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 저 멀리 GRAY 3 0615

델리를 떠나며



1.

빠하르간지에서 하룻밤을 묵었던 곳은 ‘Hotel Down Town’이라는 게스트하우스(Guest House)였다. 이 동네 숙소들이 다 그렇듯, 이름은 호텔이라고 돼 있어도 시설은 한국의 여관 정도 수준이다. 안팎이 다 더러운 건물에, 방도 대부분 때에 찌들어 있었다. 아무리 청소를 한다 해도, 페인트 칠을 다시 하지 않는 이상 깨끗해 보이기는 어려운 수준이었다.

내가 고른 숙소는 그나마 쥐나 벌레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사람들 말로는 쥐나 바퀴벌레, 개미 등이 들끓는 곳도 많다고 한다. 정말 빨긴 했는지 의심스러운 더러운 침대 시트와 이불, 베개가 놓여 있는 경우도 있고, 빈대나 벼룩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이 숙소는 양반이었다. 시설이 좀 낡은 것 빼고는 별 문제 없었으니까.

그래도 문제가 있긴 있었는데, 바로 소음이었다. 잠 잘 때 꽤 민감한 편이라, 주위 소리에 잠을 쉽게 못 이루는 편이다. 그런데 천정에서 돌아가는 팬fan 소리와, 탁자 위의 에어쿨러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계속 신경을 거슬렀다. 약하게 돌리면 더위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고, 강하게 돌리면 시끄러워서 잠을 이룰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 한 시간 정도 이랬다 저랬다 하면서, 결국 더위와 소음 사이의 적당한 타협점을 찾고 간신히 잠을 이룰 수 있었다.

사실 이건 이 숙소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어떤 숙소든 팬과 에어쿨러가 있으니까. 시설에 따라 소음이 조금 적게 나는 곳이 있긴 하겠지만, 그 소음이란 게 거의 비슷하다. 특히 에어쿨러 소음이 그렇게 심한지 몰랐다. 이렇게 더운 곳에서는 소음 때문에라도 여행 하기 어렵지 싶었다. 어서 빨리 조금이라도 시원한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소음도 소음이지만 더위도 분명 큰 문제인데, 인도에서는 정전도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여름 밤 그 무더운 날씨에 선풍기 하나 돌아가지 않는 방에 누워 있으면 정말 찜질방이 따로 없는데, 정전이라도 되면 아마 난 한 숨도 못 잤을 테다. 그나마 밤에 정전이 안 된 것이 다행이었다.



전날 한국인 부부와 헤어지면서, 오늘 오전 10시에 국립박물관 앞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었다. 약속을 그렇게 하긴 했지만, 열 시에 일어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애초에 없었다. 평소에도 알람시계 소리를 무시하고 계속 자는데, 여행 나와서 피곤하기까지 하니까 제 시간 맞춰 일어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약속 잡을 때, 오 분만 기다리다 안 오면 그냥 두 분이 구경 하시라고 했다.

다행히 오전 9시에 일어났다. 내 의지라기 보다는 더위 때문에 저절로 잠이 깬 것이다. 마침 그 시간에 정전이 되어 팬이고 에어쿨러고 돌아가질 않으니, 더워서 잠을 깰 수밖에 없었다. 일찍 일어날 수 있었으니 잘 됐네 싶었는데, 다른 문제가 생겼다. 단수가 되어 물이 안 나오는 것이다.

그제서야 화장실에 왜 양동이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인도의 게스트하우스 화장실에는 꼭 양동이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청소할 때 쓰는 용도이기도 하지만, 단수를 대비해 미리 물을 받아 놓는 용도로도 쓸 수 있다. 게다가 빨래할 때도 요긴한데, 양동이에 세탁할 옷들을 모두 집어넣고 세탁가루를 뿌려 발로 밟으면 간단히 빨래를 할 수 있다.

