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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싱가폴이 싫어요 - 2008 동남아 삽질 여행 18 2/2
    해외여행/동남아 2008 2008. 12. 9. 04:01


    2008 동남아 삽질 여행 18 2/2

    나는 싱가폴이 싫어요



    멀라이언(Merlion)을 보고 난 뒤 전철 타러 가는 길에 느닷없이 소나기를 만났다. 비구름 때문에 아침부터 그렇게도 후텁지근 했나보다. 그나마 비가 오니까 더운 기운이 가시면서 좀 시원해졌다. 싱가폴도 비 오는 날씨만 계속 된다면 돌아다닐 만 하겠구나 싶었다.



    (싱가폴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멀라이언 Merlion.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것 말고는 딱히 할 것 없는 곳이다.)



    (싱가폴에서 내 몸, 마음, 정싱상태가 모두 이랬다.)



    (그리 큰 도시가 아니라서 대충 방향잡고 걸어가다보면 전철역이든 뭐든 뭔가 나온다. ㅡㅅㅡ;)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서 잠시 어느 성당 입구에서 비를 피했다. 마침 목이 말랐는데 물은 없고... 자판기에서 음료수 사 먹는 사람들이 어찌나 부러워 보이는지... 그래서 빗물 마셨다. OTL)



    한참 비 구경을 하다가 전철을 타고 공항으로 갔다.

    부기스 역에서 공항까지 전철비는 1.6 SGD. 매표소처럼 생긴 창구에서는 동전만 바꿔주고, 티켓은 기계에서 동전 넣고 구입해야 했다. 터치스크린으로 목적지 선택하고 돈 넣으면 되니까 어렵지는 않다.

    그런데 전철카드는 신용카드 크기로 좀 두꺼운 플라스틱 카드였는데, 이걸 또 예탁금(deposit)을 받는다. 예탁금은 1 SGD로, 목적지에서 티켓 사는 기계에서 예탁금 반환 메뉴를 누르고 카드를 넣으면 다시 1 달러를 돌려받을 수 있다.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교통카드를 이용하는 듯 했고, 교통카드가 없는 외국인들이 주로 이 일회용 티켓을 사용했다. 언듯 보면 1달러를 다시 돌려주니까 별 문제 없어 보이지만, 공항에서 바로 출국하는 사람이라면 1달러짜리 동전이 남게 된다는 문제가 생긴다. 환전도 안 되는 천 원 짜리 동전 말이다.



    (여행은 때때로 비 온 뒤의 미행같다.)



    (비가 그치니까 바닥은 물기로 젖어 있는데 바로 또 더워지기 시작했다.)



    (전철 타고 공항 가는 길. 도시 곳곳에 새로 짓는 건물들이 많다. 출산율이 높은 건가.)



    (부기스에서 공항까지 가려면, 공항 가기 몇 코스 전에 다른 전철로 갈아타야 한다. 노선도만 잘 보면 된다.)



    (전철역에서 공항으로 통하는 통로. 싱가폴 공항은 의외로 규모가 작은 편이었다.)




    어쨌든 싱가폴 공항에 도착. 공항은 또 터미널 1, 2, 3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터미널과 터미널 사이를 이동할 때에는 전철을 이용해야 했다. 공항 내부를 서로 이동하는 전철은 공짜. 사실 터미널 사이가 그렇게 먼 것도 아닌데...

    이제서야 밝히지만, 싱가폴에서 저가항공을 이용해서 호주로 가려고 했다. 항공권은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한 상태. 그러니까 수속 밟고 떠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젯스타 아시아 데스크는 항상 저녁 7시에 직원들이 와서 일을 시작한다고 한다. 난 그것도 모르고 4시 반 즘 공항에 도착했으니, 근 3시간이나 공항에서 노닥거렸다. 시간도 애매하고 돈 쓰기도 싫고 해서 시내로 다시 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싱가폴 공항은 마치 버스정류장 같아서 놀기 그닥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딱히 볼 게 있는 것도 아니고, 편히 쉴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고 해서 다시 영어단어 외우기 놀이를 했다. ㅡㅅㅡ;



    (터미널 2 였는지 3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어쨌든 이것이 터미널 하나의 모습. 이런 비슷한 터미널이 세 개 있다. 모두 조그만 규모고, 항공사별로 터미널이 다르다. 그런데 젯스타는 좀 헷깔리게 해 놨다. 다른 항공사 데스크에서 물어보는 것이 상책. (젯스타 싱가폴과 젯스타 아시아는 서로 업무가 호환되지 않는다. 젯스타 싱가폴은 직원이 항시 대기하고 있는 듯 했다.))




