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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야는 종말을 예언하지 않았다! - 마야 문명과 2012 지구 종말론에 관하여
    잡다구리 2012. 2. 17. 06:08

    2012년, 드디어 지구 종말의 해가 왔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종말론. 그런데 이번 종말론이 다른 때의 종말론과 약간 다른 점이 있다. 다른 때는 노스트라다무스를 비롯한 평소엔 듣도 보도 못 한 예언가들의 말들을 어디서 주워 와서는 '종말 한다'라고 외쳤다면, 이번엔 뭔가 사람을 혹하게 만드는 나름의 '과학적 근거'를 들이대며 종말을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종말론의 본성은 변하지 않아서, 이번 종말론들도 그 한계가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믿는 자에게만 진실이 보인다'라는 핵심 사상(?)을 기반으로 깔아 놓고, 그 위에 '믿거나 말거나' 류의 유사 과학적 근거들을 올려 놓은 형태니까.



    예를 들어 행성X가 지구로 향하고 있는데, 이것이 다가와서 지구의 멸망을 초래할 것이라는 설을 보자. 그 정도 규모의 행성이 2012년 12월 21일을 디데이(D-Day)로 하고 다가오고 있다면, 이미 많은 아마추어 천문학자들에게도 관측 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나사(NASA)가 중심이 되어 이 사실을 숨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진실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믿는 자에게만 보인다'라는 말이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행성X의 존재유무에서 벗어나 어느새 그들은 그 파괴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애초에 전제가 완전히 성립하지도 않는데, 그 파급효과만 강조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지금 나돌고 있는 2012년 멸망설의 대부분이 이런 형식이다. 그래도 믿고 싶다면 믿어도 좋은데, 그렇다면 나하고 내기나 한 번 하자. 2012년 12월 31일까지 지구가 멸망하면 내가 당신에게 10억을 주겠다. 그런데 멸망하지 않고 2013년을 맞이하면 당신이 내게 10억을 달라. 정말 멸망 할 거라 믿고 신념에 꽉 차 있다면, 이런 내기 정도는 순순히 응해야 맞지 않나?



    어쨌든 그 많은 멸망설 중에서 좀 안타까운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고대 마야인들이 예언한 멸망설'이다. 이 부분은 내 심기에 꽤 거슬리는데, 고대문명을 좋아하며 신비롭게 좀 더 깊이 탐구할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내 입장에서는, 이런 멸망설 때문에 마야가 '뻥쟁이'로 인식되지 않을까 싶어서 걱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찬란한 천문학 기술을 가졌던 고대 마야인들이, 2012년에 지구가 멸망한다고 했다'라고 알고 있는데, 그러다가 멸망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아마도 이럴 테다. "마야인들도 어쩔 수 없는 미개인들이었군!".

    그러면서 나중엔 마야 문명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을 그저, 미개인들의 미신적인 옛날 것들로 치부할 수도 있다. 잘못된 근거로 얼토당토 않은 논거를 들이댄 몇몇 사람들 때문에, 마야가 그런 인식으로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자리 잡는다면 참 슬픈 일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2012 멸망설' 중 '마야의 예언' 부분만 집중적으로 다루어 보겠다. 아무쪼록 그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알아주길 바라고, 아울러 고대 마야 문명은 그렇게 조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고 신비로운 문명이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아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마야인들은 종말을 예언하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대 마야인들은 2012년 지구 멸망을 예언한 적 없다. 일단, 아래 그림을 보자.



    (Tortuguero Monument 6. 그림출처: http://decipherment.wordpress.com/2011/10/04/more-on-tortugueros-monument-6-and-the-prophecy-that-wasnt/)



    위 그림은 '모뉴먼트 6 (Monument 6)'라고 불리는, 멕시코에서 발견된 고대 마야 유물 중 하나다. 지금까지 발견된 모든 마야 유물들을 통틀어서 2012년이 언급된 것은 이 유물 단 하나 뿐이다. 그나마도 많이 파괴되고 지워져서 확실히 무슨 뜻인지 밝혀내기는 불가능 한 상태인데, 완전한 형태라 하더라도 지금 인류의 고고학 지식으로는 마야의 상형문자를 완전히 해석하기는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 '마야의 예언'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비석에 쓰여 있는 일부 내용을 멋대로 해석해서, 2012년에 고대 마야인이 지구 멸망을 예언했다고 떠들고 다닌다. 하지만 이 상형문자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마야인들이 딱히 지구 종말을 예언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들 마야의 상형문자 정도는 유치원 때 배웠을 테니까, 위 그림에 나오는 문장을 잘 읽어 보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치도록 하자. 끝~



    이러면 슬프겠지? 글 쓰기 귀찮아서 이렇게 끝내고 싶은데, 안 되겠지? 아아 귀찮아라.



