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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지용은 6.25 전쟁 중에 행방불명되었다.
월북 인사들과 친분이 있었다는 점과,
그가 썼던 글이 백범노선을 따르는 민족주의자 성향을 띄고 있다는 점
등의 이유로 그는 월북작가로 분류되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월북작가라는 이유로 모두 판금조치 당했었다.
한 여고생이 학교에서 정지용 시를 낭독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서에 불러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 한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한 그 해, 월북한 소설가에게 돌아오라는 글을 쓴 점과,
그의 가족들이 모두 남한에 남아있다는 점 등을 토대로 사람들이 항의한 결과,
결국 납북이라고 인정되었다.
그렇게 그의 작품들이 해금된 게 1988년.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일제치하 교사시절에도 늘 검정 두루마기를 입고 다녔을 정도의 민족주의자였지만,
해방이후 좌우 이데올로기 때문에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어쨌든 그는 한국의 걸출한 시인들을 발굴해 냈고,
또 최초의 이미지스트이자 모더니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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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 구읍에 있는 정지용 생가는, 마을 들어서는 초입부터 범상치가 않다.
보통 우리나라의 누구누구의 생가라는 곳을 가보면,
초가집이나 기와집 한 두 채 덩그러니 놓여있고 끝이다.
어느 민속촌 같은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만고만 한 모습들 말이다.
하지만 정지용 생가는 조금 다르다.
바로 옆에 정지용 문학관이 있어서 그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지만,
집 주변 가게들의 수많은 간판들이
정지용 시로 예쁘게 꾸며져 있다는 점이 더욱 특이하다.
어떻게 보면 얼기설기 삐뚤삐뚤 마음 가는 데로 써 놓은 것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정성들여 한 획 한 획 그은 것 같기도 한 글씨들이,
묘한 정겨움과 특이한 분위기로 시 한 구절씩을 표현하고 있다.
정지용 시를 주제로 꾸며진 이 간판들은 공공예술프로젝트로 이루어진 것인데,
생가부터 시작해서 장계관광지까지 길따라 30리가 이렇게 꾸며져 있다.
이름하여 '향수 30리'. 이 길 위에는 허름한 버스정류장 하나마저도 사소하지 않다.
이 곳에 가면 굳이 정지용이라는 사람에게 별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한 번 즘은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낯익은 시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산으로 강으로 아름다운 풍경따라 재미있는 볼거리 따라 가 보는 것도 좋지만,
한 번 즘은 시와 함께 마음으로 따라가는 길을 한 번 걸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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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생가까지 대중교통으로 가는 것은 쉬운 일이다.
옥천시외버스터미널이나 옥천역에서 정지용 생가까지는 약 2~2.5km 거리.
미리 지도 찾아보고 길을 알아놓으면 걸어서도 충분한 거리다.
(다음 편에 나올)멋진신세계도 공공예술프로젝트로 잘 꾸며놓은 곳이라
가 볼 만 한데, 옥천역에서 장계관광지(멋진신세계)까지도
버스가 한 시간에 세 대 정도 다닌다 한다.
문제는 '향수 30리'길인데, 이 길을 온전히 제대로 구경하려면
지금으로써는 대중교통으론 좀 힘들겠다.
버스타고 가다가 중간중간 내려서 구경하기는 아무래도 어려우니까.
요즘 많은 지방에서 시티투어버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옥천도 이 노선을 기반으로 한 투어버스를 운영하면 어떨까 싶다.
어쨌든 여행 갈 사람들은 30리 해봤자 12킬로미터 밖에(!) 안 되니까,
행군하듯 걸어보면 살도 빠지고 여행도 되고 일석이조. ㅡㅅ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