여러모로 좋다.
성곽과 마을을 두루두루 구경하다가 동네 안쪽 골목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게스트하우스 구하냐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따라오란다. 인상이 좋길래 순순히 따라갔는데, 이웃 집 숙소를 소개해줬다. 정작 자기는 게스트하우스 같은 거 하고 있지도 않고. 그러면서 이웃들 모여서 막 웃고 떠들고 하는 것이 여기서는 참 정겹게 느껴졌다. 아마도 골목 안쪽에 위치한 곳이라 손님 구하기가 어려웠던 집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처음엔 1천이라고 부르던 것을, 방 구경하며 조금 둘러보니까 바로 하루 8백으로 해주겠다고 셀프 디스카운트 해준다. 아무 고민 없이 오케이. 당연히 이 가격에 에어컨은 없는데, 이 동네는 한여름이었지만 에어컨 없이도 그럭저럭 버틸 만 하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먹고 여기저기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숙소를 잡으니 배고픔이 느껴져서 슬슬 밖으로 나가는 중. 이 동네에도 식당은 꽤 있다. 서양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약간 고급스럽게 보이는 식당들도 있고. 당연히 그런 식당은 안 보이는 걸로.
본격적으로 뭔가 먹어야지 하며 동네 여기저기 식당들을 기웃기웃하며 관찰하고 있는데, 한 식당 주인이 나를 보더니 막 뛰어나와서 부른다.
"너, 일본인이니?"
"아니"
"우리집 메뉴판 일본어로 좀 써 줘"
"일본인 아니라니까"
"자 여기, 영어로 된 메뉴판은 있어"
"일본인 아니야"
"적어주면 밥 한 끼 줄게"
"일본인 아니라고!"
웃으며 정겨운 대화를 하고 바이바이. 끝끝내 그 식당 주인은 '저 일본인은 왜 메뉴판 일본어로 적어 달라는 간단한 요청을 거절하는 걸까'하는 불만 섞인 의아한 표정을 하고 힘 없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모든 대화는 영어로 했는데, 저런 말을 할 줄 아니까 내가 한 말도 분명히 알아 들었을 거다. 그런데도 계속 그러는 걸 보면, 글쎄, 그냥 사람은 자기가 보고싶은 것, 듣고싶은 것만 보고 듣는다는 것일까.
딱히 마음에 드는 식당은 보이지 않아서 그냥 또 마을 탐방이 돼버렸는데, 그렇게 돌아다니다보니 딱히 뭔가 먹고싶지도 않아졌고,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다 귀찮아졌다. 그냥 동네 분위기에 취했다고나 할까. 뭔가 알 수 없는 마력이 있다.
사진 잘 찍어놓으면 뭔가 공주 풍의 방 처럼 보이기도 하는 숙소 방. 여기서 이틀을 지냈다. 주변도 조용하고 밤에는 희미하게 파도소리가 약간씩 들리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뭔가 토굴 같은 느낌이라 방 안에만 들어오면 그리 덥지 않았는데, 그래도 밤에 모기장 안에서 자기는 좀 더운 느낌. 그냥 대충 견딜만은 하다.
이 동네도 축제 기간이라고 여기저기서 난리다. 방에 들어와 잠시 쉬는데 한 무리의 이슬람 복장 사람들이 나즈막이 노래를 부르며 줄 지어 걸어갔다. 생각지도 못 한 곳에서 의외의 이벤트를 보니, 현실감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꿈인가 싶을 정도.
그날 밤에 동네 마실을 다니다가 보니, 어느 사원 같은 곳에 이 사람들이 모여서 촛불 켜고 모여 있었다. 나름 무슨 의식 같은 걸 하는 듯 했다. 밤이 너무 어두워서 사진을 못 찍은 것도 있지만, 갈레에서 찍었던 사진들 일부는 잃어버리고 말았다. 실수로 SD카드를 주머니에 넣은 채로 옷을 빨아버렸기 때문. 어쩔 수 없지. 다 운명이려니.
'해외여행 > 스리랑카 2009'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갈레 마지막 날 사진들 - 갈레, 스리랑카 (0) 2015.11.11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며 걸을 수 있는 성곽 - 갈레 포트, 스리랑카 (0) 2015.11.11 히카두와 해변은 아름답고 시끄러웠지 - 히카두와, 스리랑카 (0) 2015.11.10 멋진 차밭에서 실론티 열 잔 - 누와라엘리야, 스리랑카 (0) 2015.11.09 8월에 가을 날씨 산동네 - 누와라엘리야, 스리랑카 (0) 2015.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