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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까지고 함께 할 것이라고만 믿었던, 그럴 수 있을 테고 꼭 그럴 거라고만 믿고 있었던 때도 있었다. 서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함께 할 수 없는 시간들을 아쉬워 하며, 어쩌다 있을 단 한 번의 만남을 손꼽아 기다리던 그 때. 약속 장소로 나가는 길이 너무나 어렵고 고된 여정인 것은, 아직 세상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 또한 그렇게 힘들고도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도, 아직 세상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

 내 앞에 닥친 장래의 일보다, 이 세상이 향해 가는 미래의 일보다, 한 사람의 관심이 절실한 때도 있었다. 그 사람이 내게 관심을 보여 준다면, 내 마음을 받아만 준다면 어떻게든 모든 것이 다 잘 풀릴 것만 같았던 때. 모든 초점이 그 사람에게 맞춰져서, 그 사람을 중심으로 내 인생이 펼쳐져 나가고만 있다고 느껴지던 때. 현실과 이상 속에서 혼란을 느끼며 갈등하는 시기. 이미 예정된 이별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마음으로 애절하게 그의 뒷모습만 바라보던 때. 현실이라는 파도를 서핑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기에, 이별도 받아들여야만 했던 때. 차츰, 그렇게 놓아 주어야 하는 사랑도 있음을 깨달아야만 했을 때.

 이후 사랑이란, 아니 연애질이란 그저 그런 것. 최근 3년간 사귄 여성이라는 인물은 모습조차 기억되지 못하는, 그저 한낱 나레이션만으로 끝낼 수 있을 만한 기억. 어째서, 어째서일까. 그 옛날, 눈이 시리도록 슬펐지만 아름답고 따뜻했던 그 날처럼, 지금도 벚꽃은 예전과 똑같이 초속 5 센티미터로 흘러 내리는데. 어째서 마음은, 사랑은, 그렇지 않은 것일까.

 회사를 그만두고 번화한 도시를 걸어보지만,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 뚝 떼고 우뚝서 있고, 추억도 언제 그랬냐는 듯 이미 퇴색하여 변해 있다. 그 날 이후 우리 마음은 초속 5 센티미터로 차츰차츰 멀어져 가고 있었던 걸까. 멀지 않은 어떤 곳에 살아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이제는 연락조차 하기 힘든 상태. 세월의 무게, 혹은 마음의 거리. 모든 것을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변해버렸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 그 많은 시간들 속에서 함께 보고, 함께 걷고, 함께 만나고, 함께 즐겼던 수 많은 시간, 거리, 사물, 사람, 장소들. 그렇게 많은 시간들이 있었는데, 그렇게 함께 한 시간들이 있었는데, 아직도 아련히 기억 나는데, 아직도 가끔은 그 날의 파편들이 갑자기 나타나기도 하는데, 아직도 벚꽃은 그렇게 천천히 조금씩 지고 있는데... 초속 5 센티미터. 그 작은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결국 우리는 여기까지 와 버렸다.

 벚꽃은 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도 잊혀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추억은, 느리게 흐르지만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애틋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 때처럼 천천히, 아련하게 흘러내릴 수는 없겠지, 이미 우리는 초속 5 킬로미터의 속도로 살아가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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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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