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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낯설게 느끼는 여행지 -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국내여행/제주도 2014. 12. 28. 16:34

     '대공분실'은 '보안분실'로도 불리는 곳으로, 경찰청 보안수사대가 설치한 기관이다. 주 목적은 국가보안법 위반이나 간첩행위 체포 조사와 방첩 등이다. 하지만 그 목적에서 벗어나 민주화 운동을 하던 대학생 및 여러 인사들을 감금하고 고문한 곳으로 유명하다. 한때는 그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곳이다.

     

    그중 '남영동 대공분실'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2012년에 개봉된 '남영동 1985'라는 영화의 주 무대가 되는 곳이 바로 여기다. 이 영화는 여기서 22일 동안 고문당한 김근태 전 의원을 소재로 한 영화다. 영화를 본 후 이곳을 견학하면 더욱 실감나게 현장을 들여다볼 수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남영동 대공분실은 원래 'ㅇㅇ해양연구소'라는 간판을 달고 위장해 있어서 뭘 하는 건물인지 알 수 없게 해놨었다. 그러다가 1985년 김근태 고문사건,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으로 널리 알려졌다. 특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어서 더욱 의미 있는 사건으로 기록된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지금은 '경찰청 인권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한쪽엔 인권센터 사무를 보는 공간들이 있지만, 예전에 고문이 행해지던 조사실 등은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공개되어 전시실로 이용되고 있다.

     

    박종철 기념 전시실 등의 전시공간이 있기는 하지만, 박물관 같은 곳이 아니기 때문에 업무시간 중에만 외부인에게 공개된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견학 가능한 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건물을 밖에서 보면 좁은 일자형 창문들이 배열된 공간이 눈에 띈다. 그곳이 바로 5층에 위치한 조사실이고, 거기서 각종 고문이 행해졌다. 5층으로 올라가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다. 정문을 통해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거나, 뒷문을 통해 나선형 계단을 걸어올라가는 방법.

     

    고문당한 사람들이 끌려올 때는 뒷문으로 통해 나선형 계단으로 끌려 올라갔기 때문에,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그쪽을 통해 올라가기도 한다.

     

    어쨌든 5층에 올라갔더니 마침 사람이 아무도 없다. 당연히 평일 업무시간에만 개방하니 사람이 별로 없을 수 밖에. 그런데 단 한 사람도 없이 나 혼자 이 복도를 거니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금방이라도 여기저기서 고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고, 알게 모르게 죽어나간 원혼들이 손을 내밀 것만 같은 느낌. 그저 내 인생, 내 이웃, 이 사회, 이 나라를 좀 더 좋게 바꿔보자고 앞장섰을 뿐이었던 그 사람들.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내 앞에 방문객들이 다녀갔던 것인지 조사실 문 여기저기가 어지럽게 열려 있었다. 불은 다 꺼져있어서 어렵사리 스위치를 찾아서 셀프로 켜야 했고.

     

    조사실 많은 방 중 한 곳은 박종철 열사를 기념하는 뜻에서 그의 영정 사진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가 고문당했을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머지 다른 방들의 시설들이 고쳐진 것을 보아, 그 후에도 조사실은 사용되었을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조사받는 사람이 뛰어내릴 수 없도록 머리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작게 만들어진 작은 창. 자살방지 뿐만 아니라 어두컴컴한 방에 약간의 빛만 들어오게 만들어서 공포를 극대화 한 장치이기도 하다. 그리고 칸막이도 없는 화장실. 변이라도 볼 수 있게 해줘서 참 다행이라고나 할까.

     

    그 옆의 욕조는 당연히 고문을 위한 것. 밖에서만 들여다볼 수 있는 감시구멍과, 밖에서 방 내부 조명의 세기를 조절할 수 있는 스위치. 그리고 문들은 모두 엇갈리게 배치해 놓아서, 문을 열어도 벽 밖에 보이지 않게 해놨다. 조사 받는 사람들이 눈빛도 마주칠 수 없게 만드는 동시에 꽉 막힌 벽만 보이게 해놓은 장치.

     

    벽은 모두 방음시설이 돼 있어서 최대한 내부 소리가 밖으로 새 나가지 않게 해놨고, 모든 문을 똑같이 만들어서 어디로 끌려왔는지 알 수 없게 만들어 놨다. 올라오는 나선형 계단과 문은 모두 철문으로 돼 있어, 공포를 조장하는 청각적 효과의 극대화를 노렸고, 밖으로 보이는 전철역과 전철 다니는 소리가 더더욱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효과를 만들고 있다.

     

    하나하나 짚어가며 보다보면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로 치밀하게 계산하여 사람을 절망 속에 빠트리도록 설계 돼 있다. 이 남영동 대공분실은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이기도 하다.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으스스한 기운보다는 차라리 분노에 가까운 어떤 느낌을 견딜 수 없어 차마 더이상 보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리게 만든다. 권력이 국민을,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유린할 수 있는 건가. 단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끌고가 사람을 병신을 만든 자랑스런 역사가 이어지면서 최근엔 사람을 끌고가 밥줄을 끊어버려 병신을 만드는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는 건가.