    (Tortuguero Monument 6 오른쪽 날개 판, 2012년에 대한 언급이 있는 부분. 사진출처: http://www.openminds.tv/mexican-government-and-2012-maya-calendar-pt-2-811/)




    모뉴먼트 6 (Monument 6)


    앞서 말했다시피 '모뉴먼트 6'는 지금까지 발견된 고대 마야의 유물들 중, '2012년'이 언급돼 있는 단 하나의 유물이다. 나무로 된 상자인 이 유물은 멕시코에서 도로 확장 공사를 하다가 발견됐다고 한다. 그 전에는 이 위에 시멘트 공장이 들어서 있어서 유물이 많이 훼손된 상태인데, 특히 왼쪽 날개는 아예 사라진 상태다.



    '모뉴먼트 6'는 모두 일곱 조각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 중 네 조각은 이 유물이 발견된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Metropolitan Museum of New York)에 있다 하니, 멕시코까지 가서 볼 사정이 안 된다면 뉴욕에서 보면 되겠다 (참 쉽죠?). (참고자료 1)

    '모뉴먼트 6'가 발견된 곳은 '또르뚜궤로(토르투게로, Tortuguero)'라고 불리는 지역으로, 이곳은 멕시코(Mexico) 타바스코 주(State of Tabasco)의 주도인 비야에르모사(Villahermosa) 근처에 있는 언덕이다. 하지만 '모뉴먼트 6'는 이곳에 있지 않고, 비야에르모사(Villahermosa) 도시 내부의 '까를로스 뻬이세르 박물관(Carlos Pellicer museum)'에 있다 한다. (참고자료 2)



    (지도에서 A라고 표시된 곳이 모뉴먼트 6가 발견된 또르뚜궤로 언덕이다. 타바스코 주의 주도인 비야에르모사에서 약 50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마야 유적지로 중요한 곳이긴 하지만, 지금 가보면 별로 볼 것은 없다 한다. Cerro El Tortuguero, Tabasco, Mexico(구글맵). (참고자료 3)) 
     


    (2012년 2월 현재, '모뉴먼트 6'의 일부 조각들. 멕시코 비야에르코사의 '까를로스 뻬이세르 박물관'에서 전시중이다. 사진출처: http://yfrog.com/z/o0ynkwpj. 트위터에'@OCV_Tabasco' 가 올린 사진. OCV Tabasco는 타바스코 주 정부가 만든 단체로, 일종의 관광공사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참고자료 4, 5). 오른쪽 작은 것이 2012년이 언급되어 있는 판이다.)




    모뉴먼트 6에서 언급한 2012년


    '모뉴먼트 6'는 몇가지 내용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주로 644년에서 679년까지 그 지역을 통치했던 "B'alam Ajaw (Jaguar Lord)"라는 군주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그의 승전이라든가, 가족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다가, 오른쪽 날개 부분에서 2012년이 언급된다. (참고자료 7) 

    군주의 덕이 2012년까지 계속될 것을 칭송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맞지 않나 싶긴 하지만, 아직 내용의 연관성은 딱히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고대 마야(Maya)의 상형문자를 완전하게 분석 할 수 있는 지식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인데다가, 읽어낸 단어들도 학자들마다 해석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 '모뉴먼트 6' 해석의 기본이 되다시피 하고 있는 글을 한 번 보자. 이 해석은 Sven Gronemeyer와 Barbara MacLeod라는 두 명의 마야 학자들이 써서 공개한 문서에 있는 내용이다. 이 문서는 'Wayeb'라는 이름의, '유럽 마야연구자 협회(European Association of Mayanists)'에서 공식적으로 공개하고 있는데, 본문은 논문 형식으로 딱딱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위키피디아에서 조금 더 보기 쉽게 다듬은 것을 아래에 적어 보겠다. (참고자료 8, 9)



    tzuhtzjo:m uy-u:xlaju:n pik        It will be completed the 13th b'ak'tun.
    chan ajaw u:x uni:w                 It is 4 Ajaw 3 K'ank'in
    uhto:m il[?]                            and it will happen a 'seeing'[?].
    ye'ni/ye:n bolon yokte'             It is the display of B'olon-Yokte'
    ta chak joyaj                           in a great "investiture".