    기다리는 당시에는 시간이 정말 안 가지만,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약속된 시간은 찾아오기 마련. 7시 조금 넘어서 항공권을 받으러 데스크로 갔다. 이미 일찍 온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서 좀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와서 예약내역을 적은 종이를 보여주었더니... 훗-

    "카드 결재가 decline 되었습니다."

    자,자, decline 단어 뜻 모르는 사람들은 이번 기회에 외우자. decline: 거절하다.

    뭐...뭐야! 그런게 어딨어! 그럼 난 이제 어떡해야 하는 거지?

    "현금으로 결재하면 됩니다. 싱가폴 달러로~"

    헉... 그럼 완전 손해보는 건데...
    그래도 할 수 없지, 하며 현금인출기를 겨우겨우 찾아갔더니... 뱉는다. 뱉고, 또 뱉고, 또 뱉고... 나 카드가 가래침이냐! ;ㅁ;

    대체 어찌된 건지 알 수 없는 상황. 그냥 멍하다.
    더위에 지친 몸과, 황망한 정신과, 여유 없는 마음이 조화를 이루어 패닉 상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호주에 갈 수 없다는 것. OTL

    사실은 딱히 가고 싶지도 않았다는 마음 한 쪽 구석의 속삭임.



    그 이후 내 행동은 손살같이 진행되었다. 바로 공항에서 전철 잡아타고 부기스 시내로 나왔고, 부기스의 Queen street 한 쪽 끝에 있는 버스터미널에서 조호바루로 가는 버스를 잡아 탔다.

    별 생각없이 잡아탄 좌석버스같은 버스의 요금은 2.40 SGD였는데, 이걸 탄 게 또 잘못이었다. 싱가폴에서 출국 수속 밟는동안 이 버스는 이미 떠나버리고 없었던 것.

    길 가에서 기다렸다가 170번 버스를 탔더라면 다른 170번 버스를 잡아타고 다시 갈 수 있는데, 그런 번호 없는 사설버스 같은 걸 타버려서 한 번 놓치면 그걸로 끝.

    전날부터 열 받아 있는 상태에서 이젠 거의 폭발 직전이다.




    씩씩거리며 말레이시아 조호바루와 연결된 다리로 걸어갔다. 버스가 가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걸어갈 수 밖에.

    그런데 여기서 싱가폴 경찰이 또 시비를 거네. 어디 가냔다. 타고 온 버스가 가버려서 말레이시아까지 걸어간다고 했다. 그러니까 여권 보여 달란다. 미친...

    "이보쇼, 난 싱가폴 입국 하는 게 아니고 출국 하는 거고, 수속은 이미 다 밟고 나왔어. 당신이 뭔데 여권 보여달라 어쩌라 하는 거야! 난 이 fuckin' country를 내 발로 걸어서 떠날 거고, 내 평생 다시는 이 나라에 들어올 일 없을테니까 비켜!"


    버럭 화를 냈더니 경찰은 주춤하면서도 그래도 규정이라고 여권 보여 달란다. 규정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이미 내 앞에 현지인같은 사람 하나가 걸어서 다리 건너가는데 아무런 제지 안 당한 거 봤는데 뭔 말도 안 되는 소리!

    "이봐! 내가 무슨 짓을 했는데 당신한테 여권을 보여줘? 내 여권 보려면 규정집 들고 상관 불러 와! 아님 버스 잡아서 나 태워 주든지! 아님 그냥 날 가만히 내버려 두란 말야!"


