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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고 꽃이 졌다. 꽃이 진 것은 비 때문이었지만, 비가 온 것은 꽃 때문이 아니었다. 빗물 속에 잠긴 꽃잎들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세상이 사람들을 그리 만들었지만, 세상을 그리 만든 건 사람들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어쩌면, 이 세상은 사람들의 노력과 의지와는 무관하게 스스로 그러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사회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자연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한가지 확실한 것은, 한 마리 미꾸라지가 흙탕물을 만들지만, 미꾸라지는 원래 그런 물에 산다는 거다. 세상에 나쁜놈이 많다면, 세상이 원래 그렇기 때문이다. 그럼 대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 걸까. 무척이나 무기력한 사실이라 애써 외면해야만 하는 걸까.
요즘 내 주위 사람들은 사실 나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다. 시도때도 없이 늘어놓는 하소연과 짜증, 밑도끝도 없이 꺼내는 꿈과 환상 그리고 좌절, 비탄, 현실에 대한 비난들. 나도 안다, 그리고 듣는 그들도 이 즘 되면 짜증나겠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조심하고 꾹꾹 눌러 참기도 하지만, 그래도 정말 어쩔 수 없는 때가 있다. 그 때는 정말, 정말 어쩔 수 없다, 이대로라면 미쳐버릴테니까.
내 주변의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보게될 지 모르겠지만, 차마 입으로 말할 수 없었던 내 마음 헤아려 주길 바란다. 미안하고, 고맙다. 내게 그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 여럿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은 정말 우연이나 행운을 넘어 기적같은 일이다. 내 멋대로 행동하며, 주위를 잘 챙기지도 못하면서, 투정이나 부리는 나. 그런 내 곁에 아직 그걸 받아줄 사람들이 남아 있다는 것.
어떤 때는 세상이 뒤집어져도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을 구하기 위해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은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아도 될 듯 하다. 미안하고, 고맙다. 거지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나쁜놈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중이다. 더 나은 내가 되리라는 섣부른 약속을 할 수는 없다. 단지 내 눈물겨운 노력에 힘을 실어 준다는 의미로 받아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가지 바램이 더 있다면, 내 곁에 이런 친구 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내가 만약 그들같은 인간이 된다면, 그렇게 변했다고 판단된다면, 주저없이 나를 죽여줄 친구. 그런 친구 하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내 마지막 바램이다. 난 정말 그들처럼 되고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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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다가 그들이 되어서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되지 마세요.
그들이 되어도 후회하고,
그들이 되지 않아도 후회하고.
어차피 후회할 일이라면
멋대로 살기.
멋진 생각과 굳은 심지가 엿보이는 삶을 사시고 계시군요.
존경합니다. 거지가 되더라도 신념대로 살겠다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