    위 해석본에서 영어로 쓰여진 것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해보면 이렇다.



    13번째 박툰에서 완성될 것이다.
    4 아화우 3 깐낀
    [?]을 보게 될 것이다.
    '볼론-약테'가 나타나는 것이다.
    아주 잘 차려입고.





    마야의 달력과 '2012년 12월 21일'


    '모뉴먼트 6'의 2012년이 언급되는 부분에서, "13번째 박툰(b'ak'tun)"과 "4 아화우 3 깐낀 (4 Ajaw 3 K'ank'in)"은 모두 '2012년 12월 21일'을 가리킨다. 이 부분은 학자들이 대체로 동의하며, 큰 반론은 없는 상태다.

    주의할 것은, 이 날이 특별해서 그렇게 두 번 씩이나 강조한 것은 아니고, 유물에 이런식으로 날짜를 표기하는 것은 고대 마야인들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참고자료 10)



    약간 설명을 곁들이자면, 마야의 달력은 세 가지가 있다. 18,980일(대략 52년)을 주기로 하는 대주기 달력이 있고, 365일을 주기로 하는 "하압(Haab')"이라는 달력이 있으며, 옥수수 성장 주기라는 260일을 주기로 하는 "촐낀(Tzolk'in)" 달력이 있다.

    일단 우리가 쓰고 있는 달력에서 날짜와 요일을 생각해보자. 날짜와 요일은 서로 별 상관이 없는 독립된 주기를 갖고 있는데, 그것이 서로 조합해서 '몇월 며칠 무슨요일'로 사용한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마야의 세 달력은 각각 독립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런데 하압(Haab')과 촐낀(Tzolk'in)은 서로 조합되어서 특정한 날짜를 나타낼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갑자(을미년, 병술년 등)'를 생각하면 대충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이 유물의 '4아화우 3깐낀'도 하나의 형태로 조합되어 '2012년 12월 21일'을 가리키고 있다.



    (마야의 달력을 형상화 한 회전판. 사진출처: http://www.flickr.com/photos/theilr/2164085293/)



    '13박툰'이라는 것는 대주기 달력을 이용한 표기다. 대주기 달력의 시작은 기원전 3114년 8월 11일(August 11, 3114 BCE)이고, 그 날로부터 며칠이 흘렀는지를 나타낸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달력도 기원일로부터 며칠이 흘렀는가를 나타내는 것이니, 그 개념을 그대로 대입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참고로, 이런 마야력은 아직도 마야의 후손들 사이에는 널리 쓰이고 있는데, 때때로 마야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거나, 마야 문명을 배우는 사람들의 웹페이지에서 대주기 력으로 표기된 날짜를 현실에서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참고자료 11).






    마야의 달력에 대한 부분은 깊게 들어가면 설명할 것도 많고, 짧은 시간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2012년 12월 21일'에만 집중해 보자.

    마야의 대주기력은 '12.19.19.17.19' 이런 식으로 표기한다. 이것은 현대 마야 연구자들이 고안한 표기 방식인데, 이것을 마야 식으로 읽으면 '12박툰 19카툰 19툰 17위날 19킨'이 된다. 그리고 이날은 '2012년 12월 20'일을 뜻한다. 그래서 '2012년 12월 21일'은 '13.0.0.0.0'으로 표기되고, 깨끗하게 '13박툰'으로 읽을 수 있다.



    종말론자들은 이 부분을 두서없이 끄집어 내서, "마야의 달력이 2012년 12월 21일날 끝난다"라고 말 한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대강 눈치를 챘을 텐데, 13박툰 다음에는 14박툰도 있고, 15박툰도 있다. 위날(Winal 혹은 Uinal) 외에는 모두 20진법이기 때문에, 박툰도 19박툰에서 다음으로 넘어가고, 그 위에는 픽툰(Pictun)이라는 단위도 있다.

