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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도 귤 따기 그리고 농촌 일손, 과연 없어서 모자란 걸까
    잡다구리 2017. 11. 29. 13:25

    올해도 제주도 감귤 농장 일손이 부족할 것이라고 일찌감치 예상됐는지, 10월 말부터 아래와 같은 기사가 여러 언론사를 통해서 나왔다.

     

    > "감귤수확 인력 모집합니다"..항공권·숙박권까지 등장 (한겨레, 2017.10.30.)

    > 제주서 감귤따기 알바 하실래요? '국민수확단'모집 (경향신문, 2017.11.06.)

     

    보도된 날짜와 제목이 조금씩 다르지만 기사 내용은 거의 다 비슷했다. 제주도와 농협이 인력확보 차원에서 항공료, 숙박비 등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큰 예산을 쏟아부었고 어쩌고 하는 내용들이 이어진다. 정작 필요한 정보인 '어디에 연락을 해서 지원하면 되는지'는 전혀 안 나온다. 관련 기사들 다 훑어봐도 마찬가지였다.

     

    제주도

     

    진짜 항공권 숙박권 주는지 연락해보니

     

    기사 내용에서 단서를 얻어서, 제주농협 쪽으로 연락을 해봤다.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돌려서 마침내 담당자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바쁜 눈치여서 오래 대화하지는 못 했지만, 대략 알아낸 정보는 다음과 같다.

     

    * 20인 이상 단체 모집을 원칙으로 하고 있음.

    * 농가들이 초보는 꺼리고, 초보는 일당을 적게 줄 수도 있다.

    * 20일 이상 일을 한다면 개인 접수도 일단 받아주기는 한다. (전화로)

     

    들어보니 이런저런 단체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 사업인 듯 했다. 단체들 문의를 받기도 바쁜듯 해 보여서, 개인 신청은 안 하고 그냥 전화를 끊었다.

     

    사실은 나도 귤 농장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고 있었다

     

    이 기사가 뜨기 전부터 나도 이번 겨울에 시간이 날 듯 해서 제주도 귤 농장 단기 알바를 알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초보'라는 딱지가 일단 큰 걸림돌이었고, 숙박과 항공료가 두번째 걸림돌이었다.

     

    제주지역 생활정보지와 개별 농가들 몇몇을 통해 알아본 결과, 대략 귤따기 노동은 이런 조건이었다.

     

    * 해 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일 함. (농장마다 약간 차이는 있음)

    * 점심시간은 1시간으로 잡고 일 하는 시간에서 제외함.

    * 일당은 6만 원. (숙련자 기준)

    * 한 사람이 하루에 일해야 할 몫은 노란 플라스틱 박스로 30박스 (이상).

    * 점심은 대체로 농장에서 제공함.

    * 숙박은 제공하지 않음. 알아서 구해야 함.

    * 초보는 꺼림. (일당을 적게 주는 조건으로 받아주는 곳도 있음)

     

    게스트하우스 숙박비만 해도 하루 2-3만 원 정도고, 저녁을 사먹는다면 돈이 좀 더 나간다. 거기다 항공권도 사야하고, 교통비 등 잡비도 들어간다. 그러면 하루에 6만 원을 받는다해도 실제 손에 남는 금액은 하루 평균 2-4만 원 정도라고 볼 수 있다.

     

    그나마도 초보라면 이 정도도 안 남을 수 있는데, 애초에 초보가 돈 받고 일 하기부터가 어렵다.

     

    여기까지만이라면 이 글을 쓰지 않았을 테다. 여기서 끝난다면 그냥 초보의 한탄일 뿐이니까. 어쩌다가 우연히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기에, 이런 시도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기록을 하고싶어졌다. 

     

    제주도

     

    어떤 제주 감귤 농장의 흥미로운 실험

     

    우연히 제주에서 감귤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분의 블로그를 보게 됐다. 그런데 이 집에서는 흥미로운 실험을 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수확철 이전에는 3박4일 일정으로 제주 여행도 하고 귤따기도 돕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리고 11월 15일 이후 본격적인 귤 수확철에 접어들면서, 10박 11일 '제주 농부로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미지: '제주 농부로 살아보기' 글 캡처)

     

    농가에 남는 빈집을 개조해서 숙박시설로 만들고, 10박 11일 단위로 최대 5명씩 지원자를 모집하는게 이 프로그램의 기본 골자다.

     

    여기서 세부적으로 신경 쓴 부분이 눈에 띈다. 숙련된 인부가 하루 30박스를 수확하고 6만 원을 받으니까, 비숙련자를 모집하는 대신 20박스 수확을 기준으로 4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이다.

     

    숙박과 점심을 제공하므로, 개인적으로 들어갈 비용은 아침, 저녁 식사비용과 항공권 정도 되겠다. 그리고 작업시간을 8시간으로 딱 맞춘 것도 은근히 신경 쓴 모양새다.