    거의 미친놈처럼 바락 악을 썼더니 이젠 그냥 길을 비켜준다. 이 나라 경찰들은 이모양인가. 규정이면 끝까지 안 비켜줘야 맞는 거지. 이머병



    (싱가폴에서 다리를 건너 차 길 따라 쭉 걸어오니 조호바루 외곽이었다. 길 따라 걷다보면 여행사들이 몇 개 보인다. 대충 아무 여행사나 들어가서 버스표를 끊었다.)



    (싱가폴로 통하는 길 모습. 다리를 걸어서 건너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았다.)



    그래서 싱가폴에서 말레이시아의 조호바루까지 약 2킬로 조금 넘는 길을 걸어서 갔고, 맨 처음 눈에 띄는 여행사에 들어가서 다짜고짜 지금 당장 버터워스 가는 버스표를 끊어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버터워스 가는 버스는 한 삼십 분 전에 끊겼단다. 아 진짜... 아까 그 버스가 날 내버려두지 않고 태워서 갔으면 바로 버터워스로 갈 수 있었는데! 정말 꼬이고 꼬인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시간이 시간이니까 어디로든 멀리 멀리 떠나는 막차를 타야만 했다. 그래서 밤 12시에 출발하는 콸라룸푸르 행 차표를 끊었다 (35링깃). 차표 끊은 게 11시. 차표에 기재된 출발시각은 12시. 하지만 실제로 출발한 시각은 새벽 1시였다.
     


    사실 이 모든 상황들이 싱가폴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나라에서 당한 어이없는 일들 때문에 모든 것을 싱가폴 탓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섬나라와는 잘 맞지 않는 탓도 있겠다. 어쨌든 난 이제 싱가폴을 시발폴이라 부르고 있고, 내 평생 내 돈 들여서 개인적으로 그 곳으로 여행 가는 일은 없을테다 (국빈 대접을 해 준다면 또 몰라도).

    참고로, 나중에 카드사에 문의해보니 내 카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다른 나라에서 인출하니 잘만 됐고. 뭔가 꼬이려 하니까 왕창 꼬였나보지 뭐. 췟.



    (여행사에서 표를 끊었더니 자기들 승용차로 버스 터미널에 데려다 줬다. 터미널에서 다시 버스 시간을 기다려야 했는데,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이 별로 없어서 시간이 계속 지연되었다. 결국 안되겠다 싶었는지 한 시간 연착한 뒤에 드디어 출발했다. 한 시간이나 지연되었지만 큰 불만은 없었다. 에어컨 나오는 버스에서 잠을 잘 수 있었으니까.)



    (여기는 콸라룸푸르의 버스터미널 앞. 조호바루에서 새벽 1시 즘 출발한 버스는 KL에 5시 30분 즘 도착했다. 도착하니 버스터미널의 표 파는 부스들이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상태. 답답하고 더운 버스터미널 내부보다는 차라리 바깥 거리로 나와서 푹 퍼져 앉아 있었다.)



    (터미널 길 건너 맞은편에는 24시간 영업하는 KFC도 있었지만, 앉아서 엎드리면 잘 것 같아서 그냥 길 가에 앉았다. 나같이 버스 다니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아서 위험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단지 주의할 것은, 일어서서 움직이면 택시 기사들이 들러붙어서 자꾸 어디 가냐고 귀찮게 묻는다는 것.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아무도 말 안 건다.)



    (나도 거의 이런 몰골로 앉아 있었다. ㅠ.ㅠ)



    (6시 30분 즘 드디어 매표소들이 하나씩 문 열기 시작. 하지만 아직 본격적인 영업시작 시간은 아닌 듯 했다.)



    (일찍 문 연 어느 부스에서 버터워스 가는 버스표를 샀다. KL에서 버터워스까지 31링깃. 이 버스도 손님이 거의 없긴 마찬가지였지만, 연착은 거의 안 했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나오니까 이미 해는 떠 있었다. 하룻밤을 뜬 눈으로 새우고 이동에 이동을 반복한 것. 이 때는 그저 싱가폴에서 멀리 벗어나려는 생각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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