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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이 패치워크 로드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17해외여행/홋카이도 자전거여행 2016. 7. 11. 09:36
비에이(Biei, 美瑛)는 동네 자체가 유명한 관광지다. 홋카이도 관광을 하면 후라노 꽃밭과 함께 꼭 들르는 코스로 여겨질 만큼 유명하다. 그냥 차도를 달리며 주변 경치만 봐도 좋지만, '패치워크 로드'가 특히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다.
비에이 패치워크 로드 입구. 패치워크 로드(패치워크노 미치)는 구역별로 딱딱 잘라놓은 듯한 밭에 각기 다른 농작물을 재배하는 모습이 마치 천 조각들을 이어붙여 놓은 모습 처럼 보인다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수공예에서 여러가지 천 조각들을 이어 붙여 하나의 천을 만드는 것을 패치워크라 한다고.
'파노라마 로드'와 함께 비에이를 간다면 꼭 들러볼 곳으로 여겨지는데,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패치워크 로드에는 이런저런 유명한 나무들이 군데군데 있다. 파노라마 로드가 약간 거친 느낌 드는 정돈되지 않은 자연의 길이라면, 패치워크 로드는 잘 정돈된 정원 같은 느낌이라 할 수 있다. 어느 쪽이 좋은지는 개인 성향별로 다를 테고.
비에이라는 동네는 그 이름만큼이나 예쁜 동네다. 원래는 선주민인 아이누족의 마을 이름에서 따 온 이름이라 하는데, 어쨌든 지금은 한자로 미영(美瑛)이라 표기한다. 아름다울 미에 옥빛 영. 이름만큼이나 기대하고 가봐도 괜찮을만 한 곳이다.
만약 연인끼리 여길 갔다면, 미영이라는 한자 이름을 보고는 먼 들판을 아련히 쳐다보는 남자에게 이런 말을 쓸쩍 건네보라. "왜? 미영이 생각나냐?". 그러면 적잖이 당황 할 거다. 웬만한 남자들의 가슴 속엔 옛 애인 미영이가 하나씩 자리잡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물론 너무 꼬치꼬치 따져 물으면 여행지에서 헤어지는 경우도 있으니, 그러면 여행지에서 또 다른 사람 만나 사랑에 빠지면 되고. 연애 따위가 다 그렇지 뭐.
패치워크 로드는 들판에 서 있는 나무 보러 다니는 게 일이다. 무슨나무 무슨나무 이름 붙여진 게 몇 개 있는데, 다들 열심히 그런 나무들 보려고 돌아다닌다. 물론 남들 다 보러 가는데 나만 안 보면 뭔가 손해보는 느낌이 들어서 분위기에 휩쓸리게 되고, 막상 가보면 좀 실망하고 그렇다. 유명한 나무를 보겠다고 투지를 불태우기보다는 그걸 보러 가는 도중에 만나는 경치를 즐기면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낼만 한 곳이다.
패치워크 로드에서 유명한 나무는 크게 네 개다. 켄과 메리의 나무, 오야꼬 나무, 세븐스타 나무, 마일드 세븐 언덕.
일단 '켄과 메리의 나무'는 이렇게 생겼다.
각도 잘 잡아서 찍으면 이렇게 찍힌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보는 모습은 아래와 같다.
뭐 그냥 길 가에 있는 흔한 포플러 나무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한 그루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두 그루라는 것 정도. 이 나무는 1976년 닛산 자동차 광고에 나왔는데, 그때 나온 두 주인공의 이름이 켄과 메리였다고. 그래서 유명하다고 한다. 진짜로 그 이유다. 자동차 광고에 나와서 유명하다, 유명하니 유명하고, 유명해서 사람들이 보러 가니까 도 유명해지고, 유명해지니까 또 유명하고.
