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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컨택트 (Arrival) 리뷰 & 잡다한 이야기리뷰 2017. 2. 3. 18:01
영화 '컨택트'는 외계인이 등장하고, SF, 스릴러 장르로 분류된다. SF 작가 '테드 창'의 단편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가 원작인데, 영화는 원작을 시각화하면서도 약간 다른 스토리를 보여준다.
'쉘'이라고 하는 거대한 UFO 12개가 지구 여기저기에 내려와 자리잡는 것이 사건의 발단이라, 일단 UFO와 외계인이 중요한 소재인 것은 맞다. 하지만 '외계인이 등장하는 SF 영화'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그런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즉, 외계인이 인간을 납치한다거나, 러이저를 쏘고 전투기가 폭격을 하고, 미 해병대나 미국 대통령이 외계인과 격투를 벌이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전투 씬은 전혀 없다고 봐야 한다. 딱 한 번 폭발 장면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전투라고 할 수가 없고. 비록 위기상황까지 가긴 하지만 아주 평화로운 영화다.
(영화 컨택트 한국 포스터와 미국 포스터. 왜 이래야 하니)
영화 컨택트 줄거리
언어학자인 루이스가 딸과 함께 보낸 시간들을 기억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 딸은 불치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외계인들의 지구 방문. 당연히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각국 정부는 이 외계인들의 지구 방문 목적을 알고싶지만 서로 의사소통이 되질 않는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언어학자인 루이스와 물리학자인 이안이 불려간다. 외계인들이 왜 지구에 왔는지를 밝혀내기 위해서다.
음성으로 대화는 일단 포기하고, 외계인이 써주는 문자를 해석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 원형으로 된 그림 같은 문자에 한 문장이 다 표현되는 독특한 외계인의 문자를 파악해가는데, 상부에서는 빨리 이들의 목적을 파악하라고 압박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이들의 의도가 침략이라며 공격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많은 나라들이 공격으로 가닥을 잡자, 루이스가 활동하던 미국 쪽도 의사소통을 하려던 팀을 철수하고 공격을 개시하려고 한다. 루이스는 언어의 중의성 때문에 생긴 오해라며, 이 외계인들의 목적이 지구 침략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전쟁을 막으려고 고군분투 한다.
(12개 쉘이 각기 다른 지역에 내려앉아서 포스터도 12개)
영화 어라이벌 이런저런 이야기
대략 줄거리를 이렇게 요약했는데, 영화의 주된 내용은 외계 문명의 희한함(?)을 인식하고 이들의 문자를 해석해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더 들어가서, 인류와는 다른 시간감각을 언어를 통해서 습득한다는 것 정도다.
화려한 액션이 있는 SF 영화를 바란다면 아주 크게 실망할 수 있지만, 독특한 외계인 영화라는 점에서 많은 생각할 거리와 이야깃거리를 던져준다. 주제를 잡기에 따라서 한 가지 이야기를 깊게 파볼 수도 있겠지만, 몇 가지 당장 떠오르는 것들을 대충 정리해보겠다.
원 제목은 어라이벌(arrival)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어라이벌(arrival)'이다. 왜 한국에 들여오면서 제목이 '컨택트'가 됐는지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 '언어(단어)의 중의성'이 큰 문제가 되는데, 어라이벌(arrival)이라는 제목 또한 중의적인 의미로 붙여진 제목이다.
arrival은 '도착'이라는 의미 외에 '탄생, 등장'이라는 의미도 있다. 'new arrival'이라고 하면 신상품 혹은 신생아라는 뜻이 된다. 따라서 이 제목은 영화 내용과 어우러져, 도착과 동시에 탄생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걸 단순히 '접촉(컨택트)'라고 해버리면 제목이 함축한 많은 의미들이 사라져버린다.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외계인 방문
사람들은 대체로 외계인이 지구에 들어오면 뭔가 큰 사건이 발생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지구의 자원을 원해서 인류와 전쟁을 벌인다든가 하는 식이다. 딱히 이유도 모르겠고 그냥 외계인이 공격해오는 것도 있다. 하지만 영화 ET 같은 경우에는 외계인과 친구가 되는 내용이고, 아주 독특한 내용으로 기억에 남는 '디스트릭트 9'의 경우는 외계인들이 난민으로 들어와 짐승 취급을 받았다.
이 영화의 외계인도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외계인인데, 이처럼 외계인들 중에는 딱히 침략을 하려는 목적이 아닌 종들도 있지 않을까. 세계 여기저기서 목격되는 UFO들을 보면, 대체로 '사람들에게 목격되는 일' 외에는 딱히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물론 게중에는 사람이나 소를 납치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안 그런 경우가 더 많다.