그렇게 다양한 용도로도 활용할 수 있지만, 사실 이 양동이의 주 목적은 볼 일 보는데 사용하는 것이라 한다. 큰 볼 일을 보고 손으로 뒤를 닦으며 사용하는 용도. 인도인들은 아직도 일반적으로 볼 일 보고 나서 손으로 뒤를 닦는다고 한다. 좀 잘 사는 사람들은 화장지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보통 일반인들은 아직도 손으로 뒤를 닦는다. 그래서 공공화장실을 비롯해 어느 화장실을 가도 화장지가 놓여 있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대신 화장실에 수도시설과 양동이가 하나씩 꼭 놓여 있다.

화장지가 비싸서 쉽게 사용하기 어렵고, 많이 사용하지 않으니까 화장지가 비싸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인데, 어쨌든 결론은 인도에서 화장지는 물가에 비해 비싼 편이라는 것. 화장지 한 개 값이면 식당에서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런 상황이니 한국처럼 화장실 근처에서 화장지 구하기도 어렵다. 항상 화장지를 준비해 다닐 수 밖에 없지만, 그걸 꼼꼼히 챙겨 다니기가 말처럼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내 경우는 준비물을 꼼꼼히 챙겨 다니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나도 인도 식으로 해결 했던 적이 몇 번 있다. 손이 좀 찝찝하긴 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한국에서 화장지 없이 화장실 들어갔을 때 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한국에서는 화장실에서 화장지가 없으면 정말 대책이 없지만, 인도에서는 차선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도인들은 화장지로 뒤를 닦는 것이 더 비위생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손이 아니라 뒤쪽만 본다면 그 말이 맞긴 맞다. 아무래도 닦는 것보다는 씻는 쪽이 더 깨끗하지 않을까. 수건으로 손 닦는 것과, 물로 손 씻는 것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손이다. 뒤 닦고 나서 그 손을 정말 깨끗이 씻느냐는 것. 화장실에 물은 있지만 비누는 없는 것을 보면, 뒤를 닦고 난 손을 비누로 씻지는 않는다는 뜻일 텐데…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이것저것 의심스러운 것들이 생겼다. 수많은 사람들이 만졌을 돈은 얼마나 더러울까. 그 중에는 화장실에서 방금 나와서 만진 돈도 있겠지? 뭐, 돈이 더러운 거야 어느 나라든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그냥 넘어가자. 그래, 다른 물건들도 그냥 그렇다 치자. 그런데 식당 주방장은 과연 손을 깨끗이 씻고 음식을 만드는 걸까. 주방장도 화장실을 갈 텐데, 비누로 씻지 않고 음식을 주무르겠지… 여기서 생각을 억지로 멈췄다. 비위가 약한 편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계속 한다면 도저히 인도에서 음식을 먹을 수 없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먹고 살려면 그냥 모른 척 하고 넘어가야만 하는 일들도 있는 거니까.



물이 나오지 않는 수도꼭지를 부여 잡고 별 생각을 다 했다. 하지만 몇 십 분이 지나도록 물은 나오지 않았고, 씻지 않고 나가려니 도저히 찝찝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침대에 퍼져 누웠다. 기다리는 분들에겐 미안했지만, 그리고 그 분들 성격을 봐서는 오 분만 기다리고 말 것 같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이 더운 날에 세수도 하지 않고 버석하게 마른 얼굴로 밖에 나가긴 정말 싫었다.

