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동남아 삽질 여행 11


에밀리(EMILY) 하우스



한국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우연히 보게 된 숙소를 찾아갔다. 하도 극찬을 하길래 어떤 곳인지 너무 궁금했다. 하지만 약도도 없고, 호텔에서 받은 관광지도에 나오지도 않고, 가진 거라곤 주소 뿐. 그 곳은 바로 에밀리(EMILY) 게스트 하우스.


멜라카가 워낙 작은 동네이고, 시내 주변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였기 때문에 거리상으로 차이나타운과 그리 먼 곳은 아니었다. 그런데 분명히 주소에 맞게 찾아갔고, 번지수도 대충 맞는데 숙박업소처럼 생긴 집이 안 나와서 또 조금 헤맸다.


숙박업소라면 대낮에는 문을 활짝 열어놓고, 간판도 잘 보이게 해서 눈에 띄게 해 놓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하지만 에밀리 하우스는 다른 집들에 비해 조금 길 안쪽으로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약간 가려진 형태. 게다가 간판이라곤 문 앞에 EMILY라고 써 놓은 글자가 전부라서 넋 놓고 길을 걷다간 쉽게 지나치기 쉬운 곳이었다.




제일 큰 문제는 이 동네 집들은 대낮에도 문을 잠궈 놓는 곳이 많은데, 에밀리 하우스도 그렇다는 것. 그래서 처음에 갔을 때는 문이 잠겨 있길래, 오늘 장사 안 하나 하고는 머뭇거렸다.

좀 머뭇거리다가 딴 데 가야겠다 하고 돌아서서 나가려던 찰라, 마침 주인장이 ‘여어-’하고 부르길래 다행스럽게도 들어가서 묵을 수 있었던 것.




문이 잠겨 있어서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왔다가 갈 수도 있다고 주인한테 말 했더니, ‘문 앞에 벨 있는데 뭐’ 란다. 참 장사 편하게 하신다. 나같은 경우는 여태까지 벨 눌러서 게스트하우스 들어간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숙박업소라면 당연히 일단 문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가 딱 맞이해 주는 게 정상 아닌가라고 투덜거려보지만, 이 동네는 그런 모양이지 뭐.


나중에 동네를 돌아보면서 다른 게스트하우스들을 보고 알게 됐는데, 이 동네는 문을 잠궈놓고 영업하는 숙박업소들이 많았다. 그런 경우에는 벨을 누르면 안에서 사람이 나오는 형태.


그러니까 멜라카를 여행하시는 분들은 문이 잠겨 있다면 벨을 두어 번 눌러 볼 것. 야밤에 도착해서 벨을 누르면 깊이 잠 들어서 안 나갈 수도 있으니까, 그 때는 뭐... 호텔로 가시든가.



무미건조한 멜라카의 오아시스같은 숙소, 에밀리 EMILY 게스트하우스. 간혹 표기가 EMIRI라고 돼 있기도 하다. 다른 집들보다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서 눈에 잘 안 띈다. 내 경우는 이틀이 지났어도 무심코 걷다가 숙소를 지나친 적이 몇 번 있었을 정도. 물론 내가 길치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에밀리 하우스 내부는 이런 식으로 꾸며져 있다. 복도가 어장. 가끔 징검다리 위에 두꺼비나 거북이가 올라와 있는 경우도 있다.


숙소 안쪽으로 들어가면 사랑방 역할을 하는 마루가 있다. 해가 지면 여행자들과 주인들이 모여서 이것저것 먹기도 하고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라디오나 음악을 틀어 놓는데, 음악이 주로 도어스나 건잰 로우지즈 같은 내 취향이라서 여기서 많이 노닥거렸다.

이 숙소에서 일 년 넘게 여행중인 독일인 부부를 만났는데, 이 사람들 여행하는 방식이 또 독특해서 이야기만 들어도 재미있었다. 자전거를 사서 다니기도 하고, 오토바이를 사서 타고 다니다가 팔기도 하는 등 흥미로운 여행담을 늘어놓아 주셨다.