    실제로 마야 유물들 중에는 4.134105 × 1028 (41 octillion)년 후의 미래를 언급한 것도 있다. 여기서 41 옥틸리언(octillion)은, 41 뒤에 0이 27개 붙은 숫자다. 이것 외에도 대규모 마야 유적지로 알려져 있는 멕시코의 코바(Coba)라는 곳에는, 13박툰보다 더 먼 미래를 언급한 유적이 또 있다 (참고자료 9).



    (마야 대주기 달력의 단위들. 자료출처: http://en.wikipedia.org/wiki/Maya_calendar)



    따라서 13박툰이 마야 달력의 끝이라고 보는 견해는 대단히 잘못 된 시각이다. 우리 달력이 매 해 12월 31일에서 끝난다해서 매년 그 때 지구가 멸망하지 않듯이, 마야의 달력 또한 마찬가지다. 이부분을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줬으면 싶다. 고대 마야인들의 달력은 12월 21일날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물론 1박툰은 대략 400년에 걸친 대주기를 가진 단위이므로 신기할 만은 하다. 게다가 13박툰을 0박툰으로 표기하는 습관이 있었다는 설도 나와 있기 때문에, 13에서 어떤 대주기가 일단락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보고 '달력이 끝난다'라고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실제로 남미 대륙에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대다수의 마야 후손들은, 13박툰을 맞이하는 날이 새해와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 날을 위해서 여러가지 이벤트나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도 한다. 물론 그런 행사들은 해당 국가의 지원으로 전세계 관광객들의 이목을 끌고자 하는 의도도 담겨 있다.

     

    이제 날짜 부분은 어느 정도 감을 잡았으리라 생각하고, 참고사항 하나만 더 언급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마야력을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날짜로 변환할 때, 보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날짜가 약간 바뀌기도 한다. 주로 학자들은 GMT를 기준으로 측정해서 '13.0.0.0.0'이 '2012년 12월 21일'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주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현지인들이나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13 박툰'을 '2012년 12월 23일'로 계산하기도 한다 (참고자료 12, 13).

    아직 논란이 있는 부분이라 무엇이 옳다고 할 수는 없고, 그런 견해 차이가 있다는 정도만 알아두면 되겠다. 고작 이틀 차이이니, 21일날 멸망 안 한다고 낙심하지 말고, 23일까지는 한 번 기다려보자.




    볼론-약테 B'olon-Yokte'


    '13박툰', 즉 '2012년 12월 21일'이라는 날짜 다음에 문제가 되는 것은, "볼론-약테(B'olon-Yokte')"라는 이름이다. 해석문을 보면, "볼론-약테가 나타난다"고 되어 있는데, 혹자는 '볼론-약테가 내려온다'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여기서 '볼론-약테'는 신의 이름인데, 주로 종말론자들은 이를 '파괴의 신'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학자들 중에는, '볼론-약테'가 어느정도 파괴나 혼란과 연관이 있기는 하지만, 주로 조정자의 역할을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설로는, 다른 유물에서 '볼론-약테'가 새해를 맞이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며, '볼론-약테가 잘 차려입고 내려온다'는 것은 새해를 맞이한다는 의미일 뿐이라는 해석도 있다.



    (Bolon Yokte K’u의 모습이 아닐까 추정되는 그림. 사진출처: http://www.mexicolore.co.uk/index.php?one=azt&two=cal&id=391&typ=reg)



    어찌됐건 '볼론-약테'라는 마야의 신이 내려온다는 것은 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걸 의미하지 않느냐라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볼론-약테'라는 해석조차도 의문의 여지가 남아 있다. 

    볼론과 옥테'okte (9)'라는 단어가 나왔기 때문에 '볼론-약테(Yokte)'라는 신의 이름으로 해석을 했고, 그것이 정설처럼 널리 퍼진 상황인데, 또 다른 해석으로는 '아홉 신'으로도 읽을 수 있다. 물론 '아홉 신'보다는 '볼론-약테'로 보는 것이 맞다는 쪽이 좀 더 많기는 하지만.