열 시 즘 물이 나와서 샤워를 했다. 오전부터 후텁지근해서 벌써 온 몸이 땀 범벅이었다. 그 사이에 전기도 몇 번 나갔다 들어왔다 해서, 냉방상태도 영 시원찮았다. 물론 단수나 정전 같은 그런 사정은 그 숙소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동네 전체가 단수였고 정전이었으니까.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쉼터의 확 트인 공간으로 가는 게 오히려 더 좋겠다 싶어 서둘러 짐을 쌌다. 어차피 오늘 델리를 떠날 생각이었기 때문에, 체크아웃을 하고 곧장 쉼터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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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 빠하르간지, 쉼터 가는 골목에 있는 피씨방.
현지인이 운영 하는 곳인데, 가격이나 서비스가 괜찮은 편이다.
최근 한국인 여행객들이 많아지면서 한글을 쓸 수 있는 곳이 많아졌지만,
아직도 한글 사용이 안 되는 피씨방들이 많이 있다.
인터넷 속도는 아주 느린 편인데, 그나마 델리는 좀 나은 편이다.
인도가 IT강국이라는 말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
한국의 웹사이트들은 접속하다가 타임아웃 걸려서 아예 안 뜨는 경우도 많다.
그나마 다음이나 네이버의 경우는 3초 정도만 기다리면 접속된다.




2.


열한 시경 쉼터에 도착하자, 쉼터 주인 아저씨가 나를 알아보고 반겨 주었다. 어제 북쪽으로 함께 갈 동행을 소개해 주신다고 했는데, 그 분이 벌써 여기 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소개해 주기로 한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못 찾으셨다. 한 번 휙 돌아보면 모든 사람들을 다 볼 수 있는 작은 규모의 공간인데도.

“어제 그 스리나가르 간다는 이쁜 여자분 어딨어?”

결국 아줌마에게 물어봤다. 부엌에 있던 쉼터 아줌마가 나와서, 바로 정면에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앉아 책 읽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저기 있잖아!”한다. 이쁜 여자분이라면 당연히 아저씨도 남자이니 한 눈에 딱 어디 앉아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을 텐데, 대체 왜 그랬던 걸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어쨌든 이렇게 오이양과 만나게 됐다. 이 때만 해도 단순히 한 며칠 함께 다니다 헤어질 단순한 길동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질기고 모진(?) 인연의 끈으로 연결 돼 있었으니, 이 때는 그걸 전혀 알 수 없었다. 사람 일이라는 것, 정말 모를 일이다. 오이양과의 에피소드와 그 별명이 붙은 이유 등은 후에 차차 자연스레 밝혀질 테다.

오이양의 첫인상은 푹 눌러쓴 모자에, 두꺼운 뿔 테 안경에, 두꺼운 가이드 북에 코를 박고 있는 모습이었다. 영락없는 가이드북 의존형 모범생 타입. 그런데 막상 말을 걸어 보니까, 시원한 성격에 남성미(?)가 넘쳐 흘렀다. 가이드북에 너무 의존하는 여행자는 나하고는 여행 스타일이 영 맞지 않기 때문에, 처음엔 약간 걱정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함께 여행을 해 보니, 오이양은 그런 타입이 아니었다. 심심할 때만 책을 보는 편이라고 할까, 다행스럽게도 가이드북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타입이었다.

둘 다 쉼터 주인 내외를 통해 소개 받은 사이이니, 이미 다음 목적지가 비슷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나는 그 때까지만 해도 특별한 목적지 없이, 단지 덥지 않다는 북쪽 지방으로 가길 원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오이양은 구체적인 계획을 짜 놓은 상태였으니, 딱히 의견 조율 따위를 할 필요도 없었다.

“저는 일단 맥그로드 간지로 가려고 해요. 거기 들렀다가 스리나가르로 가려구요.”

‘맥그로드 간지’라는 처음 들어보는 지명이 나왔다. 사실 이 때만 해도 스리나가르니, 레니, 마날리니 하는 지명이 너무 낯설어 제대로 외우기도 힘들었다. 빠하르간지라는 동네 이름도 자주 까먹고 기억 못 하는 형편이었다. 그런 상황이니 맥그로드 간지가 뭐 하는 곳인지 제대로 알 리도 없었다.

“거기도 북쪽이에요?”
“네.”
“그럼 같이 가죠.”

