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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 자전거길: 나주 - 죽산보 - 영산강 하구둑 인증센터국내여행/자전거2017 2018. 9. 18. 17:18
나주 어느 다리 아래서 대강 하룻밤을 지내고, 날이 밝으려 할 때 바로 일어나 다시 길을 떠났다. 밤새 낚시하던 사람들 철수하는 소리가 들려서 혼자만 남았는 줄 알았는데, 옆쪽을 보니 자동차 가지고 와서 야영하는 사람들이 몇 있더라. 그래도 이쪽은 새벽에도 술 가지고 와서 먹는 사람들이 있어서 권하고 싶지 않다.
아직 가로등도 꺼지지 않았지만, 어둠이 가셨으니 다시 페달을 밟는다. 자전거 여행에서 가장 좋은 시간이, 해 뜨기 전 어스름이 하늘이 밝아올 때부터 해 뜨고나서 얼마 후까지다.
이 시간엔 차도 사람도 거의 없고, 선선한 아침 바람이 라이딩을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 아직 채 가시지 않은 공기 중의 이슬이 얼굴을 촉촉하게 만들어 줘서 아마 피부에도 좋을 거다. 물론 입을 크게 벌려봐도 목이 축여질 정도로 들어오질 않아서, 이슬을 먹고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깨달을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다.
나주만 벗어나면 바로 목포다. 이미 영산강 하류로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실개천 같았던 강이 어느새 큰 물줄기를 이루고 있었다.
가까이 붙어있다시피 하지만, 섬진강과 영산강은 느낌이 사뭇 다르다. 섬진강이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한 느낌이라면, 영산강은 다소 무뚝뚝하고 직선적인 느낌이다. 내 취향엔 섬진강이 좀 더 구경하며 다니기 좋더라.
나주 마을 안쪽을 살짝 스쳐서 도로를 다고 밖으로 나간다.
마을 벗어나자마자 오르막길이 시작돼서 아침부터 기운을 좀 뺐다. 물론 아침밥이나 간식 따위는 없다. 그런 것 다 챙겨다니기엔 너무 무겁다. 2리터짜리 생수 두 통 지고 다니기도 힘들어 죽겠다. 언제나 아침은 물배로 채운다. 이래서 자전거여행 중에 살이 쭉쭉 빠졌다.
그래도 힘들게 오르막길을 오른 보람은 있더라. 나주, 정말 의외로 자전거 타기 괜찮은 곳이다. 기회 되면 한 번 가보시라. 특히 아침에 강변길이 좋다.
민주주의, 공산주의, 추락주의. 저 표지판을 볼 때마다 뛰어들고 싶은 욕구가 느껴진다. 하지만 아직 추락을 기본 이념으로 하는 추락주의에 완전히 감화되질 못 했다.
추락주의 사회에서 추락을 막아놨다. 이념을 실천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주시에서 대략 10킬로미터 쯤 가니까 죽산보가 나왔다. 빨갛게 밝아오는 아침 햇살과 반짝이는 강을 보며 굴러오니 금방이었다.
죽산보 인증센터. 주변은 공원 처럼 꾸며져 있고, 강도 내려다보여서 쉬어가기 좋다. 이 아침에도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몇몇 보이더라.
화장실 문에 써 붙여진 무서운 경고 문구. 문을 닫지 않으면 뱀이 화장실 안에도 들어가기 때문에 이런 글을 써 붙여 놨을 테다. 이걸 보고는 화장실 들어가기가 무서워지고, 일을 볼 때도 어디선가 뱀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어서 신경이 곤두섰다. 영산강 자전거길에선 뱀을 한 번인가 밖에 못 봤는데.
그러고보니 화장실 푯말도 구불구불하니 뱀을 형상화 한 것 처럼 보인다. 아이고 무서워.
뱀이 나올 것 같은 공원 분위기. 빨리 여길 떠나야겠다.