    그래서 또다른 종말론자들은 아홉 신이 내려와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도 하고, 아홉 개의 행성이 일렬로 배열된다고도 한다. 이건 한마디로, 완전하지 않은 해석과 아직은 많이 부족한 고고학적 지식에 상상력을 덧붙여 마음대로 말을 만들어낸 것이다.

    '볼론-약테'든, '아홉 신'이든, 어쨌거나 이 유물에선 '세상이 종말을 맞는다'라는 의미의 단어는 없다. 종말은 고사하고 어떤 종류의 파괴나 혼란을 나타내는 단어조차도 전혀 없다. 단지 '볼론-약테'나 '아홉 신'이 파괴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닐까라는 추측이 있을 뿐이고, 그마저도 그리 신빙성 있는 주장은 아니다. 

    볼론약테 혹은 아홉 신들이 새해맞이 선물을 주려고 내려올 수도 있는 일이고, 뿅 하고 잠깐 보였다가 아무 일 없이 사라질 수도 있는 일이며, 착한 어린이에게만 보일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 식으로 갖다 끼워 맞추기 식 해석을 한다면, 동네 담벼락에 새겨진 낙서에서도 얼마든지 종말의 신호를 찾아낼 수 있을 테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종말론


    어떤 종말론자들은 단순히 이 해석에서만 머물지 않고, 안드로메다보다 더욱 더 아스트랄 한 이야기를 끌어와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기도 한다. '은하 행성 일직선 배열 (Galactic Alignment)'라는 것인데, 개요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지구는 태양을 돌고 있는데, 이 태양계 또한 플라이아데스 성단의 항성 알키오네(Alcyone)를 공전하고 있다. 즉, 지구는 태양을 공전하면서도, 태양을 따라 알시오네 역시도 공전하고 있는데, 이 공전 주기가 26,000년이고 마야 문명은 그 주기를 알고 있었다. 그런게 그 주기가 돌아오는 날이 2012년 12월 21일이고, 그 때 알키오네를 비롯해서 태양계 모든 행성들이 일직선으로 배열되어 지구가 끝장난다 블라블라, 이런 내용이다.



    일단 이 종말론의 특징은 정말 아스트랄 한 것을 끌고 들어와서는, 사람들의 머리를 멍하게 만든 다음 위기의식을 심어주는데, 이걸 반복하면 사람들이 마치 정말 과학적인 근거인 양 믿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 천문학 지식이 매우 짧아서 그런지, 태양이 우리은하를 돈다는 것 까지는 알고 있는데, 우리은하가 또 다른 공전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한동안 천문학에 관심을 안 가진 사이에 다른 새로운 것들이 막 밝혀진건지.



    어쨌든 그 주장을 사실이라 여긴다 해도, 알키오네는 지구에서 약 440광년 떨어진 항성이고,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모습은 440년 전의 모습이다. 따라서 물리적으로 나열해서 멸망을 할 것 같았으면 이미 440년 전에 일이 일어났어야 했다.

    그걸 무시하고 실제로 일직선 배열이 된다 쳐도, 광활한 우주의 멀리 떨어진 행성, 항성간의 배열이라면 딱 12월 21일날 돼서야 무슨 일이 일어날 수는 없다. 개기일식이나 개기월식을 보면, 달이나 태양이 완전히 가려져서 깜깜해지기 전에 서서히 테두리부터 먹어 들어가는 과정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조짐이 지금부터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복잡한 천문학적 상식을 모두 뒤로하고, 아주 깨끗하게, 단 한마디로 반박할 수도 있다. 외국의 한 블로그에서 본 글인데, 그의 반박은 아주 간단했다. "행성 일직선 배열 문제는 더 거론할 가치도 없다. 행성 위치 추적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 2012년 12월 21일 날짜를 넣고 돌려봐라."(참고자료 14) 

    행성 일직선 배열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인터넷에서 찾은 행성 위치 시물레이션 페이지 (참고자료 15)나 프로그램 등을 이용하면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나사(NASA, 미 항공우주국)의 공식 답변도 있으니 읽어봐도 좋겠다 (참고자료 16).