간단한 인사와 말 몇 마디 나눈 것으로 협상 종료. 일 분도 안 되는 시간에 여행 스케줄 확정. 그리곤 바로 함께 버스표를 사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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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하르간지의 한 가게.
옷가게에서 파는 인도풍 옷들은 색깔이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여자들의 경우라면 현지에서 기분 내기 위해 간단히 입을 용도로 사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단, 현지에서 예뻐 보이는 것도 한국으로 갖고 들어오면 어색하고 촌스러워 보이니,
어지간해서는 선물용으로는 적합하지 못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싼 것은 물도 많이 빠진다)




3.

쉼터 아저씨가 추천해 준 현지 여행사에 가서 맥그로드 간지로 가는 버스표를 예매했다. 딱히 좋고 나쁜 여행사는 없고, 다 거기서 거기란다. 단지, 추천해 준 곳은 돈을 떼 먹거나 속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여행 시작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난 이미 속는 것에 노이로제 비슷한 것이 걸린 상태였다. 그래서 속이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다면, 다른 곳보다 좀 비싸더라도 그 곳으로 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다행히 그 여행사는 다른 곳보다 비싼 것도 아니었다.

버스는 오늘 오후 세 시 삼십 분에 출발한다고 했다. 출발까지 네 시간 즘 남았다. 아직 밥도 안 먹은 상태여서, 우선 근처 식당으로 갔다. 이번 여행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현지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인도 식 백반 정식이라 할 수 있는 탈리Thali를 시켰다. 우리나라에서 백반 정식을 시키면 밥과 함께 몇 가지 반찬이 나오듯, 탈리도 마찬가지였다. 밥과 함께 몇 가지 반찬들이 큰 쟁반에 모두 담겨 나왔다. 그 속에는 인도하면 떠오르는 음식인 카레도 들어 있고, 밀가루를 얇게 펴서 만든 빵이라고 할 수 있는 짜파티Chapati도 있었다.

처음 먹어본 인도 카레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먹는 카레에 비해 맛도 진하고 향도 강했다. 자극적인 음식을 못 먹는 사람이라면 배탈이 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였다. 좀 과장해서 비교를 하자면, 인도 카레가 콜라라면 한국 카레는 설탕 물이다. 인도 카레가 내 입맛에 맞았기 때문에 이렇게 우호적으로 표현했다. 인도 카레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굉장히 다른 형태로 비유를 하지 않을까. 어쨌든 객관적이고 확실한 사실은, 인도 카레는 맛과 향이 아주 강하다는 것이다.

쉼터에서 꾸물거린 시간도 있고, 버스표 사느라 여행사에서도 시간을 꽤 보냈다. 게다가 식당에서 밥까지 먹었으니, 딱히 뭔가 할 만 한 시간이 없었다. 두어 시간 정도 남은 걸로 시내 구경 가기도 뭣하고 해서 오이양과 함께 빠하르간지 가게들 구경을 했다.

처음 이 골목을 들어올 때는 그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중압감과 낯섦, 어색함, 두려움 등으로 사진도 제대로 못 찍었다. 카메라를 꺼내면 누군가 그걸 날치기 해 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저절로 들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겨우 이틀 만에 이 어수선한 거리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사진도 마음껏 찍고, 물건값 흥정도 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도 하고, 사람들 구경도 하고. 사람이 많아서 어수선하고 분주하다는 것뿐이지, 여기도 그렇게 위험하거나 항상 경계하고 긴장하며 다녀야만 하는 곳은 아니었다. 나중에 여기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이 포근한 느낌까지 받았을 정도였다. 어디든 정 붙이면 다 아름답고 정겨워 보이는 것 아닐까.

