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영화가 있다. 영화 '봄날은 간다'도 그중 하나다.  

 

이 작품은 딱히 불꽃같이 타오르거나 죽고 못 사는 애절함 없이 사랑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내어, 어떻게 보면 밋밋하고 심심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어쩌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볼 만한, 혹은 겪어봤을만한 일을 담아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기억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물론 풋풋한 시절의 이영애와 유지태가 나온다는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일 테고. 

 

나는 영화보다도 가수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 노래를 더 좋아하고, 요즘도 가끔씩 봄바람 들 때면 찾아듣곤 한다. 어쩌면 내게는 그 노래가 주 모티브이고, 영화는 노래를 듣다가 간혹 떠오르는 곁가지 역할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근 20년이 되도록 기억되는 영화인 것은 틀림없는데, 작중에서 중요한 장면과 대사들이 나왔던 은수(이영애)네 아파트가 바로 동해시에 있다.

 

 

라면 먹고 갈래? 동해시에서 - 영화 '봄날은 간다' 촬영지, 은수네 아파트

 

동해시 묵호동에 있는 '삼본아파트'가 바로 영화에서 두 주인공이, 연인으로 시작하고 끝나면서 중요한 대사와 장면들이 나왔던 곳이다.

 

 

라면 먹고 갈래? 동해시에서 - 영화 '봄날은 간다' 촬영지, 은수네 아파트

 

각도를 잘 잡아보면 은수가 난간에 팔을 얹어 턱을 괴고 이쪽을 내려다 볼 것 같다.

 

근처에 영화 촬영지임을 알리는 표지판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아파트 이름으로 지도로 찾아가야 한다. 알고보면 찾기 쉬우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라면 먹고 갈래? 동해시에서 - 영화 '봄날은 간다' 촬영지, 은수네 아파트

 

아파트 입구 바로 옆 작은 주차장, 사진에서 오른쪽 아래 택시가 있는 곳이 바로 그 유명한 "라면 먹고 갈래?" 대사가 나온 곳이다. 정확히는 "라면 먹고 갈래요?"였다.

 

 

라면 먹고 갈래? 동해시에서 - 영화 '봄날은 간다' 촬영지, 은수네 아파트

 

바로 옆 아파트 사이 공간으로 멀리 바다가 보이는 길은 이별 장면을 담은 곳이다.

 

은수가 "헤어지자. 우리 헤어져."라고 하니까, 상우(유지태)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했던 곳이다.

 

물론 지금은 예전과 많이 바뀌어서 정확히 그 장소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람 눈이 가진 희한한 특성인 '걸러서 보기' 기술을 발휘하면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다.  

 

 

영화 봄날은 간다 스틸컷

 

여기서 이별을 통보받은 후에 상우는 찌질해진다. 보는 사람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라면 먹고 갈래? 동해시에서 - 영화 '봄날은 간다' 촬영지, 은수네 아파트

 

아파트 입구에 있는 버스정류장은 옛날에도 사실은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영화 찍을 때는 연출을 위해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정류소를 만들었다고.

 

 

라면 먹고 갈래? 동해시에서 - 영화 '봄날은 간다' 촬영지, 은수네 아파트

 

상우가 은수를 만나려고 타고 온 버스를 내려서 걸어왔던 곳. 영화에서는 저 길 끄트머리쯤에 버스 정류소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좀 이상하긴 했다. 아파트가 이쪽에 있는데 정류소가 저기 있다니.

 

어쨌든 지금은 모든게 많이 변했다. 영화가 개봉한 때가 2001년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때는 이 일대에 삼본아파트 말고는 별다른 건물이 없었다는데, 지금은 주위에 다른 아파트와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다.

 

왼쪽 옆에 보이는 건물도 영화에서는 없었고, 길 주변 모습도 좀 바뀌었다. 하지만 길 자체는 남아있으니까 아직도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볼 수는 있다.

 

 

라면 먹고 갈래? 동해시에서 - 영화 '봄날은 간다' 촬영지, 은수네 아파트

 

낮에는 이 정도로 하고 밤에 다시 찾아오기로 했다. 이 길을 따라 걸어가면 벽화마을로 유명한 '논골담길'로 갈 수 있다. 약 800미터 정도 걸어가면 된다. 그래서 겸사겸사 둘 다 함께 보기 좋다.

 

아파트에서 논골담길 쪽으로 내리막길이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아파트를 먼저 보고 걸어서 내려가는게 좋다.

 

시내에서 이쪽으로 가는 버스들이 운행간격이 길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가려면 좀 많이 기다릴 수도 있다. 웬만하면 택시 타기를 추천한다.

 

 

 

내려가는 길에 묵호항 쪽의 바다와 산동네 모습을 볼 수 있다. 논골담길과 바람의 언덕 쪽에서 좀 더 좋은 풍경을 볼 수 있으니, 이쪽에서는 대강 눈으로 감상하며 쭉쭉 걸어가도 된다.

 

 

묵호등대

 

묵호등대가 보이면 이제 다 왔다. 논골담길 관련 내용은 예전 포스팅을 참고하자.