테러 하기 위해 어떤 국가를 방문하는 사람보다, 그냥 관광 하려고 방문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렇게 따져보면 외계인들도 여기저기 관광 다니다가, '야, 이번엔 지구라는 은하계 오지 행성이 핫 플래이스야'하고 놀러 가보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거다. 그러니까 굳이 관광 와서 신문물 가르쳐주고 하지 않는 거고. 어쩌면 쟤네들 입장에선 사파리에 가까우니까 멀찌감치서 구경하다 가고, 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외계인이 와서 막 인간들과 교류하거나 싸우고 어쩌고, 아 왜 그래야 하는데. 귀찮잖아. 그 정도 기술 있는 외계인이면 귀찮은 존재들 없는 다른 어떤 곳에서 원하는 자원 엄청 캐낼 수 있을 건데. 물론 지구인들이 우주에 쓰레기를 너무 많이 버려서 응징하러 오는 거라면 인정할 수 밖에 없지만.
외계 문명과 의사소통
많은 SF에서 외계인과 의사소통은 그냥 대충 뭉개고 넘어간다. 지구까지 먼 거리를 날아올 정도로 발달한 문명이니 뭔가 구르그르 번역기 같은 것을 이용해서 지들이 알아서 인간 언어를 알아듣는다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많은 SF 영화에서는 굳이 의사소통 따위 할 필요도 없다. 그냥 도착하자마자 때려 부수면 되니까.
옛날 티비 드라마였던 브이(V)를 떠올려보면 참 희한한 거다. 외계인이 딱 왔는데 아무런 장치도 없이 그냥 영어를 술술 하고. 스타워즈를 봐도 막 이 행성 저 행성 날아다니는데 다들 언어가 잘 통해. 와 우리는 지구인들끼리도 언어가 안 통해서 서로 못 알아먹는데. 역시 바벨탑이 문제였어. 어쩌면 유니버셜 통합 언어가 있는데 지구만 이 꼬라지인지도.
통합, 화합
영화에서는 전 지구인의 통합과 화합을 외친다. 영화를 다 보고나면 이건 SF 영화가 아니라 차라리 반전영화 혹은 평화영화로 분류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지경이다.
트럼프가 당선되고 이상한 짓을 벌인 상황에서 이런 메시지가 흘러 나오니 '통합과 화합이 중요하지'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영화에서는 중국을 위험하면서도 불안하고 통제할 수 없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어쩌면 그렇게 묘사한 덕에 중국 공포심을 자극해서 인기몰이를 더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국 일을 해결하는 건 미국. 전 인류의 통합과 화합을 바란다면 우선 팍스 아메리카나 의식부터 좀 버려야 할 텐데.
외계 문명과 시간
이 영화는 외계 문명이 인류와는 사고방식 자체가 판이하게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 우리와 똑같은 우주에서 똑같은 자연법칙 속에서 살아갈 테지만, 그것을 대하는 인식은 판이하게 다를 수 있다는 것.
영화에서는 대충 넘어가지만, 이 외계인들은 복잡한 수학 내용은 아주 쉽게 이해하는데, 겨우 1/12을 글자로 적는데는 엄청나게 복잡한 표현이 필요하다. 또한 완전히 다른 시간 인식은 이 영화의 핵심 소재이자 주제이기도 하다.
진짜로 외계인이 딱 나타나서 시간이나 기타 이런저런 것들에 대해 알려줘서 인류 문명이 좀 발전했으면 좋겠다. 이게 뭐냐 수천 년 동안 맨날 전쟁이나 하고. 발전은 개뿔, 아직 티비에서 냄새도 안 나오는데. 수동으로 운전하는 차를 보고 자동차라고 이름 붙여서 사기나 치고. 그게 어째 자동차냐 수동차지.
어쨌든 (현실은 외계인들도 인텔 같은 대기업만 좋아하므로) 아무쪼록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서 좀 더 다양한 접근과 탐구가 있으면 좋겠다. 그걸 알아낸다고 영생을 얻을 수는 없겠지만, 도를 닦는 데는 도움이 될 듯 하다. 물론 물리학 쪽으로도 도움이 되겠고.