죽산보에서 나주영상테마파크 쪽으로 갔는데, 테마파크는 아예 보이지 않았다. 그대신 한쪽엔 강이 있고, 다른 쪽엔 절벽이 있는 길로 접어들었는데, 여기 분위기가 아주 음습하다. 이번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기운이 안 좋기로 두 번째 정도로 꼽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이런 곳은 조심해서 빨리 벗어나는게 상책이다.
영산강 자전거길은 강이 안 보이는 내륙 쪽으로도 길이 많이 나 있어서 좀 더 지루하게 느껴진 것 아닌가 싶다. 물론 이때쯤 자전거 여행이 다소 싫증이 나기도 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내륙 길을 참고 타다보면 또 시원한 길이 나온다.
꽤 긴 구간을 강 위로 데크를 만들어놨던데, 이런 길은 정말 자전거 타고 달리기 좋다. 경치도 좋고, 강바람도 좋고, 자전거도 잘 나가고. 하지만 간혹 튀어나온 못이 있기 때문에, 못이 박혀 있는 곳은 되도록 밟지 않고 가는게 좋다. 낚시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서, 여기서는 속력을 줄이는게 좋을 듯 하다.
느러지 전망대에 인증센터가 있기 때문에, 좋은 길로 둘러갈 수도 있었지만 굳이 시골길을 탔다. 한 번 쯤은 가봐야지 해서.
전망대 근처로 갈수록 길이 안 좋아진다. 거의 비포장길이나 마찬가지. 이 정도는 그래도 개의치 않고 갈 수 있는데, 정작 신경쓰이는 것은 가까이서 들리는 총 소리다. 아직 오전인데 이 시간부터 뭐를 잡는지 계속해서 총을 쏴 대더라, 그것도 아주 가까이서. 혹시나 잘 못 쏘거나 해서 총을 맞지 않을까하는 불안함에 쉬지 않고 페달을 밟았다.
느러지 전망대 가는 길. 오르막 13%. 오르막, 내리막이 10%를 넘어서면 자전거를 끌고 간다. 끌고가는게 더 빠르고 편하다. 자전거를 잘 타는게 목적이 아니니까.
다행히도 산이라기보다는 언덕 정도였다. 오르막길은 금방 끝났고, 오르막이 끝나자마자 느러지 전망관람대 인증센터가 나왔다. 벤치가 있는 쉼터에는 그늘이 없고, 길바닥에 나무 그늘이 있어서 길바닥에 주저앉아 잠시 쉬었다.
인증센터 부스에서 한 50미터 쯤 떨어진 곳에 전망대가 있었다. 실내에서 모니터로 편하게 사진으로 보고 있으면, 이왕 간 김에 저기도 올라보면 좋겠다 싶겠지만, 막상 아침도 굶고 몇십키로 자전거로 달려서 오르막길 끌고 올라간 다음 저걸 보면 그런 생각 안 든다.
전망대 오르는 계단을 보자마자, 아이고 됐다, 전망은 무슨 얼어죽을, 전망대에 오르면 기후차로 얼어죽고 말 거야라며 쉽게 포기할 수 있다. 적절한 포기는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좋다.
전망대에 오르지 않아도 충분히 아래가 내려다보인다. 이 정도 전망으로 만족할 테다. 그리고 만약 다음에 영산강 자전거길을 탄다면, 느러지 전망대는 안 가는 걸로. 여기를 안 가도, 둘러서 차도 쪽으로 가는 길이 있다. 지도 보면 나온다.
올라왔으니 내려가는게 당연하긴 한데, 내려가는 길이 더 길더라. 11% 정도 경사면 대략 브레이크 잘 잡아가며 내려갈 수도 있는데, 이게 평균 경사를 표시한 거고, 급격한 경사가 중간중간 있어서 아예 끌고 내려갔다. 길에 자갈과 흙도 많아서 까딱 잘 못 하면 뒤집히거나 미끄러지기 딱 좋겠더라.
11% 구간 지나서 살짝 타고 내려왔더니 다시 12% 시작. 또 끌고 내려간다. 아아 정말 싫어.
