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이 만화를 그리게 된 건, 우연히 동영상 하나를 봤기 때문이다.
두 외국인이 뭔가 아주 멋지게 말을 하는데,
내용은 대강 '이름은 정체성(identity)이다. 한국 이름 그대로도 충분히 아름답다'라는 것.
이걸 멍하니 보고 있다가 지난 여행 때 에피스드 하나가 떠올랐다.
티벳 여행 중에 (이상하게) 친하게 어울려 다닌 이탈리아 인 세 명.
한 명은 사십 대 말의 느끼한 아저씨고, 두 명은 육십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들.
이탈리아인과 한국인 성향이 비슷하다더니 정말 맞는 말이었다.
사고방식이고, 행동양식이고, 장난치는 거에다, 말장난까지 마구마구 통하네.
근데 이 사람들이 자꾸자꾸 틈만 나면 내 이름을 막 부르고 다니는 거였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처음 들어보는 한국 이름이 신기하고 낯설고 어려워서 입에 익히려고 그런다고.
아아 거기서 막 감동먹고, 나도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곱게곱게 외웠다.
보통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이름은 안 외우는 편인데, 그들 이름은 확실히 외웠다.
물론, 두 할배가 시칠리아에서 맥주 가게를 한다 해서,
나중에 기회 되면 얻어 먹으러 가려고 외운 것은 절대절대 아닐지도 모른다.
근데 이 사람들, 처음에 자기들이 시칠리아에서 왔다고 하길래 내가,
"앗! 시칠리아! 마피아로 유명한 거기?!!!" 하니까,
맞다면서, 그래서 자기들은 항상 총을 들고 다닌다면서 가방에 총 있다고...
아, 이야기가 산으로 간다.
어쨌든 사업을 하거나 이민을 갔다거나 그런 상황이라면 영어 이름이 있어야겠지만,
그냥 여행을 한다거나, 외국인 친구를 만나거나 할 때는 한국 이름을 알려 주는게 낫지 않을까.
그러니까 또 생각나는 사람이 한 사람 있는데,
여행하다 만난 핀란드 아저씨였는데, 아 핀란드 이름이 정말 무슨 외계어 같은 거라.
한 여섯음절 정도 됐는데, 이 아저씨, 자기 이름 절대 줄여서 부르지 말아 달래.
그래서 여행 때는 막 불렀는데, 헤어지고 나서 바로 까먹고~
그래도 도움 많이 받은 아저씨라서 내 여권에 이름 적어 놨다.
아무리 이름이 어려워도 기억할 만 한 사람이라면 그렇게라도 기억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