처음으로 빠하르간지 길 가에 있는 가게들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구경했다. 막상 여기저기 들여다보니 눈길 가는 것도 많고, 사고 싶은 것도 많았다. 여행에 필요한 잡다한 물건들은 모두 현지에서 해결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자잘한 물건들에 눈길이 갔다. 하지만 결국 여기서 산 것은 십 루피짜리 작은 손수건 하나. 돈을 아낀다기 보다는, 아직 크게 필요한 물건이 없어서였다. 나중에 꼭 필요하게 되면 그 때 가서 사자는 생각으로 일단은 그냥 구경만 하고 다녔다. 손수건은 땀이 너무 흘러서 꼭 필요하겠다 싶어 샀는데, 사자마자 후회를 했다. 면이 워낙 질이 안 좋아서, 땀이 제대로 닦이지 않았다. 조금 좋게(?) 말하자면, 방수 되는 손수건이었다. 그래도 이때 산 손수건을 여행 끝 날 때까지, 시커먼 때가 안 빠질 정도가 될 때까지 사용했으니, 본전을 뽑고도 남았음에 만족한다.



쇼핑을 하면서 은행에 들러 환전을 했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환율이 안 좋아진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되도록 델리에서 많은 돈을 환전했다. 말 나온 김에 말하자면, 북쪽으로 갈수록 환율이 안 좋다는 말은 백 퍼센트 사실이었다. 델리에서 100달러(USD)를 환전하면 4620루피를 받았는데, 레에서는 4520루피를 받았다. 100루피면 1리터짜리 물이 열 통이다. 현금을 많이 들고 다녀서 좋을 것은 없지만, 그래도 손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델리에서 되도록 환전을 많이 해 가는 것이 이득이다.

나는 인도에서 환전을 주로 은행에서 했는데, 암달러상이 영 신통찮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환전 영수증 때문에 은행에서 환전을 했다. 기차역에서 외국인 전용 창구를 이용해 기차표를 끊을 때, 환전 영수증을 보여 달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의 모든 여행자들이 한 번 즘은 은행에서 환전하고 영수증을 확보한다.

일단 환전 영수증을 확보하고 나서는 여기저기 환율을 알아보고 다녔다. 여행사를 비롯한 많은 가게들이 환율을 밖에 써 붙여 놓았기 때문에, 다니면서 비교해 보기는 쉬웠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결국 은행이 제일 낫다는 것이었다. 일부 환율을 굉장히 좋게 써 붙인 가게도 있었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수수료(commission)가 있었다. 수수료를 계산하면 결국 은행보다 환율이 안 좋거나 비슷한 수준이었다.

한 번은 빠하르간지에서 암달러상에게 환율을 물어봤는데, 은행보다 영 형편없는 가격을 불렀다. 내가 ‘왜 은행보다 환율이 안 좋은 거냐?’라고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이다. ‘블랙마켓(black market)이기 때문에 그래’. 이해도 안 되고 할 말도 없어서, 더 물어 보지도 않았다. 보통 블랙마켓이면 은행보다 환율이 좋아야 하는 게 상식인데, 블랙마켓이기 때문에 은행보다 환율이 안 좋은 거란다. 내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했다. 은행은 환전할 때 여권을 보여 달라고 하기 때문에, 뭔가 사연 있는 사람들은 블랙마켓을 이용하는 게 아닌가라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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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백반 정식이라고 할 수 있는 '탈리'.
큰 쟁반에 밥과 함께 이런 식으로 음식들이 담겨져 나오는 것이 바로 탈리다.
앞쪽의 빵처럼 생긴 것은 짜파티라고 하는데,
쌈 싸 먹듯이 밥과 카레 등을 싸서 먹는다.
쌀은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찰지지 않은, 날리는 쌀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된장이나 김치를 매 끼니마다 밥상에 올리듯,
인도에서는 카레가 자주 밥상에 올라 오는데,
카레 종류도 아주 다양하다.





4.

오후 세 시에 다시 표 끊은 여행사 앞으로 갔다. 여행사 입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인도인 한 명이 우릴 버스 타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가는 도중에 다른 두 사람도 합류했는데, 해나와 큰형님이었다. 이 때 처음 만난 이 사람들도, 이 때만 해도 그냥 길 가다 만난 사람일 뿐이었다. 이렇게 길에서 스친 사람들이 나중에 큰 인연이 되어 친구도 될 수 있다는 거, 여행이 주는 가장 큰 혜택이 아닐까. 여행 하면서 나쁜 짓 하면 안 되겠다 싶다. 어디서 어떻게 다시 만날지 모르니까. 그래, 착하게 살자.