지금 독일 경기가 너무 안 좋아서 일단 피해 있다가 다시 돌아가 일 할 생각이라는데, 일자리가 잡힐지 어떨지도 고민이라고. 하지만 어차피 나온 여행 앞으로도 즐겁게 할 생각이라는데, 언제 돌아갈 지는 모른단다. 그래도 당신네들은 유로화 가지고 여행하니깐 여행 할 만 한 거다라고 위로아닌 위로를 해 주었는데, 위안은 별로 안 되는 모양.

이 부부가 또 인심이 후하셔서 이것저것 많이도 얻어 먹었다. 게다가 신기한 현지 음식을 퓨전 요리로 만들어 내는 재주를 갖고 있어서, '아, 여행하면서 현지 음식을 이렇게 요리 해 먹을 수도 있구나'라는 엄청난 쇼크를 안겨 주시기도 했다. 하지만 나 같은 귀차니즘 환자는 여행중에 요리를 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 나중에 방법만 알려 주고 누구 시켜 먹어야지. ㅡㅅㅡ;;;



바깥 모습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경치를 가진 숙소라서, 이 안에만 있으면 꿈 속 처럼 비현실적인 느낌이 든다. 특히 밖에 조금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면 아주 먼 곳으로 이동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걸어서 1분 거리에 세븐일레븐이 있어서 이것저것 사 먹기도 좋은 곳. 단지 근처에 식당이 없어서 밥 먹으려면 좀 걸어 나가야 한다 (그래봤자 5~10분 정도).


에밀리 하우스의 마스코트로 유명한 토끼. 이름은 플레이보이.

사람들이 쓰다듬어 주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으면 한사람 한사람 옆으로 다가가서 쓰다듬어 달라고 막 보챈다.

털이 부드러워 쓰다듬는 느낌이 좋긴 한데, 쓰다듬고 바로 잠자리에 들면 벼룩이나 빈대같은 것 때문에 몸이 가렵다. 토끼 때문인 것이 맞나 싶어서 하루는 토끼를 전혀 안 쓰다듬었더니 몸이 가렵지 않았다. 쓰다듬고 샤워를 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귀찮아서~ ㅡㅅㅡ;

플레이보이가 마루바닥이나 나무로 된 의자 다리를 심심하면 갉아먹어서 이제 곧 에밀리에는 의자가 남아나지 않을 수도 있다.

밤에 정원을 걷다보면 플레이보이가 발 밑에 밟히는 느낌이 좋다. ;ㅁ;

아 참, 플레이보이를 안아보거나 무릎 위에 앉혀 보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시도를 했지만, 여태까지 성공한 사람은 딱 두 명 뿐이라고. 스위스 여자인가 하고 한국인 여자라는데, 둘 다 미인이었단다. 아하- 이름 값 하는구나.


말레이시아의 웬만한 게스트하우스나 호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이드 북. 에밀리에는 한 쪽 구석에 여러나라 가이드 북들도 있고, 멜라카 소개 책자들도 있기 때문에 쉬면서 읽기 좋다. 물론 대부분의 책들은 영어로 돼 있다. 프랑스어나 독일어로 된 책들도 있으니, 취향따라 골라 읽으세효~ ㅡㅅㅡ/



컵과 접시, 포크, 스푼 등 모든 것들이 공용. 아무거나 사용해도 되고, 사용하고 나면 설겆이를 해 두는 게 기본. 싯기세척기 따위 없으니까, 손에 물 한 번 안 담궈 본 사람들은 고생 좀 할 듯. ^^;

저쪽 구석에는 세탁기도 있는데, 한 번 사용할 때 돈을 내야 한다. 얼마였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빨래 양이 많거나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빨래를 할 때 유용할 듯.



객실 문은 모두 여러나라 국기들이 그려져 있는데, 한국 국기는 못 본 것 같다. 아마 저 국기들은 주인 형제가 여행했던 나라들이 아닌가 싶다. 수다를 떨어보면, 이 형제들도 상당히 많은 곳들을 여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다 중에, 한국에서 집 사려면 대략 10억(원)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하니까, 말레이시아에서는 1억만 있어도 이런 게스트하우스 하나 살 수 있다면서, 말레이시아에 와서 살란다. 안 그래도 일본인인가 어디인가 외국사람이 와서 게스트하우스를 멜라카에서 하나 열었는데, 에밀리에 찾아와서 노하우를 많이 배워갔다고.

