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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빌어먹을 세상 - 영화 인 타임 In Time
    리뷰 2011. 10. 30. 05:49

    갑갑한 일상에 지쳐 몸이 점점 축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운동 겸 산책 겸 동네를 배회하다가, 문득 배가 고파져 주머니를 뒤져보니 나오는 돈 천 원. 편의점에 들어가 삼각김밥을 사고, 바로 옆에 극장 건물 출입문에 놓여진 팜플렛들을 살펴보다가 눈에 띈 영화 '인 타임 (In Time)'.

    개봉한지 며칠 됐지만, 그 때까지 이 영화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던 상황에, '시간을 화폐로 이용하는 미래'라는 설정에 끌려서 바로 그날 밤 심야영화로 봤다.



    일단 이 영화의 감독인 '앤드류 니콜'은 영화 시몬, 터미널, 그리고 특히 '로드 오브 워(Lord of war)'로 인상 깊었던 사람이기에 별 망설임 없이 선택. 남자 주인공이 저스틴 팀버레이크라는 점이 조금 걸렸지만, 그래도 이제 엔싱크 때를 벗어나 많은 영화들을 하면서 연기가 나날이 늘고 있기는 하다.

    사실 그 모든 조건들을 뒤덮고 '닥치고 선택'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주인공 아만다 사이프리드 때문이었지만. 그렇다고 꼭 그녀를 보려고 간 것 만은 아니고, 영화 내내 그녀 얼굴만 감상했다고도 할 수 없다, 라고 말은 하지만 뭐 어떠냐, 거의 두 시간에 달하는 러닝 타임동안 마음에 드는 여배우 얼굴이나 실컷 봤으면 됐지. 아아 이런 여인이 내게 '알러뷰'하면 내 남은 시간을 다 줘도 아깝지 않을 텐데 (뻥 좀 섞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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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어디서나 알 수 있는 줄거리를 여기서도 소개하자면 이렇다. 미래의 어느 때, 인간은 25세에서 성장을 멈추고, 그 젊은 모습 그대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팔에 나타나는 자신의 수명 시계가 25세 때부터 작동을 시작하며, 이 시계가 제로(0)가 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죽는다.

    25세가 되면 수명시계가 작동하는 동시에, 1년의 시간이 주어진다. 이 시간, 즉 자신의 남은 수명을 팔아서 집도 사고, 커피도 사고, 버스도 탄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말이 현실이 되어, 시간을 화폐로 이용하게 된 거다. 커피 한 잔에 4분, 버스 요금 2시간, 스포츠카 한 대 사려면 59년을 지불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 시간은 일을 해서 벌 수 있는데, 그마저도 박봉이라 정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는 말 또한 현실이 되어 눈 앞에 펼쳐진다. 이런 상황이니 남의 시간을 훔쳐가는 악당들도 당연히 설치고, 시간의 부정 유통 등을 관리하는 경찰 역할의 타임 키퍼도 있다.

    시간이 많으면 세상의 무엇이든 살 수 있고, 즐길 수 있지만, 남은 수명이 제로(0)가 되면 그 자리에서 즉시 죽고 만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길거리에 심심찮게 보이는데도, 사람들은 이미 익숙한 듯 무시하고 지나치는 현실.



    사건의 발단은 남자 주인공 윌 살라스는 어느날 100년의 시간을 가진 부자에게 우연히 도움을 주고, 그 시간을 받게 되면서 일어난다. 어떤 미친 놈이 자기 시간을 그냥 주겠냐며 살인범의 누명을 쓰고 쫓기는 신세가 되고. 그 와중에 하루 일을 마치고 밤 늦게 대출금 일부를 갚고 귀가하던 어머니는, 버스비가 모자라 집까지 뛰어오다가 수명이 다 돼서 죽고 만다.

    100년의 시간을 준 부자에게서, 소수의 영생을 위해 다수가 죽음에 쫓기는 것이 현실이라는 말을 들었던 주인공은, '훔쳐간 시간을 다시 되찾기' 위해서 부자들의 동네로 향한다 (이 부분에서 미하엘 엔데의 '모모'가 살짝 겹쳐지기도 한다). 그리고 부자동네에서 내 남은 시간 다 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예쁘장한 부잣집 딸내미 여주인공을 만나게 되고, 대략 그런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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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보면 알겠지만, 이 영화에서 '시간'은 '돈'을 극단적으로 표현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 대사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특히 경찰 역할을 하는 타임 키퍼가 말하는 '시스템'이란, 자본주의 시스템을 의미한다 (타임키퍼도 사실 경찰이라기보다는 경제 파수꾼이다). 즉, 이 영화는 지금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극단적으로 표현해 놓은 것이다.