    (2012년 12월 21일의 행성 배열. 그림출처: New Jersey Astronomical Association, http://www.njaa.org/planets/sspositions/opp.html)



    물론 이런 반박을 접하자, 종말론자들 중에는 또 "행성 일직선 배열이 아니라, 태양이 은하계 속에 배치되어 무슨 일이 일어난다"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힘을 얻게 되는데, 여기에 또 마야 달력을 끼워 넣어서 근거랍시고 갖다 넣어 놨다.

    그런데 만약 은하계와 지구 사이에 어떤 장관이 펼쳐진다면 그건, 마야 달력의 정확성에 감탄하는 것과 함께 우주쇼를 감상할 타이밍이지, 지구가 멸망한다는 신호는 아닐 것이다. 그들의 말대로 그런 '주기'가 왔다고 한다면, 왜 예전 주기에는 멸망을 하지 않았던 걸까.




    아, 처음엔 간단히 '모뉴먼트 6' 이야기만 좀 하고 끝 내려고 했는데, 이야기가 자꾸 이렇게 연결되니까 좀 지친다. 마야 달력과 유물에 관한 부분은 그래도, 내 공부도 되고, 나중에 찾아볼 자료로써 가치를 가질 수도 있고 한데, 멸망론으로 들어가면 정말 전혀 쓸 데 없는 짓이 된다. 2013년이 되면 모조리 폐기처분 할 것들이니까.

    그러니까 간단하게 내기 한 판 하고 끝내자. 이렇게든 저렇게든 2012년 12월 21일에 멸망 한다고 주장하려거든, 나하고 10억 걸고 내기 하자.



    사실 멸망설에 대해 언급하려면, '멸망 한다' 쪽에 비중을 두어서 여러가지 설들을 소개하고 전파하고, 마치 전문가인 것 처럼 굴어야 푼돈이라도 벌 수 있다. 사람들은 그런 쪽에 호기심을 가지고 귀를 쫑긋 세우니까, 강연을 하거나 책을 팔거나 하면 되는 거다. 그러다가 멸망 안 하면 나중에 '착오가 있었다, 2022년이다' 이런 소리 하면 되고. 

    그에 반해, '멸망 안 한다'는 주장을 하는 쪽은 그다지 얻을 게 없다. 얻는다면 아마도 멸망설을 믿는 사람들의 악다구니 정도? 그래서 더 길게 쓰기도 싫고, 굳이 일일이 반박 할 필요도 못 느낀다. 나중에 12월 31일날 가서 판정하자.



     (과테말라 뮤직 페스티벌 중, 마야 컨셉으로 나온 뮤지션들의 모습. 사진출처: http://www.flickr.com/photos/17087047@N00/3363387877)



    끊임없이 이런 종말론이 버전업을 해가며 우리 곁을 파고드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돈 때문이다. 책을 비롯한 각종 컨텐츠, 비상용품이나 자기 자신 등을 팔아서 얻는 것은 결국 돈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종 매체들도 이런 컨텐츠들을 심심하면 한 번씩 내놓는다. 그런 컨텐츠들 속에는 제대로 된 사실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들도 있지만 (참고자료 17), 대부분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준에서 딱히 검증 없이 종말론자들의 말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참고자료 18).


    그건 아마도 멸망 하지 않는다보다 멸망 한다가 더욱 특별해 보이고, 호기심을 자극하며, 우리의 감정에 무언가 전율(?)을 일으키기 때문일 테다. 그리고 살기 팍팍한 세상, 멸망이나 했으면 하는 바램도 마음 한쪽 어두운 구석에 또아리를 틀고 있기 때문일 테고. 어쩌면 그런 멸망에 대한 간절한 바램(?)들이 뭉치고 또 뭉치면 언젠가는 멸망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확실한 것은, 멸망의 날이 와서 지구가 반조각이 난다 해도, 지금 우리가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땅을 파 봐야 얼마나 팔 것이며, 식량을 비축해 둔다 해도 멸망 하고나서 비참하게 살아남는 게 또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인생 내팽개치고 있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멸망 한다면, 옆 사람하고 결혼이나 해보자 하고 청혼을 해 볼 수도 있고, 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직장 상사에게 욕을 한 뭉텅이 해 주고 사표 딱 던질 수도 있으며, 전 재산 탈탈 털어 여행을 갈 수도 있는 일이다. 멸망이 실제로 다가와서 해보고 싶은 일들이라면, 멸망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실행할 수 있는 값진 것 아닌가?



