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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봄에 너를 잊고, 이번 봄에 나를 잊고
    사진일기 2011. 4. 28. 04:29














    #1.
    남자친구와 싸웠다며 전화가 왔다. 짧은 통화를 마치자마자, 또 다른 친구에게서 남자를 사귀게 됐다고 문자가 왔다. 또 다른 어떤 이는 이 남자를 사귀어도 될까라면 고민을 하고 있었고, 또 다른 어떤 이는 이 남자와 헤어져도 될까를 메신저로 물어 왔다. 그래, 바야흐로 봄, 봄, 봄이로구나.

    그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때 마다, 우연히 혹은 어떤 영감을 받아서 나는 또 피눈물을 그렸다. 만남은 어떤 식으로든 피눈물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걸 듣고 있는 상관 없는 사람 마저도 피눈물이 흐르기 마련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사랑 한 번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사람이겠지.

    이야기들을 들으며, 이제 그런 고민들에겐 아주 간단한 답변만을 해 버릴까 보다 생각했다. 이를테면, '너, 이제 연애질에 신경 쓸 만큼 몸도 마음도 여유로운 거구나. 그 순간을 즐기도록 하렴' 정도. 누가 언제 어떻게 해도 제 삼자 입장에서는 다 비슷비슷한 연애담은 이제 더이상 새로울 게 없다, 로미오와 줄리엣 스토리 정도가 내 주위에 현실로 나오지 않는 한은.
     
    이미 내 주위에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 중에, 이혼도 여럿 나왔고, 불륜도 나왔고, 잘못된 만남이라든지, 동성애도 여러 케이스가 나온 마당에, 더이상 내게 식상하지 않은 연애담이 어디 있겠느냔 말이다. 인류가 생존하는 한은 끊임없는 주제일 테지만, 난 이제 좀 쉬고 싶다. 얘들아, 연애로 시간을 보내기엔 세월이 너무 짧더라.



    #2.
    어떤 이는 회사에서 본업 외에 문서작업이나 영업 등의 다른 일들을 시킨다며 힘들다는 투정을 부렸고, 또 어떤 이는 그런 일들이 떨어져 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조직개편에 앞서 줄 서는 일이 더 시급하다며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넌즈시 내비쳤다.

    느긋하게 늦잠을 자고 일어난 내 앞에 펼쳐진 대화창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니, 바깥 세상은 아직도 열심히 어지럽게 빠른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게 일어났던 일이고, 나 역시도 적지 않은 시간동안 겪었던 일이지만, 이제 다 하찮은 인간계의 덧없는 해프닝으로만 보였다.

    새삼 깨닫는 거지만, 내 일이었을 때는 정말 머리가 부숴지도록 고민되고 걱정되는 일들도, 제삼자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는 아무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마더 어스(mother earth)나 우주적 차원에서 보면, 정말 나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아, 이제 나 머리 깎고 산으로 들어갈 때가 되었나 보다. 그런데 어쩌지, 중은 제 머리 못 깎는다던데, 나는 내 머리 내가 깎는다. 실격인가.



    #3.
    지금 우리의 컴퓨터 안에는 CPU나 RAM 등의 실리콘 칩들이 잔뜩 들어가 있다. 실리콘은 규소와 산소의 결합을 주축으로 하는 중합체인데, 결국 흙으로 만드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쩌면 고인돌이 실리콘 칩 일 수도 있지 않을까. 멍청한 현대 인류가 사용법을 파악하지 못해서 그냥 돌 덩어리라고만 생각하고 있는데, 알고보면 거대한 규모의 수퍼컴퓨터일지도 모른다. 마치 8인치 짜리 플로피디스크에 우주의 비밀이 담겨져 있어도, 지금 시대에는 그 자료를 쉽게 꺼내 볼 수 없는 것 처럼 말이다.
     
    먼훗날 현대 문명 또한 그럴 테다. 종이는 썩어 문드러지고, 칩은 돌덩어리로 여겨지고, 어느 변두리 외로운 터널 속 그래피티 정도만 남아 우리의 문명을 전달할 지도 모른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램을 비롯한 하드 디스크, USB 메모리, SD 카드 등의 각종 메모리, 메모리(memory). 어쩌면 인간의 뇌보다 오래 지속되는 메모리(저장매체)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지도 모른다. 그걸 조금이라도 더 오래, 지속적으로 저장해 보고자 노력하는 것, 어찌보면 참 덧없는 짓이다. 메모리, 메모리, 그러니까 너를 잊고 나를 잊고(忘了你 忘了我) 더는 기억하지 말도록 하자, 아픈 기억들 의미없는 추억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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