    결론부터 말 하자면 이 영화의 주장은, 시간(돈)은 절대 부족하지 않고, 누군가의 탐욕으로 극소수의 풍요를 위해 집중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적당히 나누어 주어도 부족하지 않은 그 시간(돈)은, 시스템의 유지를 위해 일부러 부족하게끔 조절 돼 있는 거고, 물가를 점점 올려가면서 더욱 더 압박하며 쪼아가는 것도 의도적인 거라는 것.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사람들이 '압! 은행은 나쁜 놈!'이라는 생각을 가지게끔 만들어진 영화. 이 시스템을 부수기 위해 영화에서 제안하는 방법은 '은행을 털자'. 그런 결론들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일단 사람들의 뇌리 속에, '그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 시스템은 뭔가 잘 못 됐어'라는 의식을 심어주는 영화다.

    갑자기 최근 뉴욕 월 스트리트에서 펼쳐지고 있는 'Occupy Wall Street' 시위가 겹쳐 보이면서, 혹시 영화의 내용이나 시위의 내용이 서로서로 영향을 미친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뭔가 유사성이 엿보이긴 하는데, 그런 사실은 찾아볼 수 없고, 그저 그럴 수도 있지 않나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어쨌든 '돈'을 '시간'이라는 아이템으로 대치시켜, 자본주의 시스템을 아주 극단적으로 표현해 놓은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해 줄 만 한 영화다. 너무 극단적으로 표현하다보니 다소 미흡한 점도 보이고, 액션 스릴러라는 배급사의 장르 갖다 붙이기를 믿고 보다가는 느려터진 스릴러에 실망할 수도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소재의 참신성과 주제에 대한 고찰, 그 이면에 숨겨진 메시지와 함께 점점 깨어나고 있는 전세계적 의식들을 종합해보는 쪽으로 무게를 두어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데이트 용으로 재미삼아 가볍게 들어갔다가는 낭패볼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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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내용까지가 일반적을 쓸 수 있는 영화 리뷰다. 하지만 겨우 그딴 걸 쓰기 위해 키보드를 잡은 건 아니다. 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보고 나서 뭔가 써내려 가고 싶은 생각들이 반짝반짝 떠올라서 키보드를 잡고 두들기고 있는데, 아아 부족한 자금에 심야영화를 보고 왔더니 이미 새벽 네 시 다 됐네. 피곤해, 정리도 안 돼. 그래서 떠오르는 데로 정리 없이 조각조각 쓰는 형식을 택했다. 나중에 다른 어떤 곳에서 더 깊이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떠오른 것들을 기록해 두려는 의미다.



    먼저 이 영화, 인 타임에서 세상은 왜 그렇게 된 걸까.

    영화 속의 세상에서는 인류의 오랜 꿈인 불로장생을 해결한 상태다. 아마도 처음 불로장생을 해결했을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며 길거리로 뛰어 나와 즐거워했을 테다. 전 세계가 축제 분위기였을 테고, 사람들은 기쁨의 눈물을 철철 흘렸겠지.

    그런데 사람이 불로장생을 누리게 되면 어떻게 될까. 오래된 영화인 '하이랜더'에 이미 그런 주제가 다루어졌고, 여러 영화에서 심심찮게 조금씩 나오는 주제이기도 하다. 대부분 결론은 불로장생이 그다지 행복하지만은 않다로 귀결된다는 것도 다들 잘 알테다.

    그런데 극소수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불로장생을 누리게 되는 세상이 왔다면 어떻게 될까. 일단 각 개인들의 행복과 불행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전체 사회적 입장에서는 과연 그게 좋은 일일까.



    지금 우리가 젊을 때 조금이라도 더 일 하고, 조금이라도 더 돈을 벌어 두려는 건 노후를 위해서다. 늙으면 일 할 힘도 없고, 새로운 걸 시도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사회에서 잘 받아주지도 않으므로, 먹고 살기가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불노장생이 떡하니 주어진다면, 더이상 노후대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거다. 그저 만일을 대비해 일정 정도의 저축액만 유지하며 하루하루 해피해피 즐겁게 생을 즐기며 살아가도 되는 거다. 극단적으로는 그저 먹고 살며 인생을 즐기기만 해도 별 문제 될 것이 없다. 언제든 일을 하면 먹고 살 수 있으니까.



    이 쯤 되면 사회를 통제하는 입장, 다시 말해 자본가나 통치자 입장에서는 큰 문제다. 기득권을 유지할 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들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사회가 더 이상 발전할 수 없게 나태해지는 문제가 생기는 거다.