    그러니까 멸망의 해를 인생의 전환점으로 활용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전환점을 위해 잠시 여행을 떠나 보는 것도 좋겠다. 이왕이면 2012년 멸망설과 함께 큰 이슈로 떠올랐던 마야인들의 자취를 찾아서 말이다.

    멕시코 같은 경우는 종말론에 힙입어(?) 마야 문명과 관련된 각종 페스티벌도 준비하고 있다 하니, 종말 여행으로는 딱 적합한 시기이기도 하다 (참고자료 19, 20). 나도 왕복 비행기표만 대 주면 따라갈테니, 데려가 주기 바란다.




    결론이 이상하게 나 버렸지만, 피곤해서 급하게 마무리 할 시점이 온 듯 하다. 나중에 마음 내키면 마야의 유명한 유적지를 정리해서 올리든지 해 보겠다. 아무쪼록 모두들, 즐거운 멸망의 해가 되기 바란다.




    참고자료

    1. The Tortuguero Prophecy Unravelled,
    http://www.grahamhancock.com/forum/StrayG1.php?p=1
    2. Examining Tortuguero Monument 6 (the 2012 Monument), http://johnmajorjenkins.com/examining-tortuguero-monument-6-the-2012-monument 
    3. Geographic features & Photographs around Cerro El Tortuguero, in Tabasco, Mexico, http://travelingluck.com/North%20America/Mexico/Tabasco/_3803133_Cerro%20El%20Tortuguero.html#local_map
    4. OCV Tabasco, http://www.visitetabasco.com and @OCV_Tabasco 
    5. Museo Regional de Antropologia Carlos Pellicer (위치: 구글맵), http://www.maya-archaeology.org/museums/carlospellicermuseo/carlosmuseo.php
    6. Download - Much Ado about Nothing: 2012 and the Maya, http://www.peabody.harvard.edu/node/567 (하버드 대에서 있었던 강연)
    7. Tortuguero (Maya site), http://en.wikipedia.org/wiki/Monument_6
    8. Wayeb Note 34: What Could Happen in 2012, Sven Gronemeyer and Barbara MacLeod, http://www.wayeb.org/notes/wayeb_notes0034.pdf
    9. 2012 phenomenon, http://en.wikipedia.org/wiki/2012_phenomenon
    10. Maya calendar, http://en.wikipedia.org/wiki/Maya_calendar
    11. Maya Exploration Center, http://www.mayaexploration.org/tours_solstice2012.php (여행 일정에 날짜가 마야력으로 표기된 것을 볼 수 있다)
    12. Pictographic Maya Calendar Converter, http://users.hartwick.edu/hartleyc/mayacalendar/mayacalendar.html#top (그레고리력을 마야력으로 변환. 자바 플러그인 필요)
    13. Mayan Calendar Tools, http://www.pauahtun.org/Calendar/tools.html (마야력과 지금의 날짜를 다양한 방법으로 변환할 수 있지만, 13박툰을 2012년 12월 23일로 계산하고 있음)
    14. http://nowheretorun.podomatic.com/entry/2008-11-01T10_42_05-07_00 (2012현상 반박글)
    15. Planet Finder, http://www.lightandmatter.com/planetfinder/en/
    16. 2012: Beginning of the End or Why the World Won't End?, http://www.nasa.gov/topics/earth/features/2012.html (NASA의 2012 멸망설에 관한 FAQ)
    17. Mayans Never Predicted December 2012 Apocalypse, Researchers Say, http://www.history.com/news/2011/12/02/mayans-never-predicted-december-2012-apocalypse-researchers-say/
    18. 2012 인류 멸망 대예언 (네이버 캐스트),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1730
    19. Mexico counts down to the end of the world and a tourism boom, http://www.dailymail.co.uk/travel/article-2077034/Maya-end-world-countdown-Mexico-predicts-tourism-boom-2012.html
    20. Counting Down the Maya Calendar, http://www.travelagewest.com/Travel/Mexico/Info/Counting-Down-the-Maya-Calend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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