빠하르간지 골목을 벗어난 큰 길 가에 이미 우리 말고도 버스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 있었다. 그 중 한국인은 나까지 포함해서 네 명뿐이었고(오이, 해나, 큰형님), 모두 서양인들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여행자들뿐만 아니라, 잡상인들과 현지인들도 함께 모여 있었다. 일반 현지인들은 그냥 여행자들을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이었다.

인도의 평범한 일반인들은 외국인과 이야기를 나눠 본 사람도 별로 없고, 직접 본 적 있는 사람도 별로 없다고 한다. 게다가 원래 호기심도 많은 사람들이니, 이렇게 여행자들이 떼로 몰려 있으니 신기해 미칠 지경인가보다. ‘헬로, 헬로’ 하면서 말 한 번 붙여 보려고 애 쓰는 사람들도 많았고, 괜히 얼쩡거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심지어는 지나가는 시내버스 승객들도 모두 목을 쭉 빼고 우리쪽을 쳐다볼 정도였다. 그렇게 신기할까, 나는 너네들이 더 신기한데. 인도 시골 구석에 들어가, 외국인과 얘기 나누는데 1분에 10루피 받으며 장사해도 잘 되겠다 싶었다.



세시 반에 온다는 버스는 한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고, 그 사이 우린 길 가에 쭈그리고 앉아 멍하니 있거나 책을 읽거나 했다. 현지인들도 지쳤는지 이제 죽치고 앉아서 구경 질이다. 그 만 하면 이제 집에 갈 때도 됐지 싶은데 뭐가 그리 신기할까. 나 같으면 효리가 눈 앞에 있다고 해도 한 시간 동안 죽치고 앉아서 구경하지는 못 할 것 같은데. 어쨌든 버스는 거의 다섯 시가 다 되어서야 우리를 태우러 왔다.

짐을 싣고 버스에 올라 탔는데, 버스 안에서 시비가 일어났다. 해나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던 것. 표를 보니 자리 번호가 똑같았다. 차장은 해나에게 맨 뒤에 가서 앉으라고 했지만, 해나는 뒷자리는 멀미 하기 때문에 가기 싫다고 버텼다. 이게 뭐냐고 항의하는 해나에게, 차장은 버럭 화를 내며 싫으면 내리라고 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서양인들은 내리면 안 된다고, 얘네들 한 번 돈 받으면 절대 다시 돌려 주지 않는다고 말 할 뿐이었다.

나와 일행은 집중해서 보고는 있었지만, 어떻게 끼어들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이미 앉아 있는 승객이 있으니, 그 자리에 앉게 해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함께 화를 내며 내리겠다고 해 봐야 돈만 날릴 것 같았다. 분명 자기네가 잘못한 일인데도 아무 문제 없다고 당당하게 나서는 데는 화가 났지만, 어떻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 때는 그저 바라보며 가만히 있기만 했다.

그 후에 여러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그럴 때는 강력하게 항의를 하는 편이 낫다고 한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런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웬만하면 그냥 넘어간다고 한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습관으로, 옳지 않은 대접을 받고 불이익을 당해도 대충 그냥 넘어가는 것이다. 그 결과는 예의 바른 한국인 이미지일까? 아니다. ‘아, 쟤네들은 저렇게 해 줘도 별 말 없구나’ 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그러는 것이다.

똑같은 상황에서 서양인들, 특히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주 다르게 대응한다. 불같이 화를 내며 떼로 덤비며 항의하는 것이다. 아무 대책 없는 상황인데도 일단 화를 내며 강력하게 항의 한다. 옆에서 보는 입장에서 너무하다 싶어 짜증이 날 정도로. 그 결과는? ‘쟤네들은 잘 못 해 주면 귀찮으니까, 제대로 해 주자’이다.