    문명이라는 것이 발생한 이후, 인류 역사에서는 노예계급이 사라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계급이 있어야 '시스템'이 돌아가기 때문인데, 그 시스템이라는 것은 항상 피라미드 구조다.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지향한다고 입은 놀리지만, 사실은 모두가 평등해진 적도 없고, 그걸 진지하게 고민한 사람도 많지 않다. 불평등 속에서 누군가의 노동을 착취해야 편해지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25세가 되면, 소비할 수 있는 1년의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을 '평등'이라고 여긴다. 그걸 가지고 '기회의 평등'이 주어졌다느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느니, 무한경쟁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키워서 더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느니 노래를 부르는 거다. 사실은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빚을 지고 시작해야 하고,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재산을 받아 시작하는데 말이다.



    어쨌든 무한의 시간이 주어져서 더이상 노후대비를 하지 않아도 되고, 그저 '먹는다'는 행위로 생명유지만 하며 삶을 즐기면 되는 상황이라면, 누가 굽신거리며 부자 밑에서 똥 닦아 주겠는가. 모든 사람이 자기 밥은 자기가 해 먹어야 하고, 또 모든 사람이 자기 설겆이를 자기가 해야 하는 상황. 그건 힘 있는 자들의 무장해제를 뜻하는 거다.

    그러니 그 상황을 '시스템의 위기'로 정의하고, 사람들의 수명을 조절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을 테다. 그리고 기성세대 대다수의 환영을 받았을 거다. 그들은 청년들이 탱자탱자 노는 꼴은 눈꼴 시려서 못 보니까. 인간이라는 게 참으로 교활하고 간사해서, '내가 그렇게 고생했으니 너네들은 좀 편하게 살아라'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일 뿐이고, '내가 당했으니 너도 당해봐라'라는 고약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넘쳐난다. 그래서 '어라? 요즘 젊은 것들은 옛날의 나보다 고생을 덜 하네?'싶으면 당장 하는 말이 있다. '요즘 애들 버릇 없어'.

    기존(과거) 시스템에 대한 옹호가 부메랑으로 돌아와 자신의 목줄 또한 죌 것을 모르고 그렇게 다시 사회가 통제되어 유지되기를 바라는 거다. 그래서 과학의 발달로 좋은 세상이 와도, 소수의 악의적인 사람들의 눈가림과 그에 홀려 동조하는 기성세대들의 눈꼴시림이 합쳐져, 어떻게든 시스템의 통제는 유지되고 발전하게 된다.

    그래서 세상이 발전하고 과학이 발달해도, (영화의 배경과 같은) 그런 세상이 펼쳐진다. 바뀐 세상에 적응하기보다는, 기존의 익숙한 습관과 쥐꼬리만큼의 지위를 유지하고 싶은 욕심. 그 욕심이 만들어내는 말 '젊은 것들은 세상을 몰라'. 그런 세대의 세대에 대한 억압과 윽박이 시스템을 유지하는 통제와 규제의 원동력으로 이용되면서 세상은 그렇게 어영부영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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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에서는 남녀 주인공이 은행을 털어 사람들에게 시간(돈)을 나누어주는 것으로 아믈다운 미래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그런데 감독 역시도 그게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알고는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주인공이 은행을 터는 행동을 보여주는 것에서 영화를 끝내지 않았나 싶다.



    사실 자본주의가 사상누각이라는 것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여실히 드러났다. 그 금융상품은 기본적으로 은행의 예금 시스템과 비슷한 것이었고, 전체적으로 큰 파장이 없는 한 굳건히 유지될 것으로 기대됐으며, 그 시스템에 큰 충격을 줄 만 한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믿어졌다.

    하지만 결국 그 시스템은 무너졌는데, 그렇다면 그건 은행의 예금 시스템 또한 그렇게 무너질 수 있다는 의미이고, 나아가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도 굳건하지만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영화 '시대정신'을 참조할 것). 그래서 통화를 단일화하고, 국가와 국가를 더욱 단단히 묶어, 개별 주체가 전체 시스템에 엄청난 타격을 미치지 못하게끔 묶어내는 작업이 진행중이다. '그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는 거다.



    그렇다면 이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행복한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이 영화처럼 은행을 털어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면 되는 걸까. 그게 유토피아로 가는 길이라는 확신이 선다면 내가 나서서 아름다운 아나키즘의 논리로 페리스 힐튼을 꼬셔서 은행 털러 가겠다.

    하지만 그건 대안이 될 수가 없다. 내가 은행을 털어 여러분들에게 각각 10억 씩을 나누어준다 하자. 지금 상황에서는 그 돈 아껴가며 생활하면, 당장 일 때려치우고, 하고싶은 것 하면서 살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10억의 재산을 가지게 된다면 분명히 물가는 오르고, 새우깡 한 봉지에 천만 원 하게 될 거다. 결국 지금과 똑같은 상황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안다. 그래서 지금도 진행중인 월 스트리트 시위도, 일단 문제는 월 스트리트를 상징으로 하는 금융 시스템에 있다는 것을 짚어내긴 했지만,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바꾸어야 할 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그저 현실에 대한 불만만을 털어놓고 있을 뿐이다.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에서 참으로 좌절스럽다. 하지만 일단은 99%가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이 시위가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이대로 계속 진행하며 더욱 강하게 통제력을 높이는 시스템 속에서, 이 시스템 말고 다른 어떤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혹은 더 나은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논의가 일어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말이다. 