나머지도 다 비슷비슷하다. 세븐스타 나무는 1976년에 세븐스타 담뱃갑에 나와서 유명해졌고, 오야꼬 나무는 마치 부모와 자식 처럼 나무가 있다 해서 유명하다. 그리고 마일드세븐 언덕은 1977년에 마일드 세븐 광고에 나와서 유명한 거라고.
이것 외에도 '철학의 나무'라는 게 있었는데, 이건 최근에 소지섭이 소니 카메라 광고를 찍어서 더욱 유명해졌었다 한다. 근데 사람들이 워낙 몰려들어 밭을 밟고 해서 농부가 최근에 베어버렸다고.
그래서 유명한 나무 하나 보고는 갑자기, '나는 왜 이런 걸 보고 다녀야 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이 생겨버렸다. 아니 무슨 수십 년 전에 광고에 나와서 유명한 그런 나무를 꼭 봐야해? 라고 생각해보니, 이 땡볕에 수시로 오르막이 출몰하는 이 언덕배기 들판을 굳이 나무조각 몇 개 보자고 힘들게 다닐 필요는 없다는 결론이 나오더라. 길 가에 널린게 신기하게 생긴 나무들인데 뭘.
그냥 전망대나 보고 비에이를 벗어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곧장 향한 곳은 '호쿠사이노오카 전망 공원'. 피라미드 처럼 생긴 전망대가 있는 공원이다. 저기 피라미드 처럼 생긴 건물 웟부분으로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데, 올라가면 바람도 꽤 많이 불고 시원하고 전망도 좋다.
전망대에서 둘러본 모습들. 넓고 깊게 보이는 경치가 치마가 뒤집힐 정도의 바람과 어우러지니 눈으로만 보는 것과는 또 다르게 시원한 느낌이었다. 치마가 뒤집힐 정도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냐면 뒤집히는 거 봤으니까.
이 아름다운 경치에 하나의 오점이 된 나. 비닐봉지엔 어김없이 오니기리가 들어 있는데 땡볕에 잘 익어가고 있다.
굳이 나무를 보러 다니지 않아도, 전망대에 올라가지 않아도 패치워크 로드는 그냥 드라이브 하면서 경치를 즐길만 하다. 가을엔 또 단풍과 함께 해바라기도 피고, 겨울엔 설경이 멋있다 하니, 아무 계절이나 가도 독특한 매력에 빠질 수 있을 테다. 워낙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길도 나름 잘 돼 있는 편이지만, 깨진 아스팔트도 많고, 언덕도 은근히 많아서 자전거 타기는 좀 힘들 수 있다. 무엇보다 이쪽은 그늘이 별로 없다. 파노라마 로드 쪽은 그래도 찾아다니면 그늘이 좀 있었는데.
길 가다가 우연히 보게 된 마일드세븐 언덕. 이건 여기저기서 잘 찍은 사진들을 많이 봐서 분명히 카메라 트릭이 있을 거라고 짐작했기 때문에 그리 실망하지도 놀랍지도 않았다. 그냥 가다가 보이길래, 일상에서 골목길 가다가 귀신 본 것 처럼 그냥 아, 있구나 하는 정도.
나름 노력하면 예쁘게 찍을 수 있지만, 사실은 이 주변은 이런 모습. 가까이 들어갈 수 없게 줄을 쳐놨다. 사진 잘 나올만 한 포인트엔 이미 사람들이 차 대 놓고 삼각대 펼쳐놓고 난리다. 그래도 사람이 그렇게 미어 터질 정도로 많은 건 아니지만, 때를 잘 못 타면 관광버스 타고 온 단체 관광객들 틈바구니에 끼이는 수가 있다. 내가 여기 도착했을 땐 마침 관광버스 세 대가 떠나고 있더라. 그 속에 끼였다면 정말 사진 하나 안 찍고 지나쳤을 거야 아마.