 

> 동해시 논골담길 벽화마을 논골1길 코스 - 가장 유명한 바람의 언덕 가기 좋은 길

 

 

 

묵호등대 야경

 

밤이 됐다. 묵호등대는 현역으로 작동하는 등대이기 때문에, 밤에 불이 켜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밤마실 겸 해서 동네를 둘러보다가, 다시 영화 촬영지로 가본다.

 

 

라면 먹고 갈래? 동해시에서 - 영화 '봄날은 간다' 촬영지, 은수네 아파트

 

'라면 먹고 갈래?'는 밤에 은수를 데려다줬을 때 나온 대사다. 그러니까 밤에 가보는 것이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는데 더 좋다.

 

라면 먹고 가기로 합의하고 방에 들어간 후, 라면을 끓이던 은수는 좀 더 과감한 대사를 했지. "자고 갈래?"라고. 어우야.

 

낮에는 이곳 주차장에서 이런 대사를 떠올리면 좋다. "어서 와서 라면이나 끓여", "내가 라면으로 보이니?". 슬슬 금이 가기 시작하던 그 모습.

 

 

라면 먹고 갈래? 동해시에서 - 영화 '봄날은 간다' 촬영지, 은수네 아파트

 

웬지 아련한 느낌의 버스 정류장. 영화와는 별 상관 없지만, 여기 가만히 앉아 있으면 누군가 반가운 사람이 올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영화를 떠올리며, 사랑을 생각하며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에 젖어보면, 주민들이 지나가면서 웬 수상한 놈이냐 하는 눈빛을 반갑게 보내준다.

 

 

라면 먹고 갈래? 동해시에서 - 영화 '봄날은 간다' 촬영지, 은수네 아파트

 

이 도로의 밤 풍경을 배경으로 인상적인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상우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은수가 보고싶어서 택시를 타고 "아저씨 강릉!"하며 여기로 온다. (애인이 강릉에 사는지 동해시에 사는지도 모르니까 깨지지).

 

영화 속에서 여주인공은 강릉에 사는 것으로 나온다. 아무래도 그 당시엔 동해시라는 지명의 인지도가 낮아서 그랬던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 와서는 저 길 끝에서 상우가 달려왔고, 은수와 이 길에서 만나 둘이 꼭 끌어안는다. 허리가 부쉬지도록.

 

 

영화 봄날은 간다 스틸컷

 

영화 속 장면과 비교해보면 많은 것이 변했다는 것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지만, 대충 추억으로 분위기를 느껴보자.  

 

 

라면 먹고 갈래? 동해시에서 - 영화 '봄날은 간다' 촬영지, 은수네 아파트

 

영화를 곱씹어보면서 다시 이 길을 밤에 조용히 걸어가보면 은근한 정취가 있다.

 

봄날은 간다 음악을 들으며 그 당시 자신의 추억도 되뇌이며 걸어가보고 싶겠지만, 이어폰은 빼고 가도록 하자. 갓길이 좁아서 밤에 가끔씩 차가 지나다니면 위험할 수 있다.

 

 

논골담길 야경

 

논골담길 야경은 은근한 매력이 있는데, 아주 화려하지는 않지만 멍때리기 좋다. 가히 이곳은 멍때리기 명소라 칭할 만 하다.

 

 

라면 먹고 갈래? 동해시에서 - 영화 '봄날은 간다' 촬영지, 은수네 아파트

 

영화 촬영지 자체는 크게 볼거리도 없고, 대단한 것도 없지만,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추억을 떠올리기는 좋다. 논골담길 여행을 중심으로 하면서 겸사겸사 갔다오면 되겠다.

 

 

 

 

p.s. 잡다한 이야기

 

1.

누군가에게 '봄날은 간다'는 마치,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 처럼 그저 오래된 영화일 뿐이다. 그래서(?) 묵호등대는 '미워도 다시 한번' 촬영지이다.  

 

 

 

2.

영화를 추억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유명한 대사 "라면 먹고 갈래?"를 떠올릴 테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라면이 땡긴다.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 라면 먹고 갈래라고 물어주지 않을 테니까, 스스로 알아서 찾아 먹어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근처에는 라면을 먹을만 한 곳이 딱히 없다. 그 흔한 편의점도 없다 (곧 생길 듯 하지만). 밤이라면 그냥 순순히 숙소에 들어가서 컵라면이나 먹는게 좋다. 괜히 돌아다니다가 발만 부르튼다. 낮이라면 약간의 선택지가 있는데, 낮에 라면 먹을만 한 장소는 따로 소개하겠다.

 

> 내게와묵호, 동해시 논골담길 햇빛이 아름답고 등대가 보이는 카페 겸 숙소

 

 

3.

그렇게 헤어진 두 사람. 나중에 여자는 '친절한 살인마'가 되고, 남자는 복수를 위해서 사람을 납치해 15년간 군만두만 먹이는 사람이 된다. 사랑이 이렇게 위험하다.

 

 

Posted by 빈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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