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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에서 치토세 공항으로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21해외여행/홋카이도 자전거여행 2016. 7. 14. 16:47
치토세 공항으로 가는 길. 삿포로에선 삿포로 맥주를 마셨으니 그걸로 됐다. 도시는 크게 관심이 없어서 애초부터 삿포로는 맥주 하나만 계획에 넣고 있었다. 무엇보다 도시는 숙소를 잡아야 하니까 돈도 많이 들고.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 무리해서 삿포로에 하루 더 있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리 내키진 않았다.
삿포로 시내에서 치토세 공항까지는 약 40킬로미터. 흔히 삿포로 공항이라 부르는 그곳이 바로 치토세 공항이다. 삿포로와 공항이 꽤 먼 편이라서 대부분 관광객들은 열차나 기타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이동한다. 공항에서 삿포로 역까지 JR 기차 요금이 1000엔이 약간 넘었다. 그 돈으로 맛있는 편의점 도시락이나 두어 개 더 사먹자고 또 자전거로 이동했다.
삿포로에서 치토세 까지는 도시 분위기의 도로들이 이어져 있어서 그리 여행하는 느낌이 나지는 않았다. 그냥 비행기 타려고 이동한다는 느낌. 이쪽은 또 시골 동네와는 다르게 경쟁심 뛰어난 사람들이 많아서, 자전거 타고 가다보니 이상한 남학생이나 여고생이나 아저씨 아줌마 등등이 은근히 내 자전거와 속도 경쟁을 하더라. 그러거나 말거나 난 그냥 내 쉬고 싶은데서 멈춰서서 구경이나 하고.
길 제대로 가고 있는지 체크하려고 잠깐 멈춰서서 지도 보고 있는데, 여중생인지 여고생인지 둘이 자전거 끌고 길 건너오더니 '나도 저렇게 여행 가고 싶다' 하길래, 같이 가자고 했더니 꺄르르 웃으며 도망간다. 하나도 재미 없었는데.
그 유명한 스키야. 스키야는 아직 한 번도 못 가봐서 한 번 가볼까 싶기도 했는데 그냥 말았다. 저런 건 일본 어딜 가나 다 있을 테니까. 홋카이도에선 홋카이도 편의점 도시락을 먹어야지.
별 거 없이 도착한 치토세 역. 역 앞에 안내판엔 한글도 쓰여져 있더라. '치토세 역', '관광안내소' 이런 것들. 한국인들이 많이 찾아서 한글을 써 놓은 건지, 아직 많이 안 오지만 오라고 써 놓은 건지 모르겠다. 이 동네에서 관광객은 하나도 못 봤는데.
공항에서 가까운 소도시라 그런지 역 앞에 모텔들이 많더라. 캠프장 쪽에는 꽤 큰 호텔도 있고. 안내판을 보니 나름 이것저것 볼 것 있다고 소개는 해놨는데 그리 끌리진 않았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동네를 거닐어보니 여기는 공항을 코 앞에 두고 잠시 쉬어가는 곳 아닌가 싶다. 이른 새벽에 출발하는 비행편이라면 이런 데서 잠시 머물다가 공항을 가도 괜찮겠지, 아마도. 근데 치토세에선 자꾸 치토스가 먹고싶다.
생각보다 은근히 큰 중소도시이긴 한데, 역 앞은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마침 퇴근 시간이라 약간 붐볐는데도 한적하다 느껴질 정도. 역 앞쪽으로 쭉 뻗은 대로를 걸어가다보면 모텔들이 많이 보인다.
다른 곳에선 이렇게 불 타오르는 듯 한 노을을 본 적이 없는데 이 동네는 참 희한하기도 하다. 사진이 색이 좀 빠졌는데, 엄청 붉은 색이었다. 편의점 앞에 주저앉아서 도시락 까 먹으면서 보니까 더 좋더라.
밤에는 이 동네에 있는 캠프장을 찾아갔다. 첫날 도착했을 때 간 그 캠핑장이었다. 이제 두번 째 온다고 많이 익숙했다. 마치 귀신 나올듯 한 분위기로 나뭇잎들이 쏴아아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것도 익숙해졌고. 당연히 밤에 양동이로 물 들이 붓듯이 퍼붓는 비도 익숙하다. 이제 불안해하지 않고 편안하게 잠도 잘 수 있게 됐는데 떠나야 하는구나. 그래도 익숙해질만 할 때 떠나는 게 좋지, 더 있으면 지루해지고 싫증나니까. 인생이 그렇듯이.
다음날 아침은 안개가 자욱했다. 무심코 쓰면 한 치 앞도 안 보일 정도라고 썼겠지만, 한 치가 삼 센티미터 정도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쓸 수는 없다. 사실 웬만한 깜깜한 밤이라도 삼 센티 앞은 보인다.
어쨌든 자욱한 안개가 뭔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더라. 아직 새벽이라 길에 차도 별로 없었고, 이제 일어났는지 불 켜진 집 안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림자들도 보였다. 딴 생각 하면서 자전거 타고 가다가 갑자기 앞에 불쑥 나타난 사람 때문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침부터 햇볕 쨍쨍한 것 보다는 이런 날씨가 돌아다니긴 좋았다.
축축해서 텐트 안에 있을 수가 없어서 짐을 챙기고 나오긴 했지만 아직 이른 시간이라 딱히 어디 갈 데가 없었다. 지도에서 우연히 본 이 근처 무슨 대학인가 전문학교인가에 가보기로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치토세 과학기술대학'이더라).
이것이 홋카이도에 가면 꼭 봐야 할 그 유명한 나무가 될 수도 있다, 수십 년 후엔. 캠퍼스가 정말 넓어서 축구장이 작아 보일 정도였다. 정말 거의 공항 만큼이나 넓은 캠퍼스에 잔디밭이나 수풀들이 쫙 펼쳐져 있었다. 이쪽은 초목이 있어서 그런지 안개가 더 심했는데, 안개 사이로 멋진 나무들을 보니까 비에이에서 유명한 나무 보려고 뭘 그리 애 쓰고 다녔나 싶기도 하더라.
대학 건물 근처는 접근하지 않았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면 누군가 봐도 귀찮아서 여기까지 다가와서 뭐라 하지 않을 거지만, 건물 근처로 가면 누군가 뭐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 미리미리 피한다. 여행에서 하루종일 말 한 마디 안 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데, 그걸 깨버릴 순 없지.
벤치도 있고, 쓰레기통도 있어서 짐을 다시 간추리며 버릴 것 버리고 정리하다가 좀 누워 잤다. 해가 슬슬 떠오르니 안개가 좀 걷히더라. 캠퍼스 내 벤치에 이렇게 바베큐 시설이 돼 있는 게 참 인상적이다. 어쩌면 그냥 캠퍼스 내 바베큐 장인지도 모르겠다. 넓은 부지가 초목으로 쫙 펼쳐져 있고 바베큐 시설도 있고 이런 걸 보면 참 낭만적인데, 캠퍼스 안쪽으로 들어가보니 공장이 몇 개 있더라. 이미 출근한 사람들이 슬금슬금 내리는 비 속에서 새벽 체조도 하고 있고. 그런 걸 보니 경치가 아름다워도 먹고 살기는 빡빡하구나 싶기도 하고.
해가 떠오르니 안개가 싹 걷혔다. 참 희한한 동네다. 어쨌든 모처에 자전거를 잘 묶어두고 공항까지 걸어갔다. 다음에 다시 왔을 때 자전거가 있으면 좋고, 없으면 나쁜 일본인들인 거고. 기차를 탈 수도 있었지만 그 돈으로 도시락을 사 먹는게 낫기 때문에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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