근데 1억도 없다... OTL


정원의 연못(?)에는 큼지막한 물고기들이 아주 많은데, 모두 조그만 것을 사 와서 직접 키운 거라고. 물고기 키우는 것도 즐기는가보다라고 말 했더니, 큰 건 비싸서 작은 걸 싸게 사 와서 키운 것 뿐이란다. 여기, 고양이 한 마리 키우면 아주 재밌을 듯. 후훗~



2층에는 손님을 위한 숙소도 있고, 주인 형제가 묵는 방도 있다. 길 가 쪽으로 테라스처럼 된 공간이 있는데 여기서도 흐물거리며 쉴 수 있다. 그냥 길 가라서 경치같은 건 기대할 것 없고, 이 쪽은 바람도 별로 안 불어서 덥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장점이 없다. ㅡ.ㅡ;







어쨌든 한국 인터넷에서 여러 사람들이 극찬을 한 에밀리 게스트하우스는 내 마음에도 들었다.

선풍기 싱글룸이 하룻밤에 24링깃이라는 착한 가격도 마음에 들었지만, 무엇보다도 숙소 내부 정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정원을 정글로 꾸미려고 했다는데, 약간 정글 분위기가 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벌레같은 게 좀 있긴 한데, 곤충은 우리의 친구. 밤에 편하게 자려면 모기향은 꼭 필요한 곳.




여기는 거의 모든 것이 셀프 서비스. 아침밥으로 토스트를 먹을 수 있는데, 이것도 토스트기에 직접 빵을 구워서 잼 발라 먹으면 된다.

심심할 땐 차나 커피도 직접 타 마실 수 있고, 물도 끓여놓은 것 직접 부어 마시면 되고. 물론 설겆이도 자기가 직접 해야만 한다. 익숙해지면 참 편한 서비스 형태.

주인 형제는 ‘내 집처럼 편하게 있으면 된다’라고 말 했는데, 아아... 난 우리집에서도 그렇게 편한 적 없었다.



일단 묵어 가겠다고 결정을 하면 열쇠를 두 개 주는데, 하나는 자기 방 열쇠고 하나는 대문 열쇠. 그러니까 일단 체크인을 하면 대문이 잠겨 있어도 아무 불편이 없다.


숙소가 좋아서 오래 머물러 있는 경우는 별로 없었는데, 에밀리 하우스는 숙소가 마음에 들어서 며칠 머물렀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샤워와 화장실을 공용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과, 시설이 호텔처럼 (혹은 우리나라 모텔처럼) 깨끗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지만, 그 모든 단점을 덮어줄 만 한 분위기. 지금 한창 에어컨 룸을 만들고 있는 중이니까 나중에는 에어컨 룸을 이용하면 벌레 싫어하시는 분들도 편히 쉬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쩌다보니 에밀리 하우스 전면 광고가 돼 버렸군. ㅡㅅㅡ;;;



멜라카의 간략한 약도. 에콰토리얼 호텔이나, 트랜드 호텔은 아주 유명한 곳이라서 웬만한 택시기사들은 다 아는 곳이라고 한다. 멜라카에 도착하면 헤매지 말고 바로 저 곳으로 가면 된다. 차이나타운은 일단 시내에서 내려서 아무에게나 물어보면 다 안다.



때때로 여행은 부숴진 길처럼 주저앉아 막막할 때가 있다. 딱히 어떤 외부적인 요인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여태껏 감춰 왔던, 혹은 알면서도 무시했던 그 어떤 요인들이 한꺼번에 봇물 터지듯 내면에서 밀려 나와 그럴 때가 있다.

그 때가 되면 대체 뭣 때문에 여행을 하는지, 일상과 여행의 차이가 뭔지, 왜 휴식이 아니라 이런 고생을 택했는가라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인생이 뭔지, 사는 게 뭔지, 존재가 뭔지에 대한 의문까지 뿜어져 나온다.

그러다보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거나 먼 산을 바라게 되는 때도 있는데, 어쩌면 여행의 묘미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일상에서 하루종일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갖기란 힘들지 않은가. 여행이나 되니까 그런게 가능하지 않을까.