    글을 쓰면서 계속 머리를 굴려보는 입장에서도 참 대책 없고 갑갑하다. 인간이 힘을 합해도 겨우 이정도인가 싶기도 하고.



    한때 유럽 쪽 사람들이 정신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실업급여 등을 이용해 여행을 많이 떠나면서, 이제 노마드가 늘어나면서 세상에 변화가 오려나라는 생각이 조금씩 일어났던 때가 있다. 저명한 사람들이 그런 전망을 내놓기도 했고, 물론 일부 사람들은 아직 변화의 과정 중에 있다고 말 하기도 하고. 하지만 현실은 암묵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봐 주는 형태, 그리고 사회복지체계를 좀 더 쪼으는 방법으로 나아갔고, 이제는 허울좋은 워킹홀리데이 따위의 정책으로 외국의 젊은 노동력을 값싸게 합법적으로 부려먹고 부담없이 내버릴 수 있는 꼼수들을 개발해 내기 시작했다 (사실 합법이라는 것 또한 웃기는 말이다, 시스템이 허락하면 합법인 거다. 극단적으로 '시스템'이 도둑질을 합법으로 인정하면 도둑질도 합법이 돼 버리는 거다).

    그 와중에 사람들은 시스템에 저항하기 보다는... 아아...아아...아아... 그만하자, 절망이다. 말만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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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은 다소 가볍게 끝내자는 의미에서 사족을 붙인다. 이 영화에서는 25세부터 늙지 않고,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설정되어 있는데, 하필이면 왜 25세 일까.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감독은 사르트르의 말에서 힌트를 얻은 게 아닐까. 사르트르는 '인간은 누구나 25세 이상이면 친구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25세라는 숫자를 보자마자 사르트르가 딱 떠올랐는데, 뭐 감독은 아무 의미 없이 그냥 좋은 나이니까 하면서 그 숫자를 택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외모는 다들 이십대지만 나이는 다들 틀린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나이에 상관 없이 다들 대화가 잘만 통하고, 나이를 먹어도 철 없는 사람들은 철이 없다는 것이 살짝 내비치기도 한다.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 나이와 관련해서 또 하나 더 재미있는 것은, 여주인공 아버지가, 얘는 마누라, 얘는 딸 이렇게 가족들을 소개하는데, 마누라나 딸이나 다 이십대. 그리고 여주인공을 처음 소개할 때도, 얘가 내 마누라인지 어머니인지 딸인지 맞춰봐라 하는데, 그러면서 이런 대사를 날린다. "예전에는 인간관계를 파악하기 참 쉬웠지"라고.

    어쩌면 이건, 가정 있는 사람들이 바람을 피우고, 딸 같은 여자 혹은 아들 같은 남자와 연애를 하는 등의 현 세태를 비꼰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얼핏 해봤다. 영화 보러 가는 길에 산악회 관광버스에서 내린 한 무리의 중년들 속에서 몇몇 커플들이 모텔로 향하는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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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로 사족 하나 더. 시간을 화폐로 사용하는 세상은 정말 궁극의 자본주의 시스템이라 할 만 하다. 지금은 돈은 없어도 시간은 남아도는 사람들이 많아서 세상이 시끄러워 질 가능성이 높지 않나. 그런데 시간이 곧 돈이라면, 돈이 없음은 시간이 없음을 뜻하고, 그럼 파업이나 시위 따윈 상상도 못하게 된다. 우와 1%에겐 굉장히 좋은 세상이다!

    그런데 그게 꼭 이 영화 속의 가상 세계의 일 만은 아니다. 지금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는데, 버스나 지하철 타고 다니는 것과 승용차 몰고 다니는 것, 그리고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비교해 보시라. 돈이 부족하면 시간도 부족한 것, 즉 돈이 시간이다. 시간으로 돈을 사는 것은 조금 어렵지만, 돈으로 시간을 사는 건 비교적 쉽다. 

    어쩌면 인간은 그래서 본능적으로 여행을 떠나는 건지도 모른다, 온전히 나만을 위해 시간을 소비하기 위해서. 그 생각을 확장해보면, 시간과 돈에 대한 문제의 해답은 (오래 전부터 여러 사람들에 의해 제시되긴 했지만 여전히) 노마드에 있을 거라는 것이 가장 유력하기는 하다.
     


     
    p.s.
    본문의 모든 사진은 다음(Daum) 영화 소개 페이지 '인 타임'에서 가져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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