거의 다 내려와서 마을 어귀로 접어드니, 동네가 포근한 분위기가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냥 아무것도 없이 길이 끝났으면 딱히 가보지 않아도 될 곳으로 기억됐을 텐데, 이 마을이 있어서 그나마 따스한 곳으로 기억에 남았다.
조그만 마을로 접어들면서부터는 길도 좋아졌다. 파란색으로 다 칠해져 있지만, 자전거 전용 길은 아니다. 차량 통행이 거의 없을 뿐, 모든게 다 다닌다.
전망대 마을 벗어나니 바로 무안.
길이 무안해.
점심때까지 아무것도 못 먹었다. 물론 사람은 물만 먹고도 꽤 오래 버틸 수는 있지만, 땡볕에 자전거를 타는건 좀 다른 문제다. 중간에 조그만 마을이 나오길래 기웃거려봤지만 매점 같은 것도 없고. 계속해서 물만 마시고 달렸다. 내가 못 찾은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목포까지 밥 먹을 데가 하나도 없더라.
역시 금강산만 식후경이다. 나주-목포 구간을 달린다면 미리 먹을 것을 조금 챙기는게 좋겠다. 금강산에서 먹고 오든지.
영산강하구둑 18킬로미터 표지판을 지나면서부터 좋은 자전거길이 나온다. 달리기도 좋고 구경하기도 좋다. 그리고 다이어트에도 좋다, 밥이 없기 때매.
영산강 하류 쪽에서 커브를 한 번 틀었더니, 강에서 바다 분위기가 났다. 이제 거의 다 온거다.
전라남도청 근처 자전거길은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잘 닦인 아스팔트에 색칠도 새로 했는지 페인트가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근데 이 강렬한 파란색 줄이, 달리면서 보면 마치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듯 한 느낌이 나더라.
게다가 오른쪽 왼쪽으로 번갈아가며 커브가 꺾여서, 이 색깔 자체가 라이딩의 즐거움이 될 정도였다. 이거, 파란색에 펄을 좀 섞으면 반짝반짝 빛나면서 더욱 예쁘지 않을까 싶던데. 누가 좀 해줘봐.
이제 슬슬 도시가 보인다. 저쪽이 남악신도시. 목포 바로 옆이다.
커다란 다리를 하나 건너야 하는데, 이 다리를 건너기 위해서 가는 길이 좀 이상하게 꼬여 있어서 헤맬뻔 했다. 하지만 이쯤에서 미니밸로를 타고 맹렬한 속도로 달리는 여성 라이더를 보고 길을 잘 찾을 수 있었다. 와 진짜 미니밸로로 시속 20키로 넘게 달리더라. 역시 자전거에서 제일 중요한 건 엔진이다.
오른쪽 끝에 보이는 한옥 지붕의 건물이 전라남도청. 나름 예쁘게 짓는다고 지은 거겠지만, 좀 언밸런스 한 느낌. 어쨌거나 내 알 바 아니고, 이 앞을 지나면 바로 목포가 시작된다.
목포시 경계선 무렵에 있는 영산강하구둑 인증센터. 여기가 영산강 마지막 인증센터다. 영산강 자전거길의 시작이자 끝인 지점인 것 치고는 좀 초라하다. 바로 옆에 야구장이 있는데, 인증센터는 주차장 한쪽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형태다. 별다른 감흥이 느껴질 수 없는 분위기였는데, 그나마 음료수 자판기가 있는게 특징이다. 하지만 천 원 짜리 지폐가 없어서 나는 여기서도 물만 먹고 가지요.
인증센터 바로 앞 자전거길 모습. 이미 강이라기보다는 바다 같은 느낌이다. 살며시 바다 냄새도 나고. 바다하고는 좀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바람이 그리 많이 불지는 않았지만.
이제 여기서 또 고민이 시작된다. 오늘 밤은 어디서 잘까라는 고민. 도시는 이게 안 좋다. 아무데나 퍼질러 잘 수가 없다. 어쨌든 오늘은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달려서 정말 보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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