이 짧지 않은 생을 살면서, 단 하루를 온종일 하늘을 보는 일에 소비해 본 적 있는가. 하늘은 그냥 하늘색이다라고 말 하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하늘이 하늘색으로만 된 줄 알겠지. 하지만 단 한 시간이라도 하늘을 관찰해 본 사람이라면, 하늘을 하늘색이라고 말 하기엔 너무나 많은 색들이 섞여 있음을 알 테다.

주변의 색깔 또한 그렇다. 도시가 회색이라는 것도, 우리 동네가 잿빛이라는 것도, 어쩌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깊이 관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단순한 색깔로 인식하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렇게 연장하다보면 삶이라는 것도, 결코 모노mono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상에서 그런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런 사람이라면 성인이나 도인의 범주에 넣어도 충분할 테다. 아마도 평범한 사람들은 그게 안 되기 때문에 여행을 떠나서 고생을 해야만 비로소 그런 것을 볼 수 있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론은, 온갖 잡생각이 든다면 배가 비었다는 표시니까 밥 먹으러 가자는 거다. ㅡㅅㅡ/



말레이시아 KFC에는 X-meal 세트라는 게 있다. 콜라, 징거버거, 닭 한 조각이 세트. 8.95링깃. 한국 돈으로 약 4천 원.

최근 말레이시아에는 X 로 이름을 붙이는 게 유행인 듯, 여기저기서 X-뭐뭐 라는 이름을 많이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어떤 휴대전화 업체가 X 라는 요금제를 내 놓으면서 불이 붙은 것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는 이미 십 년 전에 유행했던 네이밍 마케팅이었지 아마.



포르투갈 스퀘어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렸다. 아니다, 순서가 바꼈다. 버스 안내도를 발견하고 나서야 포르투갈 스퀘어로 가기로 마음 먹은 거다.

그러니까, KFC에서 배불리 먹고는 어슬렁 어슬렁 걸어 나왔는데 마침 버스 안내판이 있는 거라. 그래서 봤더니 포르투갈 스퀘어라는 게 있는데, 이게 또 바닷가에 있는거라. 별로 멀지도 않은 것 같고 해서 가 보기로 결심.



버스 기다리는 아이들. 저기 아랍 복장에 파란 치마는 말레이시아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아랍 소녀들을 위한 교복인 듯. 말레이시아 여기저기서 저것과 똑같은 모습과, 똑같은 색깔의 옷을 입고 등하교 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버스에 올라타고 앉아 있으면 차장이 와서 버스표를 끊어 준다. 목적지를 말 하면 거기에 맞게 돈을 받고 표를 끊어 주는데, 차장이 여기서 내리라고 가르쳐 주기도 하니까 무척 진화된 버스 안내 시스템이라 볼 수 있다.

모든 것을 기계화하고 인간의 손을 거치지 않게 하는 것이 과연 진보라고 할 수 있는가. 버스에 차장을 없애고 카드 대면 삑-하고 요금 나가게 하는 것이 과연 발전인가.

생각해보라, 카드에 잔액 없으면 어쩌는가. 충전해야 한다. 근데 충전소가 근처에 없으면 어찌 되는가. 거기까지 걸어가야 한다. 이게 발전인가.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된다고? 신용카드 있는 사람들만 쓸 수 있는, 그 서비스 신청한 사람들만 쓸 수 있는 그런 서비스가 과연 인간적인가. 인간적이지 못한 서비스가 과연 좋은 서비스인가.

안내방송이라며 광고와 섞여 나오는 지직거리는 차내 방송, 어떤 때는 한국어인데도 알아듣기 힘들고, 어떤 때는 한 코스씩 밀려서 다르게 나오기도 하는 그런 안내방송. 제대로 잘 나왔다 해도 '우린 알려 줬으니 니가 어떻게 내리든 관심 없다'라는 친절한 서비스. 내려서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알 수 없는 경우는 또 어떡한단 말인가.

그러니까 한 마디로, 버스에서 차장을 없앤 것은 퇴보라는 주장이다.

(옛날에 버스 안내양들이 얼마나 이뻤는데 ㅡㅅㅡ/)



이건 대체, 버스를 타기 위한 정류소인가요, 안 타기 위한 정류소인가요. ㅡㅅㅡ;;;



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