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보은에는 '선병국 가옥'으로 알려진 큰 한옥이 있다.
현재 중요민속자료 134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집은 1904년부터 1921년까지 지어졌다.
1984년에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될 때 선병국 씨가 살고 있었기 때문에 
'선병국 가옥'으로 이름 붙었다.

조선 말기, 백성들의 가옥 규모에 대한 규제가 많이 풀렸어도,
100칸 이상 규모의 집을 짓지 못하게 했던 탓인지
선병국 가옥도 일반적으로는 99칸 한옥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100칸이 훨씬 넘는 134칸 짜리 가옥이라 한다.

비록 오래된 가옥은 아니지만, 구한말 전통적 건축 기법을 벗어나,
변화하는 한옥 양식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손꼽히는 곳이다.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고, 사랑채는 찻집으로 쓰이고 있는 곳이다.
게다가 사람의 온기가 있어야 한다며 행랑채와 헛간을 고시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다.
아무래도 집이라는 게, 구경만 하는 곳도 아니며, 사고 파는 재물도 아니고,
사람이 살고 생활하는 곳이니 사람의 온기가 필요한 것은 당연할 터.
이렇게 큰 집이 사람 하나 없이 그저 관광용 전시관으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처음 이 집 대문을 들어서면 가장 인상깊은 것이 장독대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은 수많은 장독들이 늘어서 있는데,
각 장독 앞부분에는 어느 지방 장독인지 알려주는 푯말을 세워 놓았다.
장독 모양이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지방마다 특색이 있는 것인지는 이 때 처음 알게 됐다.

아직도 직접 전통장을 담그고 있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장 담그기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면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데,
2006년에는 '대한민국 명품 로하스 식품전'에서 350년 묵은 덧 간장이
1리터에 500만 원에 팔려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덧 간장은 햇 간장을 만들 때 넣는 묵은 간장이다.)







저거 하나만 들고 왔으면... ;ㅁ;







이 집은 안채, 사랑채, 사당을 각각 내부의 벽으로 둘러싸서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누어지고,
그 모두를 다시 외벽으로 둘러싼 형태를 하고 있었다.

넓기도 넓거니와 내벽 외벽으로 구성된 형태라,
처음 가서 정신없이 다니다보니 어디가 밖이고 어디가 안인지 헷깔릴 정도였다.

집 안에서도 길을 잃고 헤매다가, 가다보니 바깥으로 나오게 되고...
또 들어가서 휘저어 보다가 또 길 잃고 나오니 바깥이고... OTL
나중에 우리집은 이렇게 지으면 안 되겠다.
사랑채에서 술 마시다가 안채로 자러 들어갈 때 집 안에서 길 잃고는,
어느 마루 밑에서 노숙하게 될 지도 모르잖아! ;ㅁ;
그냥 간단하게 방 세 개 짜리 집을 지어야지. 방 하나에 백 평 짜리. ㅡㅅㅡ/




원래 이 집은 속리산에서 흘러내리는 큰 개울 중간의 삼각주 위에 지어졌다 한다.
처음 이 집을 지을 때, 섬 위에 집을 지으면 집안이 흥한다는 말을 듣고
섬을 찾아 다녔는데, 마침 이런 지형이 있어서 여기에 집을 지었다 한다.
사람들 말에 따르면, 이 집터가 물 위에 연꽃이 뜬 형태라 한다.
지금은 육지와 이어져서 더이상 섬이 아니고, 그래서 자동차로도 들어갈 수 있다.

육지와 이어지지 않고 섬으로 계속 남았다면 지금 즘 작은 배를 타고 왔다갔다 했을까.
그랬더라면 좀 더 운치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관광객의 욕심일 뿐.










이런 집을 볼 때면 혼자 하는 상상이 있다.
이런 집에도 아니, 이런 집이니까 옛날에 시집살이 심하게 한 며느리도 있었을 거고,
부적절한 관계로 몰매맞은 돌쇠도 있었을 거고, 노름해서 가산탕진 한 자손도 있었을 거고...
뭐 그런 상상.
나도 우리 증조부가 노름만 안 했어도 지금 즘 페라리 끌고 다녔을지도 모르는데...
라는 안타까움? ㅡㅅㅡ;;;
(결론: 당신의 노름이 삼대를 힘들게 합니다.)










하긴 옛날에도 부자는 있었으니, 이런 집이 한 채 즘 있다는 건 전혀 이상할 건 없다.
그래도 일반 백성의 집으로 이렇게 큰 뮤모의 한옥을 보니 궁궐 보는 것과는 또 기분이 달랐다.
현대의 궁궐들은 잘 가꿔진 공원처럼 이용되면서 생기를 잃은 느낌이 든다면,
이런 가옥은 아직 사람이 살고 있기에 나름의 활기가 느껴진다고나할까.

한가지 아쉬운 점은, 가옥이 뭔가 좀 다듬어지지 않은 느낌.
예쁘고 깨끗하게 꾸미는 것을 바라는 건 아닌데, 어쩐지 좀 어수선한 분위기.
어쩌면 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닌 애매한 계절에,
게다가 을씨년스러운 날씨를 맞아 찾아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햇볕 쨍한 날 찾아가면 또 다른 느낌을 느낄 수 있으려나.
충북, 기회 되면 다시 가 보고 싶은 곳들이 너무 많다. ㅠ.ㅠ


Posted by 빈꿈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월하 2010.04.26 13: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빈꿈님의 여행기에는 항상 여자 사람 도촬(?) 사진이 한장씩은 있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