     

    이런게 아주 당연하고도 하찮은 것으로 생각되겠지만, 이렇게 확실히 규정을 정하고 알리고 시행하는 것이 시골 일터에서는 잘 시행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런 사소한 것들에서부터 도시 사람과 시골 사람의 갈등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전문적으로 일당을 벌려고 한다면 적은 금액이지만, 돈을 벌겠다는 목적이 아닌 사람들이 모이므로 다른 가치를 추구할 수도 있다. 초보자에게 기술 습득과 체험의 장이 될 수도 있고. 

     

     

    그래서인지 이곳은 11월 말에 이미 12월 말 인력까지 예약이 마감된 상태다. 이걸 지켜보면서, '과연 인력이 없어서 일을 못 하는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제주도

     

    농촌이 변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여행자나 초보를 일손으로 받는 것은 농가 입장에서 꺼릴만 하다. 일에 도움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매년 반복되는 인력 부족 사태를 그냥 방관하기만 할 수도 없다. 일손이 모자란다는 것은 이미 숙련자가 유입되지 않는다는 뜻인데, 초보마저 받지 않겠다면 일손은 점점 더 줄어들 뿐이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초보를 받자'를 넘어서, 이제 한국 농가도 좀 '합리적인 계산을 하자'이다.

     

    비단 제주도 감귤 농장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 농가에서 이런저런 일손들이 모자란다. 한때 대학생들 위주로 '농촌에 워킹홀리데이 가자'는 움직임이 약간 일기도 했지만, 금방 사그라들었다. 왜 그럴까.

     

    호주의 농촌 워킹홀리데이 같은 경우, 대체로 개인별 능력에 따라서 각기 다른 임금이 지급된다. 예를 들어, 몇 킬로그램(kg) 당 얼마, 몇 박스에 얼마, 이런 식으로 임금을 계산하고 지급하는 거다. 그래서 열심히 일 할 놈은 열심히 하고, 지쳐서 못 하겠으면 쉬엄쉬엄 해서, 각자 능력에 따라 정도껏 하면 된다. 아시다시피 한국 농촌은 이런 형태가 아니다.

     

    게다가 한국 농촌은 젊은이가 가면 이런저런 다른 일들도 많이 시킨다. 예를 들면, 무 뽑기를 하려고 갔는데 하루종일 무가 가득 든 포대자루를 옮기고, 쌓고, 정리하는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일당은 똑같이 준다. 이러면 누가 가서 일을 하려고 할까.

     

    그런 일은 따로 그 일을 하는 인력을 고용하거나, 팀장이나 관리자를 뽑아서 시키고 일당을 조금 더 주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이러면 너무 계산적이라며 한국인의 정을 들먹이는데, 일에 정 같은 것을 넣으면 피해보는 사람들이 생기고, 전체적으로 능률이 저하되기 쉽다. 일은 일이고 정은 정이다. 이걸 분리하는게 계산적이라면, 차라리 계산적인 사회가 되는게 어떤가.

     

    한국이, 특히 농촌이, 과연 일손이 없어서 인력이 모자랄까. 합리적인 체계 없이, 젊은 사람들이 너무나 손해를 보는 구조라서 그쪽으로 안 가는 것은 아닐까.

     

    제주도

     

    당장 지자체 차원에서, 무슨 의미인지도 알 수 없는 축제 하나 없애고, 농어촌 일손돕기 축제 같은 걸 열면 어떨까. 참가자들에게 숙박비를 지원하고 일당을 약간 보조해주는 대신, 농가에는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노동 시스템을 지도해주는 거다. 물론 지자체도 지금은 그걸 알지 못 하니까, 매년 시행착오를 거듭해가면서 시스템을 개발해야 할 테다. 그렇게 몇 년 지속적으로 하고, 일년 내내 수시로 전국 여기저기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다면, 전국이 워킹 홀리데이 대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청장년층이 농어촌에서 이런 체험을 해본다면, 귀촌, 귀농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테고, 고령화 사회의 노후 대책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경험해보지 못 한 일은 꺼리게 된다. 그래서 빈곤에 하루하루가 고달퍼서 쩔쩔매는 상황이 와도 농촌 같은 곳에 가서 일 할 엄두도 안 나고,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게 되는 거다.

     

    그런 경험이 있다면 어쩌든간에 굶어죽지 않게 일을 할 방법을 알게 된다. 그 일을 할지말지는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애초에 일을 어떻게 구할지조차 모르는 상황은 아니게 되는 거다. 농가 입장에서도 오래전에라도 한 번 쯤 일을 해 본 사람을 쓰는게 생 초짜보다는 나을테고.

     

    농촌에 일손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온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일손이 없다고만 외치고 있고, 한쪽에서는 부당하고 어려움을 주장하고 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중재하려는 노력이 과연 있었나 의문이다. 아무쪼록 우리 농촌도 시대의 변화에 맞게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서, 실업도 해소하고 농촌도 사는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

     

    p.s.

    * 위에서 소개한 농가의 블로그: blog.studyeasy.co.kr

    * 여기서 소개한 이런 형태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농가가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란다.

    * 갑갑해서 써봤지만, 과연 어딘가에 가 닿을지는 의문이다. 안 되면 말고.

    * 어쨌든 나는 올겨울 귤따기 알바자리 구하기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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