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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키지 않는 여행 - 2008 동남아 삽질 여행 1
    해외여행/동남아 2008 2008. 11. 29. 15:08
     

    2008 동남아 삽질 여행 1



    내키지 않는 여행



    건대입구에서 인천공항 가는 버스를 탔다
    . 쌀쌀한 가을 날씨에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나는 반팔 티에 카고 바지, 그리고 센들. 조금만 참으면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싸늘한 바람을 견디며 버스에 올라 탔다.

    공항 가는 버스도 한적했고, 공항 역시도 다른 때에 비교해 보았을 때 영 한적한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세상도 혼탁하고, 경기도 안 좋고, 무엇보다 원달러 환율이 엉망이라 그 영향을 꽤 받는 듯 했다. 코스피 지수 1000이 붕괴되고, 원달러 환율이 1달러 1500원이 넘던 날, 나는 밤 11시 비행기를 타러 인천공항에 갔다.



    (타이항공은 인천공항 안에서도 변두리(?) 별도 건물에서 탑승한다. 공항 내부를 이동하는 전철 안 모습. 아무도 없다. ㅠ.ㅠ)


    (비행기 타러 탑승구까지 가는 길. 역시 아무도 없다. OTL 내가 VIP인 건지도... ㅡㅅㅡ;)




    가격때문에 어쩔 수 없이라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타이항공.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항상 있어서 그런지, 얘네들 탑승시간 연착하는 건 이제 당연히 그러겠거니라고 생각 할 만큼 익숙해졌다.

    그나마 이 날처럼 30분 정도 탑승시간이 뒤로 미뤄지기만 하는 날은 양반이다. 몇 달 전에 타이항공을 탈 때는 그야말로 쌩 쑈를 했다. 비행시간 2시간 30분 전에 공항에 도착했더니 탑승시간이 1시간 앞 당겨져 있어서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수속을 마치고 헐레벌떡 탑승구를 찾아갔었다. 그랬더니 탑승시간은 다시 1시간 늦춰졌고, 1시간 뒤엔 또 40분이 늦춰졌고, 탑승하고 나서도 연착했다. 그에 비하면 30분만 연착 한 건 어떻게 보면 행운이라 볼 수도 있을 정도.



    탑승구에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시아나 항공 승객들을 함께 태운다.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대략 20만 원 이상 더 비싼 아시아나 항공권을 구입한 승객들이 타이항공을 타고 갈 때는 어떤 생각을 할까. 나 같으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을 것 같은데. 다들 점잖으신 분들이라서 항공사의 제휴관계를 이해하고 기분좋게 넘어 가시려나.

    항공사 제휴관계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하는 거라면
    , 반대로 타이항공 탑승권을 구입한 사람이 아시아나를 탑승 할 경우도 생겨야 하는데, 내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도 없거니와, 소문으로도 들어본 적 없다. 거대 자본에 의한 뭔가 부조리한 시스템인 것 같은데, 모르겠다, 난 항상 싼 비행기만 타고 다녀서.



    (비행기 탑승 기다리며 찍은 사진. 내가 탈 비행기는 아니지만, 곧 출발할 사람들이 모여 있는 탑승구보다는 탑승 계획이 전혀 없는 다른 탑승구에 드러누워 있는 편이 편하다. 그러다 비행기 놓치면 집에 가면 되고~ ㅡㅅㅡ;)




    비행기 타기 전부터 이렇게 투덜거리는 건, 사실은 이번 여행이 썩 내키지 않은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공항버스 타기 전부터 지금이라도 취소할까 망설였을 정도다. 보통 여행이 시작될 때 즘엔, 특히 해외라는 낯 선 곳으로 떠날 때는 두려움보다는 미지의 세계와 곧 하게 될 새로운 경험들에 대한 설레임과 기대감에 벅차 올라야 정상이다. 그것도 아니면 이제 잠시의 자유를 얻게 됐다는 잔잔한 여유로움의 조각이라도 즐기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난 이번엔 그렇지 못 했다.

    어딘가 떠밀리듯 떠난 여행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나를 밀어내는 듯 한 느낌, 그 어디에도 내 두 발 붙이고 서 있을 곳 없는 상황. 딱히 뭔가 더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 상태. 그래서 떠난다는 것이 무한정 서글프게만 느껴지는 길. 공항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도 비행기 표를 취소해 버릴까, 가지 말까, 라고 고민 해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언제든 마음 먹을 때 훌쩍 떠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그렇다고 하는데, 나 역시 그렇게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다만 그런 상황을 항상 꿈 꾸며 기회가 닿는 데로 짜집기를 잘 해서 억지로라도 만들어 내는 것 뿐.

    자유라는 것이 그렇다, 이 세상 그 누가 평생을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무리 돈이 많다 한들, 아무리 세상에 속박되지 않는 영혼을 소지한 사람이라 한들, 자유라는 상황은 끝이 있음을 내포하는 한정된 순간일 뿐, 영원히 지속되는 상태가 아니다.

    아마도 그래서 사람들은 적극적인 자유 찾기의 일환으로 여행을 꿈 꾸고 선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한 프랑스인이 이렇게 말 했다. 여행을 하면 숨을 쉴 수 있다고. 무덤 속 처럼 캄캄한 땅 밑에서 죽은 듯이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던 영혼이, 여행을 통해서 비록 짧은 순간이나마 하늘을 보며 긴 숨을 내뱉을 수 있노라고. 여행이라는 돌파구를 찾지 못 했다면 이미 그 무덤 속에서 죽어버렸을 지도 모른다고.

    나 역시도 고개를 끄덕일 만 한 여행 사유였다. 일상은 아무리 즐거워도 억압되고 갑갑한 그 어떤 삶의 무게를 벗어날 수 없지만, 여행은 아무리 힘들어도 맑고 상쾌한 바람에 모든 짐을 훌훌 날려 보낼 수 있으니까. 그래, 그건 분명히 중요하고도 분명한 여행의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여행은, 아무리 어려운 때라 하더라도 아니 어려운 때 일수록,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에 만족할 수 없었다. 여행도 삶 속에서 펼쳐지는 행위이고, 일상의 일부분이다. 즉 여행에서도 일상의 무게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거다. 잠시 그 짐을 내려놓고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일종의 집행유예 기간일 뿐이라는 것 뿐. 잠시 짐을 내려 놓았다고 해서 그 짐을 누군가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다시 돌아오면 그 짐은 그대로 놓여 있기 때문에 다시 그 짐을 짊어져야 하는 거다. 그럼 대체, 일상의 어떤 문제도 해결해 주지 못하는 여행을 왜 애써 고생 해 가며 해야하는 걸까. 그게 최근 나의 화두였다. 결론만 말 하자면, 아직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 했다.



    (난 이렇게 드러누워 버렸다. 여행 때 이 가방 기억나는 분들은 연락주세요~ 씹어드리지. ㅡㅅㅡ;)




    떠나기 싫어서 몸이 아픈 걸까, 몸이 아파서 떠나기 싫은 걸까. 감기몸살 기운 때문에 몸도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다. 피곤하고, 우울하고, 서글펐다. 이렇게 떠밀리듯 떠나는 여행이라니.

    일단 이런저런 수속을 밟고, 여권에 출국 도장을 꽝 찍고 나서는 모든걸 포기했다. 그래, 이제 떠나는구나. 일찌감치 탑승구 앞에 가서 차가운 의자에 몸을 뻗고 드러누워버렸다. 주위 시선이고 뭐고 피곤해서 앉아 있기조차 힘들었으니까.

    내 이번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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