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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한 번, 당인리 발전소 벚꽃길 (서울화력발전소)국내여행/서울 2013. 4. 24. 03:36
세상이 그리 넓어도 두 눈이 워낙 작기 때문에, 관심 두는 것만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길 밖에도 세상이 있고, 세상 밖에도 세상이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홍대도 마찬가지. 주로 카페, 술집, 클럽, 인디밴드 정도로만 알고있는 그 동네에 발전소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아마 대부분은 홍대에 발전소라니 하며 뜬금없다는 표정을 하겠지. 하지만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홍대 근처, 상수역 쪽 당인동이라는 곳에 발전소가 하나 있다.
흔히들 '당인리 발전소'라고 하는데, 동네 이름을 따서 옛날부터 그렇게 불렀다 한다. 지금 정식 명칭은 '서울 화력발전소'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발전소는 LNG 가스를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화력발전소다. 주말이면 그냥저냥 놀러 나가는 곳에, 전설에서나 흘려 듣던 화력발전소가 있다니, 참 놀랍지 않은가? (아니면 말고)
당인리 발전소 벚꽃길 (서울화력발전소)
당인리 발전소 벚꽃길 (서울화력발전소)
당인리 발전소는 나름 봄이면 벚꽃 명소로 유명한 곳이다. 아는 사람만 알고 가는 곳인데, 사실 여의도 만큼은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비교적 사람이 많이 붐비지 않는 여유로운 길을 걸으며 도심에서 벚꽃을 볼 수 있다.
작년에도 이 발전소는 시민들을 위해서 주말에 발전소를 개방했다고 한다. 발전소 내부에 벚꽃길이 아름다워서 걸어보라는 의미로. 그리고 올해도 4월 둘째 주, 셋째 주 주말에 발전소를 개방했다. 처음엔 둘째 주 주말만 개방하려 했는데, 꽃이 덜 폈다고 다음 주말도 개방했다 한다. 동네 사람 아니면 잘 알 수 없는 정보라서, 어떻게 알음알음 소식을 전해듣지 못한다면 또 놓칠 뻔 했다.
당인리 발전소 벚꽃길 (서울화력발전소)
당인리 발전소 벚꽃길 (서울화력발전소)
당인리 발전소 벚꽃길 (서울화력발전소)
발전소 내부의 한쪽 길을 쭉 따라 걸을 수 있게 개방해 놓았고, 그 길을 따라 벚꽃도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비도 주륵주륵 내리는 주말 시간에, 집에서 뒹굴거리고 싶은 마음을 부여잡고 억지로 나간 보람이 있다.
하지만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벚꽃보다는 발전소 굴뚝에 더욱 눈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몇 번 지나며 밖에서 보기는 했지만, 나도 내부에 들어가서 가까이 보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마치 거인의 몸뚱이 처럼 사방을 압도하는 굴뚝과, 거기서 피어나오는 흰 연기. 그로테스크라는 단어가 이럴 때 딱 어울리는 거겠지 싶었다.
한쪽에 발전소 관계자들이 녹차와 커피를 무료로 나눠주고 있었는데, 그들의 말을 들어보니 더욱 흥미로웠다. 당인리 발전소는 1930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발전소라고 한다. 물론 그 전에도 경복궁 등에 조그만 발전 시설들은 있었지만, 대규모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지어진 발전소로는 최초라고 했다. 발전 비용은 비싼 축이지만, 혹시 모를 에너지 부족 사태를 대비해서 다양한 연료원으로 발전을 해야 하기에 화력발전도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환경과 미관을 중요시하는 시대가 오면서, 이제 당인리 발전소(서울 화력발전소)도 지하로 시설들이 들어간다고 한다. 그리고 지상에는 공원을 비롯한 각종 쉼터가 마련 될 예정이라고. 그 모습을 보려면 아직 많이 남았지만, 화력발전소를 큰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영국의 테이트 모던 같은 성공적인 사례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당인리 발전소 벚꽃길 (서울화력발전소)
당인리 발전소 벚꽃길 (서울화력발전소)
당인리 발전소 벚꽃길 (서울화력발전소)
당인리 발전소 벚꽃길 (서울화력발전소)
올해 당인리 발전소 내부 개방 행사는 이미 끝났다. 내년에 또 할 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내년에 개방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니 지금이라도 꽃이 다 지지 않았다면, 꼭 발전소 내부로 들어가야만 벚꽃을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발전소 주위 길을 따라서 쭉 벚나무들이 심어져 있어서, 굳이 발전소를 들어가지 않아도 꽃놀이는 충분히 할 수 있다. 다소 길이 좁은 느낌도 있고, 막 엄청나게 화려한 분위기를 자아내진 않지만, 이곳은 또 이 곳 나름의 느낌이 있다.
홍대의 연장선에 있는 동네이므로, 곳곳에 조그만 카페가 많다는 것과, 약간 언덕을 올라가면 또 다른 느낌의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조금만 걸어 나가면 한강과 다리를 만날 수도 있다. 마음 내키는 데로, 발길 닿는 데로 걷다가 우연히 마주치는 풍경들을 다가오는 그대로 느끼고 즐기면 된다.
당인리 발전소 벚꽃길 (서울화력발전소)
당인리 발전소 벚꽃길 (서울화력발전소)
당인리 발전소 벚꽃길 (서울화력발전소)
당인리 발전소 벚꽃길 (서울화력발전소)
당인리 발전소 벚꽃길 (서울화력발전소)
당인리 발전소 벚꽃길 (서울화력발전소)
당인리 발전소 벚꽃길 (서울화력발전소)
무엇보다 좋은 것은 홍대앞과 가깝다는 것. 하닐없이 홍대앞에 놀러갔다거나, 혹은 벚꽃 구경을 갔다가 홍대앞의 이상야릇 한 분위기에 휩싸이고 싶다거나 하면 걸어서도 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일단 당인리 발전소를 길 건너편에서라도 한 번 지켜보고 온다면, 그 큰 굴뚝과 엄청난 연기는 한동안 뇌리속에 잊혀지지 않고 남는다. 그래서 이제 홍대앞을 가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이상한 경험도 할 수 있다. 그 존재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을 때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던 것이, 이제는 홍대앞 상상마당 근처에서 쉽게 눈에 띄는 이상한 경험 말이다.
뭐 그리 크게 특별한 일은 아니라 할지라도, 미처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을 하나하나 알아간다는 것은,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알게 된 세상은 이미, 예전에 알고 있던 세상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으니, 어쩌면 아는 게 힘일 수도 있고, 어쩌면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가 인지하고 있든 아니든, 비록 그것이 조그만 꽃잎처럼 흩날려 부질없이 사라지고 말 운명이라 해도, 우리 의식 밖에도 세상은 있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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