결국 참아봤자 손해만 보고, 뒤에 오는 한국 여행자들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것이다. 도움이 안 될 뿐만이 아니라, 문제를 그냥 두어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히는 꼴이다. 그러니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 나뿐만이 아니라, 내 뒤에 올 사람들을 위해서.

단, 너무 싸워서 싸움닭처럼 보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여행 하다가 보면 물건값이 비싸다고 화를 내는 한국인들도 꽤 있었다. 이런 때는 일단 깎아보고, 정 아니다 싶으면 그냥 안 사고 나오면 되는 것 아닐까. 결국은 적절히 잘 조절해야 한다는 말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태도도 별로 좋지 않고, 사소한 데 화를 내는 것도 좋지 않으니까.

어쨌든 그런 사실을 일찍 알았다면 그 날,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해나와 함께 열심히 항의를 했을 텐데. 나중에 생각하니, 그 때 옆에서 그냥 지켜 보기만 했던 내가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해나에게 이 자리를 빌어 그 때 미안했다고 말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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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에서 맥그로드 간지로 갈 때 탄 버스.
이 정도면 상당히 좋은 버스에 속한다.
그런데 좌석은 한국의 좌석버스의 의자와 비슷하다.
버스 탈 때 긴 팔 옷은 미리 꺼내서 들고 타야 한다.
에어컨을 어찌나 빵빵하게 틀어대는지, 잘 못 하면 감기 걸리기 쉽다.
버스 지붕은 곧 온갖 짐들로 꽉꽉 들어차게 된다.




5.

델리도 교통체증이 심했다. 버스는 차로 꽉 막힌 도로를 슬슬 기다시피 나아갔다. 게다가 여기저기서 또 다른 승객들을 태우기도 했다. 맨 마지막엔 델리 외곽의 어느 곳에서 티벳 승려들을 굉장히 많이 태웠다. 티벳 승려들은 다른 일반 여행객들보다 몇 배는 많은 짐들을 실었는데, 그 때문에 시간도 그만큼 지체됐다.

처음엔 그냥 ‘우리가 가는 맥그로드 간지라는 곳이 티벳 임시정부가 있는 곳이니까, 저렇게 많은 티벳 승려들이 타는 가보다’ 했다. 그런데 우연히 한 승려와 얘기를 해 보니, 며칠 뒤 토요일부터 달라이라마의 설법(teaching)이 있어서 가는 거라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어쩌면 나도 그 유명한 달라이라마의 말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하게 됐다. 종교가 어찌 됐든, 달라이라마나 교황 같은 대단하신 분들을 직접 뵐 수 있다는 건 큰 영광 아니겠는가. 이왕 하는 여행에 그런 기회까지 잡을 수 있다면 정말 알찬 여행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티벳 승려들이 많이 탔던 그 곳은, 델리에서 티벳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동네라고 한다. 그 동네도 델리 관광 코스 중 하나라고 하는데, 별 관심이 없어서 모르고 있었다. 어쨌든 거기서 승객을 꽉 채운 버스는, 더 이상 다른 곳에 들르지 않고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버스는 밤 새 달렸는데, 다음날 새벽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한국의 일반 좌석버스를 타고 열 두 시간 정도를 달린다고 상상해 보자. 서울에서 부산 갈 때 버스로 다섯 시간 내려 가는 것도 불편해 미칠 지경인 것을 감안한다면, 느낌이 좀 오지 않을까 싶다. 그나마 이 때 탄 버스는 인도 버스 치고는 상당히 상태가 좋은 버스였는데, 그래도 내게는 너무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 때가 여행 초기 상태라서, 아직 그런 상황에 적응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이후에 이어지는 여행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주 편한 축에 속했지만, 그 때 당시는 그걸 아직 깨달을 수 없었다.


(www.emptydream.net)

Posted by 빈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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