저렇게 쌩하니 달려 내려가는 길을 보면 신날 것 같지만, 나는 저 길을 자전거 끌고 기어 올라왔다. 어쨌든 이쪽 동네도 자전거 빌려서 구경 다니는 사람들이 꽤 있더라. 거의 대부분은 랜트카로 다니는 것 같지만. 자전거도 좋은 숙소에 묵으면서 차 타고 다니다가 관광지에서 잠시 타는 사람들은 오르막도 잘 기어 오르더라. 사실 맨날 텐트에 자면서 힘들게 여행하면 아무리 자고 쉬어도 기력 충전이 안 된다. 그냥 헤롱헤롱 한 채로 습관처럼 페달을 저을 뿐이지. 근데 그게 또 오래되면 아드레날린이랄까, 마치 약에 중독된 듯 한 증상이 일어난다. 오래달리기를 할 때 일정 순간을 넘어서면 몸은 힘든데 미친놈 처럼 즐거운 느낌이 드는 그것과 비슷하다. 그게 고행 비슷한 여행의 묘미.
사실 여기 오니까 마침 관광객도 잠시 다 빠지고, 그늘도 많아서 쉬기 좋길래 좀 오래 쉬었다. 보니까 아예 차로 자리 딱 맡아두고 차 안에서 자는 사람들도 몇몇 있더라. 아마 사진 찍으려고 저녁때나 밤까지 기다리는 거겠지. 역시 사진을 찍으려면 차가 있어야 돼.
오늘 갈 길이 멀기 때문에 길을 재촉한다. 사실 처음엔 패치워크 로드도 갈까말까 좀 고민했다. 당연히 여길 들르면 그만큼 시간을 소비해서 길을 못 가게 될 테고, 그럼 중간에 대책 없이 밤을 맞을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하지만 평생 한 번이 될 지도 모르는데 하며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들어와봤다. 일단 여기를 구경한 것은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중에 밤에 그 대가를 치뤄야 했지만.
길 가다가 일렬로 쭉 늘어선 나무들 사이에서 또 잠시 쉬어갔다. 여기는 딱히 이름이 붙지 않은 그냥 길 가의 나무 덩어리들인데, 여기도 뭔가 이야기를 지어내면 다른 나무들 만큼이나 이쁘게 찍힐만 한 곳이더라. 단지 유명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도 없었기에 나에겐 좋은 쉼터가 됐으니 다행일지도. 세상이 그렇지 뭐, 유명하니까 유명해지고 유명해지니까 또 유명하고.
어떻게 뱅뱅 돌아서 이상한 산기슭 같은 곳으로 빠져서는 여기가 맞나 불안해하면서 길을 빠져나갔던 것 같은데 어디로 어떻게 나갔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사실 남들이 놓치는 좋은 경치를 보기 위해서는 길을 잃는 능력이 필수다. 길 잃고 헤매다보면 좋은 경치를 보거나, 뜻밖의 좋은 식당을 찾거나 기타 다른 뭔가를 얻어 걸릴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때, 길을 잃었는데 뭔가 좋은 기회를 잡으려면 여유가 있어야 한다. 해 지면 잘 데가 없어서 걱정이라든지, 차 시간 놓칠까봐 초조한 상황이라든지 하면 아무리 길을 잃어도 좋은 걸 찾을 수가 없다. 여행에서 이 두박자가 딱 맞기가 좀 어렵긴 하다.
패치워크 로드를 벗어나서 좀 이상한 길로 빠져서 잠간 헤매긴 했지만, 결국엔 뻥 뚫린 곳을 잘 나왔다. 사실 산으로 기어올라가지만 않으면 평지로 나 있는 국도로 갈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걱정하지 않았어도 됐는데. 뭐 그렇게 헤매고 다니면 건강에 좋겠지. 근데 아무래도 사람들 잘 안 다니는 길에 경치도 좋고 하니까 으슥한 곳에 차 대놓고 이런저런 짓 하는 사람들도 좀 있더라. 세 팀이나 봤네. 아 무슨 이 동네가 카ㅅㅅ의 메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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