     

    4층으로 내려가면 박종철 기념 전시실과 인권 교육 전시관이 있다. 여기도 내가 갔을 땐 사람이 없어서 입구부터 깜깜해서 앞이 하나도 안 보일 지경이었다. 잘 살펴보면 불 켜고 둘러보라고 돼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전시물들이 그리 많이 있지는 않지만, 보다보면 알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오른다. 건물과 복도 전체에서 무서움과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하고, 조사실에서는 슬픔과 분노가 느껴지기도 한다. 전시물들을 보다가 애잔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다시 복도로 돌아나오다가 갑갑하고 복잡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참 어려운 곳이다. 그래서 여기는 이대로 잘 보존하고 후세에 길이길이 남겨서 많이 보여줘야만 한다. 이런 아프고 부끄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말라고, 그리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라도 좋은 세상을 위해 전진하라고.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물려주는 것이 선대가 후대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가치있는 일 아닐까.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인권 교육 전시관을 보니, 일반인들에게도 유용하지만 오히려 경찰들을 데려와서 교육시키면 더욱 유용할 내용들이 보였다.

     

    경찰 신분증 미 제시 및 거부권 미고지: 불심검문하는 과정에서 경찰관이 계급과 성명이 부착된 경찰복을 착용하고 있더라도, 피검문자가 신분증 제시를 요구할 시에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고, 또 임의 동행시 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은 것은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한 것이다'.

     

    경찰직무집행법 제 3조 (불심검문): 경찰관은 당해인에게 자신의 신분을 표시하는 증표를 제시하면서 소속과 성명을 밝히고 그 목적과 이유를 설명하여야 하며, 동행의 경우에는 동행장소를 밝혀야 한다.

     

    규정이 있고 판례가 있으면 뭐 하나. 현실에선 지켜지지 않는데. 요즘 같은 세상에 경찰복만 입었다고 경찰이라고 어떻게 믿나. 그래서 불심검문 시에 신분증 제시 요구하면 비웃으며 말 돌리며 주민증이나 빨리 꺼내라며 강압하지. 그럼 차라리 경찰서 가서 얘기하자거나, 신분증도 안 꺼내는데 당신이 경찰인지 아닌지 내가 어떻게 아냐 하면 또 바쁜 사람 잡아놓고 길에서 시간끌기. 이쯤되면 경찰인지 깡패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신분증 꺼내 보여주는 게 그렇게 두렵나. 왜 행정소송이라도 걸까봐? 당연히 걸지. 부당한 요구는 당연히 항의하는 거다.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인권은 지켜서 좋은 것이 아니라,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좋은 컨텐츠도 많은데, 전국의 모든 경찰들을 일 년에 한 번씩 불러서 교육시켜주기 바란다.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나는 좀 편하게 구경해보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나선형 철계단으로 걸어 내려왔다. 그런데 옛날에 이곳으로 끌려오던 사람들은 이 나선형 철계단 쪽으로 들어왔다 한다.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뒷문을 통해 5층까지 한 번에 이어진 나선형 철제 계단. 뱅글뱅글 돌아서 올라가게 돼 있어서, 눈을 가리고 끌고 올라가면 방향감각도 상실하고 두려움도 느껴지게 한다고. 그리고 이 철제계단을 이용하면 쿵쿵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공간 전체에 울려 퍼지면서, 이미 고문당한 사람들의 청각을 자극한다. 정말 치밀하고 대단하다. 대단하다 대단해.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조사실과 전시실에 퍼져있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와는 다르게, 1층으로 내려가면 아주 현대적이고도 따뜻한 분위기로 시설을 꾸며놨다. 그게 당연한 것이지만, 갑자기 그냥 기분이 나빠져서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나와버렸다. 바깥에는 총알이라도 막을 수 있을 듯 한 두껍고 무거운 철문이 한쪽 옆으로 열려져 있었다. 이 간격의 차이, 지금은 얼마나 좁혀져 있을까.

     

    남영동 대공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사실 경찰청 인권센터, 남영동 대공분실은 그리 기분 좋은 곳은 아니다. 끌려간 것도 아니고 내 발로 스스로 찾아가 관람을 했어도 찝찝하고 불편한 곳이다. 하지만 불편하다고 외면해선 안 된다. 이 불편이 생소하도록, 불편이 불편할 수 있도록 감각을 유지해야 한다.

     

    세상이 그렇게 굴러가도 그저 그렇겠거니 하고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이렇지 않았다, 이보다 나을 수 있다며 불편을 불편으로 느낄 수 있게끔, 언제까지나 익숙해지지 않고 생소할 수 있게끔 유지해야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그게 바로 불편함을 무릅쓰고 찾아가야만 하는 이유다. 부디 공휴일에도 개방되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게 했으면 좋겠고, 그렇지 않더라도 뜻 있는 사람들이 많이들 찾아갔으면 좋겠고, 학교에서도 학생들을 데리고 가서 많은 설명과 함께 교육을 시켜줬으면 좋겠다.

     

     

     

    * 남영역 1번 출구로 나가서 가야관광호텔 쪽 길로 들어가면 바로 찾을 수 있다.

    * 경찰청 인권센터 홈페이지: http://www.police.go.kr/HR/

    * 지금은 고문을 하지 않지만, 이런 대공분실은 아직 전국적으로 수십개가 운영중이라 한다.

      (당신의 집 근처에 공포의 ‘하얀방’이 있다. ‘옛 대공분실’인 보안분실 전국 25곳 (한겨레,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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