기타 이것저것
헵타포드(heptapod)
헵타가 7이라는 뜻이고, 다리 일곱 개 달린 외계인이라 해서 인간들이 임의로 붙인 이름이 바로 헵타포드. 기껏 외계인이 왔는데 아주 고전적인 문어발 외계인이라 약간은 식상하다. 이런 외계인과 본격 교류를 시작한다면 한국인은 몰살당할지도 모른다, 산낙지 먹는다고.
그래도 영화에서는 고전적인 외계인을 좀 더 기괴하게 잘 표현해놔서 우스꽝스럽거나 하지는 않았다. 사실 이들처럼 인류와 완전히 다른 인식을 가지려면 일단 휴머노이드는 아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기도 했을 테다.
사피어 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
언어학자인 사피어와 워프의 "언어는 인간의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라는 가설. 노암 촘스키가 이를 비판하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서 다시 힘을 얻고 있는 가설이라 한다.
영화에서 '외국어를 배우면 그 나라 방식으로 사고한다'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이건 좀 오버가 아닌가 싶다. 미국 등에서 시민권, 영주권 얻은 한국인들이 영어도 잘 하는데 사고는 70년대 한국적 사고방식에 머물러있는 경우를 꽤 많이 봤으니까.
하지만 몇 백년 정도의 긴 시간을 두고 살펴보면 언어가 인간의 사고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지. 그렇다해도 과연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건지, 사고가 언어를 그렇게 만들어 낸 것인지는 닭달걀 문제.
페르마의 원리(Fermat's principle)
종이에 빈 공간이 없으면 '공간이 부족하니 증명은 안 하겠음'이라 적으면 된다고 가르쳐 준 그 유명한 페르마. '페르마의 원리'는 간단히 말해서 '빛이 최단시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경로로 움직인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최소 시간의 원리라고도 한다.
공기 중에서 직진하던 빛이 물을 만나면 수면에서 딱 꺾어지는 현상을 이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최단 거리'가 아니라, '최단 시간'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빛이 굴절한다는 것.
원작 소설에서는 이걸 언급하며, '빛이 최단시간으로 이동한다면, 시작할 때부터 어디에 도착할지 이미 다 알고 있어야 최단 시간을 계산할 수 있지 않나'라는 식의 내용이 나온다. 이걸 확장하면 '시간이 선형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시작과 끝이 원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매질마다 광속이 달라서 휘어지는 굴절의 법칙인데 자세한 건 스넬의 법칙 참고. 시작점과 끝점을 미리 알고 움직인다고 하지 않아도 설명이 가능하다. 아, 영화에는 나오지 않으니 굳이 이해할 필요는 없다.
시간
시간이 원형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직선은 아닐 것이다. 이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통해, 곡선으로 휠 수도 있고, 중력에 의해 왜곡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지금은 그냥 그렇겠거니 하면서 격자무늬 시공간 위에 공을 올려놓은 모습을 쭉쭉 그려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다. 시간과 공간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중력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 말이다. 어쩌면 나중에 시간에 대한 비밀이 더 벗겨지면 시간에 대한 인식 자체가 완전히 바뀔 수도 있을 테다. 게다가 기술이 발전한다면 미니 블랙홀을 머리 위에 올려놓고 노화 방지를 한다든지...
운명
영화에서는 미래를 알고 있지만 그 미래를 거부하지 않고 선택한다는 내용으로 '시간의 원형'을 설명한다. 이걸 다른 표현으로 '운명'이라고 일컬을 수도 있다. 자유의지가 있는데 운명이라는 게 말이 되냐라지만, 그 자유의지조차 운명 속에 있다고 가둬버릴 수 있다. 미래를 보고 지금 행동을 바꿔서 미래를 바꿨는데 그것조차 이미 정해져 있는 운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정도 되면 딱히 신에게 빌 필요도 없다. 어차피 다 정해져 있을 테니까.
비단 이 영화 뿐만 아니라, 수많은 영화나 소설 등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만약 당신이 과거에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지도록 행동을 바꾸었을 것인가라고. 뭔 그게 대단한 철학적 질문이라도 되는 양 폼 잡고 물어보냐. 나는 거창한 변화는 귀찮아서 안 했을 거고, 그냥 다음주 로또 번호나 보고 돌아갔을 거다.
집
끝으로 집. 영화에 나오는 집 너무너무 좋더라. 연못 가 한적한 숲에 위치한 한쪽 면이 통유리인 집. 냉난방에 아주 비효율적일 것 같지만, 그거야 기후 좋은 곳에 위치하면 되는 거고. 어쨌든 너무 부럽더라, 추위에 덜덜 떨어도 그런 집에서 살면 하루하루가 즐거울 듯 싶다. 기승전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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